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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회 안 남았지만, 팬일기를 기사화하지 말라는 공격적인 댓글에 대한 내 반응을 정리하고 넘어가련다. 해소될 필요가 있는 오해가 있어서. 


첫째, 난 일기를 이렇게 잘 쓰지 않는다. 

둘째, 난 일기를 쓸 정도로 팬심이 넘치지 않는다.

클래식과 포크만 들어온 자에게 락과 발라드 취향이 얼마만큼 계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승환씨 음악의 장르스펙트럼은 사실 락과 발라드로 양분할 수 없게 넓고 어떤 곡은 꽂혀서 반복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매일같이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지는... 

세째, 그럼에도 그의 팬이나 비팬이 날 이승환씨의 퍼내틱한 팬으로 오해하는 것은, 내가 이승환씨 인생에서 두 가지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기 때문일 거다.

정당한 평가와 무사함.

이것은 그가 몹시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점에 자극받은 나의 호기심이 그를 좀더 알도록 충동질한 결과이며, 사실 난 아직 더 미쳐야할 팬이다.  

네째, 현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 불온가요를 쓰고 있는 유일한 가수에 대해 내가 패션기사를 쓰더라도 그게 딴지마빡에 뜨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난 알지 못한다.

(게다가 노통 추모곡과 세월호 노래는 추모음반이 아니라 이 대중가수의 대중적 앨범에 실려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여유 되면 함 생각해보라.)


끝으로, 난 유머와 매너가 인간의 옷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댓글에도 콜센터 직원으로 응대할 테지만 옷은 입고 덤벼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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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차 팬이 이제 풀어봅니다.

그의 체력의 비밀(이자 거의 모든 것의 비밀)을. 



혹시 빠심으로 고통받는 환팬 있으신가? 그렇담 치료법으로 그에 대해 공개적으로 글쓰기를 강력히 추천 드린다. 그에 대해 초고를 쓰는 수고를 한 후에도 가수, 팬 그리고 팬 아닌 자의 시각으로 세 번을 다시 읽으며 절충점을 찾아 글을 수정하는, 고도로 지적인 작업을 수행키 위해 내 가녀린 영혼의 수퍼컴퓨터화라는 사이버펑크적 자해행위에 이르게 됨은 물론, 이런 식으로는 세 부류 독자 중 어느 누구도 백프로 만족시킬 수 없다는 논리적 도덕적 딜레마를 깨닫고도 작업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 시지프스적 무념무상에 이르다가, 결국 내 가냘픈 영혼이 파괴되면 장례식에서 그가 노래라도 불러줄 건가? 그렇담 무슨 곡을 불러달랄까 망상에 빠지는 초기 분열증 증상은 이미 지나고, 이승환의 환청을 듣게 될 날이 시시각각 다가옴을 예감하고 공포에 떨며 흐느끼면서도 한 줄이라도 재밌는 걸 넣어보려고 고심하는 이 운명은 딴지에 나타난 가장 젠틀한 영혼이 감당하기에는 가혹함이 있어 이젠 이승환이고 뭐고 확 마 치아삐고 싶어만 지는 것인데, 그러나 그의 노래 몇 곡을 밧데리 삼아 덜덜대는 수퍼컴을 가지고도 나는 지금껏 쓴 글 중 가장 볼만한 글을 가져왔고 이번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마지 않지만 동시에 양심상 다음과 같은 경고를 붙이고 시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팬 저널리즘, 이런 말이 있는진 모르겠으나 내가 하고 있는 게 이것이니, 팬 저널리즘의 정도(正道)는 스타를 살짝 까줌으로써 그 반작용을 일으켜 까인 스타를 살짝 띄워주면서 대신, 저널리스트가 욕 좀 먹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데도 지난 세 번의 글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이승환씨의 심기에 거슬릴까 눈치를 보면서 글에 상당한 사포질을 해댔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가수를 반드시 까고 말리라, 그래야 그를 띄워줄 수 있다는  각오로 절치부심했으나 하필이면 이번 주제가 체력인 바, 51세에 6시간21분 동안 66곡을 부르는 가수에 대해 체력이 지나치다는 거 말고 깔게 대체 뭐가 있었겠으며 게다 파고들면 들수록 내 턱은 떨어져나가고 그 턱을 찾아가며 붙여가며 다시 찾아가며 글을 써야했던 엽기적인 상황의 연속이었고 그 속에서도 난 첫 번째 미스테리도 풀었는데 이번 것도 풀지 않으면 안 그래도 암울한 시대에 독자들의 절망감을 배가시킬 거라는 어마무시한 압박감 하에 일생일대의 각오로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고 살을 에고 뼈를 깎는, 상투적인 표현 밖에 생각 안 나 미안한 그런 노력을 기울였는바 결국 결론에서는 그래도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그를 약간이나마 깔 수 있었던 것인데 혹자는 이게 뭐 까는 거냐 이거야말로 찬양질의 절정, 찬양의 결정체가 아니냐 날선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들의 가치관이 삐뚤어졌기 때문이므로 이런 것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히고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경고.

