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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렵겠지만, 6월 14일, 로서아 월드컵이 개막했고 현재 진행 중이다. 명색이 월드컵인데, 이렇게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 외려 신기할 정도로 잠잠한 월드컵이다. 우리나라 대표팀 성적이 별 기대가 되지 않아서인지 북미 정상회담-지방선거가 탓인지 주변 누구도 월드컵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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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축알못인 나로서는(굳이 설명하자면 동년배 남성 중 최하급일 것으로 추정되는) 월드컵이 열리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월드컵 모든 경기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중 한쪽을 선택하라면, 정말이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택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월드컵을 끌고 와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은 역시 월드컵을 핑계 삼아 맥주 이야기를 주절거릴 수 있기 때문이렸다. "야구 보면서 맥주 한 잔 허쉴?"을 외칠 때는 못내 주저하던 유부남들도 "월드컵 보면서 맥주 한 잔 허쉴?"을 찔러넣으면 바로 뛰어나오더라. 월드컵 기간에는 부인되시는 분들의 규제가 조금 완화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8년 로서아 월드컵 F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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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토토로, 독일 벡스, 스웨덴 옴니폴로 옐로벨리선대, 한국 오비 카스, 멕시코 코로나 엑스트라

 

 

1.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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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스(beck's)

독일, 5.0% 참고로 수입업체는 오비 맥주

 

"독일 축구력은 세계 제일!"에 부끄럽지 않게 뛰어난 맥주력을 뽐내고 있는 독일의 맥주 되시겠다. 대형마트 수입 맥주 코너에 서서 몇 분 동안을 어떤 '독일 맥주'를 사야 할까 고민해야 했을 정도로 다양하고 좋은 독일산 맥주들이 많았다. 독일 대표팀에 뽑을 선수들을 바라보는 대표팀 감독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하나를 골라가자면 벡스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별 이유는 없었다. 언제였던가 월드컵 조편성이 완성되었던 날, 존경하옵는 '배가놈' 배성재 선생이 상대국 분석용 사진이랍시고 올린 사진에 올라온 맥주가 벡스였기 때문이다. 깊이가 부족한 결정이었지만 막상 골라놓고 꾸며댈 거리를 붙여보자면 긴 시간 동안 많은 양을 마셔도 쉽게 물리지 않는, 그 와중에도 드러내고자 하는 맛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독일 라거의 전형적인 모습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점이 되시겠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무기로 밑도 끝도 없이 부셔버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잘 짜여진 진형과 뛰어난 기본기를 무기로 절대 패배하지 않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마치 독일 축구같은 모습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개 축알못따위가 독일 축구팀이 어떤 플레이를 지향하는 지를 알리가 없다. 그냥 뭔가 있어보이고 싶은 마음에 내뱉은 입발림이니까 대충 넘어가자.

 

어쨌든 벡스는 맛있다. 적절한 고소함과 적절한 쌉사름함, 적절한 청량감 그 모든 것이 잘 결합하여 입술에 닿는 처음부터 식도의 입구를 간지럽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맥주"라는 모양새를 무너뜨리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간다. 마치 건강한 날달걀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과도 같다.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한 잔 더, 한 잔 더를 이어가게 만드는, 정말이지 축구 시청용 맥주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벡스 vs 카스 = 벡스 승

 

 

2.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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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니폴로(omnipolo) 노아 피칸 머드케이크

스웨덴? 11.0%

(조별 사진에 쓰였던 옐로밸리선대 시음 사진을 어디론가 날려버린 관계로 예전에 찍어둔 노아피칸머드케이크로 대체)

 

맥주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고민했던 스웨덴이다. 북유럽 어딘가의 나라, 수도가 스톡홀름(그마저도 브루마불을 통해 배운), 이케아와 아바의 나라라는 정도를 빼면 정말이지 아는 게 없었다. 그나마 찾아보다 알게 된 게 축구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스웨덴 국적이라는 사실. 문제는 아무리 기억을 훑어봐도 스웨덴의 맥주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터넷을 한참을 뒤져봤지만 역시 내가 마셔본 스웨덴 맥주는 없었고 국내에 수입되는 스웨덴 맥주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케아에서 만든다는 맥주도 국내엔 들어오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결국 약간의 문제가 있는 옴니폴로를 등판시키고야 말았다.

