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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숙PD는 영화인이다. 저예산, 상업영화를 왔다갔다 하며, 연출, 조감독을 했고, 적은 예산이지만 프로듀서도 해봤다. 오랜 기간 영화판을 떠난 적이 없는 나름 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러던 중 모 감독에게 작은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여기서 ‘작은 프로젝트’란 지자체 지원금을 받아 만드는 ‘지자체 영화’였다.

 

몸을 담기로 했다. 중책을 맡아 몇 개월을 고생했다. 하지만 끝에 있는 건 노력의 성과가 아닌, 임금체불을 시작으로 하는 기나긴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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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금체불이 있었다

 

챙타쿠(이하 ‘챙’): 영화계에서 얼마나 일하셨나요?

 

장정숙(이하 ‘장’): 99년인가 2000년부터 했어요. 연출부도 하고 조감독도 하고, 단편이나 저예산 영화도 했다가 상업영화도 했어요. 연출부나 조감독만 하면 생활유지가 안 되니까 메이킹 필름 촬영하는 스텝으로도 여러 번 일했고.

 

챙: 문제가 있었던 건 어느 영화였나요?

 

장: <왓니껴>라는 영화예요.

 

챙: 어쩌다가 합류하신 건가요?

 

장: '영화감독(이하 '감독')'한테 연락이 왔어요. 감독도 처음에는 촬영감독으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총괄프로듀서까지 맡은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 연락해선 이것저것 예산을 짜달라고 했어요. 저는 예산안을 짜주다가 피디가 되었고.

 

이게 2012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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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니껴>의 포스터.

 

상업영화는 제작사, 투자사(자본), 배급사가 하나의 영화를 만들지만, <왓니껴>는 지자체 지원금, 즉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지자체 영화였다. 따라서 투자사의 자리엔 지자체가 들어갔다.

 

문제는 <왓니껴>의 투자사, 즉 안동시와 경북도청이 지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이렇다 할 관리도, 감시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한 구멍이었는데, 구멍이 있다는 건 관리부실을 눈치챈 사람이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었다.

 

챙: 임금체불이 있었잖아요.

 

장: 촬영을 2012년 가을부터 했고 2013년에는 후반작업을 했는데, 그 때까지 돈을 못 받고 있었어요. 일을 계속 하긴 하는데 마음이 불편한 상태였죠.

 

발단인 임금체불의 배경에는 세 명의 인물이 있다.

 

1. 영화의 총괄프로듀서이자 '감독'

2. 안동 소재의 영화관련 대안학교 '교장(이하 '교장')'

3. 안동에서 이름이 알려진 영화관련 단체 '대표(이하 '대표')'

 

이 세 명의 인물, 즉 <왓니껴>를 제작한 면면들은 감시의 구멍을 이용한 이들이기도 했다.

 

장: 그래서 돈을 못 받았다고 했더니 “다 지급이 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챙: 받질 못했는데요?

 

장: 이게, 제 통장에 기록이 아예 없으면 괜찮은데 돈이 오고간 기록은 있었어요. 제 직책이 피디였으니까 다른 사람 인건비나 비용을 처리해야 하잖아요. 근데 안동시 정산 규정에 '현금으로 지출되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 촬영을 하다 보면 현금을 쓸 수밖에 없을 상황이 생기는데, 현금을 못 쓴다는 거죠.

 

교장하고 감독이 준비과정에서 협의를 하더라고요. 인건비 명목으로 청구한 돈을 현찰이 필요할 때 쓰자고. 그렇게 제 인건비로 받은 돈을 현금이 필요할 때 썼어요. 일단 급하니까 쓰고, 촬영 다 끝나면 돌려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다 끝나니까 주질 않더라고요.

 

처음엔 임금을 줬다고 착각했거나 이 시스템을 이해 못한 거라고 생각해서 몇 번이고 다시 말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더라고요.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더이상 일 못 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더니 그 때 저를 자르더라고요. "나도 더이상 너랑 일하고 싶지 않고 돈도 못 주겠다"면서.

 

이렇게 잘렸다. 노동의 대가를 하나도 받지 못한 상태로 직장을 잃은 것이다. 억울해서 노동청에 임금체불로 신고하려 했지만, 돌아온 건 '임금체불이 아니라 개인이 개인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계좌에 임금이란 명목으로 돈이 오간 기록이 있기 때문에 임금은 지불됐다고 볼 수 있고 그 이후에 나간 돈은 '빌려준' 돈이라는 것이다. 신고는 당연히 불가능했고, 돈을 받기 위해선 민사소송을 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챙: 임금을 못 받았는데 받을 방법도 없어진 거네요.

