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MYH20180719009500038.jpg

 

 

보물선과 비트코인. 

 

나란히 놓여 있는 두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참으로 신묘한 조합이다. 완벽한 신(新)-구(舊)의 조합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함선에 금괴 200톤(한화 150조)이 실려 있었고, 신일그룹에서 이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 했을 때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니아니, 오줌을 지렸다는 게 아니라 전율이 왔다는 말이다. 매주 5천 원씩 쓰는 게 아까워 로또에서 연금복권 천 원으로 엊그저께 갈아탄 나로서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150조라니. 고등어 아가미라도 달고 울릉도 앞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쌓인 할부를 갚느라 비트코인 광풍에서도 총알이 없어 손만 빨았던 내게 돈스코이호는 어쩌면 생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자, 월세 내고 밥 먹고 넷플릭스 정기구독하는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전 재산(17,000원가량)을 투자한다! 는 굳건한 결심이 섰다.

 

사적인 차원뿐 아니라 문재인 금괴 200톤의 진실을 브렉시트를 통해 역으로 추적, 증명했던 본지로서 이것은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금 보유량이 100톤가량인데, 200톤의 금이라니. 가히 국가의 명운의 걸린 일 아니겠느은가!

 

해서 신일그룹에 연락을 취했으나, 대표번호는 며칠째 먹통이다. 사이트에서 직원들 연락처를 찾았는데 대화에 응해주지 않았다. 주로 "몸이 아파서 지금은 통화할 수 없다" 거나, "밖에 있어서 통화가 곤란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어,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찾아보니, 신일그룹엔 국내외 34개의 지사가 있고 253개의 센터가 있다(직접 세봤음). 그중 가장 마음이 잘 맞을 것처럼 보이는 센터를 정해 연락했다. 

 

20170627_74.jpg

 

 "코인을 사고 싶어요."

 

내 이야기를 들은 센터장은 바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신일그룹 서울 XX 센터는 지하철역 도보 20분 거리에 있었다. 이 뙤양볕에 20분을 걸어가서 하는 말이지만, 150조 보물선을 인양하는 기업의 센터라고 하기엔 많이 외진 곳이었다. 1층 가게 앞에서 센터장을 만나 들어갔다. 가게엔 불이 꺼져 있었다. 보물선 찾다가 오징어선 타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 도망갈 루트와 지형지물을 눈으로 열심히 읽었다.

 

가게 안쪽에 작은 사무실이 있었다. 4평 남짓 좁은 공간이었다. 책상 위에 컴퓨터 한 대가 있었고, 센터장이 그 앞에 앉았다. 나는 최대한 도망가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하 서울XX센터장: X, 코코아: )

 

line.jpg

 

X: 어서오세요. 사무실 공사하느라 정리를 못해가지고.. 

 

코: 요즘 연락 많이 오나요?

 

X: 그렇죠. 뭐. 

 

코: 언론에서도 난리던데. 소유권 문제도 있고.. 

 

X: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이라도 건지면 주인이에요. 건져서 내꺼 하면 끝인 거에요. 국가가 어떻게 압류를 할 거에요. 법도 미미하고. 그냥 건지고 벌금 때리면 몇 백 몇 천 내면 끝이에요.

 

오페르트를 연상시키는 패기. 이런 패기로움이 나를 구원해 주리라.. 

 

코: 돈스코이호 인양 날짜가 나왔나요? 

 

X: 9월 정도 돼있는데... 그런 날짜가 중요하지는 않아요. 어...... 세월호 건지는 거 보세요. 날짜 정해놓고 건지나요. 제날짜에.

 

코: 그렇죠. 많이 걸리겠죠. 저도 나름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금괴는 있을 것 같더라구요.

 

검색해본 바에 따르면 침몰한 돈스코이호에 금괴가 있다는 걸 들었다는 울릉도민의 썰이 있고, 일본 해군사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정확하게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슬픈 전설이 있어..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대신 금괴가 얼마나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건 어머니도 울릉도 참돔도 모를 일이다.

 

X: 저는 반반이라고 봐요. 

 

코: 반반.. 

 

X: 금괴 있다고 생각하고 투자한 사람은 많이 없어요. 있으면 대박이고 없어도 원금 이상은 건질 수 있으니까 하는 거죠. 보통 다른 코인들은 99.9%가 망하는데 이건 50%는 되니까. 

 

코: 코인은 어떻게 사는 건가요?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못 사던데..

 

22224.JPG

 

X: 사요. 살 수 있는데 개인이 사는 건 비싸요. 센터를 통해서 사야지. 혹시 아이디 있어요?

 

센터, 즉 자신을 통해 코인을 사야 한단다. 해서 고분고분, 그의 안내에 따라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회원가입을 했다. 추천인 란에는 그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코: 어떻게 주문하면 되나요?

 

X: 지금 살 수 있어요. 돈만 입금하면 끝이에요. 

 

코: 아.. 