이하 찬양알레르기가 있으신 분은 본인의 책임 하에 읽거나, 아니면 본인이 겪을 피부부스럼 및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책임은 가수에게 있으며, 글쓴이에게는 책임이 있긴 커녕 사실 글쓴이야말로 최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지성과 심성을 갖춘 분만 다음의 글을 읽기 바랍니다. 

 

 

 

(이번 편은 결론을 먼저 내고 논증합니다.)


결론

그의 체력은 광기이며 그는 이것을 최선이라 부른다.

그가 기네스레코드브레이킹 수준의 체력과 업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광기이기 때문이며 그가 광기를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이것을 최선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


1.기네스레코드브레이킹 체력

 

돌이켜 보자.

나를 그의 팬으로 만든 것은 내가 처음 접한 그의 노래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그의 노래를 찾아보다 발견한 것이 작년 연말콘서트 <진짜> 영상.

 

그걸 보며 우선 든 생각은, 띠댕기믄서 숨도 안차나, 노래가 고대로 나오네. 그리고 목도한 그의 육체적 에너지. 스물한 살짜리도 저렇게는 두세 곡만 불러도 힘들낀데? (그 후 한 젊은 가수의 인터뷰에서 '이승환 선배는 무대를 날라 다니시잖아요. 전 그렇게 공연하면 2곡 이상 못 부를 거예요.'를 봄.)

 

그런데 내가 본, 풀버전으로 명명된 이 영상이 실은 편집본이었단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또한 풀버전을 본다 해도 이 공연이 그의 공연 히스토리에서 짧은 축에 낀다는 것, 그가 이미 4시간여의 공연을 습관적으로 해왔다는 정보를 접하고 나서 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축약 편집본으로도 이미 난 많이 놀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던 찰나 팬질 5일차에 나의 작은 심장과 쪼그라든 간을 한번 더 강타한 그의 6시간21분 공연 <빠데이26년>(네이버 한시적 공개). 그러나...

 

그는 비공식적으로 이미 세계에서 가장 긴 공연시간을 지닌 가수였는데 그 기록을 또 자신이 깨려고 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어떤 제 정신을 가진 가수가 자신의 성대에 그런 위협을 가하고 자기 팬들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극한의 시험에 들게 하겠는가. 생각해 보라. 그 긴 시간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일임을.

 

난 충분히 당신의 체력에 놀랐다구. 근데 뭐 이제 어쩌라고!!! 한계경악체감의 법칙을 체감하며 난 오히려 삐딱한 자세가 되었던 것이다. 

 

콘서트가 시작된 후 이승환씨는,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한 채로 아직 5분의1도 안 한 것 같다는 둥 몇 곡이나 남았다는 둥 부담감을 내비치며 노래를 해서 난 더욱 삐딱해졌는데 콘서트가 4시간 5시간 6시간이 돼가면서 그의 집중력이 높아지는 듯 했고 나도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그가 몇몇 곡을 힘 빼고 부르는 느낌이었지만 목표를 초과달성하고 관객들의 만류에도 노래를 더 불러 마지막 66번째 곡까지 완벽에 가깝게 부르고 공연이 끝났을 때, 그래 놀라움에 지친 나도 한 번 더 놀라야 할 의무감을 느꼈는지 다소 멍한 상태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그 공연시간이 2시간 반쯤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는데, 추측컨대 턱이 떨어져나가 마약성진통제의 셀프 공급이 시작되었던 듯하다. 한자로는 망연자실(茫然自失)이던가.  

