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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무한도전이 막을 내린다. 2005년 4월 23일에 시작된 토요일의 무한도전이 내일 멈춘다. 4726일 동안의 도전이었다. 그들의 도전이 이름처럼 무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감 나지 않는다. 그들 없는 토요일이 익숙했던 건 13년 전 일이다. 

 

13년. 군만두만 먹으며 갇혀있던 <올드보이> 오대수도 곧 세상 밖으로 나올 시간이고, 25년 받은 최순실도 “헐 벌써 반 바퀴나 돌았군.”하고 출소를 꿈꾸기 시작할지도 모를 시간이다.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던 첫 방송 때 태어난 아기는 올해 중학교에 들어갔고, 그때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이 곧 서른이다. 무한도전이 메워온 시간은 거대함 그 자체다.

 

그런 거대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인가를 자신의 의지로 13년 동안 지속한 지독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근사한 취미나 끊을 수 없는 습관을 얻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그런 긴 시간을 덧없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철이 든다거나 중후해진다거나 하는, 한두 해 가지고는 어림없는 과업들을 해낼 때 말이다. 

 

그런 막연한 여정에는 같이 걷는 동료가 필요하다. 천둥벌거숭이 시절부터 서로의 역사를 공유해온 관계. 그 덧없는 시간에 쌓인 정으로 어느덧 친구라고 부르는 견고한 사이. MBC<무한도전>이 시청자와 보내온 시간은 그 정도다. 별일 없으면 주말마다 만나 시시껄렁한 농담을 재미지게 주고받다가 헤어지던 어느 오래된 친구가 이제 기약 없는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누구도 에이스가 아니었던 시절

 

오래된 친구와의 첫 만남은 어렴풋하기 마련이다. 애써 떠올려봐도, 첫 대면과 첫 대화의 기억은 좀처럼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는다. 왜 친해졌는지 도무지 인과관계를 따질 수 없는 조각들만 기억 속에 뒤죽박죽 튀어나온다.

 

<무한도전>이 <무모한 도전>이었던 시절도 그랬다.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지하철과 달리기 시합을 하며 포크레인과 삽질 대결을 하는 그런 친구들이었다. ‘도대체 이걸 왜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온갖 ‘삽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황당한 화면이 그들의 첫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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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도대체 저걸 왜 하는 거지?’라는 질문에 누구도 답 해주지 않았지만, 그 친구들은 하여튼 뭔가에 열심히 도전했다. 뜻대로 안 되면 “누구누구는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를 외치며 바보 같은 희망을 재충전하면서 말이다. 동시간대 <스펀지>는 지식의 별이라도 따주지, 당시의 그들의 한심한 몸부림이 채워진 화면은 TV 끄고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유도하기에 딱 좋았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들의 도전’은 왜인지 모르게 눈이 갔다. 맨땅에 헤딩을 해서라도 웃음을 만들어내겠다는 예능인들의 처절한 의지에 감화되었을까. 전성기가 없었던 연예인들의 울분에 찬 악다구니에 동화 된 것일까. 그들과의 시간은 어쨌든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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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트루먼쇼

 

첫 만남은 골 때렸지만 오래 두고 보니 진국이었다. 끝도 없는 무식을 뽐내며 즐거워하고, 서로 못생겼다고 골려대면서 가까워져 갔다. 그들이 꺼내놓고 씹고 뜯고 즐기고 맛보는 재료들은 연예인으로서의 캐릭터를 넘어 각자의 건강, 가족, 군 복무, 연애, 사업 등 사적인 영역을 넘나들었다. <무한도전>이 표방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는 대본의 간소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유대감을 쌓아가는 방식은 시청자들이 진짜 친구들과 시간을 쌓아가는 과정 그대로를 차용했다. 오랜 기간, 긴 호흡으로 서술된 출연자들의 친화 과정을 같이 해 온 시청자들이 멤버들에게 느끼는 친근감은 그래서 남다르다. 

 

예복을 입고 주례 앞에선 친구의 뒤꼭지를 바라보며 그의 코찔찔이 시절을 떠올릴 때 드는 벅찬 느낌처럼, 친구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재밌지만 좀 모자랐던 친구들이 무언가 하나씩 열심히 해낸다. 어느 순간 그들의 도전은 더 이상 바보 같은 삽질이 아니었다. 농사를 짓고, 댄스스포츠를 배우고, 패션쇼에 선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하던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봅슬레이 트랙을 기어코 정복하고, 열심히 노를 저어 조정대회 결승선을 통과한다. 비록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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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도전들에 여지없이 전개되는 좌충우돌, 지난함 그리고 끝내 맛보는 성취의 눈물. <무한도전>의 클리셰들은 반복될지언정 진부하지 않았다. 수많은 도전은 매번 새로운 역경과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무한도전>은 독보적인 예능이 되었다. 시간이 쌓여갈수록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설정은 무의미 해져갔다. 도전 그 자체가 이야기의 본질이 되었다. 기획에 공익성과 사회비판을 붙여내도 촌스럽지가 않았다. 그것이 기법이 아니라 진정성이었기 때문이다. 소와 씨름을 하고 지하철과 달리기를 하는 악다구니의 ‘무모한 도전’이 다른 의미의 ‘무한도전’으로 성장했다. 성장한 무한도전은 ‘30대를 훌쩍 넘긴 사람들도 무언가에 뜨거울 수 있다는 것’과 좋아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의 굴레에 묶여있는 이들에게 ‘당신도 언제든지 뜨거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은 그런 친구들이었다. <무한도전>은 그런 성장기를 담은 예능의 ‘트루먼쇼’였다. 

 

 

굿바이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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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지금의 무한도전만큼이나 많은 여운을 남겼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뉴욕 맨해튼의 여섯 친구들의 삶과 우정을 다룬 시트콤 <프렌즈>는 94년에 시작해 무려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10개 시즌 236 에피소드가 방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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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로스, 모니카, 챈들러, 피비, 조이. 미드로 영어 공부해본 사람이면 한 번쯤은 중얼거려봤을 이름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시즌 1의 파릇했던 20대의 배우들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될 때까지 배역을 맡았다. 10년을 극 안에서 성장한 것이다. 2004년 <프렌즈>의 종영은 연기한 배우들도, 시청자들도 10년지기와의 힘든 이별이었다. 10년 동안 지지고 볶았던 텅 빈 아파트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아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프렌즈’들의 연기는 아마도 진짜였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마지막 토요일을 앞두고, 그 의미를 몇 줄로 욱여넣어 보려다가 몇 번을 지우고 새로 쓰기를 반복했다. 허락된 몇 단락 안에 그것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감동적이었는지, 아쉬웠는지를 담아내기에 그들과 지내온 시간은 켜켜이 쌓여있고 지면은 하릴없이 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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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가 소중한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언제 왜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까마득하지만, 가득히 공유하는 추억들로 서로에게 서로가 배어 있는 그런 사이를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좋은 친구와의 작별은 아쉬운 일이나 너무 애달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한도전>과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면,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도 어색함은 저 멀리 제쳐두고 와락 드는 반가움에 등짝을 찰지게 쳐올릴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중년이 된 <프렌즈>의 배우들을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날 때마다 맨해튼 아파트의 철없던 친구들이 생각나 반가움이 드는 것처럼, <무한도전>의 멤버들도 여기저기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하이파이브를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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