 

장: 다행히 ‘영화인신문고’에는 신고할 수 있었어요. 거기는 영화계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신고까지는 할 수 있었죠. 대신 그걸 증명하려면 증빙자료가 있어야 했어요. 현금으로 어디에다가 입금하고 송금했는지를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교장한테 영화 찍으면서 만든 정산자료나 영수증의 복사본을 달라고 했죠.

 

챙: 교장한테요?

 

장: 교장이 지원금을 신청해서, 돈도 교장과 학교 이름으로 나왔어요. 전 여기서 교장 역할이 끝난 줄 알았는데 투자자처럼 제작전반에 관여하고, 돈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려고 했어요. 매번 어떤 일에 얼마가 필요하다고 보고해야 돈을 줬고, 촬영 다 하고 정산자료도 교장한테 보냈었죠. 그래서 교장한테 자료의 일부를 달라고 요청한 건데 이미 다 안동시에 넘겼다는 거예요. 시청에 갔더니 거기선 교장한테 받으라고 하고, 서로 핑퐁하듯 계속 자료를 안 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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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해결할 방법이 없었어요. 너무 속상하고 답답해서 이 내용을 경북도지사, 안동시장, 시청 문화정책과 과장, 부장한테 다 보냈는데 아무한테서도 연락이 없더라고요. 거의 포기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2014년인가, <왓니껴>가 부천영화제에 초청 받았어요.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해도, 영화가 완성됐고 영화제에도 나왔으니까 시사회에 오라고 연락이 올 줄 알았어요. 근데 아무도 오라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굉장히 서럽고 서운했는데 더더욱 영화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가서, 영화관 출구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한테, 이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이 영화의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리는 내용의 종이를 나눠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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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객들에게 나눠주었던 A4의 일부

(<안동>은 <왓니껴>의 가제)

 

장: 두 번째 상영 때도 이걸 들고 갔는데, 뭐 방해한 것도 아니고 종이 나눠준 게 다잖아요. 근데 감독이 영화제 측에 인쇄물 배포를 못하도록 막아달라고 얘기를 해놨대요. 일곱 명 정도가 와선 저를 에워싸고는 벽으로 밀쳐 버리더라고요. 몸 상해가면서 몇 달 일 했는데 돈도 안 주고 나가라고 하더니 그런 일까지 당하니까 사람을 바닥까지 내모는 거 같더라고요. 모멸감도 느껴졌는데, 그래서 더 포기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부러 더 열심히, 더 적극적으로 했어요.

 

챙: 예를 들면 어떤?

 

장: 감독이 SNS에 <왓니껴> 홍보 글을 올리잖아요? 그럼 거기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한테 전부 A4와 똑같은 내용의 쪽지를 보냈어요. 전부 싹 보냈는데 그중에 국회의원이 한 분 계셨나봐요. 그분이 이게 정부지원금이 들어간 영화니까 ‘대한민국정보포털’에다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자료(<왓니껴> 촬영 때의 영수증)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정보공개 청구를 했죠. 했는데, 다 받기까지 쉽지가 않았어요. 원래 규정상 요청을 받으면 며칠 안에 그 정보를 다 줘야 해요. 근데 담당 공무원이 잘 안 주거나 줘도 뭘 빼고 주더라고요. 나중엔 담당자도 바뀌었어요. 그 사람하고도 수차례 통화하고, 뭐가 빠졌는데 일부러 누락시킨 거 아니냐, 당신 누구한테 지시 받고 이거 다 안 주는 거냐, 싸워서 겨우 다 받아냈죠. 14년 7월인가에 신청했는데 자료를 다 받은 건 겨울이었어요.

 

챙: 그 다음에는,

 

장: '횡령'으로 신고했어요. 2015년 1월에.

 

공익신고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순간이다.

 

 

2. 임금체불이 '공익제보'가 된 이유

 

챙: 횡령이요?

 

장: 신고하기 전에 몇 백 장이나 되는 영수증을 일일이 확인했어요. 보니까 가짜 영수증, 가짜 계약서가 엄청 많더라고요. 스텝이 아닌 사람을 스텝인 것처럼 꾸며서 인건비를 지급했다고 하는 등 1억 정도 빼돌렸더라고요. 지원금 4억(안동시 2억, 경상북도 2억) 중에 1억이나.

