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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1663년 포르부르흐로 이주했다. 이곳은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지 헤이그와 지척이다. 스피노자는 이곳에서 공화파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충격적 문제작 <신학 정치 논고>를 출간한 것도 이곳에서였다.

 

<신학 정치 논고>는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 책의 출간에서부터 세상에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신학 정치 논고>는 철학사상 최악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다음은 그의 생전과 사후 그가 들었던 저주의 목록이다.

 


 

- 라이프치히 대학의 철학과 교수 토마시우스 :

개화가 안 된 저술가, 신을 모독한 전형적인 유태인이자 완전한 무신론자, 소름 끼치는 괴물

 

- 의사 겸 화학자 디펠 :

우둔한 악마, 꽉 막힌 요술쟁이, 돌아 버린 멍청이, 정신병원에서 값싼 공로를 세울 천치, 술에 취해 정신이 돈 사람, 넝마 같은 철학, 눈속임에 능통한 익살스런 광대짓, 가장 유치하고 가장 비참한 소리

 

- 수학자 겸 물리학자 뉘른베르크 대학 교수 슈투름 :

불쌍한 새끼, 기형 동물, 악마의 저주받은 직관으로 가득 찬 사람

 

- 신학자 무제우스 :

악마를 매수해 모든 신적이고 인간적인 권리를 완전히 파별시킨 시공간에서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는 스피노자다.

선천적으로 거대한 재앙을 타고난 사기꾼으로서 파괴의 작업에 제 몫을 더한다.

신에 대한 모독, 무신론으로 꽉 차 있어 참으로 지옥의 어둠 속에나 던져 버려야 할 책

그 책은 지옥으로부터 인류에게 수치와 피해를 입히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지구에서는 몇 세기 동안 그보다 더한 파멸의 근원이 있어본 적 없다.

 

- 한 곡물상인 :

 지구가 존립해 온 이래 지금까지 그처럼 신앙심 없는 책은 출판된 적이 없었다. 현학적인 혐오감으로 가득 찬 책이다.

 

- 볼테르 :

형이상학을 가장 추악하게 사용하여 만들어진 책

 

- 라이프니츠 :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건방진 저술, 아연 실색

 

- 철학자 하만 :

건전한 이성과 학문을 해친 노상강도 겸 살인자

 


 

<신학 정치 논고>를 비난하는 일은 사회적 유행이 되었다. 자신의 정의와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가 한목소리로 뛰어들었다. 지식인은 물론 유행에 민감한 일반인도 자신이 상식인이라는 증거를 대기 위해 <신학 정치 논고>에 저주를 퍼부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그만큼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천인공노할 만큼 정밀하게 쓰였다. 그저 그런 논리로 꾸며낸 책이었다면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학 정치 논고>는 출판물이 귀하던 당시에 5년간 5쇄를 찍었다. 전 유럽의 베스트셀러였다.

 

양지에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불리는 동안 익명의 저자, 즉 스피노자는 음지에서 컬트적인 지지를 받았다. 남몰래 책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부터, 사상 전개 방식과 유려한 문체에 반한 사람들까지. 그들은 금세 스피노자를 열렬히 흠모하기 시작했다.

 

스피노자의 저술을 일컬어 '라틴어 문학의 마지막 걸작'이라고도 한다. 그는 라틴어로 저작을 발표했는데 이 어려운 언어를 고대 로마시대의 문인처럼 자유자재로 다뤘다. 본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스피노자의 필력은 독자들에게 경탄의 대상이었다. 스피노자 이후 그보다 라틴어 문장을 잘 쓰는 인물은 출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의 불만은 이렇다.

 

'왜 데카르트 같은 위대한 천재도 굳이 신존재 증명을 하려고 하는가?'

 

사유를 전개해 나가다가 신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그냥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이 무신론으로 수렴되는 게 아니냐는 공포에 떨며 살았지만, 사실은 신이 없다고 논증되면 그저 없을 뿐이다.

 

이상하다. 스피노자는 신성으로 가득찬 철학자라는 평을 듣는다. 별명 중 하나가 '신에 취한 사람'이다. 맞다. 스피노자는 신에 취했다. 그런데 그 신은 인격신, 유일자가 아니라 범신론의 신이다.