 

그런데 그가 이 공연 전날 밤 2시간 반 동안 <빠데이26년 전야제> 공연을 했다는 사실과 하루 쉬고 또 1시간여 공연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말하기도 지친다.

 

 

2.조드라핑 업무력

2.1.업무의 알파와 오메가성

 

그리고 그 후 훑어 본 그의 삶의 궤적은 찾아 붙인 턱을 또 위협했으니 그가 오랜 기간 맡아온 일의 양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적 상상력의 시작부터 구현의 최종단계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의 일을 자신이 직접하거나 혹은 제작, 감독하는 사람이다. 

 

곡이 만들어지고 녹음되고 앨범이 되며 홍보가 되는 방식은 물론,

감독과 뮤비 시놉을 짜고 공연기획, 편곡, 공연연출, 포스터, 그리고 그 이상.

 

이 중 편곡을 예로 들자면 이승환씨의 곡들은 심히 다양하게 편곡된 버전으로 들어 볼 수 있는데 내가 그 편곡에 감탄한다면 나는 편곡자에게만 감탄하고 있는 것인가? 편곡에 방향과 아이디어를 주고 만족할 때까지 빠꾸를 시키는 것은 이승환의 상상력과 완벽주의가 아닌지.    

 

그리고 그의 과거 10집 앨범에 대한 평론가와 동료음악인의 평가에서 발견한, 마치 짠 듯이 비슷한 표현.

"블록버스터 영화감독에 비견할만한...”

"기발한 상상력, 편집증적인 세밀함, 엄청난 물량공세, 거대한 스케일... 헐리웃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상당히 인디스런 방식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블럭버스터. 

노래도 앨범도 뮤비와 공연도.

난 어제 그의 노래 <삼촌 장가가요>를 들었는데 그가 장난스럽게 넣었을 것 같은 곡마저 그 빈틈없는 퀄리티와 거대한 스케일이란...함 들어보슈.

그리고 그의 과거 뮤비와 공연영상들에서 그의 상상력과 돈지랄을 느끼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돈지랄-이승환씨 본인 표현.)

 

뿐 아니라 그의 방송과 축제의 무대도 상상력과 물량공세, 거대한 스케일...

지난 회의 <디스코>영상 기억하시는가? 이 경향은 일찍 시작된 듯. 비교적 초기 방송영상에서 그가 <플란다스의 개>를 부를 때 뒤에 선 어린이합창단에게 개가 한마리씩 죄다 딸려있는 걸 보고 “졌다" 싶었다. 난 이 노래까지 블럭버스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그가 2011년에 어떤 상을 받고 했던 수상소감에 대해 본인이 고쳐서 올린 글이다.

 

"시상식 멘트 A/S : 우선 드림팩토리 동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스타일리스트 이승환 형님, 1집부터 제작해 주신 이승환 공장장님, 공연 연출해 주시는 이승환 감독님, 이리저리 방송에 안 휘둘리게 해 주신 이승환 매니저님, 숱한 소송을 함께 해 주신 이승환 준법조인님, 함께 한 밴드, 스탶, 직공분들 감사합니다!!! 만수무강 드림팩토리!!!" 

 

이렇게 가수 1인이 자기 음악과 관련된 전 영역을 완벽히 통제하는 방식은 인디씬에서도 흔치 않으리라 보는데, 앨범과 공연에 남들보다 몇 십 배의 돈과 시간을 쏟아 붓는 그가 이런 비효율적이며 역사를 거스르는 1인 작업 방식을 취하는 것은 비용 때문이라기보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완벽주의자가 인디스럽게 블럭버스터를 만들고 자기회사를 운영하며(그의 회사가 한때 종합연예매니지먼트회사이기도 했다는 것을 논외로 하더라도) 자신을 매니지먼트 하기를 1년간 한다고 해도 얼마나 피로한 일일지 짐작이 가는데 그걸 데뷔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26년간이나 하고 있는 가수가 있다면 그의 에너지는...음, 쫌 괴기스럽지 아니한가? 

