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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차도남, 차도녀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런 차가운 매력의 끝판왕인 얼음 미녀 포사를 소개하려 해. 태어나서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다는 그녀의 차가운 매력은 결국 주나라를 멸망까지 이끌고 마는데... 우선 그녀는 출생 스토리부터가 몹시도 판타지적이야.

 

사기에 따르면 그녀가 주나라 유왕의 첩으로 들어간 때가 BC 779년이라고 해. 그녀가 태어나기 천 년도 전인 하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스케일이 어마무시하지? 과거 회상 부분이 천 년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어?

 

“전하! 큰… 큰일이옵니다. 지금 궁전의 뜰… 뜰에… 거… 거… 대한 용… 용…"

 

“뭔 소리냐? 귀신이라도 본 것이냐? 차근차근 똑바로 아뢰지 못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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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의 뜰에서 외계인이라도 본 것인지 소식을 전하던 신하는 그대로 졸도를 하였고, 하왕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을 하였으나 그 역시 그 자리에서 졸도를 하고 말았는데, 도대체 뭘 본 걸까? 현장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용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있었기 때문이야. 확인 결과 ‘왕좌의 게임’의 대너리스의 화려한 외출은 아니었어. 대신들이 모여 저 용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긴급 국가 안보 회의가 열렸어. 고대 중국에서는 인공 지능 대신 점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하는 일이 대세였어.

 

“전하! 모든 변수를 고려한 점괘가 오직 흉을 향하고 있사옵니다. 이 일을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답이 없습니다. 답이.”

 

“아니. 이 답답한 것들아.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쩐단 말이냐? 죽일 것인지, 쫓아낼 것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섬길 것인지 어떤 질문에도 흉이란 점괘가 나왔단 말이지? 환장하겠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전하. 용의 침을 받아서 궤에 잘 보관을 하면 매우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는 보고입니다.”

 

“오호라! 참으로 간단한 방법이구나. 이제 용에게 가서 침만 뱉어 달라고 하면 되겠구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쥐만 구하면 만사형통이로고. 지금 이걸 대책이라고 가지고 온 것이냐? 용이 네이~ 하고, 궤에다 침을 뱉어 주겠냐?”

 

놀랍게도 신하 하나가 그 점괘를 용에게 보여줬더니, 용은 ‘콰악’하고 침을 상자에 뱉은 후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고 유유히 하늘로 사라졌다고 해.

 

“I’m from 포나라! 절대로! 이 궤를 열지 말아라!”

 

이렇게 중국 고대 왕실에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생겼어. 이 판도라의 상자는 하나라가 망한 후, 은나라로 전해졌어. 무려 5백 년간 철저히 봉인된 상태가 유지된 거야. 감히 이 상자를 누가 열어 볼 생각이나 했겠어. 다시 시간은 용의 타액이 목표 지점에 달하는 속도처럼 빨리도 흘러 은나라까지 망하고, 이 용의 침이 담긴 궤는 주나라에까지 전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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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께서 친히 타액을 하사하시고, 절대 열지 말라고 하던 그 궤가 천 년이 지나 주나라의 여왕(여성 왕 아님)에 의해서 드디어 개봉이 되는데!

 

‘아! 참으로 궁금하구나. 이것은 흡사 51구역이나 케네디 암살에 대한 진실에도 접근을 하지 못하는 미쿡 대통령의 괴로움과 같구나. 허나 지금은 고대 중국이잖아. 내가 못 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천 년을 묵은 용의 타액이라! 혹시 이것은 세월이 숙성시킨 불로초는 아닐까?’

 

여왕이 무려 천 년이 넘게 봉인되었던, 드래곤의 타액이 담긴 궤를 열자 용의 그것이 뜬금없이 분수처럼 솟아올라 궁전을 뒤덮을 기세가 되었어.

 

"이게… 멈… 멈추지가 않는구나. 여봐라! 대책을! 대책을 세우거라. 이러다 나의 아름다운 왕궁이 온통 용의 침으로 뒤덮이겠다! 뭣들 하느냐! 빨리빨리 움직여라.”

 

왕의 불호령에 신하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작전은 실패! 최후의 수단으로 이 방법을 사용해 보려고 하는데, 무엇인고 하니!

