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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통령 선거 전 시동이 한창 걸리던 무렵, 뜻밖의 차출을 받았다. “김승현의 좋은 아침 -영부인 후보 특집” 팀에 합류하라는 명령. 대통령 후보가 보도 프로그램이 아닌 일반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으니 영부인 후보들을 주인공으로 VCR도 찍고 스튜디오도 초대하는 것을 컨셉으로 하는 일종의 우회전략이었다. (부인 찍는데 남편이 안 나올 수 있나. 나중에 아웅하더라도 눈은 가리고 보자는 거였다.)

 

출연자는 총 4명, 이명박,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부인들이었다. PD 둘이 두 명씩 나누는데 선배 PD가 “나 이명박 보면 카메라로 때릴지도 몰라.”하면서 이명박 후보를 강력히 고사했다. 나는 트라이포드로 때릴지 모른다며 저항했으나 짬밥에 밀려 이명박 후보 부인 김윤옥 여사를 마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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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쌀쌀한 날, 고만고만한 한옥들이 즐비한 종로구 가회동 골목길로 걸어 올랐다. 한옥들의 기와지붕들이 도란도란 어깨를 맞댄 오르막길 가운데에 이명박 후보가 전세로 살던 집이 있었다. 그리 화려해 보이지 않는 가회동 한옥집이었다. (1년 뒤 50억 매물로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니 그 집이 50억이라고...) 김윤옥 여사가 맞아 주었지만 이명박 후보도 집에 있었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겠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을 직접 대면한 건 처음이나 마지막이었다. 개인 감정이야 어떻든 악수를 할 때 두 손이 내밀어졌고 고개 각도는 상당히 가팔라졌다. 마침 후보의 건강이 화제에 올랐고 후보님 본인이 자전거 수십 킬로는 항상 탄다며 호언하시길래 자전거 운동 기구를 한 번 타 보십사 청했다. “어 어 그러지 뭐.” 자전거에 타고 페달을 밟으시는 모습을 열심히 찍는데 갑자기 이명박 후보가 비서를 부른다. 뭔가 했더니 나를 돌아보며 눈 작아지고 입은 튀어나오면서 벌어지는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셨다.

 

“스프레이! 땀 좀 내야 되지 않겠어요?”

 

아! 땀방울이 좀 맺혀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 아 이 무능한 PD의 게으름을 깨우치는 죽비같은 디테일. 번개와 같이 분무기가 전해졌고 이명박 후보는 ‘구슬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셨다. 뒤에 카메라 감독이 나한테 슬쩍 농담을 던졌다. “땀방울도 타이트로 찍어 놨어요.”, “의학 다큐 찍습니까 뭐.”, “그래도 후보가 직접 연출한 건데. 흐흐.” 권력이 무섭긴 무서웠다. 순간 어 그래야 되나? 하는 생각이 0.5초 스쳤으니까. 이내 카메라 감독에게 장난스레 빽 고함을 지르고 말았지만.

 

촬영 콘티를 들여다보는데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돌솥밥. 아... 맞다. 김윤옥 여사의 아침 서비스라고 했지. 이 자상한 내조의 현장은 촬영의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였다. 김승현씨와 식탁에서 토크를 진행하다가 김윤옥 여사가 아침상을 준비해 오셨다.

 

돌솥밥이 두 개. 아 여사님은 같이 식사 안하시나보다 하고 지켜보는데 어랍쇼. 돌솥밥은 하나, 하나는 찌개였다. 김승현씨와 이명박 후보와 김윤옥 여사가 같이 식사를 하는데 돌솥밥은 오롯이 이명박 후보 차지 아닌가. 계란 하나 낼름 부어서 반숙을 해 드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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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씨도 어색했던지 밥그릇에 날계란을 부었다.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얹어먹는 건 몰라도 날계란을 밥 위에 뿌리는 건 매우 기묘한 그림이었다. 아니 돌솥밥 하나 더 없어요? 평소 같으면 바로 NG 내고 돌솥밥 하나 더 가져오라고 우렁차게 얘기했을 테지만 그게 또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도 예비 권력 앞에 비겁했다. 참 맛있게도 드시고 “반찬 투정 안해요.” 자랑하고 계시는데 거기서 돌솥밥 하나 추가 부르짖으며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면 안되죠!” 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하고 싶다. 아울러 김승현 씨에게도... "돌솥밥 먹고 싶으셨을 텐데... 무능하고 소심한 PD가 모자라서... 죄송합니다."

