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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여행의 정취는 떨어지지만 나름 이용할 만한 체인 레스토랑

 

“개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일본의 웬만한 도시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간판으로 꽉 차 있습니다. 도시가 개성을 잃고 있는 상황이지요. 술집에서 한잔하고 나오면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헷갈릴 정도고, 심지어는 방금까지 있던 가게조차 어디 에나 있는 체인 술집일 때가 있죠. 술에 취함에다가 개성을 상실해 가는 일본에 대한 우울함까지 더해져서 묘한 기분이 들어 정말 짜증 납니다.

 

필자는 한국 친구가 일본에 놀러 오면 되도록 그곳에만 있는 식당이나 술집에 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아~ 내가 지금 ○○에 와 있구나”라는 실감이 드니까요. 이 심정은 일본에 여행 온 한국 독자분들도 이해할 겁니다. 가깝기는 하나 적지 않은 돈 내고 외국에 왔는데 어디 가든 비슷한 풍경을 봐야 하고 같은 맛의 메뉴를 먹고 같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지 지친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본에 방문한 친구나 지인을 체인 레스토랑이나 술집에 데려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나마 체인에 장점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새삼 그 이유를 정리해 봤습니다. 먼저,

 

①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비교해서 요금이 저렴하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 효과죠. 운영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음식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그 결과 단가가 내려가는 거죠. 원통한 부분이기도 한데 자기 이상을 관철할 경제력이 없는 필자는 어쩔 수 없습니다.

 

② 어느 지점에 가든 맛과 서비스가 똑같다.

지점에 상관없이 맛과 서비스가 균일하다는 부분은 체인 레스토랑이 재미없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지방에서 가격대나 맛 등에 관한 정보 없이 찾아갔을 때 어느 정도 맛을 예측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 지방에만 있는 레스토랑에서 대박이 날 때도 확실히 있고, 불안과 기대가 섞인 마음이 여행의 묘미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모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겠습니다.

 

③ 주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주인의 얼굴이 보이는” 개인 운영 레스토랑에서는 지금 내가 먹고 있는 밥을 바로 그 주인이나 종업원분들이 만들어 주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도 하죠. 자주 들르다 어느새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만들어 주는 조미료가 될 수도 있겠고요. 그렇지만 때로 혼자 식사하면서 책이나 잡지를 읽거나 핸드폰을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이럴 때엔 종업원들이 거의 알바생이고 손님의 체류시간이나 행동에 비교적 무관심한 체인 레스토랑이 편합니다. 특히 ‘도링쿠바(ドリンク・バー, Drink Bar, 일정 금액을 내면 음료수 무제한 리필)’가 있는 가게에서도 상당히 오랜 시간 있을 수 있습니다.

 

④ 결제수단이 다양하다.

일본의 개인운영 식당 중에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데가 많이 없고,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가격대가 비싼 고급음식점일 경우가 많아요. 반면 체인 레스토랑은 비교적 결제수단이 다양한 편입니다. 현금은 물론 교통카드(도쿄권역의 경우 SUICA나 PASMO 등)로 결제할 수 있는 데도 있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체인도 있습니다. 단 일본에서는 “신용카드 OK”라고 해도 “VISA만 가능” 등 카드 브랜드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행을 떠나면 그 지방의 특색있는 맛을 즐기는 것이 좋고, 거기에만 있는 식당에 들어가 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 중 하나임은 틀림없지요. 그래도 모험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 회부터 차차 일본의 체인 레스토랑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일본에 여행 올 때 ‘모험’과 ‘예측 가능성’을 적당히 조합해서 즐거운 여행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순서에 특별한 의미는 없는데 제1탄은 필자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입니다.

 

 

1. 저렴한 이탈리아 요리 체인 레스토랑 “사이제리야”

 

사이제리야.jpg

 

‘사이제리야(サイゼリヤ)’는 (주)사이제리야가 운영하는 일본의 이탈리아 요리 전문 체인 레스토랑이죠.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점포를 갖고 있습니다. 2018년 봄 기준으로 체인 레스토랑(패밀리레스토랑 부문) 점포 수 2위랍니다(도쿄에만 209점포, 요코하마가 있는 카나가와현에 124점포, 치바 117점포, 오사카 87점포, 나고야가 있는 아이치 81점포가 있지요).

 

기업이념으로,

 

“저렴하고 맛이 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대의 사회공헌”

 

을 내걸고 있고, 메뉴는 전체적으로 싼 편입니다. 가장 잘 팔리는 “미라노풍 도리아(ミラノ風 ドリア)”는 무려 299엔(세금포함). 봄에도 지갑이 쓸쓸한 필자 같은 자에게도 착한 가격이라 할 수 있죠. 그 외에도 페페론치노 스파게티, 미네스트로네 등도 299엔에 제공되네요.