 

 

2.2.업무의 신성


그 뿐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일에서 개척자였다는 점에서 오는 문제,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최고 난이도의 작업적 과부하의 문제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신이 되어야 하는 문제 말이다.

 

"일본에서 조명을 하던 나는 한국에 돌아온 97년부터 이승환 콘서트를 함께 했다. 일본에서 모든 것이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있던 것만 보던 나에겐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는 모든 걸 혼자서 해내고 있었다. 미친 줄 알았다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한정된 하드웨어 안에서 공연이 체계화된 나라의 그것보다도 더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 낸 것이다. 초인적으로 일을 하는 그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안 나올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서 모든 대규모 콘서트의 조명을 담당한다고 하는 테크노라이트 신두철 대표의 말)

 

이승환이 공연에서 보인 최초성을 함 보자.

최초로 공연에 타이틀을 붙여 브랜드화 시킴. 공연에 최초로 스토리텔링을 본격도입. 영화 분량의 영상을 제작해 공연과 접목시킨 연출 기법을 최초로 선보임. 물쇼 같은 지금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연출법도 이승환이 원조. 공중에 매달린 스크린 개폐장치나 ABR(대형 공기막 조형물) 360도 와이어 플라잉 등 하드웨어들도 이승환에 의해 개발됨. 대기실 케이터링과 스태프들의 공연장 내 안전모 착용을 정착시킨 것도 이승환이 처음. 컨츄리꼬꼬의 무대 도용 문제를 제기해 공연저작권에 대한 개념을 세움. 2002년 국내 최초로 전문적인 공연 스태프 교육 학원 DFS를 설립한 것도 이승환. 현재 한국 공연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학원 출신들임.(매일경제 기사 축약. 2013.2 기자 이현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크기는 가늠하기 어렵다는데에 까칠한 독자들도 동의하시리라 본다. 이건 신화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그에게 공연의 신이란 타이틀을 주는데 세상은 그간 왜 그리 인색했던 걸까? 어느 평론가 말대로 맛집 비결을 베낀 다른 식당들이 성업하는 와중에 원조가 잊혀져간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편의 주제 되겠다. 

 

(기사 말미에 <사상 최악의 세기말 날리 부르스>편집본을 올려두었으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약15년 전 한국공연장의 괴기발랄한 분위기를 느껴보시길. 일부 구간은 필관.)

 

 

3.원인-광기


그의 레코드브레이킹 체력과 조드라핑 업무력이 가능했던 까닭, 그 기괴한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하 모두 체력으로 통칭함.)

 

일단 그는 6시간21분 동안 혹사해도 멀쩡한 자신의 성대에 대해서는 밥집아줌마가 어떻게 저렇게 많은 밥을 옮길까에 대한 답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생활의 달인.

그리고 언론이나 팬들에게서 그의 체력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그는 자신이 허약체질이었다고, 초딩 1학년 때 40일은 결석했던 것 같다면서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인 것 같다고.

 

여기서 나는 신두철 대표가 한 말을 다시 인용하고 싶다. "미친 줄 알았다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난 이런 공연시간을 기록하는 진지한 가수는 달리 없다고 믿으며

(근거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다. 습관적인 4시간여 공연 역시 그 외에 달리 없으리라 본다.) 

 

그의 업무범위와 업무량 역시 동일한 수준으로 수행한 음악인은 별로 없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분업사회에 살고 있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말했다시피 신화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제 공연문화가 정착되어 그런 에너지까진 안 들여도 된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뛰어난 보컬리스트가 뛰어난 공연연출가일 수 있을까? 이렇게 물으면 더 희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뛰어난 공연연출가가 뛰어난 보컬리스트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수준의 에너지를 26년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더욱 없다고 믿는다. 

