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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에는 공양미에 마약을 타서 드신다는 스님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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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커뮤에 이따금씩 재업되는 스님의 패러디 만화는, 절에서 자랐고 지금도 절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친근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주었다. 덕력이 높은 스님은 큰 스님이라 불리는데, 그 덕력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루리웹 스님의 덕력도 나 같은 머글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깊어 보였다.

 

하여, 만나보았다. 도대체 Drakeduck란 닉네임을 쓰시는 드덕스님의 절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스님의 사정으로 인해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 스님의 전체 작품은 여기 ( http://bbs.ruliweb.com/hobby/board/300064/list?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1196722 ) 에서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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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빵꾼 / 드덕(Drakeduck)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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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게이밍 노트북. 태어나서 물건을 사는데 가장 많은 돈을 써 봤던 것이라고.

사진은 못 찍었지만 스님의 전체적인 모습도 이 노트북과 비슷하다. 

 

스님의 사생활

 

 : 언제부터 덕후가 된 건가요.

 

 : 중학생 때 친구가 가져온 만화를 빌려보다가 대여점을 찾길 시작했죠. 처음 본 만화는 유희왕이었어요. 만 원어치씩 양손 가득 만화책을 빌려와서 밤새도록 보던 때도 있었죠.

 

 : 출가 전이었잖아요? 그 생활이 출가 후까지 이어진 거죠?

 

 : 학교 다닐 땐 친구들이 다 덕후여서, 그 생활이 쭉 이어졌죠. 출가 후 승가 대학에 가고 기숙사에서 제 시간을 갖게 되면서 만화를 그렸어요. 그게 4년 반 정도 됐네요.

 

 : 모든 덕후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최애캐를 꼽아보신다면.

 

 : 글쎄요. 애매하네요. 주로 전 특정 캐릭터보다 작품 전체에 애정을 가져서요. 특히 만화의 서사에 집중해서. 사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워낙 많다 보니, 딱 꼽을 수가 없네요.

 

‘너무 많이 알아서’ 최애캐를 고르기 힘들다는 스님, 이런 것이 무애(無碍) 덕력인가...!

 

 : 게임으로 넘어가 보면, 누군가 댓글로 '젠야타를 그리셨지만 트레이서를 할 것 같다'고 달았는데 스님께서 대댓글로 '윈스턴 하는데...'라고 단 걸 봤어요. 또 '도슬람' 인증도 하셨고. 도타는 어떤 케릭 하세요?

 

 : 말씀드리기 민망한데, 기술단이라고 있어요. 제가 그 캐릭터만 이삼백 판 정도 했거든요. 

 

 : 300판요??

 

 : 네. 걔가 모든 기술이 지뢰를 까는 거예요. 그게 적군도 짜증 나고 아군도 짜증 나는 그런 캐릭터거든요. 제가 손이 느려서 피지컬 게임을 못 하다 보니까, 그런 심리전 캐릭을 좋아하게 됐죠. 이건 조금 자랑 같은데, 캐릭터별 통계에서 제가 기술단 캐릭 랭킹 10위권에 든 적도 있어요. 

 

 : 오버워치도 하시고, 도타도 하시고, 다른 게임은 또 뭐 하세요?

 

 : 사실 제가 온라인 게임보단 싱글 게임을 많이 해요. 남들과 경쟁하거나 그런 걸 싫어해서. 

 

 : 롤 같은 건 패드립도 하고 그러니까..

 

 : 도타는 한국인이 많이 빠지고 중국인들만 남아서, 욕을 해도 못 알아들어요 그건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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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의 실제 삶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절에 살면서 만화를 어떻게 그릴 수 있습니까.

 

 : 저는 얼떨결에 출가하다 보니 아무것도 몰랐는데, 의외로 취미 생활을 즐기기에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스님은 여기서 잠깐 고민했다. 일반적인 스님의 이미지와 대립하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다. 

 

드 : 출가 홍보하는 셈 치고 얘기하자면, 절에서 먹여 주지, 입혀 주지, 재워 주지. 그러다 보니 돈이 나갈 데가 없어요. 할 일만 해 놓으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든 잘 터치하지도 않고요.

 

 : 보통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새벽, 점심, 저녁 때 예불(불교의식)하고 공양(식사)하고. 그 사이에 중간중간 청소를 한다거나, 절의 일을 돕는다거나 뭐 그렇게 보내죠. 중요한 건, 저녁 예불 이후엔 무조건 일정을 안 잡죠. 새벽예불까지가 취미 시간이니까. 수면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거긴 한데.