 

이탈리아 요리 전문인 만큼 스파게티 등 각종 파스타류나 피자류가 중심인데 그 외에도 각종 사이드메뉴도 있고, 스테이크용 철판에 제공되는 고기도 괜찮습니다. 물론 술도 마실 수 있습니다. 생맥주는 일반 이자카야와 비교해서 약간 싼 편이고(399엔) 와인류도 일반 체인 패밀리 레스토랑치고는 많은 편이라 할 수 있겠죠. 단 기업이념을 반영해서인지 고가의 고급와인은 없고 풀보틀(750ml 짜리 병)을 시켜도 2,000엔 정도밖에 안 되고 500ml 짜리 하우스 와인 같은 경우에는 400엔 정도에 마실 수 있습니다. 커피류나 일반 음료수는 “드링크바(Drink Bar)”로 시킬 수 있는데, 레스토랑 안에 설치된 드링크 서버에서 제공되는 모든 종류의 음료수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습니다. 요리나 케이크하고 세트로 시키면 190엔, 단품으로 시키면 280엔. 티라미수 등 가장 싼 케이크가 199엔이니 케이크랑 같이 시켜도 389엔이네요.

 

그 외에도 많은 메뉴가 제공됩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사이제리야 홈페이지에서 메뉴판을 확인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이제리야 메뉴.jpg

https://www.saizeriya.co.jp/menu/index.html

 

 

2. 현장 탐방

 

2-1. 사이제리야 나가레야마아오타점

 

사이제리야에 가서 식사를 해보겠습니다. 이 점포는 필자가 사는 동네에 있는 나가레야마아오타(流山青田)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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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치바 어딘가입니다... (치바현 나가레야마아오타시 11)

 

교외 주택가에 있어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죠. 도시부에 있는 사이제리야가 상업용 빌딩에 입주하고 있는 반면, 교외에 있는 점포는 땅값이 싸서 그런지 비교적 공간이 넉넉한 편이고, 단독건물에 천정이 높은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곳 역시 그런 스타일이라 널찍한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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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제리야 나가레야마아오타점

 

주말 저녁 시간이면 교외형 패밀리 레스토랑은 가족 나들이나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서 혼잡한 것이 보통인데요, 사이제리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동행하는 친구랑 방문시간을 약간 늦추기로 하고 8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필자가 약속 시간을 살짝 넘어 현장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다행히 친구가 먼저 도착해서 자리에서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게다가 앉을 자리가 흡연구역이라). 점포가 되게 널찍하기는 한데 설계상 입구에서 점포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서 금방 친구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고 바로 주문합니다.

 

 

2-2. 먼저 맥주를 시킨다

 

일본인답게 “일단 맥주(とりあえずビール)”는 이미 정해진 루트인데 음식은 은근한 고민거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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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으면 일단 맥주. 사이제리야는 생맥주(中)가 일반 이자카야보다 싸고 안주도 다양하니 술자리로 이용해도 좋습니다.

 

때때로 가볍게 한잔하면서 안주류를 시켜서 이야기를 하다 적당한 타이밍에 식사류를 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날은 일요일 밤. 친구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관계로 술을 하기가 좀 애매했죠. 그래서 생맥주랑 식사류를 동시에 시켰는데 메뉴 선택이 그리 쉽지가 않았죠.

 

이탈리아 요리집임을 감안하면 스파게티 등 나름 이탈리아 냄새나는 메뉴를 시키면 되는데 스테이크용 철판으로 제공되는 고기류도 은근히 맛있거든요. 특히 이날은 점심을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에 꽤 배고픈 상황. 친구가 늘 말하는 “食った感(쿠따 깐: 충분히 먹은 느낌)”을 느끼고 싶었던 거죠. 그러려면 철판에 제공되는 야끼니쿠(고기구이)와 햄버그스테이크 플레이트에다 공깃밥 곱배기를 시키면 되는데 스파게티를 안 먹은지 꽤 됐었기 때문에 스파게티도 먹고 싶으니까 곤란한 겁니다.

 

결국 결정적인 이유 없이 토마토맛 스프 봉골레 스파게티, 판체타 피자를 시켰고 친구는 부드러운 치킨구이(치즈 토핑)랑 미라노풍 도리아를 시켰습니다. 참고로 사이제이야의 고기구이 메뉴 중에 소스가 같이 나오는 것이 있고 메뉴마다 같이 제공되는 소스의 종류가 정해져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에 친구가 시킨 부드러운 치킨구이엔 데미그라스 소스, 와 같은 식으로 기본 소스가 정해져 있죠. 주문 시에 소스를 바꿔 달라고 전하면 변경해 줍니다. 친구도 데미그라스 소스를 가룸(Garum)소스로 변경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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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을 보며 고민... 테이블 위에는 휴지 외에 분말치즈, 타바스코, 소금, 고추팁이 있고, 흡연석에는 재떨이도 있습니다.

