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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한 지방 도시 시디부지드에서 노점상을 하던 한 청년이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하늘을 쳐다보며 울음을 참고 있었어.

 

“엄마! 어떡해요... 경찰들이 자릿세를 안 낸다고 또 제 과일과 리어카를 압수해 갔어요... 아버지도 없이 어렵게 공부시켜 주셨는데, 죄송해요.”

 

“머야? 부아지지! 경찰이 또 들이닥친 거야?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는구만. 대통령 일가는 마피아처럼 돈을 벌고 지들끼리 호의호식하고, 그 아래 경찰들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국민들 등에 빨대를 꽂아 놓으니... 우린 다 죽으란 얘기야. 너도 어느 정도 좀 쥐어 주지 그랬냐. 이 답답아.”

 

“엄마 빼고도 여섯 식구야. 경찰한테 매번 상납을 하고 나면 마이너스 통장만 늘어난다니까. 나도 답답해 미치겠어. 너나 나나 우리 이제 겨우 25살이야. 세상이 너무하지 않냐?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이인데. 뭐라도 시도해 보고 실패라도 해 봤으면 좋겠어. 아예 아무것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시궁창 같은 현실! 내가 못난 거냐? 나라님이 정치를 못 한 거냐?"

 

"에휴. 나도 너무 답답해서... 정말 답이 없다. 답이. 청춘은 그냥 다 죽어 버리라는 건가? 근데 얼굴은 왜 그 모양이야?”

 

“경찰서에 항의 방문을 갔다가 맞았어. 상납금을 내지 않으면 물건을 돌려줄 수 없대. 우리 식구 오늘 당장 저녁거리도 없어. 씨바 이대로는 억울해서 도저히 못 살겠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 줘야겠어. 이 편지 우리 엄마에게 꼭 좀 전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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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이날 시청 앞에서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분신자살을 시도했어. 마치 그 옛날 우리의 전태일 열사처럼 말이야. 이 무명 청년의 분신자살 시도가 임계점에 이른 튀니지 국민을 재스민 혁명으로 이끄는 발화점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어.

 

그럼 튀니지에 대한 간단한 개요와 이 당시 대통령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보자고. 아프리카 하면 조건 반사적으로 척박한 자연환경을 떠올리지만, 튀니지는 유럽 국가들과 사이에 지중해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이 좋은 나라야.

 

한니발이라는 장군 들어 본 적이 있지? 그 양반이 활약했던 옛 카르타고 땅이 오늘날 튀니지인데, 현재는 인구의 99%가 이슬람이야.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처럼 1881년 프랑스 지배를 받았고, 1956년에야 독립을 하게 되었어.

 

25살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당장 여섯 식구 먹을 저녁이 없어 분신자살을 시도하고 있을 때, 대통령 벤 알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 1989년 4월에 대통령에 단독 출마하여 당선이 된 후 2009년 5선에 성공했어. 대통령을 단독 출마한다... 어느 나라처럼 체육관에서 선거를 했나? 말 안 해도 어떤 식으로 대통령이 됐고 권력을 유지했는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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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벤 알리 일가는 동네 양아치처럼 부를 축적했어. 자신의 모국 튀니지를 사업 모델로 삼고서 말이야. 이 망할 인간이 보유할 거라 추정한 자산이 6조가 초큼 넘는디~ 얼쑤! 어찌 이러코롬 돈을 잘 모아쓰까잉? 그 비법 한 번 들어보자꾸나~ 허이! 잘나가는 은행의 경영권을 편법으로 뺏어오기! 돈 되는 사립 대학의 지분 절반 뺏어오기! 온 국민의 사유 재산은 우리 벤 알리 가문의 것이오~ 그럼 벤 알리 가문의 재산은? 당연히 우리 집안 것이지. 어찌 천한 것들이 감히!

 

벤 알리는 마이클 잭슨을 무척 좋아했나 봐. 수십 명의 하인이 관리하는 대저택에는 ‘파샤’라는 호랑이가 있었는데, 부아지지의 가족은 피죽도 못 먹는데 이 호랑이는 하루에 4마리의 닭고기를 먹었다고 해. 어느 암시장에서 구해 왔는지 로마시대 사자 석상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왔고, 마당의 수영장 길이가 50미터가 넘었다고 하니... 마이클 잭슨의 대저택 네버랜드가 부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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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창부수라고 미용사 출신의 대통령 부인 레일라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자 외국으로 튈 때 1.5톤의 금괴를 가지고 갔고, 대통령 궁에 천 켤레가 넘는 구두를 그냥 버리고 갔다고 하니 그동안 이 미친… 아니 악녀가 국민들 등에 빨대를 꽂고 얼마나 해 먹었겠어.

