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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찌라시 세계사'는 재미난 역사적 사건을 대화체로 풀고 썰을 마구 첨가하여 남녀노소 상하좌우 친박반박까지 한국사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새 연재입니다.

 

찌라시만큼 흥미진진하고 쫄깃하여 찌라시인 것이지, 진짜 찌라시와는 무관하니, 맘 편히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슬람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십자군은 뭐라도 해보려고 벙커에 수뇌부가 다 모이긴 했어.

 

“무슨 방법이 없겠나? 머리들을 좀 쥐어짜 보란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독 안에 든 쥐 꼴로 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성 밖에는 이슬람군이 포위하고 있고, 성안 우리 군의 사기와 전력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더구나 식량도 부족해서 무조건 버티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희도 머리를 쥐어짜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모여서 기도를 올려 보는 방법밖에는...”

 

“시끄럽다. 지금 한가하게 기도나 올리고 있을 때냐? 우리의 신께서 없던 구원병이나 비밀 병기라도 보내 줄 거라고 진짜 믿는 건 아니지?"

 

“그래도… 이렇게 우리끼리 소리 지르고 있을 바에야. 정성을 다하여 기도라도 올리면 민심도 안정될 테고, 혹시 압니까? 무슨 기적이 일어날지?”

 

“저, 저런 한심한 자를 봤나. 그 입 당장 닥치지 못하겠느냐!”

 

이때 사제 하나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벙커를 박차고 뛰어나갔어.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며 목욕탕을 뛰어나가듯이 너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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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십자군 성안 곳곳에서 대 부흥회가 열렸어. 수뇌부가 아닌 일반 군사들도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최악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에게 자연스레 기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 모두가 절실하게 기도를 하는 수밖에 마땅한 방법도 없다며 여론몰이를 시작했어.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성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기적이야, 기적! 수도사 피에르가 지난밤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네.”

 

“뭐라고?”

 

“지금 피에르가 순수한 영혼을 가진 12명의 사도를 데리고 안티오크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 성창(holy lance)을 찾으러 가고 있어. 빨리 가보세.”

 

“이 사람아! 도대체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게. 하느님의 계시는 뭐고 성창은 또 뭔가?”

 

“이 무식한 인간아. 전설의 성창을 정말 모른단 말이야? 로마 병사 롱기누스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그 전설의 창 말이야. 사제 피에르의 꿈에 안티오크의 성 베드로 성당 아래에 그 성스러운 창이 묻혀 있으니, 그 창으로 이슬람 적군을 무찌르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야.”

 

예수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이 성스러운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절이야. 지금도 그런 유물이 발견된다면 세계 경매 시장이 난리가 나겠지만 말이야. 이 창이 발견됐다고 하니 십자군 내부는 모세의 바다 가르기 기적을 본 것처럼 들썩였고, 모두가 현장으로 달려갔어.

 

현장에서는 성창 발굴 공사가 한창이었어. 여기저기서 신을 부르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과, 기쁨에 겨워 우는 사람들까지 발굴 현장은 이미 성지가 된 듯한 분위기였어. 반나절이 지나도 성당 아래에서는 창 비슷한 물건도 나오질 않았어. 십자군 수뇌부는 물론 일반 군인들까지 초초한 마음에서 의심의 마음으로 조금씩 변해 가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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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꿈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사제 피에르가 얼굴에 잔뜩 흙을 묻히고 공사 발굴 현장에서 창으로 보이는 쇳덩이를 들고나와 군중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어.

 

“모두들 보시오. 드디어 예수님의 성창을 내가 발견했소. 이제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이 없소. 당신들은 기적의 현장에 같이 있는 거요. 지금 당장 이 기세를 몰아 성 밖으로 나가 신의 이름으로 이슬람군을 처단합시다.”

 

이것이 종교의 힘일까?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 좋을까?

 

십자군은 즉시 전열을 정비하고 하늘을 찌를듯한 사기로 무장한 채 6개 전선으로 밀고 나갔어. 식량 대용으로 말을 잡아먹어 말이 200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신들린 듯한 200기의 기병이 선봉에 섰어. 정말 신의 가호가 있었던 걸까? 십자군은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하여 이슬람군을 물리치고 마침내 안티오크를 차지했어. 한 가지 의문점은 과연 신께서 단지 생각이 다른 인류를 죽이라고 무기를 주셨을까 싶긴 한데… 종교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역사 이야기로 다시 초점을 맞추자고.

 

십자군 수장 보애몽은 충성 맹세를 한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에게 약속대로 점령지를 바쳐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어. 왜일까? 짐작은 가지만 그에게 이유나 들어보자고.