 

“이게 될까요? 지금이 아무리 고대 중국이라지만 이건 너무 허무맹랑한 것 같사옵니다.”

 

“야! 시끄러! 용의 침이 담긴 박스가 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와 그 침이 흘러넘치는 건 말이 되냐?”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이 방법 저 방법 다 소용이 없으니, 그럼 분부하신 대로 알몸의 여자들이 주술을 외우도록 하겠습니다.”

 

대충 눈치챘겠지만 이 주문은 성공했어. 온 궁궐을 뒤덮고 있던 용의 침이 나체의 여자들이 외운 주문 소리를 듣자 한곳으로 모여 쪼그라들더니 작은 뱀으로 변했다고 해.

 

“헐! 작전 성공입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 뱀을 잡아라.”

 

그 뱀은 바람처럼 궁의 뒤뜰로 사라졌어. 이 글의 주인공인 얼음 미녀 포사는 도대체 언제 나오냐고? 조금만 기다려봐. 성격 급한 독자들을 달래기 위해 약간 스포를 방출할까? 궁의 뒤뜰로 사라진 이 작은 뱀이 포사의 아버지인 셈이야. 천년 묵은 용의 침 때문에 궁궐에 한바탕 난리가 났을 때, 포사의 어머니는 8살 무렵이었어.

 

“무슨 일이지? 궁금해 죽겠는데 겁도 나고, 아이참.”

 

작은 뱀 한 마리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후다닥 사라졌어. 어린 소녀는 몸속으로 뭔가 들어온 느낌을 받았지만, 몰래 훔쳐 먹던 음식을 야무지게 해치웠어. 그렇게 8년이 지난 어느 날. 주나라는 정권이 교체되어 선왕이 재위하고 있었어. 남자 손도 한 번 안 잡아본 그녀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어. 10대의 소녀는 이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어. 여자아이를 무사히 낳은 좀 더 큰 여자아이는 자신의 딸(포사)을 강가의 갈대밭에 버리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어.

 

“아가!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가 하늘이 내린 내 소임의 끝인 것 같구나. 부디 부잣집 하인에게 발견되어 편안한 생을 살기를 바란다.”

 

소녀 엄마의 바램과 달리 포사는 주나라 정부에게 쫓기던 가난한 부부에 의해 발견되고, 이들 부부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포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어. 초반에 나온 두 마리의 용이 자신들은 포나라의 조상이라고 했으니, 포사는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간 셈이야.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 포사의 미모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던 어느 날 포나라 딸바보 아빠들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사건이 발생했어.

 

“큰일이네. 큰일이야. 혹시라도 우리 딸이 주나라 유왕의 첩으로 바쳐지지는 않을지 걱정이야. 밤잠을 잘 수가 없네.”

 

“여보게. 거 아들놈만 다섯이나 가진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너무 걱정 말게나. 자네 딸은 자네 얼굴을 빼다 박아서 그럴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네. 제발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게나.”

 

“그… 그런가? 허긴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긴 하지. 우리 포나라에 미녀 하면 포사 아닌가! 그런데 그 여인이 애교가 그렇게 없다며?”

 

“포사가 보통 미녀인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미모이니 애교 따위도 필요 없다고 하더군. 그런데 애교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웃지를 않았다고 한다네. 참으로 기이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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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태어나서 한 번도 웃지 않은 절세 미녀인 포나라의 사 씨 성을 가진 포사라는 여인은 주나라 유왕의 첩으로 인생 제2막을 열게 되었어. 포사는 오직 미모 하나만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백복이라는 남자아이까지 낳았어. 유왕은 얼음 미녀 포사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을 태자에서 폐하고 백복을 새로운 태자로 임명하였어.

 

“포사야! 이것은 엄청난 결정이다. 네가 낳은 아들이 태자가 되었다는 것은 네 인생도 아우토반 위에 놓인 빨간 스포츠카와 같은 일이거늘. 너는 어찌하여 이런 경사에도 웃지를 않느냐? 참으로 애통하구나.”

 

왕은 산더미처럼 쌓인 국가 현안에 대한 결재 서류들을 뒤로하고 오직 포사 웃게 만들기 대작전에 돌입했어. 유왕은 그녀의 오감을 자극하기 위해 음악, 각종 미식, 진기한 보물들을 그녀에게 갖다 바치며 국고를 탕진했지만 모든 일이 허사였어.

