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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용

장사가 안 되면 안 되는대로, 되면 되는대로 재밌었다. 그 동안 메뉴도 개발해 맛에 대한 평도 나쁘지 않았고 1년 가까이 버티자 제법 동네 단골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간판이 안 떨어졌더라면, 그래서 120만원이나 쓰지 않았다면, 펌프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일주일씩이나 장사를 못하지 않았다면, 결코 사채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빌어먹을 한달 무이자.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달 평균 매출들을 주욱 보니, 이 위기만 버티면 쨍하고 볕이 들 것 같았다. 버티지 말았어야 했다. 대부업체에 전화를 걸면 그건 버티는 게 아니라 개미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티다가 내려놓았다. 빚만 진 상태였다. 1천만 원. 하지만 대부업에서 끌어댄 돈이었기에 원금은커녕 한달 이자만 갚기에도 버거웠다. 재미있는 건, 이 때부터 내가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있어서 내가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건 월세, 휴대폰, 인터넷 요금, 그리고 담뱃값과 약간의 술값 때문이었다. 돈을 팡팡 벌어서 폼나게 잘 살고 싶은,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싶은 욕망 자체가 없었다. 하루 하루 재밌게 사는 것. 그리고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 접었던 만화가의 꿈을 조만간 다시 꾸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술집을 2년 정도 하며, 빚만 남은 결과 앞에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망에 불이 붙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노골적으로 ‘돈’에 대한 욕망 그 자체만을 동력으로 삼는 직업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보험영업이 그것이다.

 

친한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매니저가 너한테 보험 영업을 권하러 갈 거다. 하도 사람 소개시켜 달라고 졸라서, 미안하지만 그냥 네 연락처 가르쳐줬다. 넌 성격이 뻔뻔하니까 거절도 잘 할 거 아니냐. 그냥 앉아서 얘기만 몇 마디 들어줘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매니저라는 분이 소주방으로 왔고 손님 하나 없는 가게에서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누가 봐도 ‘도를 아십니까’ 같은 태도와 내용이었다. 왜 보험이 필요한지, 그리고 보험영업이 왜 중요하며 수월한지, 그리고 자신의 지시를 잘 따라오기만 하면 얼마나 큰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대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야기했다. 뜬구름 잡는 얘기였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기억하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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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까진 잘 모르겠지만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이제 막 눈 뜬 새내기로서 파이낸셜 어쩌구로 뭔가를 이케이케 하면 막 펀드가 이케이케 되어서 레버리지 효과로 막 돈이 이케이케 된다는 이야기가 일단 신기했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창업마귀’가 씌었던 것처럼 이미 ‘돈’이라는 단어에 귀가 솔깃해진 나로선 또 다시 잇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앞으로 번듯한 사회인으로서 보험이니 적금이니 이율이니 펀드니 알아야 할 텐데. 그동안 난 그런 걸 너무 도외시하며 살았지. 이 세계에 뛰어들어 돈을 못 벌더라도 그런 ‘지식’을 공부하는 셈 치면 결국 장기적으론 손해는 아니지 않나.'

 

나는 간간히 주위로부터 고집이 세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내 설득력은 강동 6주를 따낸 서희가 땅에 머리를 아홉 번 찧으며 예를 갖출 만큼 탁월하다. 문제는, 그 설득력이 내 자신에게만 100퍼 먹힌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적은 나였다.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고 필드에 나갔다.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사람들에게 보험 상품을 권해야 하는데, 솔직히 내 자신이 상품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상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데 보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내 주위 사람들에게 권하지 못하게 된 거다. 물론, 돈이 엄청 많은 사람이 상속세를 대비해 보험 상품을 이용한다든가 절세 효과 등등 잇점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간혹 불안감이 과도해 보험에 미친 사람들을 보면 그 역효과 또한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주위 지인들의 기존 가입 상품 약관을 막상 보니 ‘이건 사기 아닌가’ 싶은, 정작 실제로 보험이 절실할 때엔 아무 쓸모가 없는 상품도 많았다. 속아서 가입한 게다.