 

범신론이란 모든 사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정신이라고 한다. 신이라는 용어를 선택했을 뿐이므로 정신이라고 해도 되고 조선 유학의 '이기론'에서 이(理)라고 해도 된다. 어디에나 깃들어 있는 법칙.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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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선험적인 절대적 이성, 즉 로고스가 있다고 했다.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인간의 영혼은 절대 로고스인 신과 물질 사이에 존재한다. 반면 스피노자는 우주의 정신은 물질을 적시듯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 정신은 예를 들자면 수학적 원리 같은 것이다.

 

스피노자는 신이란 철학적, 언어적으로만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을 포함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 근거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물리법칙이다. 초끈이론의 초끈이라고 해도 좋다.

 

돌에도 벌레에도, 어떤 자연 현상에도 그 안에는 기하학적 원리가 있다. 우리는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 속에서 살아간다. 꼭 기하학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원리가 있다면 그것이 스피노자의 신이다.

 

우주는 신성으로 가득하고 어디에나 신성이 흐른다면 우주는 곧 신이 아닌가? 우주의 일부인 인간도, 개도, 돌도 신의 일부가 아닌가? 그렇다.

 

이러한 개념을 신 즉 자연 - '데우스 시베 나투라'라고 한다.

 

스피노자는 “자연은 고정된 불변의 질서를 보존하고 있고, 예외란 있을 수 없다.”라고 못 박는다.

 

공간적 개념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시간에 따른 인과율을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곧잘 스피노자를 체념과 염세의 철학자로 오해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게 될 만한 환경과 경험이 있어야 하고, 내가 태어나야 하고,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이 태어나야 하고, 유인원이 있어야 하고 척추동물이 있어야 하고... 요즘의 이해로는 빅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다시 역산하면 빅뱅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나는 필연적으로 지금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런 차원에서 스피노자는 자유 의지를 착시현상이라고 했다.

 

스피노자는 시니컬하게 말했다.

 

"(인간이 던져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돌은 '나는 지금 자유의지로 비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공간과 시간은 우주를 구성하는 교차된 두 선, 즉 X축과 Y축이라는 사실만 상기하면 된다.

 

“신은 모든 것의 원인인데,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

 

신 즉 자연이라는 말은 '신 즉 시공간 전체'라는 말과 같다. 시간도 우주의 구성요소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체념적이지 않다. 현대의 천체물리학자는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공간을 일러스트로 그리곤 하며 미래는 정해져 있음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당 물리학자가 현실의 차원에서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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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존재론의 핵심은 '능산자'와 '소산자'다.

 

능산자 : 능산적 즉 생산하는 자연

라틴어로 "나투라 나투란스 Natura Naturans"

 

소산자 : 소산적 즉 산출되는 자연

라틴어로 "나투라 나투라타 Natura Naturata"

 

생산하는 자연과 생산의 결과로써의 자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는 창조주이자 그 자체로 결과다. 그러므로 인간과 사물은 우주의 일부로서 능산자인 동시에 소산자다.

 

이 개념이 혁명적인 이유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물과 기름 같은 구분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인격신은 물론, 창조주로서의 신도 사라진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무신론이다. 스피노자를 반박하는 사람들은, 특히 코플스톤처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철학자들은 이걸 걸고 넘어진다. <신이 있다는데 사실은 무신론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믿을 수 없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실은 그게 바로 스피노자가 이해시키려고 했던 내용이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실체(존재를 의심할 수 없는 본질적 존재)란, 스스로의 힘만으로 실체임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다. 간단히 말해 거울을 보고 내가 나인 사실을 인지할 수만 있으면 실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신과 같은 절대성을 지닌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

 

그렇기에 스피노자는 인간이 타인의 자유와 신념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이교도에게 신성모독이라며 손가락질하는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신성모독자다. 실체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신의 '최애캐'도 아니다. 인간은 그냥 인간으로 태어난 동물이다. 우주 안에서 모든 사물과 생명은 다른 의미를 같지 않는다. 우리는 능산이자 소산이다. 우리의 원인이자 결과다. 인간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다른 생물과 사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해 놀랍도록 심드렁하고 차가운 스피노자의 존재론은 <에티카>에 이르러 윤리학의 최종보스로 진화한다.

 

위에 설명한 능산자와 소산자 개념은 <에티카>에 등장한다. 그리고 <신학 정치 논고>는 제목 그대로 신학 논고와 정치 논고를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이야기의 전개 순서상 존재론을 먼저 풀었다.

 

다음 편부터는 1670년을 기준으로 다시 스피노자의 인생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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