 

‘포사를 웃게만 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반드시!’

 

아무리 역알못이라도, 봉화라는 단어 한 번쯤 들어 봤지?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무전기도 없던 시절에 적군의 침입을 알릴 수 있는 최신의 시스템이 바로 봉화잖아. 지금도 중국 산시성 시안 동쪽의 여산에는 봉화대의 유적이 남아 있어. 봉화대 아래쪽에는 당연히 불을 피우는 장치가 있겠지? 나무와 함께 이리 똥이 불을 붙게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고 해. 어느 날 봉화대 담당이 이리 고기를 구워 먹으려다 일어난 실수인지, 그만 봉화대에 불길이 솟아오르고 말았어. 주나라 휘하의 제후들은 테프콘 1이 발령되자, 미친 듯 말을 달려 집결지로 모였어.

 

“전하. 감히 어느 놈들이 쳐들어온 겁니까? 제가 앞장서서 모조리…”

 

“무슨 말씀이오! 내가 가장 먼저 나서리다.”

 

“저기… 이보시게. 이번에 봉화가 올라온 건 초병의 실수였다고 하네. 내가 대신 사과를 하겠네.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그대들의 충성심도 확인을 하니 내가 참으로 기분이 좋소. 오늘은 성대한 파티를 열도록 합시다.”

 

왕의 말에 각 제후들은 맥이 빠졌고, 이런 웃픈 상황이 발생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오잉? 포사야! 너 지금 웃은 것이냐? 맞지? 분명히 내가 봤다. 실수로 올라온 봉화에 달려온 제후들의 모습을 보고 웃었구나. 으하하하. 우리 포사가 그대들 덕에 웃었다.”

 

이때 궁궐의 기둥 뒤에서 포사의 웃음과는 거리가 먼 썩소를 짓는 한 사내가 있었으니, 바로 유왕의 정실부인 신후의 아버지였어.

 

‘유왕! 네놈이 포사에게 빠져 내 딸을 왕비에서 쫓아낸 것도 모자라, 외손자를 태자에서 폐위시켰겠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대가를 내가 반드시 치르게 해 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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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유왕은 양치기 소년이라도 된 것처럼 수시로 봉화를 피워 제후들을 똥개 훈련시켰어. 오직 얼음 미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데프콘 1이 잦아지자 제후들의 불만도 쌓여 갔어. 그사이 신후의 아버지는 딸의 복수를 위해 견융족 + 유목민이 포함된 용병들까지 모아 놓고 D-데이를 기다리고 있었어.

 

마침내 기원전 771년 신후 아버지의 군사는 유왕 목을 노리고 거병하였고, 봉화는 맹렬히 타올랐지만 그 어떤 제후도 믿지를 않았어.

 

“야야. 됐어. 데프콘 1이 무슨 매일 발령이냐? 여기가 무슨 분단 국가도 아니고. 됐어. 또 포사 웃기기 작전이야. 그냥 군장이나 챙기고 모양새나 갖추고 쉬고 있어.”

 

거짓말의 대가는 참혹했어. 유왕은 견융족 병사에게 죽임을 당했고, 포사는 자살설 및 견융족 포로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된 역사적 기록은 없는 상태야. 포사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그녀의 죽음 이후 춘추 전국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야.

 

유왕이 죽자 남은 제후들은 포사의 아들에 의해 밀려났던 태자를 주나라 평왕으로 옹립했어.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어. 신후의 아버지가 포사를 제거하기 위해 끌어들인 견융족이 주나라의 국력을 압도하는 골 때리는 상황이 발생한 거야. 이후 주나라는 그야말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서 이름만 유지한 채로 무려 5백 년이나 이어졌어. 진짜 권력은 거짓 봉화에 헐떡이며 달려오던 각 제후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던 거지. 이 5백 년의 기간을 우리는 흔히 춘추 전국 시대라고 부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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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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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한국사>의 필자가 대구에서 강연을 하게 됐다고 한다.

 

주제는 무려 '퇴사 프로젝트'라 하니, 

사축 탈출을 꿈꾸고 있는 분들은 아래 정보를 참고해 주시라.

 

참가 신청은 이곳에서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