(근거는 인간도 물리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는, 자연법칙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팬덤을 넘어서 언론과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이런 수준의 에너지를 그 기간 동안 쏟아 부을 수 있는 인간은 더더욱 없다고 믿는다.

(근거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믿음이다.  우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에 그렇게 오래도록 에너지, 시간, 돈을 쏟아 붓기에는 너무 영리하다.)

 

그리하여 난 이렇게 결론 내린다. 그의 체력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광기이다.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도, 중학생 팬에게도 극존칭을 쓰며 예능의 카메라 앞에서 양순하고 때론 철없어 보이는 그에게,   

비록 가끔 예측불가능하게 까칠한 모습을 보이긴 하나, 짜증날 정도로 선량한 그에게 광기라니.

(참고로 내가 그의 선행리스트를 적어보면 대량 안티를 양산할 것이라 확신한다. 정말 짜증스럽기 때문이다.)

 

난 그가 이런 광기를 부릴 수 있는 까닭이 그가 최선 이란 말을 정상인(!)과 다르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최선이란 장인의 광기에 다름 아니다. 그의 선량함과 그의 광기가 조화로울 수 있는 이유도 그 광기가 예술가의 자기실현이라기보다 장인의 최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과거 무대에서 종종 보여주었던 광적인 모습이 예술적 자아로 충만한 자의 자기표현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은 또한 공연 장인의 최선을 다함이 아니었을지. 

 

 

4.이유-최선


2007년 잠실주경기장에서 있었던 <HWAN타스틱> 공연이 있던 날은 이승환이 조용필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그 거대한 공연장에 서는 가수가 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하필이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공연 장비들이 물에 젖게 되고 결국 특수효과 및 영상효과들을 포기해야만 했다고 한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공연 중에 조명은 하나 둘 터져가고 무대 위에 전기가 흐르며 스탭들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와중에 가수의 마이크는 삑삑대고 우비를 입은 관객들은 스크린에 영상도 없어 가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그의 공연을 관람해야 하는 상황. 이 공연 서두에 이승환은 "대신 몸이 으스러져라 해보겠다"고 관객들에게 다짐했고 그렇게 한다. 

 

당시 그의 드러머로서 공연에 함께한 케니 아르노프는 공연 내내 벌어지는 수많은 돌발상황에 당황해 하는 무대진행팀들을 독려하며 수신호로 직접 무대를 통제하면서 노래하는 이승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그는 나의 영웅이다. 지금까지 함께 공연했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공연보다 더 인상적이다"라고 덧붙였다.

 

내가 본 그의 콘서트 영상 중에 엔딩에서 가장 지친 모습의 그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공연이었다.  

그렇지만 팬들은 이 안 FAN타스틱했던 공연을 가장 좋았던 그의 공연 중 하나로 꼽는다. 왜일까.

 

 

5시간30분 공연의 마지막 곡임에도 비교적 쌩쌩한 <변해가는그대>. 2003 끝장.

 

 

좀 지쳐 보이는 그가 마지막으로 부르는 <변해가는그대>.2007 환타스틱.(참고로 메이컵이 비에 씻겨나간 듯. 올려도 뭐라 안하겠지?;;)

 

 

<히든싱어3 이승환편>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그의 팬이자 모창자 구자윤씨가 이승환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건네는 때였다. 마치 이승환이 가수라기보다 그에게 훌륭한 삶을 살라고 가르쳐온 선생님인 듯이. 오랜 팬들에게 이승환은 인간으로서의 역할모델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건 그의 가창력이나 쇼의 화려함 혹은 사회참여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발전하려고 애를 쓰며 쉼없이 활동해온 삶이 주는 감명. 이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콘서트에서 최선을 넘어선 듯한 영역을 눈앞에 현현히 보여줌으로써 도덕적 감화가 함께 하는 예술적 감흥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열창에도, 그것이 성공적이라면, 도덕적 감화가 뒤따른다. 그러나 그의 무대는 그것이 한층 강화되는 게, 그의 열심이 좀 다른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열심의 또 다른 예로,

막대한 제작비 투입으로 수익금 0원에 도전하는 콘서트. 

