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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뚝에 묶인 개

 

 

“그들은 말뚝에 줄로 묶인 개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칙과 신조에 따라 

정해진 반지름 안의 지인들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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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로 알려진 월터 립맨(Walter Lippmann)이 <Public Opinion(여론)>에서 한 말입니다. 립맨이 이야기한 ‘그들’은 그가 <여론>을 집필한 1950년대 중반, 다양한 정보를 접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경제력이 있는 계급입니다. 정보 수집을 위한 여력이 있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갇혀 있는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어렵단 뜻이겠죠.

 

물론 그가 살던 20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보에 대한 접근 용이성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문이나 라디오가 큰 영향력을 갖고 여론을 주도했던 시절과 나라 구석구석까지 인터넷망이 정비되어 기존 언론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현재를 비교해 보면, 오늘날이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모을 수 있고, 그 정보의 다양성도 70년 전과 비교 안 될 정도로 다양하고 자세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따라 여론 형성에 참가하고 있을까요? 립맨의 말에 따르면, 그가 관찰한 20세기 중반 미국 사회에서는 여론이 형성되는데 해당 집단의 주도자(리더) 외의 구성원이 각자의 기분이나 의견을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했답니다. 이것이 바로 립맨이 상정한 집단 모델인데, 당시 그가 보고 있던 집단은 지금 우리가 놓여 있는 SNS 공간과는 큰 차이가 있었겠죠(립맨이 상정한 ‘집단’은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주된 연결고리였던 반면, SNS 공간에서 연결되는 ‘집단’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라는 요인도 있겠지만 그보다 서로에 대한 느슨한 친근감이나 관심 등이 주된 연결고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SNS 공간에서 느슨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친구’나 ‘팔로워’가 자신의 생각, 혹은 나를 대변해 주는 의견을 제시함으로 의견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알게 모르게 “말뚝에 줄로 묶인 개”가 되어 버린 면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필자의 이런 의심은 추측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2014년 페이스북에 의해 치러진 실험을 알게 되면 필자의 의심이 꼭 망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링크(영어,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요점만 소개하자면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의 타임라인에 표시되는 멘트를 조작해 봤더니, 사용자들의 기분이나 투표 행동이 변화했다는 내용입니다.

 

사용자 하나하나에 대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용자의 규모 자체가 크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바꿀 방아쇠 역할 정도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하죠(SNS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페이스북이 실시한 실험에 대해 과학지 <네이처> 웹 판에 실린 논문  (영어, 링크)도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SNS를 이용한 여론 조작이 의심되는 사건이 몇몇 있죠.

 

2016년에는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 것이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고(한국어, 링크), 작년에도 역시 러시아가 프랑스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한 의혹이 제기됐으며(영어, 링크), 영국의 EU 탈퇴에 있어서도 러시아가 트위터를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한 사실이 포착된 바 있습니다(영어, 링크).

 

러시아 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국내 여론 조성에 SNS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고(일본어, 링크), 한국 내에서도 여러 ‘댓글부대’들이 활약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집단’ 속에 숨어 우글거리고 있을 겁니다. 마침 이 원고를 쓰기 한 달 전인 3월 6일 <KBS ‘시사기획 창’>이 보도한 “여론조작과 기무 비록(秘錄)”도 쇼킹한 내용이었죠(한국어, 링크).

 

일반인에게 밝혀지는 이들 사례들은 SNS에 의한 여론 조작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실제로는 훨씬 더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대상에는 당연히 우리나라(아, 필자는 일본인입니다)도 포함된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인 친구들을 위해 일본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2. 트위터 봇(Twitter Bot)이 날뛴 2014년 총선

 

일본에서도 SNS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 종종 지적돼 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SNS 상 여론 조작의 구체적 행태에 대해 실증적으로 밝힌 조사 결과나 연구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12월 “Big Data”지에 게재된 논문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본의 여론이 SNS로 인해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영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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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목은 “Japan's 2014 General Election: Political Bots, Right-Wing Internet Activism, and Prime Minister Shinzō Abe's Hidden Nationalist Agenda”.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FAU, 독일)에서 일본학을 전공하는 화비안 쉐화(Fabian Schäfer, 링크) 교수가 말뭉치 언어학(Corpus Linguistics) 전문가와 함께 쓴 논문입니다.