 

 : 역시 게임은 새벽에 해야 제맛이죠.

 

 : 맞아요. 사람도 없고. 낮에 하면 하나도 재미없어요.

 

 : 혹시 게임하다가 새벽에 늦게 일어나신 적은 없나요?

 

 : 그럴까 봐 아예 일찍 자서 새벽 한 두시쯤? 일어나서 하는 게 더 편해요.

 

 : 되게 타이트한 절도 있잖아요? 스님은 취미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 제가 알고 출가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출가 전까진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는데.

 

 : 통도사 같은 데로 가셨으면 되게 힘드셨을 것 같아요.

 

 : 네. (웃음) 제가 아마 해인사 송광사 이런 데 갔으면 한 달 만에 뛰쳐나왔을 것 같아요.

 

 : 주변에 또 덕후 스님이 계세요?

 

 : 제가 출가해서 또 충격을 받은 게, 아 역시 어디에나 덕후는 있구나.

 

 : 아, 그럼 만화나 애니 얘기도 종종 하세요?

 

 :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있긴 했죠. 그때 대화한 분 중에 한 분은 불교대학 다니시면서 복수전공으로 게임개발학과도 하시더라고요. 젊은 스님 중엔 그렇게 개방적인 스님도 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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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소장 중인 만화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박스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출가, 그리고 초발심

 

 : 출가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 제가 인연이란 말에 놀랐던 게, 저는 전혀 불교를 모르고 자랐어요. 집안도 다 무교였고. 그런데 출가하려고 지식인에 검색해서 어느 절에 찾아갔는데, 바로 앞에 아파트 단지가 있고 내가 생각했던 절이 아닌 거 같아서 한 바퀴 쓱 두르고 그냥 나왔어요.

 

 : 혼자 가셨어요?

 

 : 네. 혼자

 

 : 그때가 몇 살이셨어요?

 

 : 대학교 1학년 중퇴했던 때죠.

 

 : 대학 때려치우고, 사복 입고, 머리 길고, 가방 하나 들고 털레털레 가신 거네요

 

 : 거의 가출이죠. 그래서 두 번째로 찾아간 절에서 출가를 했죠. 거기서 행자 생활을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예전에 계셨던 스님이 학교를 세우셨고, 저의 친할아버지께서 그 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하셨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사하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 아버님께서 소식을 듣고 남다른 생각을 가지셨겠어요.

 

 : 글쎄요. 그 사실을 알게 된 게, 절에서 법회를 했는데, 눈에 익는 분이 있어서 숨어서 보니까 저의 큰할머님이시더라고요.

 

 : 아.

 

 : 알고 보니 꼬박꼬박 나오셨다고. 그래서 그때 인연이란 게 있긴 있구나 싶었지요.

 

 : 스님께서는 어쩌다가 출가했다고 하시지만, 모든 스님께 여쭤보면 다 그러시더라고요 “나도 어쩌다가 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그 ‘어쩌다가’ 속에 무언가 중대한 결심이 있잖아요. 출가하겠다는 결심 이후로도, 들어가서 ‘내가 포기해야 하지 않아야겠다.’ 이런 결심이 있어야 하잖아요. 

 

 : 저는 현실을 파악해야 했다고 할까요. 학창시절에 평범하게 지내다가, 고등학교 때 한계를 느꼈어요. 공부를 하긴 한다고 하지만 더 이상 발전하는 거 같지도 않고, 시간 낭비하다가 대학도 대충 성적 맞춰서 가고. 이런 식으로 가다가 보면 인터넷에서 말하는 '삼포 세대'가 되겠다. 취업도 제대로 못 하고 부모님 속만 썩이는 그런 생활을 하겠구나. 실제로 대학교 중퇴하고 그런 생활을 했죠. 부모님 속을 박박 긁다가.

 

 : 방콕하셨구나.

 

 : 그러다 보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뭔가는 해야겠는데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뭘 할 수 있겠나. 아, 그런 말 있잖아요. '그렇게 살 거면 머리 깎고 절에나 들어가라.' 그렇게 어쩌다 보니 절에 찾아가긴 했는데, 아무리 제가 널널한 곳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제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몸매가) 푸짐했어요. 심지어 정좌도 제대로 못 해서, 어떤 스님께서 뒤에서 눌러주셨는데 제가 비명을 지르면서 넘어졌어요. 그 정도로 낯설었었죠. 반가부좌만 5개월 걸렸어요. 그렇게 힘들게 버텼는데. 첫 번째 이유는 지금 여기를 뛰쳐나가봤자 밖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나. 나가서 뭐가 되냐.