 

일부 지역 주민을 빼고 일본인들은 화가 나도 노골적으로 얼굴에 드러내거나 직접 항의하는 일은 드문 편이라 보는데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시킨 생맥주가 바로 나오지 않을 때입니다. 이것은 술집은 물론 일반 식당에서도 꼭 지켜지는 철의 원칙이죠. 사이제리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맥주를 시키면 바로 나와야 합니다. 이날도 순조롭게 나온 생맥주로 먼저 건배하고 “하아~ 역시 생맥은 맛있네.”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판체타 피자가 나왔습니다. 피자 커터로 여섯 조각으로 나눈 뒤 전채 요리 삼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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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체타 피자. 사이제리야의 피자는 사이즈가 작은 감이 있는데 가격 대비 만족감은 합격. 사람이 많을 때에는 다른 피자를 몇 개 시켜서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생맥주를 절반 정도 마시면 메인요리가 나오죠. 먼저 필자가 시킨 토마토 스프 봉골레하고 친구가 시킨 미라노풍 도리아가 나왔습니다. 배고픈 상태에 탁자 위에 두어진 스파게티를 보고 내가 한 주문이 정답이었음을 확인, “いただきます(이타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하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사이제리야의 스파게티는 끓이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알 덴테(al dente. 씹는 맛이 살아있는 정도)'보다 꽤 부드러운 게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토마토맛 스프의 시원한 맛, 바지락의 살짝 쓴맛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은 그간 스파게티 먹고 싶었던 갈망을 풀어주기에는 충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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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맛 봉골레 스파게티. 솔직히 면은 별로인데 토마토맛 스프하고 바지락은 되게 맛이 있습니다.

 

 

2-3. “쿠따 깐”의 중요성

 

스파게티를 1/3 정도 먹은 시점에 친구의 ‘부드러운 닭고기의 치즈 구이’가 나왔습니다. 철판 위에서 구워진 닭이 풍기는 고소한 향기. 서양의 코스요리에서 고기에 앞서 스프가 나오는 것엔 나름 까닭이 있었군 싶으면서 내 마음을 지배하려는 후회. 후회? 이럴 때야 상기해야 하는 검호(剣豪; 검술의 달인)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 선생의 말씀.

 

我、事に於いて後悔せず!

(나, 사물에 있어서 후회 안 한다!)

 

친구가 시킨 치킨 냄새에 농락당하는 것은 바로 토마토맛 봉골레를 시킨 사나이의 결단을 후회하는 일. 절대 용인할 수가 없는 대목이죠. 필자는 영웅적인 결의로 고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친구가 이야기했던 “쿠따 깐(食った感)”, 즉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는 느낌이 없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치킨구이의 고소한 향기와 살짝 섞인 치즈의 풍미에 멘탈이 붕괴상태에 있던 필자는 긴 고민 끝에 아스파라거스 새우 크림 스파게티를 시켰습니다. 나름 “쿠따 깐”을 얻기 위해서 말이죠. 크림 스파게티도 면은 별로였지만 맛은 충분히 합격점. 아스파라거스와 새우가 크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스파게티를 연달아 두 접시 먹어 봤자입니다. 배는 불러도 “쿠따 깐”이 없고 마음속 어딘가에는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또 하나의 인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선생이 되지 못한 필자는 온 마음을 후회에 지배당했지만, 위장에 고기요리가 들어갈 여유가 없는 상황.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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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 새우 크림 스파게티. 적당히 끓여진 아스파라거스는 씹는 느낌이 최고고, 새우의 쫄깃쫄깃함 역시 대만족. 다만 고기를 먹고 싶은 잠재적 욕구가 있는 상태에서는 마음껏 먹었다는 만족감까지 얻기는 어려운 듯.

 

 

2-4. 마무리는 싸구려 와인으로

 

웬만하면 티라미수나 시켜서 마무리 짓는 차례인데 만족감 없이 배만 부른 상황. 이번에는 사이제리야의 하우스 와인(500ml)을 마셨습니다. 싸구려 와인이긴 한데 와인 맛에 고집이 없다면 충분히 마실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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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제리야 하우스 와인. 이번에 시킨 것은 500ml 짜리였는데 더 작은 사이즈도 있죠.

 

와인을 마시고 억울한 기분이 풀렸다 해서 바로 자리를 떠나지 못합니다. 틀린그림찾기를 풀어야 하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지요. 원래 식사 중인 아이가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 비치된 것으로 보이는 이 틀린그림찾기가 어른들한테도 되게 어렵다고 화제입니다. 사실 필자 일행도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도전하고 있었는데 10개 있다는 틀린 부분을 못 찾고 있었죠. 술김에 생긴 오기. 찾고 나면 아주 쉬운데(그만큼 뚜렷한 틀림이 있어요), 찾기까지가 정말 어렵습니다. 내용은 수시로 변경되기 때문에 사이제리야에 갈 때마다 확인할 대목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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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한테도 어렵다고 화제가 된 틀린그림찾기. 알고 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조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번 사이제리야 탐방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식사비는 친구하고 합쳐서 총액 3,390엔. 한국 돈으로 약 34,000원 정도 될까요. 생맥주를 한 잔씩 먹고 와인까지 마신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할 수 있겠죠. 고급 이탈리아 요리와 비교하면 당연히 질이 떨어지겠지만 싼 가격에 나름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죠. 일본에 여행와서 저렴하게 양식을 즐기려고 할 때의 유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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