 

일본의 인터넷 공간에 출몰하며 우익적 정서로 가득한 말을 뿌리는 ‘네토우요(ネトウヨ ; 네트 우익(ネット右翼)의 약어)’의 행태가 소개되고, 네토우요 세력에 의한 댓들 달기 활동에 아베 수상의 국가주의적 취향이 숨어 있다는 점 등, 흥미로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주목하고 싶은 건 2014년에 치러진 총선 전후에 ‘소셜봇’이 어마어마한 활약을 했다는 부분입니다.

 

논문이 연구 대상으로 뽑은 2014년 총선은 2013년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정당이나 후보자 본인이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 운동을 할 수 있게 된 후, 처음으로 치러진 총선이었습니다. 아베 수상의 중의원 해산으로 인한 선거였기에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벌어진 기간이 짧았다는 점, 그리고 SNS가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비교적 뚜렷하게 그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연구 대상입니다. 

 

일단 말뭉치 언어학에서는 어떤 기준에 맞는 말의 사용례를 엄청나게 많이 모아놓고(그 모아진 사용례의 덩어리를 ‘말뭉치’라고 부르는 모양이죠) 그 말뭉치를 이리저리 분석하는데, 연구진이 특히 주목한 건 소셜봇(Social Bot)의 역할이었죠. 소셜봇이라 함은 쉽게 말해 SNS 상에서 자동으로 멘트를 작성해 유포시키는 로봇(컴퓨터)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일정한 내용을 담은 멘트를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려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2014년 총선에서 소셜봇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총선에서 쟁점이 된 용어를 기준으로 ‘선거를 위한 여론조작성 멘트’를 추출해 분석 대상이 될 ‘말뭉치’를 수집합니다. 연구진은 총선 당일 1주일 전부터 2주일 후까지(12.8.~12.30.) 트위터에 올려진 모든 트윗에서 ‘총선거’, ‘중원선(衆院選)’, ‘2014’, ‘아베노믹스’,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에 상응)’, ‘TPP’, ‘집단적 자위권’,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자민당(自民黨)’ 등등 선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용어가 포함된 트윗을 뽑아내고, 542,584개의 트윗을 추출했습니다(분석 대상이 될 말뭉치가 마련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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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뭉치 언어학의 방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54만여 건의 트윗 중 유사한 트윗을 포함한 ‘동일한 트윗’이 45만여 건이었고, 그 내역은 리트윗 등 완전히 복제된 트윗이 약 30만 8,000건(56.7%), 완전히 동일하지 않으나 유사한 트윗이 약 14만 4,000건(26.5%)이었습니다. 연구진은 14만 4,000건 정도 있었던 유사 트윗이 소셜봇에 의해 만들어진 건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유사 트윗의 모토가 된 오리지널 트윗 3,700건에 대해 복제 패턴을 분석했습니다.

 

다시 말해 유사한 트윗마다 어떤 식으로 트위터 상에 나타나는지(올리는 계정이 몇 개 있고 한 계정 당 몇 건의 트윗을 했는지 등등)를 통계적으로 처리한 겁니다. 그 결과 5가지의 뚜렷한 패턴이 발견됐습니다.

 

[패턴 1] 한 계정 당 13.5건의 유사 트윗을 한 패턴 → 그 중 몇 개 계정은 계정 당 유사 트윗이 100건을 넘음

 

[패턴 2] 한 계정 당 대략 50건의 유사 트윗을 한 패턴 → 11개 계정이 발견됐음

 

[패턴 3] 하나의 계정이 동일한 트윗을 몇 번이나 반복한 패턴 

→ 500건 트윗까지 한 계정이 많으나 1,000건을 넘은 계정도 발견됨

 

[패턴 4] 서로 다른 많은 계정이 하나씩 똑같은 트윗을 복제해서 올린 패턴

 

[패턴 5] 한 계정 당 대략 230건 정도의 유사 트윗을 한 패턴 → 2개 계정이 발견됐음

 

위 5가지 패턴 중 패턴 4, 즉 서로 다른 많은 계정이 각각 하나씩 동일한 트윗을 복제해 올린 유형은 소셜봇의 활동이 아니고,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는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그냥 리트윗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연구진들이 모은 사례에는 ‘포리타스(ポリタス)’라는 온라인 매거진에 실린 기사를 리트윗한 트윗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일본어,링크).

 

나머지 4가지 패턴은 컴퓨터가 기계적으로 만들어 낸, 즉 소셜봇에 의한 트윗임이 확실시될 수 있는 트윗들인데, 소셜봇이 선동하려는 방향성은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하나(선동 A)는 ‘아베 수상 지지(pro-Abe)’로 패턴 1, 2, 5가 이에 해당됩니다. 또 하나(선동 B)는 ‘우익(right-wing)’ 선동이고 패턴 3이 이에 해당합니다.