 

이 얄미운 카메라 감독님이 김승현씨의 허연 밥 위에 노른자가 탐스럽게 낙하하는 모습을 타이트로 찍어 놨다. 이걸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돌솥밥 타이트 뒤에 붙였다. 작가가 약간의 이의를 제기했지만 한 마디로 입을 막았다. “맛있게 보이잖아. 계란이.” 뜨끈뜨근한 돌솥밥에 간장 넣고 계란 비벼먹는 후보와 맨밥에 날계란 얹고 숟가락 푸는 MC를 대비할 의사는 절대로 없었다는 점을 얘기해 두고 싶다. 나는 그렇게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냥 계란이 맛있어 보였을 뿐이다.

 

그 밥상머리에서 김윤옥 여사는 예닐곱 번 이런 얘기를 하셨다. “워낙 젊을 때 고생을 해서... 못 먹어서... 제대로 먹질 못했으니까...” 차려 주는 대로 잘 드신다는 것이었는데 밥 잘 먹는다는 자랑보다는 과거의 고생을 강조하는 느낌이 강력하다 못해 과도했다. 그분의 유세를 따라다닐 때 늘상 하시던 얘기도 그것이었다. “우리 남편도 고생 많이 해 봐서...” “우리 남편도 밥 굶어 봐서...” 산수 안 되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 봐도 평생 못먹었던 날보다는 잘 먹고 잘 산 날이 더 많을 듯 한데, 또 그 얘기를 하시면 왜 그렇게 사람들이 “아이고. 아이고. 쯧쯧. 참 고생했지.”를 연발하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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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그 날로부터 11년이 넘게 흘렀다. 요즘 TV에 등장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완연히 늙어 있었다. 이제는 자전거에 올라타면 1분도 못 가 헉헉대고 내려오실 것 같았다. 그런데 이분께서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셨다. 2011년 10월, 국정원에서 받은 10만 달러가 가사 업무를 담당하던 청와대 직원에게 전달됐고 또, 해당 직원으로부터 당시 청와대 내실에 있는 책상 위에 돈을 올려놓았다는 진술도 나왔는데 이 돈을 두고 ‘대북 공작금’으로 사용됐다고 말한 것이다.

 

과거 70대의 나이에 북한 공작원으로서 남한 정보기관을 농락하고 숱한 운동권들을 포섭하고 다녔던 전설의 할머니 이선실처럼 김윤옥 여사도 대북 공작에 투입됐다는 얘기 아닌가. 부인을 대북 공작원으로 차출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존경스러우나 국정원 특활비를 그렇게 썼다고 말하는 걸 보니 자전거에 올라타서는 비서에게 스프레이를 호출하던 그 센스는 이제 나이와 함께 사라진 듯 하다.

 

현대건설 회장 사모님에서 시장 사모님, 대통령 영부인까지 경험하신 김윤옥 여사께서 대북 공작원으로서의 인생 이모작을 영위하고 계시다는 남편의 폭로(?)에 낄낄거리다보니 문득 그날 아침 생각이 났다.

 

과연 지금도 돌솥밥을 해 주고 계실까. 남편이 성명서 발표하거나 대책회의할 때 모여든 참모들이랑 아침 먹을 때에도 남편에게만 오롯이 돌솥밥을, 나머지에게는 공기밥을 대령하고 계셨을까. 졸지에 대북공작원이 된 다음에도 남편에게 밥을 챙겨 주고 계실까. 아니면 혹시 돌솥밥부터 모든 것이 대북 공작이었을까. 그리고 하나 더 여쭙고 싶은 거.

 

"어려서 고생을 해서 그럴까요. 왜 그렇게 돈 욕심이 많으셨대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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