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은 사고 후 일 년이 되지 않아 나왔다. 당시에 내 나이가 어려서, 엄마가 대신 받았는지 아니면 내가 받아서 고스란히 엄마한테 넘겼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보상금은 엄마가 받았다. 얼마를 받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당시에 엄마가 그 돈으로 평촌에 꽤 넓은 평수의 음식점을 개업할 수 있는 돈이었으니 적은 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그 돈을 받아서 행복했냐고?
아니, 그런 일을 겪지 않고 그 돈을 안 받는 편이 낫다. 내가 직접 받았어도 그런 말을 하겠냐고? 물론이다. 당시에 내가 그 돈을 챙겼다면, 내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나빴을 거다. 그때 나한테 돈까지 많았다면 더 많은 유혹에 시달리며 살았을 테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꽤 큰 돈을 주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주에 공짜 점심은 없다.
다시 그때 얘기로 돌아가서, 사고 이후 나는 재수와 삼수를 이어했다. 아니, 공부를 핑계로 그냥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 상태가 극심한 무기력 상태였는데, 나는 무기력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게 무의미하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뭘 하고 싶지도 않았고 뭐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가족들 전부가 평촌에 가 있었고 나 혼자 본가에 남아있었기에 원없이 망가질 수 있었다. 온종일 라디오를 틀어놓고 천장을 보거나 그도 질리면 아버지가 사다 놓은 케케묵은 책들을 읽었다. 초급 기타 교본부터 성경까지 읽었던 것 같다.
매달 노량진에 가 수강등록을 했지만, 정작 학원에 간 날은 손에 꼽는다. 당연한 얘기로 성적은 바닥을 찍었고 결국 삼수 끝에 변변찮은 대학에 가긴 했지만, 그 생활도 오래 하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연애라는 것도 하기는 했는데 어쩐 일인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파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만 골라 사랑했다. 길고 긴 자학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다 문득 나도 이제 취직이라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희한한 부분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무작정 동대문으로 가서 연한 회색의 바지 정장을 한 벌 산 후, 집에서 가장 가까운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았는데 합격했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후로 회사에 다니며 정상적인 사람들의 시간대에서 함께 생활하자, 내게도 평범한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는 그의 연인이 '나'라는 사실만 빼면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의 연인이 ‘나’라는 게 문제였다. 사실 이 무렵 내 병은 더욱 더 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바뀌는 게 전형적인 조울의 증상이었는데 그저 또래 여자애들의 흔한 변덕이겠거니 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내 병이 좀 나아질 거라는 어떤 희망 같은 게 있었는데 그와 시간을 함께 하면 할수록 사랑과 고통이 별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대단히 절망스러웠다.
사랑과 고통은 어느 한 쪽이 많아진다고 다른 한 쪽이 가벼워지는 감정의 무게 놀이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그때는 너무도 아팠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이별 통보를 받은 남자친구는 다 큰 어른이 주먹으로 눈을 비비며 울었는데, 그 모습은 오래도록 나를 아프게 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어느새 내 나이도 마흔을 넘겼다. 참고로, 이날 이때까지 내가 이렇게 오래 살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젊어서 조금 더 신중하게 살 걸 그랬지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가 김연수가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무튼 요즘도 종종 사람들이 내게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묻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냥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다" 라고 말해준다. 사실, 진짜 결혼을 못 하게 된 이유는 어려서 너무 큰 불행에 피폭당해 희망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이 없는데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그런 세상에서 결혼이라니, 아이라니 가당키나 한 얘긴가.
요즘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글을 쓴다고 얘기하니 다들 하나같이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겠네"라고 한다. 정말이지 이 자리를 빌어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글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아프다. 세상에 아름다운 흉터는 없다.
올해 일흔을 넘긴 우리 이모도 어려서 친구들이 가방 메고 학교 갈 때 혼자 막내 외삼촌을 등에 업고 아기를 보던 일을 얘기하며 여전히 운다. 여태 수십 번 말했지만 수십 번 울면서 말한다. 상처의 본질은 이런 거다. 그래서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일이 무척 고통스럽다.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며 쓰는 글이 타인에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내게는 이 글을 통해 세상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모든 일을 겪어왔지만, 그래도 내가 겪은 세상은 따뜻했다고, 불행한 일도 많았지만, 코가 맵고 눈이 시리게 감사한 일들도 많았다고, 당신들의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있는 힘 다해 완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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