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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입니다 추천12 비추천0





몇 년 전 진화심리학 책을 열 권쯤 본 후 뭐랄까, 어느 정도 세상사에 통달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통달했을 리 없다. 진화심리학이란 게 아직 한국에는 여러 권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과도 아니고 예체능인 내가 뭐 대단히 잘 알 리가. 그냥 '세상이란 그런 거구나'하며 체념할 수 있게 하는 열쇠를, 진화심리학이 주었던 거였다. 그제야 나는 해방되었다! 드디어 소녀시대가 오오오오~ 오빨 사랑해, 하는 브라운관에 갖다 머리를 뚫고 처박을 정도로 콧구멍을 벌름대며 보고 있는 남자친구를 봐도 몰래 코나 파면서 흥, 진화심리학이겠지, 하고 애써 냉정한 척할 수 있게 되고 매력적인 쭉쭉빵빵한 아가씨들을 보면서 오오옹, 진화심리학상의 강한 유전자들이구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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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거 다 남자에게 이유 갖다 붙여주기 위한 학문이 아닌가 하고 무식한 머리를 데굴데구루 굴려 의심해 보다가도 흥 뭐라고 이유를 갖다 붙일 수만 있다면 그 어찌 훌륭한 학문이 아니란 말인가, 하고 어깨를 으쓱해버리고 만다. 남자는 이런 존재구나, 하면서 남자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게 해 주었다는 면에선 그건 아주 좋은 학문이었다. 하긴 진화심리학이 남자의 것만은 아니지, 젊고 매력적이고 강력한 유전자에게 누구나 끌리게 되어 있다는 현실 앞에서 남녀가 따로 있겠는가. 나 역시 연하남을 주워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내 경우에는 그들이 젊고 매력적이고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른 남자'들에게 학을 뗀 다음이었다. 누굴 사귀어 본 남자는 싫었다. 하얀 눈밭 위에 발자국이 나지 않은 한겨울의 아침나절처럼, 오로지 내 것이어야만 해.


그따위 걸 따지고 앉아있다 보니 상대방의 연령대가 한없이 내려갔다. 미친년, 약게 굴어서 '스펙'이나 높일 것이지 사랑에만 목매고 앉아 있었던 거였다. 현실적이지 못한 건 여전해서 최근에도 친구의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며 여친을 두 번 만들고 헤어지고 하는 동안 나는 넋 놓고 놀고 있었다. 이러다 그 꼬맹이한테 청첩장 받는 상황이 올지 모르니 정신 차리고 더 놀아선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그놈의 새하얀 눈밭 같은 남자는 찾기 힘들어서, 강아지 새끼도 아닌데 웬 눈밭 타령이람, 하고 정신 차릴 즈음 고등학생하고 사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나도 대학 초년생이었으니 피차 어렸다. 어른 남자에게 호갱 노릇을 하고 학을 떼었다고 해서 어린 남자에게 호갱 노릇 안 하리란 법이 없었지만 그걸 모를 만큼 어렸다. (최근에야 어느 독자분이 '호갱칼럼 잘 읽고 있어요~'하고 글 남겨 주시길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아, 나는 인생에 대해서 호구였구나.) 어쨌든 어른 남자들이 나를 껍데기 홀랑 벗겨 잡숫게 할 뻔했다가 빠져나왔나 싶었더니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애가 처음부터 기어오른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 누나 어려운 줄 아는 공손한 고딩이었다. 얘 남자친구가 고등학생이래, 젊어서 좋겠다아, 하는 친구가 있을 때마다 나는 그 녀석의 사진 같은 걸 숨기려고 애썼다.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하고 김하늘이 바락바락 소리치던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미루나무처럼 훤칠하고 우유처럼 뽀얀 애였다면 '프사'로 해놓고 동네방네 자랑했을지 모르겠지만 까무잡잡한 데다 키는 딱 나만 했고 몸 키우는 운동하는 애라 땅딸해서(첨언하자면 키는 내게 단점이 아니었다. 난 늘 기아의 김선빈을 좋아했으니까. 왜 좋아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넥타이에 정장 마이를 입는 교복을 입고 있으면 어리고 예쁜 연하 남친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주변 보험 회사나 자동차 대리점에서 잠깐 외출 나온 영업 사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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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공부를 잘했느냐, 물론 그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태어나서 아는 여자가 나밖에 없는, 그런 이에게 사랑을 받아 보겠답시고 애쓰다 보니 '네가 지고지순하기만 하면 다른 무엇도 따지지 않겠어', 이런 모드가 되어 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일찌감치 도태된 암컷이었는지도 몰랐다. 보금자리를 줄 수컷을 일찍 낚아채어 주저앉히는 것이 진화심리학에서 냉정하게 정의하던 암컷의 본능이었는데, 보금자리는커녕 둥지 지을 때 보탤 지푸라기 하나 줄 수 없는 어린 수컷에게 모이를 자꾸만 물어다 주는 성년의 암컷이라니, 차라리 이건 마조히스트라 할 만했다.