 

 : 보통 그 이유가 제일 크죠. 여기서도 못하는데 밖에서 뭐가 되겠냐.

 

 : 네. 두 번째 이유는, 불경을 그때 처음 접했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까, 정말 납득이 가고, 그럴듯하고, 재미가 있고. 왜 이걸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나 싶더라고요.

 

 : 말하자면 환희심을 느끼셨구나.

 

 : 그걸 그렇게 표현해야 하나. 그러니까 좀 오글거리는데(웃음).

 

 : 경전에 있는 표현을 그대로 쓴 겁니다(웃음).

 

 : 어쨌든 나하고 비슷한, 그전까지 불교를 전혀 접하지 않았고,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처음 들어도 이해하고, 납득이 가는 내용이 구구절절 가득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남들한테도 이걸 알려주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 그게 스님의 초발심이네요?

 

 : 그렇죠. 

 

‘어쩌다가’ 출가를 했고, 불경이 너무나 재밌었다는 이야기. 불경을 읽고 느낀 바를 이야기할 때 스님의 어조는 전체 대화를 통틀어 가장 확고했다. 20대 초반에 출가를 결심한 스님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절에서 자랐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일찍부터 걸렸거나 하는 사연이 배경이 숨어있다. 드덕스님처럼 불교에 대한 이해가 1도 없는 상황에서의 출가란 흔치 않은 케이스다. 게다가 출가한 절에 이미 인연의 끈이 닿아있다. 스님, 천직인 걸까.

 

 : 그래서 만화를 시작하시게 된 거네요.

 

 : 네. 종교라 하면 도덕 교과서처럼 지루하고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 접한 초기 불교 경전인 <니까야>를 읽다 보니, 부처님 말씀이 매우 합리적이면서, 구체적이고, 서사적이면서, 또 단호할 땐 정확한 대목을 짚어주시는 것에 놀랐어요, 또 역사적인 상황이 잘 그려져 있잖아요. 그런 서사성에 주목하다 보니, 예를 들어 부처님 열반하시는 대목은 자연스럽게 한 캐릭터가 사망하는 장면인 <원피스>의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 <원각맨> 시리즈는 어느 대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거예요?

 

 : <원각맨>은 시리즈로 시작하려고 한 건 아닌데. 사실 제가 <원펀맨> 블루레이를 소장 중입니다. 제가 ‘더빙팬’이라, 더빙된 건 구매를 해놓는 편입니다. 

 

 : 그래요? 원래 덕후들은 일본어를 더 좋아하지 않나요?

 

 : 전 더빙도 좋아합니다. (단호)

 

 : 취향이 확실하시구나. 뭐, 원펀맨은 불교적으로 패러디하기 좋은 작품이죠. 주인공이 대머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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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덕스님 작, <원각맨 번외품> 중

링크

 

 : 그렇죠. (웃음) 뭐 어쨌든 원펀맨은 원판이 너무 훌륭해서. 따라 그리는 것만으로도 연습이 되어서 선택한 것도 있습니다.

 

 : <열반품>은 카이지 기믹에, 원피스 명장면을 패러디하고, 내용은 붓다의 열반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잖아요. 저 개인적으론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 이후로 최고의 불교 만화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아이디어들이 경전을 읽을 때마다 계속 떠오르시나요.

 

 : 패러디라는 게 원작과 접목하려는 내용 두 가지 모두 독자의 사전 이해가 있어야만 빵 터지고 공감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계속 고민하는 건데, 부처님 외의 십대제자의 이야기리든지 다른 이야기들도 재밌는 게 많은데, 이런 걸 패러디해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있을까. 예를 들어 <앙굴리말라>를 그렸을 때 많이 못 알아 보더라고요.

 

 : 저도 못 알아 봤어요.

 

 : 네. 한창 반짝 유행할 때 그린 거라. 그래서 바로 지웠었죠.

 

 : 그런데 불경이 독자에게 친절한 텍스트는 아니잖아요? <니까야>를 예로 들면 계속 구절이 반복되고, 문체도 독송하기 좋지만 읽기엔 불편한 만연체로 작성되어 있고. 그런데 그런 불경의 핵심내용을 콕 집어서 몇 컷의 만화에 담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 <니까야>가 계속 반복되고 읽기 어려운 점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당히 합리적인 면이 있다고 봐요. 사실 그 경전을 지금 기준으로 편집해서 핵심만 짚어내면 일반인들도 손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좋은 예로 <지대넓얕>에서 채사장 님이 불교 컨텐츠를 핵심을 짚은 구성으로 방송한 게 상당히 좋더라고요.