 

옴니폴로의 등판을 고민한 것은 첫째로 이 맥주가 스웨덴의 맥주로 분류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브루어리인 옴니폴로는 사실 집시 브루어리이다. 집시 브루어리는 자기 소유의 자체 양조 시설 없이 만들어낸 레서피를 다른 양조장에 위탁해 생산하는 양조업체를 말하는 것으로, 윗 사진의 노아 피칸 머드케이크의 경우는 네덜란드의 양조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걸 스웨덴 맥주라고 불러야 하는가 애매해지기는 하지만 생산지보다는 레서피의 주인이자 기획자인 옴니폴로가 속한 국가를 기준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으니 스웨덴 맥주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넘어가자.

 

두 번째 고민은 다른 3개의 맥주가 저렴한 가격의 대량 생산 맥주인 것과는 달리 옴니폴로는 보통 졸라 고가의 소량 생산 맥주-조별 사진의 옐로밸리선대는 2만 원, 윗 사진의 노아피칸머드케이크는 1만5천 원대에 육박한다. 사진 속 다른 맥주 전부를 사고도 남는다. 많이 남는다-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구할 수 있는 제품이 한계가 있어서 옴니폴로를 끌어오긴 했지만 공정한 비교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이야기이다. 긴 시간, 가볍게 마시면서 축구를 즐겨야 하는 것이 월드컵 시즌의 맥주 정신이라고 생각하는데 한두 잔 마시고 경기 시간 내내 잠을 잘 것이 아닌 이상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과하다. 

 

어쨌든, 옴니폴로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의 맥주들을 만들어낸다. 여타의 소형 브루어리들처럼 기본 라인업의 맥주들도 있지만 이것들이 '괜찮다', '나쁘지 않다' 정도의 중간급(?)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면 부재료(각종 과일, 커피, 바닐라, 초콜릿, 견과류 등)를 이용한 맥주들의 경우는 부재료의 맛을 놀라울 정도로 잘 이끌어낸다. 지나치게 잘 이끌어내다보니 맥주 본연의 맛을 넘어서서 맥주에 부재료를 더한 맛이 아니라 부재료에 맥주를 더한 맛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노아 피칸 머드케이크의 경우 입안에서 피칸 머드케이크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정작 피칸 머드케이크라는걸 먹어본 적이 없음에도 "아 이맛이구나"하고 말이다. 본말이 전도된 것 같지만 그 정도로 부재료의 맛을 잘 표현해낸다. "맥주 본연의 맛"이라는 것에 대한 정형화된 틀이 없는 사람이라면 옴니폴로의 아이스크림 시리즈나 로렐라이, 망고라씨고제 같은 맥주들을 맛보았을 때 맥주의 세상에서 부재료를 이용한 장난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인가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를 보면서 마실 맥주들은 아니다 싶다.

 

 옴니폴로 vs 카스 = 무승부 (사유는 비교불가)

 

스웨덴의 축구라는 건 역시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축구복을 입은 바이킹 전사가 도끼를 들고 달려오는 것만이 떠오른다.

 

 

3.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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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주스가 살짝 섞인' 코로나 엑스트라(corona extra)

멕시코 4.5% 역시 수입업체는 오비 맥주

 

어째서인지 중, 남미 국가들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을 것만 같은, 자유롭고 개인기가 뛰어난 축구 스타일이 그려지는 멕시코이다. 그러면서도 최종적으로 높은 순위에 들지는 못할 것만 같은, 콩라인이 생각난다. 사실 멕시코의 축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어느 팀이든 아는 바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강렬하게 이미지로 남은 것이 있는데, 오래 전 언젠가의 월드컵에서 한국 팀과 맞붙었던 어느 경기에서의 한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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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락

 

멕시코의 축구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아 '그거'했던 나라"라고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어린 시절에 저 장면이 꽤 강하게 남았던 것 같다.