 

일테면 이런 거다. 소액 보험을 7개나 가입해 있다. 그리고 뇌종양에 걸렸다. 막상 보험을 이용하려고 보니, 입원비나 상해-통원 치료비 조금 나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보험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뭐 이런 얘기다. 심심찮게 있는 경우다. 죽으면 사망보험금이야 제법 나오겠지. 하지만 30대 주부가 본인의 사망보험금을 이유로 그 많은 보험에 가입할 타당성이 얼마나 있을까. 남겨질 남편이야 입이 찢어질런지 몰라도.

 

그런 결과 앞에서, “이거랑 이거는 쓸모 없는 거니까 빨리 해약해라.”, 다음에 내가 해야 하는 대사. 즉, “그리고 내가 권하는 상품에 가입해라.”라는 말이 너무나도 하기 싫었다. 쟤는 사기꾼이지만 나는 아니다? 순순히 믿어지겠나?

 

더 큰 문제는, 내가 무척 낙관주의자라는 것이었다. 보험은 말 그대로 보험이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경우를 상정해 과도하게 현재의 가치를 희생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공포 마케팅’의 명백한 폐해다. 또한 내가 얻을 금전적 이익은 ‘사업비’라는 이름으로 타인이 무려 7년 가까이 감내해야 할 손실에 바탕한 것이었다. 난 그런 점을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돈을 벌겠다’는 욕망에는 눈을 떴지만 내 안의 서희는 타인에게 너무도 윤리적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열했다. 당시의 내 여자친구에겐 마구 팔아먹었던 것이다.

 

“뭐야? 이런 개떡 같은 상품에 가입해 있었던 거야? 당장 해지하고 (조금 덜 개떡 같은) 이 상품으로 갈아 타!”

 

“고작 이 정도 보장으론 너무 약하잖아. 보험이 뭐야? 최후의 안전망이잖아. 항상 최악을 생각해야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벌어서 보장을 늘려야지. 이 나라에선 한 번 삐끗하면 바로 나락이라구!”

 

당시의 여자친구는 지금도 보험의 ㅂ자만 나오면 나에게 쌍심지를 켜며 “이번 달 보험료 어떡할 거야?!”라고 악을 쓰고 욕을 해댄다. 그러면 난 슬그머니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갠다. 청소기를 밀 때가 마누라에게 당당히 “비켜!”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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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보험이 절대악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 보험 상품이라는 게 ‘품앗이’ 개념에서 나온 걸 생각해 보면 공공보험의 서브 개념으로 존재해야지, 민간보험이 주가 되어선 안 된다. 또한 태생적으로 민간보험은 보험회사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세상 어느 민간기업이 ‘수익’을 적절한 선에서 균형 맞추려 들겠는가. 내가 이런 얘기를 씨부릴 수 있는 ‘지식’이 생긴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그 기간 동안 치른 데미지가 너무 크긴 했다만.

 

가장 최근에 망한 건 ‘마사오닷컴’이라는 성인음란 사이트 사업이다. 아직 사이트는 살아있고 뉴스나 칼럼 위주의 매거진에서 리뷰 사이트로 성격을 달리 했지만 어쨌든 추진하던 몇몇 아이템들이 수익과 연결되지 못했고 이젠 투입할 자금도 없다. 그럼 망한 거지. 자금이 있을 때 성인용품이 됐든, 한국형 AV 영상 제작이 됐든, 야동 중심의 웹하드가 됐든 당장 팔아먹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커뮤니티 중심의 웹진으로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 요인이지 싶다만, 뭐, 지난 이야기이고(사람이 모이는 사이트는 단순히 돈을 번다 생각하겠지만 특정한 수익구조를 창출하지 못하면 사람이 모일 수록 적자다. 언론사 홈페이지들이 왜 그렇게 광고로 도배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아니, 그 전에 딴지가 주기적으로 망하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 어쨌든 난 ‘또’ 망했다.

 

이 나이 처먹고 그렇게 또 다시 취업 전선에 서서 취준생이 되고 보니 이전과는 약간 다른 눈높이가 되었다. 도박 하우스에서 재떨이 비우고 커피 타주면 300 이상 번다던데 내 주위엔 도무지 그쪽과 연결된 인간이 없다. 중국 가서 보이스피싱을 하거나 필리핀에서 도박이나 성인 분야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로우더나 지게차 자격증을 따서 월 250 받고 시골 축사에서 소똥을 풀까도 싶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또 운전대를 잡을까, 소싯적 로망이었던 택시 운전을 할까. 엊그제 우연히 기사에서 봤는데 MBC에서 5년 만에 신입 공채를 뽑는다더라구. 블라인드 채용이라 나이도 안 본대. 아니, 그럴 바엔 차라리 수능을 다시 볼까?