 

이것이 장PD의 신고가 단순 '임금체불'이 아니라 '횡령에 대한 공익신고'가 된 이유다. 이 영화에 들어간 돈은 지자체 지원금, 즉 세금이었고, 감독, 대표, 교장은 이 세금을 편취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사실 이들은 지원금을 받는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했다. 원래 2억을 자부담하는 조건으로 안동시(2억)와 경상북도(2억)로부터 지원금 받은 것이었는데, 자부담금(2억)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지원금 4억 밖에 없었고, 그 중 1억을 횡령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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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신고했더니 권익위에서 조사 받으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1박 2일 동안 원본자료를 보면서, 이 사람은 스텝이 아니고, 이건 가짜 계약서다, 하나하나 얘기했어요.

 

조사 받고 난 뒤에 제가 나서서 조사했어요. 조사관보다는 제가 이 내용을 더 잘 아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알아내서 전달해주면 수사가 빨리 진행될 것 같았어요. 경찰이든 검찰이든 넘기려면 정보가 더 필요할 것 같기도 했고. 그때부터 A단체, B단체 막 전화해서 아무개라는 분이 계시냐고 묻고, 이 사람들하고 관련 있는 안동 사람들한테도 전화하고 그랬죠. ‘당신이 뭔데 전화를 해서 꼬치꼬치 캐묻냐’고 화내고 욕 먹고 그랬는데.

 

챙: 조사해보니 어땠나요?

 

장: 교장이 가짜로 몇 백만 원 씩 인건비를 지급했던 게 다 자기 주변 사람이더라고요. 어머니, 딸, 부인, 학교 근처에 있는 가게 주인하고 알바생, 수업하러 왔던 강사, 아는 기자... 그 사람들한테 이름 빌려달라고 한 다음에 있지도 않은 계약서를 만들었던 거죠. 그 사람도 모르게 만든 것도 있었고.

 

교장이 이전부터 학교 이름으로 지원금을 받아왔으니까 이번에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때랑 똑같은 방법을 쓰기도 했고.

 

챙: 교장이 이전에도 지원금을 받았었나요?

 

장: 학교 운영비 지원금을 받았어요. 원래대로라면 이걸로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제대로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보니까 지원금의 반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했더라고요. 한 주유소를 지정해서 거기서 계속 난방용 기름을 샀던데, 난방비가 한 달에 얼마씩 정기적으로 나갔으면 납득이 되잖아요. 근데 매달 결제하는 걸 깜빡했나봐요. 연말정산이 다가오니까 급했는지, 영수증을 만들기 위해서 같은 달에 두 번이나 결제하고는 날짜에 빨간 줄을 그어요. 그 다음 위에 도장 찍고 날짜를 고치는 거죠. 12월에 받은 영수증에 줄 긋고 11월 영수증이라고.

 

<왓니껴>건에 관한 판결문엔 이렇게 나온다.

 

"대표가 사전에 담당공무원과 접촉을 했고, 교장이 사업비를 청구(기획서 작성)했다"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장: 욱하더라고요. 몇 백 만원 받으려고 이 싸움을 시작한 거지만,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지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이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냥 넘어간 담당 공무원도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담당 공무원을 직접 찾아가서 지원금 나간 거에 대해서 관리·감독을 왜 제대로 안 하냐고, 이렇게 말이 안 되는 서류를 냈는데도 왜 전혀 점검하지 않았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너무 적은 금액이고 난방비나 식료비로 나가서 꼼꼼하게 보지 않았대요. 금액이 적으면 세금 아니에요? 것보다 몇 천 만 원이 적은 돈이에요? 본인이 일을 안 해놓고 하는 변명이 그거였어요. 학교운영비 수준이면 영수증도 몇십 장 밖에 안 돼요. 간이영수증 같은 건 금방 눈에 띄는데 전부 그냥 넘어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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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판결은 어떻게 났나요?

 

장: 횡령으로 신고했는데 검찰에서는 '사기'라고 하더라고요. 판결도 사기로 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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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원금 4억에 자부담금 2억, 총 6억으로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2억이 없었잖아요. 근데 지원금을 받으려면 자부담금 2억이 있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려서 2억이 있는 것처럼 하고 그 사람한테 돌려줬었어요. 이걸 근거로 사기죄가 됐어요. 감독은 사문서위조죄까지 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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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사문서위조는 뭔가요?

