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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 : 뭔 놈의 법이 저따구고! 저 따구로 법 집행하는 놈들이나 나라꼴이나 참 씨..

우석 : 와? 법을 어겼으니까 잡아넣고 판결 때리는 기지 그게 뭐? 서울대씩이나 가서 고작 한다는 게 데모나 하고 빨갱이질하고.. 그런 놈들 잡아넣는 게 그게 뭐? 뭐가 잘못됐는데?

윤택 : 마! 니는 저서 떠드는 말을 믿나? 이제 제일로 못 믿을게 방송이고 신문이다 이 자슥아!

우석 : 허 참나. 마! 방송하고 신문을 안 믿으면 뭘 믿을꼬? 어? 뭐 우물가 아지매들 구라를 믿을까?

 

영화 <변호인> 中

 

 

사건이 돌아가는 추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아둔하게 사는 사람을 흔히 얼치기라고 부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살이 이모저모를 알기 위해 신문을 보고 방송을 듣고 하다못해 출퇴근길에 인터넷 기사 몇 꼭지라도 꾸역꾸역 들여다본다. 얼치기로 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노력들이 자신을 더욱 더 얼치기로 만들고 있었다는 역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권력은 법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고, 언론은 객관적 사실과 논리적인 비판을 나르며, 전문가들은 각자의 지식과 양심으로 그 논리를 뒷받침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세계관의 파괴는 충격적인 것이다. 영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가 세상에 눈을 뜬 것은 정권의 폭압이 아니라, 국밥집 아들의 몸에 잔뜩 오른 피멍을 보고 자신이 얼치기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은 충격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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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다]

 

그때 그 계절, 그때 그 절기, 그때 그 수온, 다시 4월이 돌아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가 개봉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세월호의 항해와 침몰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했다. 세월호가 마지막 출항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참사를 ‘단순 사고’라고 발표했다. 급 변침에 의한 화물 쏠림, 복원력 상실 그리고 침몰. ‘무책임, 비도덕성, 부실 점검·운항관리가 빚어낸 참사’로 승무원, 선사 직원, 공무원 등 38명이 기소되었다. 세월호의 침몰 원인은 ‘관련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의한 인재(人災)’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4년 동안.

 

수사본부의 사고원인 분석 근거는 생존 선원들의 진술과 선박의 항적 기록이었다. 선박 자동식별 장치 AIS. 이름도 생소했던 그 기록으로 304명의 희생을 받아들여야 했다. 허무한 원인에 다른 의구심을 품기에는, 목격자도 CCTV도 없는 ‘그날 바다’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망망대해였다.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도, 대법원에서 결과가 기각되기 전까지 수사본부의 발표를 믿어야 했다. AIS라는 과학이 기록하고 정부가 공신한 결과이므로. 영화는 그 AIS 기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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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의 고군분투기]

 

배우 정우성의 내레이션, 그리고 음향 효과는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다. 희생된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침몰 직전 모습과 육성은 잠깐 관객의 감정을 흔들고 지나갈 뿐이다. 그마저도 논증을 위한 자료로 쓰이는 영상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라는 듯, 영화는 있는 사실 그대로의 철저한 다큐멘터리 서사로 우직하게 관객을 끌고 들어간다. 영화가 주장하는 바는 명료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었으며, 합리성과 신빙성을 갖춘 다른 원인이 있다.

 

그리고 관객이 자연스러운 결론을 유도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영상의 힘은 제작팀의 처절한 분투에 있다. 정부가 내놓은 각기 다른 항적 기록, 그리고 충돌하는 정황적 사실들에서 취재를 시작한다. 정부의 발표에 반론을 제기하고 학자와 기술자 등 전문가들로부터 퍼즐 조각을 모아 그림을 만든다. 제작팀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전문가가 된다. 영화는 제작팀의 4년간의 그 지난한 학습기이자 전문가로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들의 고군분투가 도달한 결과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 영화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스모킹 건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 축적된 시간의 밀도는 농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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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을 나서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영화인들이 해상사고 전문가가 되어야 했나. 영화를 뒷받침하는 전문가들의 자문내용은 그동안 왜 주목받지 못했나. 사고 이후 수많은 정부 차원의 조사와 검증에서 기록의 허점들은 왜 제기되지 않았나. 

 

두 가지 결론이 가능하다. 영화인들보다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아니라면, 모두를 얼치기로 만든 ‘도덕의 파멸’이 침몰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것. 어느 쪽이어도 무서운 결과다. 영화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세계의 붕괴를 감당해야 할지 모른다.

 

 

[다시 처음으로]

니는 황소 한 마리가 몇 근이나 나가는지 아나? 황소 한 마리를 내놔 놓고 '요거 몇 근이나 나가노' 하고 물어보믄 어느 놈은 100근 나간다카고, 어느 놈은 500근 나간다카고 다 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얘기하는 기라.

 

그칸데 영욱아, 100명한테 물어봐 평균을 내믄... 희한하재, 황소 무게를 얼추 맞추는 기라. 1000명한테 물어봐 평균을 내면 더 비슷하게 맞추는 기라. 이 나라 백성들이 요래 많이 나왔으니 요번에는 황소 무게를 얼추 안 맞추겠나?

 

SBS 드라마 <추적자> 中

 

인양된 세월호의 모습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에는 많은 개흙과 이끼들이 덮여있다. 세월호에 켜켜이 얽힌 수많은 정치적, 이념적 덤불의 크기를 우리는 이제야 가늠해볼 뿐이다. 

 

영원히 심연으로 사라질 것만 같던 그 날 바다의 일을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다시 끄집어 올렸다. 영화 말미에 제작을 후원한 사람들의 이름과 메시지들이 마치 침몰된 배를 끌어 올리듯 끝도 없이 밀려 올라간다. 여느 영화보다 두툼한 엔딩크레딧이 이 영상의 진짜 힘이다.

 

암호 같은 AIS 원본 소스를 해석해 낼 재주는 없지만 얼치기로는 살 수는 없어서, 평범하지만 부끄럽게 살 수 없어서, 사람들이 모인 힘은 거대했다. 촛불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고, 이제 그 날 바다의 진실을 마주하려 한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 것이 단지 노랫말이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이 증명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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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마무리 짓는 지점에 한계는 있다. 어디까지나 설득력 있는 ‘가설’이라는 것. 때문에 음모론으로 빠지지 않도록 논증할 수 없는 추정과 해석을 절제했고,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에 어려운 지식과 수치들을 최대한 직관적으로 재구성했다.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영화를 본 모두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영화는 폭로가 아니라,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풀고 ‘무엇 때문에’ 침몰했는지 처음부터 다시 찾아보자는 설득이다. 동시에 ‘누가’, ‘왜’ 우리를 얼치기로 만들었는지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가설이기에 영화의 결론은 당연히 반박될 수 있다. 다른 사실이 등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진실에 다가가는 동력이 되는 것으로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야 한다. 그것이 물속에서 오랜 시간 기다린 304명을 위해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진정한 추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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