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에어컨을 제습 모드로 운전시키면 전기요금(소비전력)이 크게 절감이 된다더라’

 

이미 시작된 폭염만큼이나 무서운 게 다음달에 날아올 에어컨 요금이다. 해서 에어컨엔 유독 카더라 풍문이 많다. 근거는 알 수 없으나, 더위와 요금,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덮어놓고 풍문을 따르게 되는 게 사람의 심리. 해서, 직접 측정해보았다.

 

측정을 시작하자 마자 둘 간의 차이가 없다는 언론 보도가 있어 흥이 떨어졌지만, 실험 정신이 충만해서 측정을 계속했다. 어쩌면 더 쓸모 있는 결론을 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과정은 간단하다. 스탠드형 에어컨에 자작한 IoT(사물 인터넷) 에너지미터를 부착하여 매 1분마다 소비전력값을 웹서버에 전송해 남기고, 스마트폰에서 실시간으로 기록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참, 쉽죠?

 

측정에 사용한 에어컨은 2in1 16평형 스탠드형 인버터 에어컨이며 효율은 1등급 에너지 프론티어 제품이다. 즉, 효율이 매우 좋은 제품이다.

 

에어컨은

- 압축기가 천천히 돌고 (즉, 제품의 최대 능력에 비해서 여유있게...)

- 실외기 열교환기 온도가 낮고 (즉, 응축압력이 낮고...)

- 실내기 열교환기 온도가 높을수록 (즉, 증발압력이 높을수록) 

효율이 높게 된다.

 

효율이 좋으면 압축일이 작아지고, 결과적으로 소비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압축기가 전기를 덜 소모하기 때문이다. 

 

제습 성능은 실내기 열교환기 표면 온도가 낮을수록 좋아진다. 그러기 위해선 압축기를 좀더 돌리거나 약풍으로 풍량을 줄이면 되는데, 에어컨의 일반적인 운전에서는 후자를 선택한다.

 

결국은 실내기 열교환기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므로 에어컨 효율은 낮아지는 방향이지만, 풍량이 줄기 때문에 팬 소비전력은 감소한다. (전체 효율에 큰 도움은 안 된다) 

 

대신 제습 운전을 하면 실내가 좀더 쾌적해 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라도 체감상으로는 덥지 않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정교하게 운전 하려면 쾌적함을 고려하고 습도 센서까지 부착하여 제대로 제어를 해야 하겠지만, 현재 시중의 에어컨들은 대부분 단순하게 풍량만 줄였을 것이다. 

 

제품 특성, 제어 방법, 주변 환경, 쾌적함을 느끼는 사람의 차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에어컨의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제습 운전을 냉방 운전과 비교하는 것을 일반화 하기 어렵지만, 실제 제습 목적이 아니고 냉방 운전에서의 전기요금 절감 측면에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특정 제품과 특정 환경에서의 비교라는 한계 내에서 직접 측정했다. 요즘 더위가 막장 수준인데다가, 그날 그날의 차이가 별로 없어서 이런 실험을 일관성 있게 하는데 아주 적합하다.

 

아래의 날씨 어플을 보면 얼마나 안정적인 막장 더위인지 알 수 있다.(이 글은 2016년에 작성된 것이다)

 

20160813_5.jpg

 

예보에서 보면 측정 기간 (수~토) 내내 기온이 아주 비슷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다른 환경을 모두 통제할 수는 없었으나, 날씨 덕에 이번 실험은 나름 훌륭하게 측정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제 실험에 들어갔다.

 

우리집 에어컨은 제습 모드에서도 희망온도를 설정하게 되어 있다. 평소에 하던대로 희망온도 27도 냉방을 기준으로 해서 소비전력을 측정했다. 그리 정확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체감상의 냉방 효과도 비교 했다.

 

1. 희망온도 27도 냉방 운전 (기준 값)

2. 희망온도 28도 제습 운전

3. 희망온도 29도 제습 운전

4. 희망온도 30도 제습 운전

 

이렇게 자기 전에 에어컨을 설정한 후 아침까지 운전을 시키고, 그 중에서 운전상태가 가장 안정적이었던 새벽 시간(2시~7시)의 데이터를 비교했다. 아래는 그 결과다. 실험한 순서와 일치하지는 않음을 밝힌다.

 

1. 희망온도 27도 냉방 운전 (기준 값)

 

table1.jpg

 

폭염에 하루 종일, 그리고 취침할 때도 운전하고 있는 설정 온도다. 아주 선선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겐 생활에 거의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기록된 것을 보면 무척 안정적으로 운전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효율이 좋은 인버터 에어컨인 덕분에, 5시간 평균 소비전력은 겨우 225.8 와트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24시간, 한 달을 운전해도 10만원이면 해결된다.

 

2. 희망온도 28도 제습 운전

 

table2.jpg

 

희망온도를 28도로 설정한 후 제습 운전 모드로 열대야를 보냈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압축기가 안정적으로 연속 운전을 했는데 약 5시간 동안의 평균 소비전력은 373.3 와트로 나왔다.

 

희망온도 27도로 냉방할 때인 225.8와트 보다 65%나 더 전기를 소모했다. 그런데 체감온도도 그만큼 쾌적했다. 전기는 더 썼지만, 더 시원해 졌으므로 이것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웠다.

 

3. 희망온도 30도 제습 운전

 

table3.jpg

 

희망온도를 최대 값인 30도로 설정한 후 운전했다. 결과는 아래와 같은데 긴 시간을 측정하지 못하고 1시간 반만에 중단해야 했다. 가족들이 더워서 잠을 못 잤기 때문이다. 

 

소비전력은 271.1와트로 냉방보다 20%나 전기를 더 썼지만, 가족들이 체감한 건 냉방이아니라 열대야였다. 아무래도 압축기가 반복적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풍량도 그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쾌적함을 주기에는 불리해 보인다.

 

4. 희망온도 29도 제습 운전

 

table4.jpg

 

마지막으로, 희망온도를 29도로 설정한 후 제습 운전을 했다. 그랬더니 희망온도 27도의 냉방운전과 비슷한 체감온도였고, 약 4시간 평균 소비전력은 284.8와트가 되었다. 즉, 27도 냉방운전과 비슷한 냉방 효과를 내기 위해서 26% 정도의 전기가 더 필요했다는 뜻이다. 

 

한편, 이 경우에도 압축기가 주기적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어서, 쾌적함을 주거나 효율적 운전은 어려워 보인다. 아마 이것이 26%의 추가적인 전기 소모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1. 희망온도 27도 냉방 운전 (기준 값) = 225.8 W (100%)

2. 희망온도 28도 제습 운전 = 373.3 W (165%) → 체감 냉방 우월

3. 희망온도 29도 제습 운전 = 284.8 W (126%) → 체감 냉방 동등

4. 희망온도 30도 제습 운전 = 271.1 W (120%) → 체감 냉방 불량

 

결론적으로, 우리 집에서는 실제 제습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제습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제습으로 어느 정도의 쾌적함을 유지하려면 전기를 20%씩 더 써야 할 것이다. 설정 온도 27도 냉방, 우리는 이걸로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로 했다. 

 

단, 이 결과를 일반화 할 수 없으며 제품마다, 환경마다 다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정한 상황에서 실측한 경우임을 감안해야 한다.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