 

장: 2억(자부담금)은 원래 없었고 지원금 4억 중에 1억을 횡령했으니까 3억으로 영화를 찍었단 말이예요. 찍다 보니 제작비가 부족해져서, 감독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 '인건비 지원'을 신청하자고 했어요. 영진위에서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건데, 3개월 동안 촬영한다고 하면, 첫 달은 회사에서, 두세 번째 달은 영진위가 지원해주는 거죠. 저는 반대했는데도 감독이 계속 신청하자고 했어요. 그때는 이미 3억으로 인건비까지 지급한 상태였고, 감독이 영진위 돈을 영화제작 하는 데에 쓰려고 했거든요.

 

그 돈을 받으려면 영진위 규정대로 인건비 계약서를 쓰고, 돈을 지급했다고 입금표를 제출해야 해요. 한 달 기준 최소 150만 원 이상 주고, 4대보험도 처리해야 하는데 스텝이 몇 십 명이나 됐어요, 그거 하나하나 서류작업 하는 것도 벅찬데 입금표 만들려면 스텝들 통장에 진짜로 돈을 입금해야 하잖아요. 입금한 다음에는 연락해서 돈을 돌려달라고 해야 하고. 그래야 그 돈을 제작비에 쓰니까.

 

영진위에서 실사도 나오는데, 그럼 그 정보를 미리 받아서는 서울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안동으로 불러 모은 다음에 촬영하는 척 해야 하는 거예요. 여러모로 번거롭고 힘들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이 자기가 아는 세무사에서 해결하면 된다면서 억지로 신청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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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제가 스텝이면 안 돌려줄 것 같은데요.

 

장: 그렇죠. 임금체불 일부가 여기서 생겼어요. 첫 달은 회사에서 인건비를 지급해야 했으니까 입금 기록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스텝들한테 제 개인 돈까지 합해서 인건비(영진위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허위로 작성한 계약서에 따른 임금)를 지급했어요. 이제 이걸 돌려받아야 하는데 몇 명한테 못 받았죠. 나쁜 건 제가 사비까지 넣어서 서류를 만들었는데, 감독은 이 돈을 어디 놀러 가고, 맛있는 거 사먹고, 자식한테 뭐 사주는 데 썼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정산할 때 모자라면 이거 쓰라고 영수증을 툭 던져주고 가더라고요.

 

챙: 아...

 

감독은 징역 6월·집행유예 1년, 대표는 징역10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고(교장은 재판 중 사망하여 공소기),구속수사를 받았던 터라 대표는 구속된 지 얼마되지 않아 보석으로, 감독은 5-6개월 정도 후에 나왔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으련만 이들은 구속에도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3. 구속은 거들 뿐

 

장: 사실 이 사람들이 조사받고 구속되면 정신을 차릴 줄 알았어요. 근데 또 지원금을 받았더라고요. 이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지만 공무원들도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그랬다. <왓니껴> 촬영이 있었던 게 2012년, 개봉이 2014년. 조사는 2015년부터 이루어졌는데, 2014년 경상북도, 대구시, 경산시에게 총 6억을 지원받아 <갓바위>라는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경산의 어떤 절(寺)에 있는 ‘갓바위’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해당 절을 관광명소로 만들자'는 취지였던 듯 한데, 정작 완성된 영화는 도움은커녕 마이너스가 되는 내용이었다. 당시 기사에선 <갓바위>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용상 '갓바위'와의 연관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난투극과 납치, 성폭행 시도 등 낯 뜨거운 장면이 속출한다.”

 

장: <갓바위>에도 문제가 많았어요. 영화계 관례상, 임금이 가장 높은 감독이나 주연이 이만큼 받을 때 그 밑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지가 대충 정해져있고, 어떤 업체하고 계약할 때 얼마 드는지도 대충 정해져있어요. 근데 여기선 음악감독 인건비가 3천만 원인가로 책정되어 있더라고요. 감독보다 더 많은 돈이었어요. 상식적으로 음악감독이 감독보다 더 많이 받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또 메이킹 필름을 3D카메라로 찍었다는 거예요. 본 영화를 일반 카메라로 찍으면서 홍보할 때만 쓰는 메이킹 필름을 3D카메라로 찍었다는 거죠. 그 무겁고 기동성도 없는 장비를, 그것도 산에서. 그 3D카메라를 <갓바위>의 PD가 소속된 회사에서 대여한 것처럼 계약서를 썼더라고요. 이것 말고도 조명장비대여 계약한 회사가 알고 보니 미용기기업체이기도 했어요. 하나 특이했던 건 <왓니껴> 때 자부담금 2억을 만들 수가 없어서 있는 것처럼 꾸몄잖아요. <갓바위>에서는 자부담금이 몇 천 만 원 단위로 내려갔더라구요.