그리고 cd가 없어질 테니 대비해야한다는 말을 했다가 비난을 당했던 그가 오히려 아직도 cd의 사운드를 위해 수억 원의 돈을 꼴아박는 아이러니.

방송출연이나 축제 참여 시 출연료보다 더 많은 돈을 무대 위에 뿌리는 블럭버스터 강박증.

 

"팬들에게 받은 수익을 음악과 공연에 재투자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만으로도 만족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네요." (이승환).

 

다음은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공저자 김영대씨의 말이다.

 

"90년대에 개인적으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음반이나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아티스트로 생각하자면 '이승환', 가장 모범적이었던 것 같아요. 90년대 데뷔한 이래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활동을 하고 있고,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보여 주었죠. 그리고 자기의 모든 앨범을 수작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보았을 때는 장인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생각해요.​" (2006. 이후 이승환의 행보는 동일하고 그의 이후 앨범에 대한 저자의 리뷰를 볼 때 이 평가는 지금도 큰 차이 없을 듯. )

 

이승환은 참으로 모범적인 가수였다. 

앨범과 공연으로 대중과 만나는. 쉬지 않고 그것을 해온. 그리고 매 스텝 최선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그러나 동시에 그는 문제적 가수였다. (‘병적인' 이라고 썼다가 수정했음.)

언론부적응 나아가 사회부적응을 다소간 야기한 결벽성향 뿐 아니라

앨범과 공연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그의 사운드강박과 블럭버스터강박.

그간 그의 커리어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으나 동시에 위협하기도 했고 앞으로는 더욱 해결해야할 문제가 될.

 

그런데 그의 블럭버스터강박과 사운드강박은 그에게는 아마 하나일 것이다. 최선을 다함.

그리고 그가 무대 위와 아래에서 공히 보이는 미친 에너지 역시, 내가 제발 없어지길 바라마지 않는 그의 사운드강박과 어쩌면 하나일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함.

 

그가 "나는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의 최선은 매우 자주 정상 범위를 넘어서 있었고 이것이 바로 그의 체력의 비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체력은 장인의 광기이다.  

 

 

투 비 컨티뉴드.

다음편은 그가 왜 인정받지 못했는가를 다룹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는 왕년의 발라드가수일 뿐이니까요.

담편에선 그를 깔 수 있기를.

 


추신.


1) 그런데 혹자는 묻고 싶을 겁니다. 혹시 여태까지 내가 쓴 것이 그의 "나는 무지 열심히 한다"를 길게 쓴 것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맞음.

 

2) 사실 그의 6시간21분 공연은 스마트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몇 년 전 그가 한 5시간40분 공연은 어마어마한 기록임에도 완벽하게 묻혀버렸는데 <히든싱어>로 이제는 그의 기록이 주목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죠. 물론 그가 스마트해서 이런 선택을 했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3) 하나도 안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승환씨가 한 말의 정확한 인용은 "나는 되게 열심히 한다"더군요. 하나도 안 중요해서 그냥 "무지 열심히 한다”로 계속 씁니다. 그 외에도 그 동안 쓴 것 중 많은 오류를 발견했는데 역시 하나도 안 중요하기에...하나만 수정합니다. 8테라. 

 

4) 끝으로, 난 그의 최선이 정상 범위 안에 있음 좋겠습니다. 보는 것도 힘듦.

그리고 음악과 공연에의 재투자...부디 수익만 투자하길. 이승환씨 폐지 주울까 걱정하느라 나라 걱정을 못하겠음.

 

5) 1999-2001 <사상 최악의 세기말 날리 부르스>4시간 공연의 일부 편집본. 

40분30초-49분40초 <너의 나라 나의 영웅>필관. (귀신 메두사 에일리언...).

 

앞으로도 그의 공연에서 괴기발랄을 자주 볼 수 있기를. 

 

6) <삼촌 장가가요>. 이런 제목의 노래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뛰어넘는 퀄&스케일. (참고로 14년 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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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