 

“후손 여러분! 내 말 좀 들어봐요. 알렉시우스 황제, 지가 먼저 내 뒤통수를 쳤는데 나라고 뒤통수 못 치라는 법 있소?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요? 전시 체제 아니오 전시 체제. 그리고 그 자 기억하죠? 부자 부인이 죽었다고 십자군 진영인 황금의 땅 에데사를 점령한 보드앵 말이야. 나만 너무 욕하지 말라고! 난 적어도 우리 편을 공격하진 않았어.”

 

이렇게 십자군의 두 수장 보애몽과 보드앵은 안티오크와 에데사를 차지하고 부자가 되었어. 이제 수중에 돈도 많이 들어왔으니 십자군 원래의 목표인 예루살렘으로 진격을 해야 하잖아. 하지만 순순히 진격할 십자군이 아니지! 이 둘은 자신만의 왕국에 눌러앉아 호의호식하며 ‘니가 가라 예루살렘’을 외쳤어.

 

이들의 행동을 보고 어떤 병사들은 ‘어이가 없네.’라며 십자군을 이탈하여 귀국길에 올랐고, 강경파들은 예루살렘으로의 전진을 주장하였으나 소귀에 경 읽기. 목표를 잃은 무장 군인들의 불만이 쌓여 가니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않아? 사람을 한 명 죽이는 게 어렵지, 그 다음은.. 살인이 허가된 전쟁터에서 통제력을 잃은 군사들은 악마로 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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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청소가 벌어진 지역은 안티오크에서 말로 달리면 2일이 걸리는 곳에 위치한, 현재 시리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였어. 1098년 11월 십자군은 도시의 지도층에게 전 재산과 직계 가족만 데리고 성의 탑으로 피하라고 최후통첩을 내리고,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학살하기 시작했어.

 

십자군 전쟁뿐만 아니라 인류의 전쟁사를 조금만 살펴봐도 이런 민간인 학살의 예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야. 이곳의 학살이 유독 뼈아픈 것은 아래와 같기 때문이야. 현장에 있었던 이름 모를 십자군 병사의 입을 통해서 들어보자고.

 

“우리 십자군은 성의 모든 주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십자군의 칼 아래 쓰러졌다. 칼을 쓰다 지치면 도시 광장에 거대한 불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산 사람들을 구덩이에 던졌다. 34일의 체류 기간 십자군은 시체들을 요리해서 먹기 시작했다. 성인의 시체는 단지에 넣어 끓여 먹고, 어린아이들의 시체는 꼬챙이에 끼워서 구워 먹었다. 처음에는 이슬람군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지만, 나중에는 이성을 상실한 병사들이 속출하였다.”

 

이렇게 2만 5천 명의 사람들이 몰살되었다고 해.

 

이 당시 일반 서민들은 기독교, 이슬람교 상관없이 한 지역에서 잘 어울려 살고 있었어. 적군과 아군으로 나눈 것은 일부 지도층이야. 이런 사정으로 이 대학살의 현장에 다수의 기독교인이 포함되었음은 물론이야.

 

대학살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

 

1099년 6월 고드프루아 드 부융이 이끄는 1만 3천 명의 십자군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3천 마일을 달려 마침내 예루살렘 앞에 도착했어. 처음 시작은 6만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지만 말이야. 약속의 땅이라고 믿고 찾아온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땅에 입을 맞추고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해. 고드프로아는 이슬람군과 마지막 대혈투를 벌여 마침내 성을 함락했고, 십자군은 예루살렘 내 민간인들을 솔로몬 신전까지 쫓아 몰살시켰다고 해. 신전은 물론이고 온 도시가 피로 물들었고 3만 명의 유대인과 이슬람인이 사망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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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십자군 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한 교황 우리바누스는 예루살렘 정복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병사했다고 해. 인간의 삶이 이렇게 덧없음을 성직자가 정녕 몰랐단 말인지. 모든 사람이 고드프로하를 예루살렘의 초대 국왕으로 강력히 추천했어. 그는 단순한 사양의 표시가 아닌 강력한 논조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해.

 

“여기가 인간의 땅이냐? 예수님이 돌아가신 곳이다. 이런 곳에서 어찌 내가 왕이라고 불리며 살아갈 수 있겠느냐?”

 

그는 1년 후 전쟁으로 인한 과로와 피로로 자연사할 때까지 국왕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고 해. 공석이 된 예루살렘의 수장 자리는 누군가 메워야 했는데 이때 한 인간이 말을 급히 몰고 달려와 그 자리를 냉큼 차지했어. 이 약삭빠른 인물은 죽은 부인을 뒤로하고 에데사를 공격하여 차지했던 보드앵.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 역사에서 승자란 타이틀은 정말 양심과 정의는 버린 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신에게 묻고 싶어.

 

피로 물든 예루살렘과 십자군의 횡포에 이슬람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빠졌지만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았어. 이제 이슬람 진영이 정신을 차리고 대반격을 준비하니 독자 여러분도 다 함께 지켜봐 주길. 두둥~!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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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