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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패밀리레스토랑의 선구자

 

일본 외식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업종에 “패밀리레스토랑”이 있지요. 줄여 말해서 “패미래스”라 불리는 그거에요. 데니즈, 가스토, 죠나상 등등 양식을 중심으로 내세우며 전국 각지에서 같은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인점 스타일. 요즘에는 양식 뿐 아니라 중화요리, 이탈리아요리, 일본요리 등 특정한 요리를 제공하는 패미레스도 정착됐지요. 그런데 일본에서 이런 패미레스식 운영 방법을 처음에 도입한 선구자는 한국에서는 반드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체인 레스토랑은 바로 그 일본 패미레스계의 선구자 “로얄호스트(ロイヤルホスト)”입니다. 줄여서 “로이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사실 '패미레스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정확한 답을 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일단 일본에서 패미레스로 여겨지는 몇몇 레스토랑을 상기해보면 적어도 “가족끼리 오는 손님들이 평소 집에서 쉽게 해먹을 수 없는 요리를 넉넉히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어야할 것 같고, 식구끼리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 달라도(아버지는 스파게티, 엄마는 고등어구이 백반, 아들은 햄버그 스테이크, 딸은 카레덮밥…) 커버할 수 있는 다양성도 겸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성향이 다른 식구끼리 와도 다 만족시켜주는 잔치"가 패미레스인 거지요(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 생각이에요). 그에 따라 가격도 약간 비싸지기도 하고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어느 지점에서 먹어도 같은 맛과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지요(패미레스라는 말이 탄생한 사연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글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링크)). 로얄호스트는 그런 패미레스 이미지를 일본에 정착시킨 선구자라고 할 수 있어요. 양식을 중심으로 하는 것에는 로얄호스트가 탄생하고 성장해 온 사연이 관련된다고 하네요.

 

 

2. 로얄호스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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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호스트는 주식회사 '로얄홀딩스'가 운영하는 패밀리레스토랑이지요. 로얄홀딩스는 “뎅야(てんや)”라는 덴동 전문 체인점 등 레스토랑 사업을 비롯해서 호텔 사업, 비행기 기내식이나 케이터링 사업 등을 사업을 하고 있답니다. 로얄홀딩스의 전신은 1950년에 창업된 '기루로이특수무역(キルロイ特殊貿易)'이라는 무역회사. 1953년 후쿠오카시 히가시나카수(福岡市東中州)에 레스토랑 로얄나카수 본점(현 프랑스요리 레스토랑 하나노키(花の木))을 열면서 주식회사 '로얄'을 설립했습니다. 로얄나카수엔 1954년에 신혼여행으로 일본에 온 조 디마지오, 마릴린 먼로 부부가 방문했었죠. 특히 어니언 그라탕 스프가 마음에 든 마릴린은 3일 연속으로 로얄나카수에 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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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호스트의 전신인 로얄나카수 본점. 현재는 프랑스요리 레스토랑 “하나노키(花の木)”로 영업을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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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으로 일본을 방문한 조 디마지오, 마릴린 먼로 부부. 마릴린은 어니언 그라탕 스프가 마음에 들었다네요.

 

그 후 1959년에 개점한 로얄신텐쵸점(新天町店)이 훗날에 패미레스로 불리는 스타일의 시조가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로얄홀딩스 임원이 한 인터뷰에서 한 말).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점포를 늘린 로얄은 1962년에 처음으로 이른바 “센트럴키친 방식”을 채용했습니다. 종전까지는 각 지점에서 했던 사전준비를 하나의 공장에 집중시킴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각 지점의 작업공간을 좁혀서 더 많은 손님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 거지요. 1969년에는 후쿠오카시 나카(那珂)에 커다란 공장이 완성됐고 회사의 모든 기능을 여기에 집중시켰습니다(센트럴키친 방식이 본격화된 것도 이 무렵). 로얄호스트가 일본 패미레스의 원조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지요.