 

분명 내가 가입한 사이트는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지만, 구입은 무통장 입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조금 아날로그 방식인 것 같다.

 

그가 입금하라며 불러준 계좌를 조회해보니, 

 

photo_2018-07-20_14-37-14.jpg

 

 

계좌 명의는 유병기. 신일그룹 대표와 같은 이름이다.

 

X: 오늘 며칠이죠? 20일이죠? 오늘 5시가 마감이에요. 오늘까지만 (1코인에) 120원이에요. 5시 지나면 200원으로 오를 거에요. 기본 거래 수량은 100만 원이에요. 

 

후.. 최소 구매 수량이 100만 원이라고 한다. 예전엔 이더리움(비트코인과 더불어 대표적인 암호화폐) 1개도 받았는데 지금은 시세가 많이 떨어져 안 받는다고.

 

여기서 내 꿈은 아득히 멀어졌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궁금증이나 해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물었다. 

 

코: 아.. 제가 비트코인도 사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져서 못 샀거든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걸 사면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는 건가요? 어떻게 확인해요?

 

X: 사이트에 가보시면 확인할 수 있어요. 

 

qrerre.JPG

 

사이트 마이페이지 메뉴에  신일골드캐쉬 보유현황이 나온다.

이렇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돈 1300원 벌었다! 

 

코: 코인은 다시 팔 수 있는 건가요? 

 

X: 상장되면 팔 수 있죠. 

 

코: 상장은 언제쯤이에요?

 

X: 9월 말 정도에 될 거에요. 

 

코: 코인이 있으면 돈스코이 인양되면 돈을 나눠주는 건가요?

 

X: 1코인당 현금배당을 해줘요. 금괴 나오면 10%를 배당할 거니까, 코인당 만 원 정도 될 거에요. 100만 원이면 얼마야.. 1억인가? 

 

최소 수량인 100만 원 치 샀다면, 코인당 120원이니까, 8300개. 8300만 원이다. 허허.

 

코: 오… 

 

X: 금괴 안 나와도 쪽박은 안 차니까. 나중에 상장하면 몇십만 원이 될 수도 있는 거고. 

 

333984.JPG

홈페이지에 이런 그래프가 나와 있지만, 이건 훼이크다.

 

코: 코인은 언제부터 살 수 있었던 거에요? 

 

X: 4월 20일부터요. 

 

코: 많이들 사셨나요?

 

X: 6만 명 정도 샀어요.

 

6만 명이라. 과연.

 

코: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신일코인도 채굴하는 건가요?

 

X: 채굴은 끝났어요. 비트코인을 너무 모르셔가지고.. 하나하나 설명하긴 어려워요. 제 밴드 있으니까 밴드에서 공부해보세요.

 

라며 자신의 밴드 주소를 알려줬다. 밴드는 센터장이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회원수는 400명가량 됐다. 

 

코: 제가 친구들이랑 같이 투자할 곳을 찾고 있어서.. 사이트 보니까 팀장, 센터장, 자문위원 같은 게 있더라구요.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

 

X: 아.. 그건 엄청 많이 사야되요. 매출도 많이 올려야 하고. 2천만 원 막 이러니까. 

 

코: 아.. 자문위원 되면 인센티브가 있나요? 

 

X: 지금은 끝났구요. 예전엔 있었죠. 20%요. 

 

코: 매출에서요? 

 

X: 네. 

 

qrere.JPG

 

300만 원 이상 구매하고, 2천만 원 치 팔면 팀장이 된다고 한다.

 최소 금액인 100만 원을 채울 수 없어 친구를 팔아보려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코: 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친구들이랑 같이 투자하기로 해서, 친구들 만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X: 네네. 오늘 5시까지만 120원이니까 연락주세요. 

 

 

line.jpg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왔다.

 

정리하자면, 150조 금괴가 들었다고 하는 돈스코이호를 인양하려 하는 게 신일그룹인데 신일그룹에서는 신일골드코인을 판매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같은 게 쓰였는지 안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120원이던 코인이 오늘 5시가 지나면 200원이 돼버리는 무지막지한 코인이다.

 

게다가 이 코인을 사게 되면 우산장수 부채장수를 둔 어머니마냥 걱정할 거라곤 한치도 없게 되는데, 보물선 찾아서 인양하면 금괴의 10%를 배당해 줘서 대박이고, 인양 안 되면 상장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간이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지난번 직장인 건강검진에서 '간 질환 의심'으로 나오는 바람에 그마저도 못 하게 됐다. 간새끼....

 

아무튼 본인은 그런 슬픈 사연으로 이 대박 보물선에 승선하지 못하게 되었다. 연금복권을 사서 수요일 밤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 몹시 구슬퍼 히끅히끅 울고 싶은 마음이지만, 꿈과 희망의 나라로 떠나는 보물선을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렸다는 걸 위안 삼으며, 이만.. 

 

 

 

414.jpg

 

 

 

Profi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