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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살 노인의 다리와 같은 25살 청년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달가울리 없는 일이지만, 특별한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는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흐른다는 현실조차도 깊어지는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육진훤 씨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CRPS에 걸린 다리에 깁스까지 했다. 재활훈련을 하느라 넘어져 뼈 세 군대가 부러져 아직까지 깁스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은 뼈가 붙을 때도 됐는데 좀처럼 붙지 않고 부러질 때 부은 다리의 붓기도 빠지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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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치료 중 걷기 연습을 하다 넘어져 상처를 입은 진훤 씨

 

CRPS에 걸린 다리의 근육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골다공증까지 진행돼 의사 말로는 연세 90살 정도 된 할머니의 다리와 같다고 했다. 거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오래 복용한 탓에 간 뿐 아니라 콩팥까지 무리가 와 뼈와 골밀도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통상적으로 나이가 들어 골다공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2년에 한 번씩 골다공증 주사를 맞는데, 진훤 씨는 특이 케이스라 6개월에 한 대씩 맞는다. 이 주사도 보험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수가가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한다.

 

그나마 다행은 콩팥의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증상을 의사가 일찍 발견한 일이다.

 

진훤 씨를 담당하는 서울대병원 주치의들도 심정적으로 지쳐가거나, 애를 끓이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날이 추우니 그나마 근육이 없는 진훤 씨의 다리는 뭉치기 일쑤고, 없는 근육이 뭉치면 통증이 계속되어 더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담당 주치의도 화가 나서 "아파도 참고 목발을 짚고 걸어보라. 평생 이렇게 살 것이냐."고 애타는 채근을 했고, 그 소리에 충격을 받은 진훤 씨는 무리해서 걷다가 뼈가 부러졌다. 당사자나 지켜보는 부모나 몇 년째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 모두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연말연시를 보냈다.

 

고통에 멱살 잡힌 진훤 씨는 어머니 유선미 씨를 붙잡고 “다음 생에 다시 아들로 태어나서, 그땐 정말 훌륭한 아들로 살아 줄 테니, 이번 생은 나를 그만 포기해 달라.”고 사정했을 정도다.

 

진훤 씨의 이는 열 대 넘게 망가졌다. 아플 때마다 이를 악물어 이미 깨져 나가 있고, 잇몸도 망가져 임플란트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른다. 정밀 검사를 받아 봐야 한다.

 

 

 

2. “죽은 군인은 책임지고, 산 군인은 책임 없나?”

 

그 와중에 막연하지만, 한 가지 희망은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에서 의무복무 중 부상이나 질병에 걸린 군인에 대해 정부가 치료지원과 함께 필요시 생계지원을 해 주는 안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는 지난 해 연말을 기점으로 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병에게 군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책 수립, 배‧보상안을 마련했고, 국방부가 이를 수용키로 했다. 더하여 올 1월 초부터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는 군에서 질병에 걸린 사병에 대해서도 군 당국이 책임을 지는 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적폐청산위원회에는 국방부 내 실무자에게 의무복무 중 부상을 입었거나 질병이 발병한 군인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선언하고, 필요한 경우 생계지원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여부를 검토해오라고 지시했다. 필요한 예산안도 추계를 잡아 서류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적폐청산위원회 위원들은 군에 이 같은 지시를 하면서 “육진훤, 육진솔 형제 사례를 예시로 들어 검토해 가지고 오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적폐청산위원회에서 인권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고상만 위원은 “죽은 군인에게는 군 당국이 책임을 다하고, 배‧보상도 해주는데, 살아 있는 군인한테는 안 해주는 게 말이 되냐.”면서 “국방부를 열심히 설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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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적폐청산위원회

 

이에 따라 지난 2월 21일 군 적폐청산위원회는, 군 복무 중 사망한 장병이나 심각한 부상‧질환을 입고 전역한 장병들과 가족들에 대해 트라우마 치료, 정신과 진료, 집단 및 개인 심리상담 등을 통해 사회적응을 지원하는 ‘국가차원의 군 피해자 지원제도’의 기반을 마련하는 안을 담은 3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어서 국방부는 이 같은 권고안을 받아 지난 3월 8일 군 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부상해 전역하는 병사의 장애보상금을 일반산재 수준으로 올려 장애등급 및 원인에 따라 556만원에서 1667만원이었던 보상금을 1530원에서 1억 1475만원 수준으로 올리고, 이 같은 안을 담은 ‘2018~2022 군인복지기본계획’을 확정‧발표했다.

 

또 적폐청산위원회 고상만 위원은 “권고는 했고, 장기적으로 군에서 실현하도록 권고안을 반영하겠다고 했다.”며 “육진훤, 진솔 형제의 경우도 담당자에게 지시했고 담당자 책임 하에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합의해 나가도록 내부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고 위원에 따르면 그 동안 육진훤, 진솔 씨가 사용한, 병원비를 비롯한 치료비 등은 가족이 영수증을 준비해 제출하면 국방부에서 전액 보존해주기로 했다.