 

내용을 살짝 살펴보면 선동 A(pro-Abe 트윗)는 아베 수상을 지지하는 성향을 띠는 동시에 “ポン吉のブログ-反TPP선언-(뽕키치의 블로그-반TPP 선언-)"이라는 특정 블로그를 공격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블로그는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고, 아베 수상이 추진하던 TPP 가입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한편, 이민 배척 정책에도 반대 입장에 서 있습니다. 선동 A 유형의 또 다른 특색으로 ‘南朝鮮(남조선)’이라는 어휘가 자주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패턴 1]의 트윗 사례

 

@JNSC_ABEMAMORU, Mon Dec 08 10:19:24+0000 2014

我々は、南朝鮮人になりすましながら安倍晋三総理大臣を誹謗中傷し、TPP・移民受け入れ・道州制に反対する倭猿を陥れる活動をしています。安倍晋三総理大臣の政策を正当化するためにも良識ある方は是非、ご協力ください。『ポン吉』のような卑劣な倭猿を陥れましょう!

 

(우리는 남조선인인 척 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 대신을 비방・중상모략하고 TPP・이민의 적극 수용・도주제(道州制 ; 현재 도도부현제보다 큰 지자체를 광역지자체로 하는 제도. 예를 들어 도쿄도, 치바현, 사이타마현 등을 한 ‘주(州)’로 묶어서 ‘관동주(關東州)’라는 광역지자체로 만듦)에 반대하는 왜원숭이를 함락시킵시다!

 

[패턴5]의 트윗 사례

 

@Kimoizo_JAP, Mon Dec 08, 19:17:49+0000 2014

我々は、南朝鮮人になりすましながらアメリカ・自民党・安倍総理を叩き、TPPに反対する倭猿を陥れる活動をしています。TPP反対派の倭猿共を陥れたい方は【てきとう】の活動にご協力ください。

 

(우리는 남조선인인 척 하면서 미국・자민당・아베 총리를 공격하고 TPP에 반대하는 왜원숭이를 몰아넣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TPP 반대파인 왜원숭들을 몰아넣고 싶은 분은 【테키토우】의 활동에 협조해 주십시오.)

 

이들 트윗에 있는 ‘남조선’은 북한 사람들이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일본 우익 세력이 한국을 비하할 때 자주 쓰는 말입니다. 연구진도 지적하듯이 현재 일본 우익들은 한국을 혐오하거나 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동 B의 유형은 @Stupid00002 하고 @excreta_ZAiFX 라는 2개의 계정이 아주 활발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형성됐고, 그 중 하나(@Stupid00002)는 도쿄도 지방의원인 시오무라 아야카(塩村あやか)의 가짜 계정임이 포착됐습니다(도쿄도 의회에서 시오무라 의원이 연설하던 중에 의석에서 성희롱성 야유가 날아온 사건이 있던 모양). 선동 B에 속한 트윗들은 고작 57건의 오리지널 트윗을 조금씩 가공해서 퍼지게 한 것이었고 그 중 4건의 트윗은 무려 460번이나 올려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셜봇이 확산시킨 오리지널 트윗의 성향은 아주 노골적인 국가주의적 메시지나, 경우에 따라 자이톳카이(재특회(在特會) ; 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재일교포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의 시위 활동을 찍은 동영상 링크도 첨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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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소셜봇에 의해 총선 결과가 영향을 받았다고 단언하지는 않았지만, 선거전에 있어서 자민당・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우익 세력이나 네토우요(인터넷 공간에서 우익적 언설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의 국가주의(nationalim)적 성향이 공교롭게도 아베 수상의 국가주의적 성향과 연결되거나 겹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로봇이 작성한 트윗이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의 투표 행동에 은근히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면 식은땀이 등을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죠(오히려 한국 친구들은 무덤덤 하려나). 필자는 자민당에 투표할 거라면 죽음을 선택할 테지만, 순진한 유권자들은 소셜봇이 퍼뜨리는 진위 불명의 정보에 흔들리며 깜빡 아베를 지지해 버릴지 모르겠습니다. 무섭고 두려운 이야기죠.