모이 물어주기라... 그 애는 확실히 많이 먹었다. 한창 클 때기도 하고, 운동하고 있어서도 그랬고, 마땅히 즐거워야만 할 데이트 시간이 고학하고 있던 내게는 일주일 전부터 골을 앓아야 하는 두통거리가 되어 있었다. 어디가 싸고 양을 많이 주는가? 최소 비용으로 얘를 할 수 있는 한 많이 먹일 수 있는 데는 어디인가? 대패삼겹살을 먹으러 가서 20만 원이라고 쓰여 있는 빌지를 받아든 이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악악대는 새끼에게 둥지를 뜯어서 먹이는 어미 새 같은 기분이 되어 갔다. 좀 지나면서 그 애는 누나 버스카드 내 것도 찍어 줘요, 하고 말하곤 했다. 응 알았어. 두 명이요, 하면 그 애는 누나는 진짜, 한 명은 청소년이에요! 하고 기사 아저씨에게 소리를 쳤다. 그러면 버스요금을 인식하는 그 여자가 따라서 소리를 쳤다. "청소년입니다!!"


내겐 그건 번번이 이렇게 들렸다.


'청소년입니다, 이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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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요금까지 찍어 줘 가면서 걔를 꼭 만날 필요는 없었다. 그 하얀 눈밭이 뭐라고. 어차피 지나가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밟고 다닐 건데. 걔가 그때까지 여자를 모르고 그래서 내가 그 애의 세계에 유일한 여자인 것도 사실은 또래 여자애들에게 걔가 별 매력이 없었기 때문인데 나는 그런 사실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싸한 예감이 들어서 절대 말은 못 놓게 했는데, 처음에는 내가 돈 쓰고 먹이고 입혀 주는 걸 고마워하던 녀석이 마치 '오래된 미래' 같이 굴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 효도할게요, 하는 아들처럼 어른 되면 돈 벌어서 누나한테 잘해주겠다더니 언제부턴가 내가 잘해줘도 시큰둥했다. 어차피 자기가 나중에 잘해 줄 거니까, 지금 내게서 조금 받아 누리는 건 그 <반지의 제왕>급의 스펙타클하고 환상적인 미래가 어지간히 갚아 줄 것이므로 나는 당당해도 된다, 뭐 이런 뉘앙스였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생일 선물 뭐 갖고 싶어?"라고 물을 때 아이는 "에어 맥스"라고 대답했다. '그런 건 나도 신어 본 적이 없다. 이놈아', 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나는 그 모델 중 그나마 싼 걸 골라서 할부로 결제했다. 그래도 십만 원 돈이더라만은 내가 도대체 왜 그랬나 모르겠다. 사랑했나 보다. 그리고 멀리 살아서 생일날 만날 수 없으니까, 걔네 반에 피자를 쐈다. 내가 미쳤지... 사랑했나보다. 그 애도 사랑하긴 했다. 내가 아니라 그놈의 '에어 맥스'라는 신발을. 등교할 때, 하교할 때 딱 10분씩만 신고 신발 주머니에 넣어서 다닌다고 했다. 위에 말한, '내가 장차 새누리당 말마따나 <입직>하거들랑 스펙타클하고 환상적인 미래를 선물할 것이다, 지금 네가 나를 먹이고 신겨 주는 건 그 미래에 대한 보답을 미리 받는 것이다', 뭐 요런 논리가 그 녀석 안에서는 점점 더 튼튼해지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자기 엄마가 보험을 하니 보험을 들란다. 웬만하면 그 애에게 과격한 말 하지 않고 명랑 쾌활하게 굴던 고학생은 '돈 벌기 힘들다, 내가 너네 엄마 실적 올리게 보험까지 들어줘야 되냐'하고 말을 못 했다. 말해봤자 알아먹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핸드폰 너머 쓸쓸히 이 말만 되풀이했다.