 

 : 네. 그런데 초기불교는 그런 게 좀 쉬운데, 대승불교 경전은 저도 상당히 어려워서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초기불교 위주로 그리셨는데, 일각에선 '대승비불설'도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초기불교가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거든요. 근본주의라고 표현하기엔 좀 거리가 있지만, 초기불교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으로 불교를 개혁하자는 주장도 있고요.

 

*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란, ‘대승불교 경전은 붓다가 직접 말씀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이는 문헌 고증으로 증명된다. 주장 자체는 학문적으로 타당하나, 의도치 않게 현대 대승불교의 정체성에 위협을 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 초기불교나 대승불교나 불교가 역사적 진보를 거쳐 온 과정이고, 그 모든 것들이 상황과 맥락에 맞게 대안으로써 이어온 거잖아요. 그래서 '뭐가 진짜 불교냐' 하는 논쟁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나의 의지를 있는 자’ 컷이 의미가 깊게 다가왔어요.

 

 : 네. 그래서 그 컷을, 일부러 석가상부터 달라이라마나 숭산스님까지 넣어서 그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기불교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대승불교 경전이 제 개인적으로 더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제가 또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지금도 과학잡지를 읽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논리적인 구조로 나아가는 <니까야> 텍스트가 더 친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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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덕스님 작,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중

링크

 

 : 불교가 붓다를 벗어나 십대제자나 역대 조사, 선사를 이야기하면 접근성이 많이 떨어지잖아요. 그나마 유명한 달마나 사명 대사도 이미지만 유명하지, 불교사적 의의에 대한 접근성은 떨어지잖아요.

 

 : 그렇죠. 그런 걸 앞으로 어떻게 잘 풀어갈 것인가가 제 숙제겠죠.

 

초기 불교의 경전, <니까야>는 이미 유물론적 사고관이 전 세계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 대안적인 텍스트로 주목받았다. 동아시아의 주류인 대승불교 경전에 비해 논리적, 서사적 구조가 뚜렷했고, 또한 더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물론, 초월적인 내용이 없지는 않다). 현대 불교의 트렌드인 초기 불교 집중 현상은 ‘붓다로의 회귀’라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역사적으로 쌓아 온 불교의 컨텐츠가 싹둑 잘려나가는 단점도 있다. 붓다의 무게감이 사라진 이후, 불교를 이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전하는 방법은 드덕 스님뿐 아니라 현대 불교의 숙제다.

 

 : 스님이 적은 댓글 중에 ‘승단도 IT 시대라 이 짓 하기 힘들다.’고 하셨는데. 문제가 된 적 있던가요?

 

 : 딱히 큰 문제가 된 건 아닌데. 한번은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출석 체크하고 제 법명이 불리니까, 다른 대학에서 오신 스님분들이 “저기, 혹시..?” 하면서 알아보더라고요. 어쨌든 문제가 된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창피해서 그런 거죠.

 

 : 불교라는 종교가 근본주의를 배척하지만, 또 생활 윤리를 강하게 강조하기 때문에 경직성을 띨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 그렇죠. 다른 사람들이 보라고 그린 건 맞는데, 다른 스님들이 보시고 알아보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 혹시 은사스님은 아시나요?

 

 : 은사스님 아직도 모르십니다. 은사스님께선 인터넷을 잘 안 하셔서요.

 

 : 다행인가요?(웃음)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 저는 스님 만화를 보고, 혹시 엄격한 문도(일종의 계파)에 속해 있다면 문제가 될 것 같다고 걱정했거든요. 젊은 스님들은 자라온 과정 동안 대중문화에 익숙해진 채로 자랐고, 출가하고 속세와 단절했다고 해서 살아온 것들이 모두 사라지진 않잖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소하는지가 젊은 스님들에겐 큰 고민거리일 것 같은데.

 

 :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대중문화 자체도 본인 것으로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은 하죠. 물론 청정수행을 한다면 완전히 단절하는 게 맞긴 한데, 수행하는 목표가 깨달음도 있지만, 또 대중교화라는 대승적인 목표도 있죠. 그런 면에서 대중문화 자체가 불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불교를 알려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포교라는 게 그렇잖아요.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알고 있을 수 없어!’ 오타쿠들도 그러거든요. ‘이렇게 좋은 걸 나만 보고 있을 수 없어!’ 