 

저는 이게 횡령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신고했는데, 입증하기가 힘들어서 무혐의가 됐어요.

 

역시 불법만큼 성실한 건 없다. 얼마나 성실하냐면 <갓바위>조차도 끝이 아니었다.

 

장: <왓니껴> 조사가 2015년 3월부터 들어갔는데, 같은 해에 <쇠파리>라는 영화를 찍는다고 대구에서 지원금을 또 받았어요. 이건 기획서부터 터무니가 없어요. ‘1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겠다’고 하던데, 1만 명이면 본전도 안 되는 거거든요. 이 부분을 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영화인들이 다 어이없어 하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1만 명이 부풀린 숫자일 수 있다는 거예요. <왓니껴>가 전국 열 몇 개 관에서 상영했었는데 1천 명도 안 들었거든요. <갓바위>는 절에서 제목 바꾸라고 해서 제목 바꾸고 재편집 한 뒤에 대구의 몇 개 관에서 개봉했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몇 백 명 정도 밖에 안 들었을 거예요. <왓니껴>도, <갓바위>도 안 됐으니까 이게 그나마 부풀린 걸지도 몰라요.

 

챙: 1만 명이면 제 눈에도 소박한데요.

 

장: 그러니까 공무원들한테 화가 나는 거예요. 아무리 '지역육성' 같은 취지가 있다고 해도 사람이 거의 안 드는 영화에 몇 억을 지원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지원금이 나가면 창출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어 보이고, 구속되어있는 사람한테 똑같은 사업으로 또 돈을 주다니, 이건 옛다 먹어라 하고 몇 억 던져주는 거잖아요.

 

도대체 신청을 어떻게 받았는지가 궁금해서 담당 공무원한테 '공모를 통해 받았냐'고 물었어요. 아니래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신청한 거냐고 그랬더니 시청 홈페이지 들어가서 어디를 보면 나온다는데... 저는 공모가 아니니까 더 유착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계속 이분들만 들어가면 서류를 이렇게 허술하게 해도 통과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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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

 

챙: 그 후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장: 장편영화는 몇 년 동안 못 하고 있고, 다른 영화도 잘 안돼서 계속 힘들었어요.

 

챙: 그 쪽에서 가만 있었을 것 같지 않은데.

 

장: 대표가 보석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저한테 와서는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검찰조사 받은 게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본다, 자기 단체가 존폐위기다, 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다. 동시에 저한테 자기 단체의 고문 같은 거로 부를 테니까 더 들쑤시지 말라고 회유하기도 하고.
 

감독은 저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자기가 한 일은 생각도 안 하고 영화인들이 많이 모인 곳에 다니면서, 저랑 같이 다니기라도 하는 사람한테 물어본대요. “너 장정숙하고 친하냐?”고. 같이 놀지 말라는 거잖아요. 덕분에 완전 왕따 당했죠.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저한테 뭐라고 한 적도 있어요. 억울해서 제가 당한 얘기를 하면 그건 안 듣고 싶다고 하고.

 

챙: 가깝던 사람이 그랬다면 더 상처였겠네요.

 

장: 제가 잘리기 전에 상담 겸 위로를 받을까 해서 친했던 선배한테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근데 그 선배가 그냥 그 돈 안 받은 셈 치라더라구요. 6개월 이상 일했으니까 실업급여라도 받으려고 알아보고 있다니까 그것도 하지 말래요. 조용히 있으라고. 친했던 사람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는데, 위로해줄 줄 알았던 사람들이 가시 돋친 말을 하니까 더 상처였어요.

 

그나마 제 생각해주는 분들도 영화계 현실을 아니까, 저만 다치니까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 잘했다고 하는 사람은 엄청 적었어요. 이런저런 일이 있으니까 저도 이제 영화 일은 못 하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죠. 영화계를 떠나야 할 것 같고.

 

챙: 생활도 녹록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장: 그해 겨울인가 집 차단기가 내려갔어요. 정말 어쩌다 내려갔던 건데, 월세를 밀리고 있던 상황이라 집주인이 전기를 끊은 거라고 착각했어요. 차단기 내려갔으니 한겨울에 방은 냉골이고 냉장고 안에 음식은 다 썩어서 물이 흘러나오더라고요. 결국 본가로 내려갔어요.