 

성장세이던 로얄에 있어서 1970년 오사카엑스포도 큰 순풍이었습니다. “미국존(USA Zone)”에 출점 예정이었던 미국 외식 업체가 출점을 취소한 바람에 갑자기 로얄이 스테이크집을 내게 겁니다. 당초 적자를 각오했다던데 뚜껑을 열어보니 매출액이 무려 11억엔. 엑스포에 출점한 모든 점포 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답니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이 맨처음에 일본에 선보였던 자리도 오사카엑스포였는데 이 때 KFC를 영업한 업체가 로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던 로얄은 후라이드치킨의 가능성을 간과해 버렸고, 결국 오사카엑스포 때 로얄에게 식재료를 납품하던 회사의 영업사원이 일본 KFC를 창업했다네요. 로얄 입장에서는 아쉬워도 너무 아쉬운 이야기인데 당시 후쿠오카엔 이미 닭고기를 먹는 문화가 상당히 발달해있었고 식당들이 직접 닭을 도축하는 습관이 있어서 KFC 같은 방식은 아예 시장에 진입할 여지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답니다. 그대로 창업했으면 큰 수입이 되었을 텐데 참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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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오사카엑스포에 로얄나카수가 출점한 스테이크 하우스. 매출액 11억 엔은 엑스포에 출점한 모든 점포 중 가장 많았다네요.

 

오사카엑스포에서 뜻밖의 성공을 이룬 로얄은 1971년 키타큐슈시 쿠로사키(北九州市黒崎)에 로얄호스트 1호점을 열고, 1977년에는 도쿄 미타카(三鷹)에 출점해서 수도권 진출을 이뤄냈지요. 1988년에는 전국 300개 점포를 달성했고 1993년에는 첫 번째 해외점포인 대만 1호점도 열었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실 지점들의 문을 닫는 방침을 추진하며 2015년 6월 현재 전국에서 225개 지점이 영업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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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큐슈시 쿠로사키에 있는 로얄호스트 1호점. 현재 이 자리에는 로얄호스트의 계열사인 카우보이 가족(カウボーイ家族)이라는 스테이크/햄버그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3. 로얄호스트가 고급스레 느껴지는 비밀은 메뉴에 있다!?

 

완전히 필자의 개인적 생각인데 로얄호스트는 약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아요. 그 이유 중 하나로 음식 이름을 거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고급임을 풍기는 메뉴 이름에는 여러 유형이 있어 보입니다. 첫째는 “낯설거나 아예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입니다. “メカジキ(황새치)”는 언뜻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맛은 커녕 생김새조차 금방 안 떠오르고, “アンガス(안가스, 앵거스)”는 아예 뭔지 모르겠더라고요(나중에 알아보니까 '앵거스'라는 소가 있나 봐요). “グルマン(그루망)” 역시 “응?” 그랬지요. 프랑스어 “gourmand”을 그대로 메뉴 이름으로 썼을 건데 알아보니까 음식을 잘 먹는 대식가(혹은 미식가)정도의 뜻이라네요. 또 필자가 도저히 뭔지 몰랐던 메뉴에 “망고 사고”가 있습니다. 과일인 망고를 어떻게 한 후식 메뉴임은 틀림없을 테지만 “사고”가 뭔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알아보니까 '사고(sago)'는 야자나무에서 나오는 쌀알 모양의 흰 전분이래요. 우유와 섞어 디저트를 만들 때 쓴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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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에 “メカジキ(황새치) 그릴 백반”이 등장하는 로얄호스트. 전혀 와닿지 않는데 왠지 고급스런 느낌은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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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스(앵거스)가 뭐지?” 싶으면서도 좀 있어 보이는 신기한 마음. 앵거스라는 소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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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식가 샐러드”라고 이름지으면 되는데 일부러 “그루망”. 고급스레 보이게끔 일부러 그랬다면 작전 대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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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못 풀고 있는 수수께끼, “망고 사고”.

 

고급스레 느끼게 하는 메뉴 표시 둘째는 “재료의 구체적 산지나 천연산임을 일부러 강조”하는 문구입니다. “미야기현(宮城縣)산 굴튀김”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죠. 사실 미야기현은 굴이 명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야기에서 잡힌 굴이 특별히 맛이 있는 줄 아는 일본인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히로시마(広島)는 웬만한 일본인이면 다 알겠지만). 오히려 메뉴판을 보고 “아~ 미야기는 굴이 맛이 있는 지역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마는 겁니다. 신기하지 않아요?