 

써놓고 보니, 눈높이가 달라진 게 아니라 그냥 미쳐가고 있는 것이로구나.

 

늘 그랬다. IMF니 서브프라임모기지니 나라 경제는 언제나 안 좋았고 망했거나 곧 망해자빠질 거라고 했다. 호황이었다는 90년대는 너무 빨리 지나갔고 무슨 연유에선지 호황의 축복에서도, 불황의 비극에서도 난 항상 한 발짝 비켜 있었다. 늘 근근히 살았고 근근히 버텼다. 그래서 요즘 어린 친구들의 문제라는 삼포세대니, 취업전쟁이니 88만원 세대니 하는 것도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내 또래 문제가 아니어서 와닿지 않거나 남의 얘기였다는 게 아니라 나에겐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IMF 사태는 97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지금의 20~30대다. 태어나 보니 안정적인 고용이 사라진 세대. 난 그 친구들보다 스무살도 넘게 더 처먹었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이거 좀 문제 있는 거 아니냐.

 

IMF가 터졌을 때 신촌의 어느 허름한 실내포장마차에서 같이 술을 먹던 형들 중 한 명이 말했다. “한 300만원 정도로 지금 똥값 된 주식 사면 대박인데. 3년도 안 되어서 못해도 열배로 뛸 걸?” 하지만 나를 포함해 그 술자리에 있던 다섯 명 중 300만원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0만원도 없었다.

 

비트코인도 그렇다. 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걸 보며 함 넣고 싶어도 넣을 돈이 없는 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 친구는 건물주다. 그리고 그 집 아들은 종잣돈 3천만 원이 있었는데 선배가 권해서 비트코인에 투자를 했고 그게 터져서 30억이 되었다더라. 15억은 계속 묻어두고 나머지 15억은 현금화해서 블라블라...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미뤄 짐작컨대 20~30대 젊은 친구들도 나와 같지 않을까 싶다. 열패감이나 좌절감 따윈 없을 게다. 박탈감도 뭔가를 가져봤을 때 느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맨손으로 무언가를 성취해 본 경험 아니면 갖고 있던 풍요로움을 박탈 당한 경험. 이런 것들이 없으면 근근히 숨만 쉬며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 된다. 대한민국 20~30대의 마사오화라니. 끔찍하지 않은가.

 

노오력이 부족했다거나 불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하루 네다섯 시간 자며 몸에 종기가 날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겪어보니, 결과적으로 와 닿는 건 ‘운칠기삼’ 이 한마디밖에 없었다. 그것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운이든, 손 대는 사업마다 빵빵 터지는 운이든 간에. 그리고 그걸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운이라는 것도 결국 학벌이나 혈연 따위의 촘촘한 인맥이나 배경과 맞물려 돌아간다는 걸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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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니 하나은행이니 채용 비리로 연일 시끄럽지만 당사자들은 그런 적 없다며 염치를 희롱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고 침을 뱉거나 누구 하나 좆같다며 짱돌 하나 던지는 이가 없다. 그리고 동시간대에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공정성’에 민감한 20~30대 젊은 층의 반발을 불렀다고 분석한다. 이 정도면 정신 분열이다.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중국에 가서 보이스피싱에 몸 담거나 필리핀 가서 도박 성인 사이트 관리직을 하거나. 문제는, 내가 너무 바른 길만 걸어와서 그런 쪽으론 당최 아는 바가 없다는 거다. 은행을 터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고 마약 쪽을 손대는 건 너무 위험하다. 캐나다 가서 뽀르노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신장을 떼어 파는 게 있는데, 그건 좀 더 어려울 때를 위해 최후의 카드로 남겨둬야겠다.

 

난 이렇게 살았고 결국 실패했다. 그냥 입에 곡기나 끊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니, 돈 안 들면서 빵 터질 불법적인 아이템 밖엔 답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렇다.

 

행여 이 <자소서>에서 무언가를 읽어냈다면, 메일 주시라.

 

 

masao89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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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