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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보았고 이미 여타의 기사로도 충분히 설명이 된 경기 내용 분석은, 웬만하면 하지 않겠다. VAR도 마찬가지. GK 조현우 칭찬 역시 패스. 뭐하러... 우리 다 같은 경기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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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감독은 낭만적인 사람이다. 그는 축구계에서 자신감 넘치는 낙천주의자로 유명하다. 월드컵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된다’, ‘두고 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그의 성품을 보건데 모두 진심이었을 것이다. 조롱하는 게 아니다. 하면 된다는 믿음은 스포츠에서 중요하다. 축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축구는 유사전쟁으로 불리는 종목인 동시에 우연의 요소도 많다.

 

신태용이 ‘트릭’이라는 말을 사용해가며 적을 깜짝 놀라게 할 비장의 무기가 있다고 했을 때 축구팬들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허세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트릭은 무엇인가? 상상이야 수백 가지도 할 수 있다. 혹시 트릭이 없는데 있다고 하는 것이 트릭인가? 그럴 수도 있다. 후자일 경우 상대팀에 스트레스를 강요하면서 이쪽은 아무 손해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이 말을 해서 스웨덴에게 좋을 것은 없고, 아군에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트릭이 있을 수도 있잖은가?

 

한국과 스웨덴의 조별예선전은 온라인에 흔한 표현대로 단두대 매치였다. 서로를 1승 제물로 간절히 원했던 팀들이다. 1차전에서 승점을 차지하는 일은 16강에 올라가기 위한 중요한 전제다. 러시아 월드컵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스웨덴은 유럽의 약체로 평가되었다. 유럽에서는 강팀들의 헛발질로 운 좋게 올라왔다는 냉소적인 평가를 받았고 자국 축구팬들도 걱정이 많았다. 역시 월드컵에 부표처럼 떠밀려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한국대표팀이 첫 상대로 배정되었을 때 스웨덴의 눈앞에도 길로틴이 어른거렸을 것임은 당연하다.

 

스웨덴 대표팀은 한국의 마지막 평가전에 스파이까지 심었다. 심리적 압박을 심하게 받았다는 이야기다. 우리 대표팀의 트릭을 모두 파악했다는 스웨덴의 블러핑은 재미있다. 월드컵은 대표팀에 승선한 선수들을 난데없이 비장한 애국자로 만드는 대회다. 이런 무대에서 양 팀이 보여준 신경전은 강호들의 입장에서는 코미디다. 마지막 평가전을 비공개로 치른 것도 그렇지만 스웨덴 측이 스파이 이야기를 직접 꺼낸 일은 더욱 웃긴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은 남이 손가락질할지언정 스스로는 함구하는 법인데 말이다.

 

스웨덴은, 품위는 강팀들의 특권이란 사실을 잘 알고 행동했다. 경기 하루 전, 스파이 논란은 오해라며 사과했지만 당연히 요식행위다. 스웨덴이 일부러 떠벌인대로 우리의 비공개 A매치에 침투한 전력 분석요원 라스 야콥슨이 신태용의 트릭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혹시나 신태용이 비공개 매치에서 트릭을 사용했다고 가정하면 그의 계획에 차질을 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는 줄 수 있다. 블러핑을 해서 손해 볼 일은 없고 우리가 더 잘 될 것도 없다. ‘아님 말구’다. 안 통해봐야 본전이니 그냥 던진 거다.

 

스웨덴은 그 외에도 쌍안경을 든 감시요원이 훈련장 주변을 수색하는가 하면 보안요원 50명이 등장해 주변을 뒤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켜야 할 ‘트릭’이 있었던 것인가!? 한국전을 보니 딱히 없었는데 뭘. 하지만 지켜야 할 대단한 게 있다고 어필해서 딱히 잃을 건 없으며, 적에게 근심걱정을 끼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승후보 독일과 전통의 강호 멕시코의 기준에서 우리와 스웨덴이 한 짓은 무척 귀엽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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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스웨덴의 신경을 긁기 위해 굳이 ‘트릭’이라고 표현한(그것도 잘 알아들으라고 영단어에서 골랐다) 비장의 무기는 있었는가? 나는 솔직히 트릭이 없을까봐 걱정했다. 신태용이 낙천성으로 유명한 자신의 성격에 매몰돼 혹여나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하면 부끄럽지 않은 싸움을 펼칠 수 있겠지’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으면 큰일이다 싶었다.

 

권투의 예를 들어보겠다.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이 링에 오를 때 하는 다짐은 한결같다. 투지를 불태우며 고통을 참으면 뭐가 돼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러다 권투의 신이 나의 의지를 어여삐 여기면 혹시나 영화에서 나오는 큰 거 한 방으로 KO 승리를...?

 

택도 없다. 저 사람은 100%의 확률로 흠씬 두들겨 맞고 샤워실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혼자 반성과 자학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대결에서 정신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신력은 실력의 바탕이 있어야만 기술과 체력을 끌어올려준다. 신태용의 얼굴과 말씨가 너무 자신만만해서 나는 설마 권투 초심자의 결기이면 어떡하나 했다.

 

신태용은 자꾸만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어줄 무엇이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월드컵 직전까지, 보여준 뭐가 없었다. 슈뢰딩거의 신태용이다. 상자 안에 트릭은 과연 살아있었는가? 살아있었다. 신태용은 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도전이라 부를 만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스웨덴 대표팀은 초반 15분 가까이 당황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다시 권투의 예를 들어보겠다. 샌드백을 때리며 가상의 적을 괴롭힐 때는 생각대로 된다. 샌드백은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링에서 상대는 끝없이 움직이고 반격하며 내게 적응한다. 역사를 보면 패배하는 장수들도 처음의 계획은 좋다. 문제는 적이 로봇처럼 뚜벅뚜벅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또한 적의 수장은 상식의 선을 결코 넘지 않는 양순한 모범생이 아니다.