 

 

 

3. 국방부는 개선안을 발표했지만

 

이러한 개혁논의가 진행되는 기나긴 겨울 육진훤, 진솔 씨와 부모 유선미 씨는 또 다른 시련의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 선미 씨가 아이들이 아프면서, 아이들 몸만 돌보다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 심각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선미 씨는 혈소판에 이상이 생겨 눈까지 실명 위기에 처했다. 입원 치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눈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데, 당장 입원치료를 할 수 없는 사정은 매한가지라, 5월 초로 입원 치료를 잡아놓았다.

 

2월로 예정되어 있던 진훤 씨의 수술도 예정되었던 의료보험혜택 지정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그 사이 진훤, 진솔 씨를 비롯한 CRPS 환자들의 정신과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강도형 교수는 CRPS 환자 진료 방식을 두고 병원과 갈등이 깊어져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중이다. 이러한 사실이 강 교수를 의지하는 CRPS 환자들에게까지 알려져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강 교수의 CRPS 환자 진료 행태에 대해 서울대병원이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것이다. 서울대병원 역사상 징계위원회가 열린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데 강 교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것은 벌써 두 차례다. 이미 강 교수의 진료방식에 대해 반감을 가진 병원측에서는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수가 가장 많은 그에게 의료진 백업조차 지원해주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미투(MeToo)’ 운동의 쓰나미가 서울대병원에도 몰아닥쳤다. 동료 의사들 12인은 강 교수가 간호사와 학생 등을 성희롱 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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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강 교수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나섰고, 피해자라고 하는 간호사는 강 교수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만 밝혔다. 강 교수는 그동안 환자 진료와 승진 문제, 그리고 병원에서 행해지는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내부고발로 병원측 뿐 아니라 동료 의사들과도 적잖은 갈등을 빚어왔는데,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미투 운동이 이용되고 있다며 알 만한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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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서울대병원의 정신과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한 글을 올렸다가 금방 삭제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실 기사에서 언급된 교수의 성추문에 대해서는 내가 알기로 소문도 꾸준히 돌고 예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투서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런 소문이 왜 돌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서울대 본부 차원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구체적인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았고, 그에 따른 징계도 없었던 것으로 안다.

 

2013년 10월 워크샵 관련된 투서 내용은 나도 들었었는데, 공교롭게도 문제의 그 테이블에 내가 같이 앉아 있었다. 당사자인 교수님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있어도 성적인 내용의 언급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 성희롱을 했다는 투서 내용을 듣고서도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내용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일단 내가 직접 본 것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겠다. 사실 나는 다른 높으신 교수님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두 번 직접 목격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해서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 그들을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성폭력의 피해자로 거론되고 있는 당사자도 자신이 당하지도 않은 성폭력 피해자가 되었다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3자가 피해자를 언론에 노출시키는 미투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교실기획인사위원회에서 얼마 전 신문 기사를 통해 폭로된 H 교수의 폭행 건을 덮으려고 이번 건을 터뜨린 것 같다. 조사를 하려면 둘 다 제대로된 조사를 해야 한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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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신의학과에서 수련의를 거친 한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내린 글

 

이와 같은 보도가 나가고 진실공방 논란이 계속되자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주임교수가 담당자들과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파일(강 교수 관련 작성된 문건)은 신임 학장님께 저희 교실의 consensus를 알려드리기 위한 내부 문건입니다. 대상이 된 교수가 저희 교실에 계속 근무하는 것이 부적절하므로 재임용 심사시 고려해 달라는 의도입니다.

 

저희 교실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건을 언론에 제보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언론에서 이미 확보한 상황이 되었으므로 다른 언론에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부디 왜곡됨 없이 사실만을 보도해 주십시오.』

 

이 같은 문자를 보낸 주임교수는 지난해 담당하던 환자들로부터 인권침해 혐의로 인권위에 진정서가 접수된 바 있다.

 

사건의 진위를 떠나, 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들 사이의 문제가 환자들에게까지 영향이 직격타로 미쳤다. 당장 진훤, 진솔 씨를 비롯한 CRPS 환자 수백 명을 담당하고 있는 강 교수가 병원 내부의 이런 압력에 시달리면서, 써야 할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처방을 해 주지 못해 진훤, 진솔 씨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마약류 진통제를 처방 받지 못해 부러지기까지 한 다리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고, 고통이 잦아들지 않으니 상태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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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보고 약이 나올 때까지 병원 입구 한쪽 구석에서 잠든 진훤 씨

 

지난 3월 8일 기자는 진훤 씨의 진료에 동행했다. 마취통증의학과와 피부과에서 진료를 받는 진훤 씨는 고작 5분씩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지어 나오기까지 정작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환자들로 미어터지는 그 아비규환 같은, 도대체가 사람을 치료하려는 건지 없던 병도 걸리게 만드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병원 복도에서.

 

진통제 성분이 바뀌어 고통에 시달리는 진훤에게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N-Acetyl cysteine을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서 복용할 것을 권했다.

 

선미 씨는 아직까지 약을 구입하지 못했다. 어떤 제품을 구매해서 얼마만큼 아들에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혹시나 잘못된 약을 먹였다가 아들의 상태가 더 악화될까봐 두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