 

이러고 보니 인터넷에 퍼져 있는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의심스러워지죠. 일부 미ㅊ… 아니, 마음의 균형을 잡지 못하는 새ㄲ… 아니, 분들이 퍼뜨리는 극단적 혐(嫌)한 감정을 과대평가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새삼스레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한국 관련 정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이며, 그 중에는 경청할만한 내용이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필자도 친한 한국 친구를 만나면 때때로 서로 손에 손을 잡고 한국을 욕하기도 합니다(욕의 내용이 맞고 틀림은 일단 제쳐 두고). 하지만 한국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 사람이 감정적으로 한국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왠지 엄청 화가 나더라고요. ‘한국을 알지도 못하면서 뭔 말이냐!?’ 이거죠(필자가 한국을 얼마나 잘 아는지는 둘째 치고). 참 신기하더라고요.

 

이런 사정은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일부 한국 분들이 현실이라 생각하는 ‘한국을 싫어하거나 깔보는 일본’은 환상까지는 아니더라고 상당히 과장된 모습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또ㄹ… 아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극히 좁은 이도 있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지만 한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알려진 일본은 어디에도 없고, 그 대신 상상치 못한 나쁜 점을 발견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한테 절대로 알려 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멋진 일본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어쨌든 필자로서는 인터넷 공간을 돌아다니는 정보를 지나치게 믿는 우(愚 ; 어리석음)는 저지르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고 싶은 바입니다.

 

 

3. 소셜봇은 자민당의 넷전략 일부에 불과하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실 트위터에서 퍼뜨려지는 우익적 성향을 띤 트윗들과 아베 정권 내지 자민당과의 구체적 관계는 명확하지 않지만, 가령 어떤 관계가 있다(예를 들어 자민당이나 자민당 소속 의원, 혹은 그 지지자, 지지단체가 댓글부대 및 그 힘을 증폭시키는 소셜봇을 운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민당의 더 폭넓은 인터넷 전략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자민당은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 운동이 허용된 후 처음 치러진 참의원의원선거(이른바 ‘통상선거(通常選擧)’)에서 이미 인터넷을 이용해 쓸 수 있는 수를 다 활용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죠.

 

트리플 미디어(Triple Media)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래 마케팅 분야에서 쓰기 시작한 용어인데 한마디로 “인터넷 보급에 따라 복잡해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기존의 대형 매스컴(주요 일간지나 종편 등)을 포함해 기업이 소비자한테 접근하는 채널(경로)을 3가지 매체로 분류하는 마케팅 전략의 틀” 정도의 의미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신문이나 TV 광고 등 기존 미디어를 이용한 광고는 효과가 별로네…역시 인터넷을 이용해야 광고도 효과적이지…”라는 식으로 기존 미디어와 인터넷 매체를 대립적으로 파악해 막연하게 '인터넷 시대'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트리플 미디어 개념은 복잡해진 소비자 접근 경로를 기존 미디어도 포함시켜 정리해 보자는 발상에서 비롯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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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업이 소비자로 접근하기 위한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돈을 내고 '사는' 경우.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 기존 미디어로 광고를 내거나 각종 홈페이지의 일부 영역에 광고를 내는 이른바 배너 광고(네이버나 다음의 검색 페이지로 가면 뉴스나 날씨 등과 함께 광고가 뜨죠. 그것도 배너 광고입니다)가 이에 해당하죠.

 

돈으로 구매된 미디어라는 뜻으로 'Paid Media'로 분류되죠. 그 다음에 기업의 공식 홈페이지 등, 상품이나 기업 이념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은 기업 스스로가 관리, 운영하는 미디어가 있죠. 이것은 미디어가 기업에 소유되고 있다는 뜻으로 'Owned Media'로 분류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기업이 소비자에게 신뢰나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애쓰는 유형.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해당되는데 ‘평판을 얻은’이라는 뜻으로 ‘Earned Media’로 분류가 되죠.

 

자민당은 이 3가지 경로를 총동원해서 2013년 통상선거에 임했습니다. 당이나 후보자 홈페이지, 즉 Owned Media는 물론,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 기존 매체도 적극 이용했고, 인터넷 광고에서는 Yahoo! 배너 광고, 더블클릭 애드 익스체인지(DoubleClich Ad Exchange)사, 구글 애드센스(Google AdSense)사 등 웬만한 인터넷 광고사를 병용, ‘중의원선거’ 등 선거 관련 검색 결과 화면에 자민당의 배너 광고가 뜨도록 했답니다. Paid Media 총동원이죠. 어려운 것은 멘트의 내용을 자민당이 직접 제어할 수 없는 세 번째 매체, 즉 ’Earned Media’였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오가는 기사나 멘트는 보통 자민당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자민당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물론 인스타그램, 구글+(플러스), 라인(일본에서는 카카오톡보다 라인이 훨씬 성행함), 유튜브, 니코니코동화(ニコニコ動画 ; 일본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 등, 일반 국민이 평소 이용하는 웬만한 인터넷 소셜 서비스는 다 망라해서 자민당을 접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습니다. 자민당 홈페이지에 있는 SNS 계정을 참고하시면 쉬이 알 수 있습니다(일본어, 링크).