 

“천연 새우”도 호소력이 짱입니다. 필자는 솔직히 눈 앞에 나온 새우가 천연산인지 아닌지 가릴 만한 혀를 안 갖고 있고, 아예 천연산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아요. 그런데 메뉴판에서 “천연”이라 선언하니까 뭔가 고급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실제로 천연 맛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머리에 새겨진 선입견이 저지르는 짓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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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이나 “미야기현산”이라는 말이 있는 것만으로 고급스레 느껴집니다. 신기하지 않아요?

 

햄버그스테이크나 소고기 스테이크에 뿌리는 “소스 이름을 일부러 가르쳐 주는” 문구 역시 음식을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햄버그 스테이크는 햄버그 스테이크일 뿐, 메뉴판에는 “소스는 아래 3가지 중에서 선택”이라고 적어놓아도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로얄호스트는 소스가 다르면 다른 메뉴로 여기는 거지요. 은근히 “소스가 달라지면 온 요리가 달라진다”는 철학과 함께 고급감을 느껴버리는 건가? 같은 햄버그 스테이크임에도 “마늘 소스”와 “브라운버터 소스”를 뿌린 것을 다른 메뉴로 제시하고 있을 뿐인데 왠지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소스 이름을 일부러 덧붙임으로써 고급감을 풍기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냥 “포크(돼지고기)로스 스테이크”라고 해도 무방할 텐데 “생강 버터 소스”라고 덧붙이고, “치킨 쥬시 그릴”만으로도 약간 긴 감이 있는데 “버터 간장 소스”를 덧붙입니다. 그런데 음식이 고급스레 보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아 참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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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가 달라지면 다른 메뉴로 취급되는 햄버그 스테이크. “흑×흑”의 의미가 불명한 점 역시 고급화에 기여하는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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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름에 일부러 소스 이름을 덧붙임으로써 고급스러워진 돼지고기와 닭고기 구이.

 

넷째로 들 수 있는 고급화 전략은 “음식 이름인데도 설명조”입니다. 필자 같이 상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창의성 없는 일반 서민에게 이름이라 함은 '가리키는 대상을 간소하고 깔끔하게 나타내도록 짓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성과 창의성을 다 담고 요리를 하는 요리사는 다른 모양입니다. 음식 이름인데도 마치 사랑이 넘치듯이 요리를 설명해 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雑穀ごはんと食べる 国産豚と野菜の甘酢ソース”는 “잡곡밥과 먹는 국산돼지고기와 야채 단맛 식초 소스” 정도가 될 텐데 음식 이름에 “먹는”이라는 동사가 들어간 거에요. “彩り野菜のスープ仕立てご飯 ~十八穀米・レンズ豆・グリルチキン~”에 이르러서는 설명해주는 듯 혼란시키는 듯,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감히 한국어로 바꿔보면 “아기자기한 색채의 야채 스프로 만든 밥~십팔곡밥, 렌틸콩, 그릴치킨~” 정도 될 텐데 독자 여러분은 어떤 음식인지 감이 오시나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만 하는데 일단 고급스레 느껴지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설명조 메뉴명의 마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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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조”의 마력을 살린 메뉴들. 알맹이를 가늠할 수 없는데 왠지 있어 보이는 마력이 있지요.