 

멕시코! 하면 떠오르는 맥주는 역시 "코로나"이다. 네그라 모델로와 함께 멕시코 맥주의 이름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었지만 네그라 모델로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고 있어서 이젠 코로나만이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6캔 만 원이라는-때문에 병 제품을 사진 않았지만 역시 코로나는 투명한 병 제품이 제맛이다. 레몬이나 라임 슬라이스를 병목 부분에 집어넣은, 물기가 맺혀 흐르는 차가운 코로나 병맥주의 그림. 상상만 해도 시원해지는 새콤, 고소 달달한 코로나 그 자체다. 개인적으로 코로나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앉아만 있어도 등에 땀이 맺혀 흐르는 더위에 라임 얹은 코로나라면 거부할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집에 생라임이 없는 관계로 칵테일용 라임 주스를 넣어서 마셨지만 역시 맛있었다. 맥주가 아닌 라임맛 칵테일이 되어버린 것 같았지만 맛있었으니 그걸로 ok.

 

 라임 얹은 코로나 vs 라임 얹은 카스 = 코로나 승

 

 

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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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스(cass)

한국? 4.5% 생각 외로 수입업체(?)는 오비 맥주

  

 제발 한국인이라면 카스를 마...마......

 

독일과는 다른 의미로 고민을 해보았지만 역시 대한민국의 대표 맥주라면 카스다. 오비 맥주의 모기업인 안호이저 부시 인베브가 월드컵 스폰서인 관계로 오비 맥주도 월드컵 공식 맥주인 카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얼마나 힘을 보태고 싶었던 것인지 월드컵 한정판으로 740ml 거대 캔 제품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무려 미국산 카스! 미국에서 생산되는 한국 대표 맥주를 국내 생산업체를 통해 수입해서 마시는 뭔가 오묘한 모양새다.

 

왜 미국에서 생산해서 수입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740ml캔 제품을 생산하는 라인을 새로 증설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게 더 싸게 먹혔서일 수도 있고, 라인증설이고 뭐고 그냥 미국에서 수입해오는 게 국내 생산보다 더 싸게 먹혀서일 수도 있고, 둘 다 싸게 먹혀서라는 결론이라 별 의미는 없는 고민이었다. 이로써 F조 조별 맥주로 골라온 4개의 맥주 중 3개를 오비 맥주에서 수입하는 쾌거를 이룬 결과, 최후의 승자로 오비 맥주가 된 것 같아서 쓴웃음이 나온다.

 

내 돈 내고 카스를 사 마실 일이 내 생에 몇 번이나 더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소비하고야 말았구나. 그래도 미국산 카스니까 시음 기록에 남길 거리는 된 것 같아 약간의 위안이 된다. 국내 생산 카스를 사서 비교 해볼까도 고민해보았지만 그렇게까지 나 자신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은 관계로 그냥 미국산 카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나치게 많은 용량으로 인해 500ml잔과 330ml잔에 나눠놓고야 마실 수 있었는데 벡스, 코로나, 옴니폴로에 이어 국내 생산 카스까지 마셨다면 배가 터질 지경이지 않았을까? 안 마시길 잘했다. 머리 속 어딘가에 저장된 국내 생산 카스와 비교하면 탄산이 조금 약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던 것 같다. 맛 자체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는데 맛이든 탄산이든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과의 비교이니 그다지 믿을만한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산 카스 vs 국내 생산 카스 = 미국산 카스 승 (740ml에 2500원으로 가격이 좋다)  

 

 

결론: 축구 실력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1무 2패

 

 

맥주란 것이 보통 그러하지만 긴 시간, 많이 마시다 보면 필연적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게 마련이다. 어째서인지 경기 중 가장 중요한 장면들은 용캐도 그 순간을 틈타 드러나곤 한다. 화장실에서 몸무게를 줄이는 그 순간, 건물 벽을 타고 진한 환호성이 울려오더라도 맥주를 탓하지는 말자. 그것은 온전히 방광 근육의 나태함과 중요한 순간만을 빗겨 뽑아낸 자신의 실력 문제일 뿐 맥주의 잘못은 아닌 것이다.

 

뭐, 맥주 가득한, 즐거운 월드컵이 되길 기원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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