 

SNS는 외관상 자민당 스스로가 자민당을 밀어주지 않는 경우도 꽤 많다 보니 일반 국민이 볼 때에는 당이 구매하거나 스스로 하는 광고와는 다른 설득력이 있겠죠. 이런 Owned Media를 유효하게 활용하면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단 SNS 상의 모든 멘트나 글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남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자민당의 인터넷 전략 부대, ‘트루스 팀(Truth Team)’입니다. ‘2T’로 약칭되는 이 팀은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넷 전략팀 이름을 땄다고 해요. 팀의 지휘관은 당시 당 내에서 IT정책을 담당하던 히라이 타쿠야(平井卓也) 의원. 현장 감독으로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의원을 앉히고 그 밑에 국회의원, 선거 스태프(자민당 사무직원이나 자원 봉사자 등), 인터넷 기업의 전문가, 변호사 등을 배치했죠.

 

팀의 주요 업무는 자민당이나 자민당 공천 후보자에 대한 인터넷상 멘트나 댓글(개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2채널(2ちゃんねる ; 일본 최대 인터넷 자유게시판) 등)을 24시간 감시,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오가는 정보는 수시로 각 후보자에게 전달됐고, 자민당한테 불리한 멘트는 사이트 관리자에게 바로 삭제 요청했습니다.

 

자민당이 (자민당 입장에 있어서의) 악성 글을 막거나 제거하기에만 그쳤을까요? 조직적으로 전담팀까지 짜서 인터넷 전략을 벌이는 자민당이 오로지 수비적으로만 행동했을까요? 아니겠죠. 자민당은 대놓고 얘기하지 않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아마 자민당의 의향을 명시적이고 암시적으로 받아서 인터넷 공간에서 활약한, 얼굴이 안 보이는 부대가 있었을 거고 지금도 있을 거라는 게 합리적인 추측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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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조직이 바로 ‘자민당 네트 서포터즈 클럽(Jimin Net Supporters Club ; J-NSC)’입니다. J-NSC는 “자유민주당 공인 서포터즈 클럽으로서 꿈과 희망과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일본을 목표로 하며, 당세 확대를 꾀하며 일본 재건을 실현함”을 클럽의 이념・목적으로 내세우면서 회원의 활동 내용에 '인터넷 등을 활용한 각종 홍보・정보 수집 활동・회원 서로 간의 교류 활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완전히 필자의 추측이긴 한데, 바로 '인터넷을 활용한 홍보 활동'에 회원이 직접 하는 댓글 달기나 소셜봇을 이용한 댓글 조성이 포함되고, '정보 수집 활동'을 통해 포착된 반아베정권, 반자민당 성향의 블로그나 멘트, 트윗 등을 공격 대상으로 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죠.

 

자민당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무작정 유포시키거나 단순히 다른 정당을 함정에 빠뜨리기에 그치지 않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면서 아주 디테일하게 인터넷 전략을 전개하고 있는 겁니다.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민당의 위와 같은 인터넷 전략 체제는 2009년 총선에서 야당으로 추락했을 때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야당이 된 데다가 당시는 민주당 소속의 한 의원인 ‘시와케의 여왕(仕分けの女王 ; 자민당 정권하에서 괜히 지출된 것으로 보이던 예산을 삭감해서 다른 데로 쓰자는 민주당의 국민 속임수를 주도했던, 전 그라비아 아이돌이자 사기꾼)’이 각광을 받고 있었습니다. 기존 매스컴은 아예 자민당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시대의 흐름은 완전히 반 자민당인 상황. 일반 일간지나 주간지, TV 방송은 다 자민당을 외면하는 듯한 느낌이었죠.