 

 : 그래서 루리웹에서 피드백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면, 전 덕후가 아니라서 이해할 수 없는 댓글도 많았는데, ‘술과 고기와 여자를 금하였지만, 뿅뿅을 금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 이런 댓글 보면 어떠세요.

 

 : 기분 좋죠. 그런 거 보려고 그리는 거니까.

 

 : 그런가 하면, 이런 일차적인 재미를 느끼는 단계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를 시작하는 단계까진 상당한 간극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주의 깊게 본 댓글과 스님의 대댓글이 있는데, 아트만에 대한 개념을 번역의 차이에서부터 설명하고 해석의 차이까지 나아가는 대화가 있었어요. 그게 불교가 가진 핵심 논쟁 중 하나잖아요. 패러디 만화에서 무아론과 진아론이라는 불교의 핵심 논쟁까지 닿을 수 있는 걸 보면, 이것이 포교 방법으로 분명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을 했거든요.

 

 : 그렇죠. 저도 그런 것을 바라고 있던 거고. 그런데 그런 댓글이 그 이후에는 없어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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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론(眞我論)과 무아론(無我論) : ‘고정된 자아’의 실재 여부에 대한 주장. 불교의 최대 논쟁거리이며 초기 불교와 선불교의 논리가 대립한다. 이는 자아의 실재 여부에 따라 연기설, 윤회설 등 불교의 세계관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거 설명하기 골치 아프(모르)니까, 나도 한번 불러본다. “아난다 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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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는 20여 년간 붓다의 지근거리에서 붓다의 말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한 제자다. 아난다와 스피드왜건을 믹스한 기믹이 스님의 만화에서 생겨났다. 

 

 : 앞으로 노하우와 경험치가 쌓이고, 또 스님이 직접 만나는 분들까지도 만화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포교로서 기능을 하겠죠.

 

 : 네. 그런데 아직 제가 군대도 안 다녀왔고, 안정적인 환경도 갖춰지지가 않아서. 그런 부분이 선행되어야 꾸준히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조계종이 상당히 거대한 집단이고 스님이 그리시는 만화가 주류로 나아갈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잖아요. 종단 내부도 그렇고 불교가 가진 한계도 그렇고. 만화 그리기 좋은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 것도 그런 영향 때문일 수 있고. 젊은 스님들은 환경적 제약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낄 것 같은데 스님은 어떠셨어요?

 

 : 제가 원래는 송광사 강원(불교 대학과는 다른 전통적인 사찰 내 교육기관. 퀘스트 난이도가 최상급이다)에 보내졌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몹쓸 짓을 했죠.

 

 : 아, 탈주하셨구나.

 

 : 네. 그나마 승가 대학을 가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죠. 대신 널널한 곳에 있다 보면 놓치는 부분도 있죠. 어른 스님들이 말씀하시다시피 ‘중물’이 덜 들여지니까. 원래 살던 절에 가서 생활하다 보면 저도 느끼거든요. 어쨌든 중물이 들긴 들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너무 경직되어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본질을 놓치고

 

출가자의 수가 급감하고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던 강원(講院)도 대학의 학점취득 방식을 채택하는 등, 젊은 층의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변화를 고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짬밥 있는 스님들은 “중물이 안 든다.”며 비판적이다. 즉, 엄격한 생활 윤리가 몸에 새겨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단순한 꼰대식 한탄이 아니라, 붓다도 수행자의 생활 윤리에 강하게 터치했었기 때문에 근거가 충분한 이야기다. ("짬밥 최고참들은 법인 카드 들고 룸싸롱 가던데"라고 말한다면, 나는 모르쇠~~~)

 

 : 언제나 밸런스가 중요하죠

 

 : 그렇죠. 언제나 중도가 중요한 건데.

 

 : 불교교리 자체가 상대주의적인 개념이 여러 군데서 드러나고, 수행법도 선택지가 다양하게 제시되잖아요. 상대주의적인 인식론과 방법론을 통해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상태로의 도달이 목적이니까요.

 

 : 그렇죠. 저는 제멋대로 탈출을 하긴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은사스님의 지도를 무시할 수가 없죠. 결국에는, 각자의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인연의 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들이 많아요.

 

 : 쓰신 글 중에, ‘유치하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행법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게 있었어요. 문장을 읽으면서 스님도 이런 방법에 대한 내적인 혼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거든요.