 

몸도 안 좋아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영화 일은 현장에서 계속 서있어야 하고 밤새는 일도 많거든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인데 체력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너무 우울했어요. 다른 일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하나, 내가 이렇게까지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싶고.

 

몇 달 동안 힘들게 지내는데, 어느날 지인분이 보름 정도만 촬영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서울에 왔어요. 그 일 하면서 조금 회복된 것 같다가도 또 안 좋아지고 그랬어요. <왓니껴> 이후로 몇 년 동안 여러모로 힘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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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심리치료도 받았어요. 안동지검에서 조사 받을 때, <왓니껴> 촬영 당시에 적었던 메모지며 작업했던 파일, 메일 주고받았던 것을 싹 제출했어요. 그러느라 그 때 기억을 다 곱씹었는데,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촬영하는 동안에도 불화나 문제가 많아서 마음고생 많이 했었거든요. 조사받기 직전에 했던 영화가 잘 안돼서 우울증이 좀 있는 상태였는데 몇 년 전 가장 안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니까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치료를 받았죠. 예술인복지재단 통해서 한 교수님을 소개 받았는데, 그분이 도움을 정말 많이 주셨어요. 친한 사람들한테도 제 얘기를 못 하던 상황이었는데 얘기를 많이 들어주셨어요. 그분이 저한테 대단하다고, 혼자 힘으로 신고해서 구속까지 시킨 건 참 대단한 거라고 칭찬도 해주셨어요. 그분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회복이 안 됐을 거예요.

 

담담한 말투였지만, '담담하다'는 게 곧 '지금은 그 상처를 다 털어냈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나 '괜찮아지는' 것이지, 완벽한 회복은 없을 것이다.

 

 

5. 앞으로의 삶

 

챙: 당시로 돌아간다고 하면 또 제보하실 생각인가요?

 

장: 그럴 거 같아요. 몇 년 동안 여러모로 힘들고 고통스럽긴 했는데,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그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

 

챙: 주변 사람이 제보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장: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어요. 저번에 어떤 분이 저랑 비슷한 일을 신고하고 싶다고, 어떤 서류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리는 게 좋겠다 싶어서 자세히 알려드렸죠. 가까이 계시면 가서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멀어서 전화로만 알려드렸어요.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챙: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장: 가해자들은 뻔뻔스럽고 떳떳하게 잘 살고 있는데 정작 피해자는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숨죽이고 살잖아요. 2차 피해, 3차 피해 입으면서 죽은 것처럼 지내야 하는 게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남은 거라고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받은 시계 하나밖에 없는데, 이 사람들은 지금 더 잘 나가고 더 잘 살고 있거든요.

 

이런 분위기는 바뀔 필요가 있다고 봐요. 꾸준하게 해먹는 분들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모든 사람이 주변의 적폐와 싸웠으면 좋겠어요. 미투 운동도 보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오래전부터 나쁜 짓을 해왔는데 피해자들이 구조적 문제로 말 못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옆에는 그걸 방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것도 양산되는 거거든요.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문제가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이젠 눈 감고 넘어가지 말고 잘못을 말할 수 있는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제 사람들이 좀 싸웠으면 해요.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정당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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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숙PD는 인터뷰 장소에 '방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서류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 서류를 하나하나 뒤지면서 자신이 밝혀내고 찾아낸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꽤 복잡한 사건을 처음 듣는 나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일러주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복잡한 사건을 혼자 힘으로 알아내서, 정리하고, 신고까지 하기 위해선 나에게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조사를 해야 했다는 것을. 그 과정에서 안 좋은 기억을 억지로 복기해야 했고, 우울감을 참아내야 했으며, 터지는 울분을 애써 죽여야 했다. 주변에서 따돌림까지 당했으니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저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하는 성격이에요. 영화 일도 그렇고 공익신고도 그렇고, 약간 돈키호테처럼? 그래서 신고까지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당연해서' '그럴 수밖에 없어서' '가만있을 수 없어서' 장PD는 공익제보를 했고, 공익제보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집부 주 
 
 
본 이너뷰 기획 시리즈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한다. 
사회를 위해 용기냈던 분들을 딴지 기자들이 돌아가며 
찾아갈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추천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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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영화계와 지자체의 커넥션을 캐다 - 장정숙 편
 
공익제보자, 공익활동가의 삶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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