 

이런 상항에서 자민당이 만든 것이 ‘정보 분석 회의’였습니다. 구성원은 현 아베 정권의 핵심 인사인 모테기 토시미츠(茂木俊充) 의원, 세코오 히로시게(世耕弘成) 의원, 히라이 타쿠야(平井卓也, 트루스 팀이 생겨났을 때의 우두머리)의원, 카토 카츠노부(加藤勝信) 의원 등. 회의가 먼저 착수한 작업은 친(親)자민당 성향의 글이나 멘트 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글도 적극 수집해서 국민에게 어떻게 호소하면 될지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민당 네트 서포터즈 클럽(J-NSC)의 회원 모집 동영상을 보면 자민당의 대국민 접근 방법의 한 면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일본어, 링크). 이 동영상에서 클럽을 소개하며 입회를 부추기는 국회의원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의원 임은 일단 제쳐 두고, J-NSC가 회원을 모집함에 있어서 내세운 분위기가 정치에 대한 '친근감', 정치에 참가하는 '즐거움'이나 '충실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상상해 봅시다. 매일 컴퓨터 화면에 비치는 당당한 ‘리아 쥬(リア充 ; 리얼(リアル)한 실생활에서 충실(充実)한 매일을 보내는 것 또는 그런 사람)’를 보거나 말거나, 인터넷 게시판에 한국인이나 좌익 인사에 대한 욕을 적었다가 트위터에서 막말을 듣기 일쑤. 사회에서 활약할 만한 실력을 갖췄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은 풀리지 않고…이런 네토우요들의 심정을 교묘하게 잡아 먹기 위한 아주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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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토우요의 소외감에 대해 다가가는 수단은 말 뿐만 아닙니다. 네토우요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점까지 이용하려고 자민당은 게임까지 제작해서 무료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아베뿅(あべぴょん)”. 아주 단순한 게임으로, 하늘을 향해서 쏘아올려진 아베 수상을 화면에 나타난 계단 위로 올리는 것 뿐입니다. 

 

자세한 것은 필자가 직접 해 본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링크).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자민당이나 자민당 후보에 투표할 거면 죽음을 선택해도 후회 없는 필자조차 아베뿅을 플레이하다가 ‘어, 의외로 재미있네’라고 느껴 버렸습니다. 정치나 자민당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금방 자민당이나 아베 수상을 가까이 느끼기에 충분합니다(아베뿅은 한국의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스토어에서도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중독성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2014년 총선 역시 자민당의 위와 같은 인터넷 전략을 따라 치러졌을 것이고 소셜봇에 의한 여론 조작은 그 전략 총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것이죠. 좌파 성향, 심지어는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면서 나도 모르게 자민당 정책을 옳다고 생각하게 하는 전략. 필자는 인터넷 게시판은 아예 보지 않고 특정한 정치 성향을 띤 트윗을 하는 사람을 팔로우 하지도 않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한 여론 조작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입니다.

 

이런 필자마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된 정치적 멘트나 댓글의 내용을 접할 때가 종종 있죠. 친구한테 전해 듣거나 소문으로 듣거나 해서 말이죠. 적극적으로 정치적 내용을 담은 글을 찾아 읽는 분이 얼마나 여론 조작성 글을 접하고 있는지는 두 말 할 나위가 없습니다.

 

 

4. 마무리

 

2014년 총선에서 소셜봇이 암약했다는 연구 결과를 계기로 자민당의 인터넷 전략을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여론 조작의 중대한 부작용이 밝혀지면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소리도 커질 텐데, 인터넷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는 거의 유일한 의견 표명의 수단이죠.

 

때문에 유일하게 약자가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공간인만큼, 아무리 규제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규제 일변도의 논의는 피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겠지만 일단 자유로운 논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은 만인이 인정하는 바겠죠).

 

그렇다고 해서 뭐가 적절한 규제인지, 명확한 기준을 찾기는 꽤 어렵습니다. 일단 소비자가 할 수 있는 건 인터넷 공간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이나 의견에 영향을 미치려는 악의 플레이어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모르는 사이에 컨트롤 당하지 않도록 조심은 해두는 게 좋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가 저런 얄팍한 여론전에 속지만 나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가랑비에 옷은 젖어 갑니다. 일본인 대부분도 넷상에서 저토록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팀이 움직인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고 그런 우려가 나와도 '에이, 설마 그렇게 까지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물론 지금도 대부분 모르지요). 마치 한국에 처음 십알단, 국정원 댓글부대, 얘기가 나올 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겠냐', 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한국도 이제 슬슬 선거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 전략팀의 노하우가 수년간 쌓이며 소셜봇과 정치판의 인터넷 전략팀은 점점 더 치밀해져 갑니다. 

 

한국 친구분들은 선거에서 현명한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일본의 사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지난 번엔 나름 재밌는 기사로 찾아 뵈었는데 오늘은 조금 딱딱한 이야기가 되어버려 죄송합니다.

 

 

 

누레 히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