 

자 이제 우리의 튀니지판 전태일! 부아지지가 후송된 병원으로 가 보자고. 부아지지는 분신을 시도한 후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지만 생명이 몹시도 위독한 상태야. 그의 고향 마을에서는 또래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지만, 개돼지들이 귀찮게 군다고 생각한 경찰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강경 진압을 했어. 이 과정에 시위대 2명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어. 작은 소도시에서 시작된 시위는 차츰 가열 양상을 뛰게 되었고, 이에 대통령의 참모진은 한 편의 작은 쇼를 준비하기로 했어.

 

“각하. 죄송합니다만 오늘 오후에 병문안 좀 다녀와 주셔야겠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서 송구합니다. 연말을 맞은 이벤트다 생각하시고…”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로 내 오후 티타임을 망치지 마세요. 이봐요! 일할 사람 많아요. 내 말 알아들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라고!! 그 시골 촌구석 병실 앞에서 기자들 세워 놓고 사진 딱 한 장만 찍고 올 거야. 시장통에서 오뎅 국물이나 순댓국 먹으라는 이야기 따위는 꺼내지도 말어. 그런 음식들 역겨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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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재자의 성의 없는 병문안은 자신의 몰락을 재촉했어. 연말연시 이벤트 전시용으로 부아지지의 병실을 방문하고 며칠 후인 2011년 1월 5일.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26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결혼은 물론이고 정규직 한번 되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어. 이 청년의 죽음은 튀니지 사람들의 마음에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이날을 기점으로 시위가 커지면서 정부의 강경 진압도 수위도 높아졌어. 결과는? 경찰 추산 21명, 시위대 발표 5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똥줄이 탄 독재자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어.

 

“아. 아. 국민 여러분. 최근 북에서 온... 아니지, 여긴 광주가 아니고 튀니지지. 아무튼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폭도들이 배후에서 조정하는 테러가 카세리네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폭도들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들이 사실 그동안 조금 힘들었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일자리 30만 개를 년 내에 창출하겠습니다(어때? 기쁘지? 이 멍청한 개돼지들아. 일단 이걸로 대충 시간 좀 끌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연예인 기사에 악플이나 달고 있겠지. 그냥 입 닥치고 있어라.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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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대통령의 눈 가리고 아웅 같은 성명은 국민들의 화만 돋우는 꼴이 되었고, 시위대는 수도인 튀니스까지 들불처럼 번지게 되었어. 멍청한 독재자는 총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수도 튀니스에 통행 금지령을 내림과 동시에 군 병력을 배치했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부아지지 사망 일주일이 지난 밤. 각료 회의실에서는 충격적인 대화가 오고 갔어.

 

“다 쓸어버리세요. 개돼지가 말을 안 들으면 도축을 해 버려야지. 암. 나도 이제 참을 만큼 참았소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건 장관 네놈들이 제때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인 거 알고들 있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무리 잘들 하세요.”

 

하지만 다음 날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어.

 

“각하... 큰…큰일입니다. 참모총장이 각하의 지시를 어기고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위는 각하의 하야 촉구를 기치로 내걸고 전국으로 확산된 상황입니다. 각하... 우리 좆 됐습니다.”

 

“이,이런… 당장 성명을 준비시켜! 내각을 해산하고 6개월 내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를 해. 일단 한고비만 넘겨보자고.”

 

이 인간은 진짜 자기 국민들을 끝까지 무시했어. 독재자의 마지막 변명은 당연히 먹히지 않았고, 벤 알리는 1.5톤의 금괴만 급하게 챙겨 외국으로 줄행랑을 쳐 버렸어.

 

20대의 청년 무하메드 부아지지가 목숨을 던져 일으킨 작은 불꽃은 재스민 혁명(튀니지 국화 재스민)이라는 횃불에 점화가 되었어. 이 횃불은 튀니지뿐만 아니라 아랍의 봄이라고 일컬어지는 들불이 되어 주변국까지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어. 여기까지가 우리가 세계 뉴스를 통해 본 아랍의 봄 비긴즈에 대한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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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독재자 벤 알리가 물러나고 역사적인 첫 자유선거를 앞둔 어느 날, 도심 건물 외벽에 독재자 벤 알리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어.

 

“머여? 시방 이게 먼 일이랴? 설마… 저 악마가 다시 돌아온 건 아니지?”

 

“쉿! 입조심 혀. 세상이 그리 쉽게 안 바뀔겨. 그나저나 참말로 이게 우쩐 일이랴. 신이 있긴 있는겨?”

 

이때 용기 있는 시민 한 명이 벤 알리의 얼굴 부분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고, 눈치만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합세하여 초대형 현수막을 마침내 뜯어내게 되었어. 그런데 그 현수막 뒤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었다고 해.

 

“여러분! 독재자는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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