 

김신욱을 전방 중앙에 세워 스웨덴의 높이를 무력화시키고, 그의 양 날개에 손흥민과 황희찬의 재능을 배치해 우리 편 ‘진격의 거인’에 실탄-공-을 배달한다는 계획은 낭만적이다. 김신욱의 머리를 맞은 공이 손흥민의 발로 전달되면 결정적인 기회가 오리라는 기대도 멋지다. 공이 상대 문전에서 오가는 동안 어느새 2선에서 치고 들어온 구자철이 중거리 슛으로 스웨덴의 골망을 가른다는 그림은 예쁜 파스텔 톤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라니, 트릭은 스웨덴 선수들이 초반 15분을 견뎌내고 적응을 마친 시점에서 끝났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귀여운 아깽이였다. 생각대로 당해주는 적은 전투에서도 축구에서도 없다. 4-3-3이 좌절되니 김신욱을 빼고 전통적인 4-4-2로 되돌아왔다. 슈뢰딩거의 신태용, 그 실체는 ‘아님 말구’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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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아군에 비해 심한 약팀이 아닌 한, 이상적인 계획은 필드 위에서 반드시 좌절된다. 상대 선수의 발이 끝없이 공을 끊어내고 우리 수비수를 제친다. 계획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필수 전제다. 하지만 훈련과 실전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계획은, 그냥 낭만일 뿐이며 선수배치에 불과하다. 계획은 피와 살을 입혀야 한다.

 

어떻게? 계획이 현실의 무기가 되려면, 선수들이 이상적인 계획이 좌절되는 순간을 견디는 법을 익혀야 한다. 팔씨름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공격이 막히고 수비가 뚫리는 순간은 상대가 가하는 힘이다. 비록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지만 발 빠른 움직임으로 원래의 포메이션이 다시 기능하도록 수습하는 것은 내가 버티는 힘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팽팽할 수 있다.

 

트릭은 있었지만 없었다. 살을 입히지 않은 트릭은 낭만일 뿐 현실의 중량을 지니지 못한다. 왜 월드컵에서 시합 당일 깜짝 포메이션을 들고 나오는 팀이 드물까. 트릭이 전술이 될 만큼 강력해지려면 훈련과 실전으로 외부에 노출되어야만 한다.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트릭 따위는 없다. 성공적인 트릭은 그 자체로 이미 트릭이 아니다. 축구에 왕도는 없다. 축구는 넓은 경기장을 쓰는 단체 구기종목이다. 선수들은 실패와 수습을 반복해야만 한 몸이 된다.

 

토털풋볼 이후 축구의 공격과 수비는 단 한마디로 압축된다. ‘유기적인 움직임’이다. 공격도 수비도 선수들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축구선수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 있다’는 말이 통하는 것이다. 축구의 공격과 수비는 철새 떼가 공중을 선회하며 날 때 진한 색으로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는 모양새로 수렴되었다.

 

생명체는 대처하고 진화한다. 현대축구를 보라. 시합에서 성공하는 팀들의 움직임은 90분 동안 반드시 진화한다. 이는 골키퍼를 제외한 열 명의 선수들이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간 보여준 한국 대표팀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합 중에 진화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가 반복된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왜 ‘자동문 수비’라는 별명을 얻었는지를 보라. 수비 계획이 1차 좌절되면 그 즉시 보여야 할,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신속하고도 유기적인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공격도 마찬가지다. 공을 상대 문전에 안정적으로 배달하겠다는 계획만 있다. 당연히 상대 수비는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 번 장애에 부딪친 공격은 어떻게든 되살아나 골을 향하겠다는 생물의 몸부림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거기서 멈추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한국 대표팀의 득점력을 보라. 골 결정력 부재와 자동문 수비는 공격 상황인지 수비 상황인지만 다를 뿐 동의어다. 손흥민이 역습을 전개해도 구자철이 따라오지 않는다. 구자철의 문제이기 이전에 하나의 유기체가 아니다.

 

선수 개인의 역량은 충분하다. 팀웍을 논하기 이전에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각자가 다른 생물이며, 충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킬 뿐이다. 이건 축구가 아니라 직장생활이다. 주목받는 선수는 배출되어도 성공적인 팀은 될 수 없다. 어쩌면 현재 한국 대표팀이 구사하는 축구는 현대축구처럼 보이는 근대축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공포다. 그렇다면 슈틸리케는 물론이고 신태용 역시 감독 개인의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신태용의 낭만은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낭만은 쉽사리 비극이 되는 법이다.

 

멀쩡한 선수들이 왜 대표팀에 모이면 한 몸을 이루지 못할까? 내가 오랫동안 천착하는 주제는 바로 이 미스터리다. 단지 히딩크 이후 토털풋볼의 기억을 잃어서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을까? 언젠가부터 안정환, 이영표 등 선배 축구인들이 대표팀 선수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이상하지 않게 됐다. 기이한 현상이다. 이들은 소위 '꼰대'와는 거리가 있는 인간형이다. 적어도 단지 기대보다 못한다고 감정적인 반응을 노출할 사람들은 아니다. 이들은 언어화하기 곤란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을 봤다. 언젠가는 내가 이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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