"XX야, 누나는 말이지..."


"엄마가 그러는데 보험 들면 누나도 좋대요!"


"누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딱 한마디만 했다.


"아프면 그냥 죽을 거야."


그제야 뭘 이해했는지 웬일로 녀석은 입을 닥쳤다. 내가 수화기 너머 보내려 했던 건 쓸쓸함이었다. 녀석은 조잘조잘 말이 많아서 대체로는 귀여웠지만 종종 시끄러웠는데, 닥쳐야 할 때 닥쳐준 건 딱 그때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네 개씩 하면서 월세와 공과금, 신용카드로 분납 결제한 학비를 내려고 동동거리고 있을 때 간혹 버스에서 기절했다 깨면 제일 먼저 닥쳐오는 게 쓸쓸함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뭐가 되긴 되나. 지금 이렇게 됐는데 열심히 살지 말 걸 그랬나. 그 이후 녀석은 보험에 가입하라는 말은 일체 하지 않았다. 더 쓸쓸했던 건, 당시 유행하던 미니홈피의 파도타기인가를 해 보니 녀석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엄청 잘난 척 뻐기고 있었다. 친구들도 녀석을 추켜올리고 있었다. 다 내가 병신이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친구들 사이에서 대학생 연상녀를 사귀는 능력남, 친구들도 갖고 싶어하는 운동화를 누나가 사주는 마성의 청소년, 친구들에게까지 누나가 쏜 피자를 먹여 줄 수 있는 연하의 매력남, 누나는 내가 하자는 대로하는 그런 여자이며 또래 여자애들은 풋내나고 유치해서 안 만나는, 또래 사이에서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노련미를 풍기는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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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등을 이렇게 깊숙하게 찍을 수가. 그렇게 그 애는 고 3이 되었다. 전에는 귀여워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젠 떠받들어 줘야 했다. 사귄 지 몇 달밖에 안 되었지만 이젠 도망쳐야 한다는 예감이 왔다. 결국 나는 법의 힘에 호소하기로 했다.


"XX야... 누나가 잘 생각해 봤는데."


"네? 누나 뭐요?"


"청소년 보호법이란 게 있잖아. 네가 아직 그 범위에 있잖니. 누나는 어디 잡혀가기도 싫고... 이쯤에서 좋은 누나동생으로 지내는 게 좋지 않겠니?"


몇 번이나 연습해서 한 말을 간신히 꺼냈는데, 그다음에 싱글거리며 대단한 발견을 한 듯 뻐기던 이 자식의 멘트에 나는 혈압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누나, 그거 있잖아요! 제가 알아봤는데요, 그건 제가 누나를 고발해야 성립이 되는 거예요. 나만 아무 말 안 하면 문제없어요!"


차마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래 고발 안해서 고맙다'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XX야, 제발 누나 좀 살려줘'하고 속으로 빌고 있을 따름이었다.





살면서 호구 아니었던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봐라.
아니, 도로 들어가세요. 별로 보기 싫으니까.


세상 살다 보면 복 받았구나,

정말 귀티 나네, 싶은 사람이 가끔은 있다.

내가 마음이 덜컥, 하고 불편해질 때는

그 사람들이 동그랗고 천진한 눈을 뜨고 불행이란 것을 믿지 않을 때.

돈 때문에 사람이 어디까지 끝없이 떨어질 수도 있고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어디까지 천해질 수 있으며

가장 잔혹한 폭력은 흔히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사실.


누구의 벽장에도 해골이 들어 있다는 사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해골에 대해서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 해골들은 풍화된 후

가끔 재미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통에 시간이 더해지면, 코미디가 된다.

우리 모두에게 시간의 축복이 있기를. 특별히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의 해골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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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복한 년이다




김현진입니다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