 

 : 불교 자체가 '선지식(싸부)'이라고 하는 것처럼, 스승이 제자를 이끌어가는 방식인데, 제가 하고 있는 짓은 완전히 뜬금없는 짓이잖아요. 제가 불교 만화를 그리려고 하기 전에 검색을 되게 많이 해 봤어요. 그런데 국내에서 출판된 것들은 예전에 명랑 만화 그림체, 옛날 티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뭐 그런 것들만 있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얻고 시작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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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덕스님 작, <붓다의 기묘한 모험 ~ 삼마삼보디 크루세이더즈 ~> 중

링크

 

 

시작하는 여행자의 그림

 

 : 수행자로서의 누구나 해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서 걷고 있지만, 어떤 모습의 길을 가는지는 제각기 다르잖아요. 어떤 길을 가고 싶으세요

 

 : 저는 딱히 뭘 하고 싶다기보다, 소거법으로 정했거든요. 뭘 하겠다고 생각하고 출가를 한 게 아니다 보니까, 참선은 못하고, 그렇다고 학승할 재목도 아니고. 불교 공부를 깊게 하려면 영어를 비롯해서 산스크리트어나 빨리어에 중국어, 한자, 거기에 철학도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것도 빼고. 이제 남은 걸 보니 포교의 길이 있더라고요.

 

 : 스님들 중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근기를 못 찾아서 오래도록 방황하는 분도 계신데, 그래도 스님은 시작부터 좋은 환경을 만나셔서 다행이네요. 시간이 지나고 법랍(불교식 짬밥)이 차면 인터넷 상을 넘어서 자신이 운영주최가 되는 공간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어떤 절을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 전 북카페를 하고 싶습니다. 

 

 : 그거 되게 괜찮은데요. 제자들도 만화 그리면서.

 

 : 네. 전 북카페에서 힐링을 받고 있어서요.

 

 : 저는 또 생각한 게, 스님이 그리신 만화가 불화의 현대적 버전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불화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불교 교리를 시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잖아요?

 

 : 사실 제가 불화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플랜 비가 불화입니다. 나중에 불교미술학과를 다닐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 루리웹 유저들이 고맙지 않으세요? 

 

 : 저는 상상을 못 했죠.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짤방 하나 그려서 올렸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완전히 부처님 말씀이죠. 거기서 시작됐는데, 너무 반응이 좋더라고요. 

 

 : 조회수가 10만이잖아요

 

 : 네. 그리고 댓글도 단순히 재미를 느끼는 댓글이 있는가 하면, 이른바 ‘아난다왜건’처럼, 그런 식으로 토의해나가는 과정도 좋고. 그런 반응이 없었으면 진작에 접었겠죠.

 

 : 결국엔 모든 창작자가 갖는 고민이, 모방에서 시작해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는 것에 대해서잖아요? 

 

 : 그게 제일 중요한데, 아직까지는 디테일하게 계획된 건 없어요. 다만 참고하는 작가분이 몇 분 있어요. 이말년 작가님의 <이말년 서유기>나 피키캐스트의 <부기 영화>처럼, 서사와 패러디를 적절히 잘 버무린 작품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해 나갈 생각이고요. 

 

드-원각맨 번외품.png

드덕스님 작, <원각맨 번외품> 중

링크

 

스님은 시종일관 ‘뜻밖의 출가, 뜻밖의 구도’라는 뉘앙스로 말씀을 했다. 한편, 본인이 느낀 ‘환희심’을 오글거린다고도 말했다. “해탈하지 않으면 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라는 각오를 세웠던 붓다의 자세에 비해 소극적이고 겸연쩍은 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또 그러면 어떠랴. “이렇게 좋은 것을 나만 알고 있을 수 없어!”라는 스님의 덕후적 태도도 순도 100%의 진심인 것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스님에게서 풀을 야금야금 씹으며 느리지만 우직하게 길을 가는 무소의 모습이 보였다. 언젠가 스님의 북카페에 의미 있는 피드백을 나누는 대화가 넘쳐나는 광경이 그려지길 기대해본다.

 

 

뱀발. "진짜 약은 안 하시냐"는 나의 우문에 스님은 그저 웃으셨다. 나는 붓다의 염화미소를 알아본 가섭에 비하면 덕력도 불교력도 부족해서 함의를 찾아낼 수 없었다. 진실은 저 너머에...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https://www.instagram.com/ddirori0_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