 

이와 같이 음식 이름 짓는 방식은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고급화시키는 것에 기여하는 동시에 또 하나의 효과가 있습니다. 바로 “다른 패미레스와 다름”을 호소하는 것. 음식 이름을 본 손님들의 머릿속에 적당히 “?”이 생기는 만큼 다른 레스토랑의 메뉴와 차별화된다는 말이지요. “?”이 너무 많아도 안 되겠지만 적당한 “?”은 고급감도 조성하고 동시에 다른 레스토랑과 차별화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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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 메뉴에도 “저머니”라는 생소한 말을 쓰거나 “토카치(十勝)”라는 재료 원산지를 포함시키는 로얄호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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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도 사랑한 어니언 그라탕 스프는 아직 살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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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게티도 있네요. 필자가 평소 먹는 것과 비교가 안 되게 생소합니다. 당연히 메뉴 이름을 봐도 맛을 가늠하지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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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라이스를 먹어 보면 그 집의 전체적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하지요. 한 번 먹고 싶은 메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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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있습니다. 클럽하우스샌드는 말만 들어봤지,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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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덮밥도 있습니다. 카레덮밥은 서민 음식인 줄 알았는데 예외도 있나 봐요.

 

그럼 이제 직접 로얄호스트를 찾아가 평소 먹을 수 없는 살짝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어 볼까요.

 

 

4. 현장 탐방

 

이번에 방문한 가게는 로얄호스트 와카시바점(若柴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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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크게 둘러싼 순환도로인 16번 국도변에 있습니다. 전형적인 교외형 점포이지요. 외관부터가 다른 패미레스보다 아늑한 인상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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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호스트 와카시바점 외관. 억제적인 분위기가 다른 패미레스보다 살짝 고급스럽다는 인상.

 

가게에 들어가니 “전면금연”의 표시가 마중해줍니다. 옛날에 왔을 때에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리(구역)가 따로 있는, 이른바 분연 방식이었는데 바뀐 모양이네요. 식사를 하고 나서 한 대 피우고 싶은데 어떡해... 싶었는데 흡연실이 따로 있었네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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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들어가자 마중해준 “전면금연” 표시. 담배를 피는 분은 흡연실을 이용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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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실 자체는 아주 좁은데 이용자가 많이 없어서 그런지 담배 냄새가 안 나고 깨끗했습니다.

 

필자 일행이 들어가자 안쪽에서 종업원분이 나와서 창문가 자리로 안내해줬습니다. 아마 창가를 선호하는 손님이 많아서 그랬을 텐데 가게가 국도변에 있어서 밖을 봐봤자 차가 지나다닐 뿐. 개인적으로는 안쪽이 좋았는데 소심한 필자는 앉으라고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았지요.

 

일부 패미레스나 체인점에 있는 “테이블 부착형 홍보”가 없는 점이 굉장히 좋습니다. 테이블 위에 크나큰 홍보 스티커가 부착된 집이 종종 있는데 로얄호스트는 그게 없는 거지요.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을 담은 그릇들 사이에 다른 음식이나 후식 홍보 사진이 보이는 것은 마냥 시끄러울 뿐, 결코 효율적인 홍보 방법으로 보이지 않지요. 식당 공간 자체도 넉넉하고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새삼 원시 패미레스의 모습을 접한 듯해서 살짝 감탄했지요. 가끔은 이런 데에서 느긋하게 식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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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점내 모습. 원시 패미레스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가벼운 감탄을 금치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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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를 안내 받았는데 가게가 국도변에 있기 때문에 밖을 봐도 차가 오갈 뿐입니다. 단 “테이블 부착형 홍보”가 없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식당 공간의 아늑함과 대조적으로 메뉴판은 화려한 디자인입니다. 이런 부분은 로얄호스트가 진정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패미레스임을 나타내는 것 같아 재미있네요(라고 하지만 필자의 '진정 고급 레스토랑' 이미지는 상상의 산물입니다). 필자 일행이 방문했을 때에는 마침 '싱가포르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니언 그라탕 스프도 파는 모양인데 생각보다 가격이 높지 않네요. 하나 시켜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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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일행이 방문했을 때에는 싱가포르 행사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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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메뉴판. 맛이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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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메뉴(일반 메뉴판)는 실내 공간의 아늑함과 대조적으로 화려한 디자인. 고급스런 분위기를 간직하면서도 패미레스임은 잊지 않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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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가스(앵거스)가 뭐지?” 싶으면서 바라봤던 스테이크 페이지. 단품 요리에 각종 세트를 조합해서 시키는 형식이네요. 물론 요리만 단품으로 시켜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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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언 그라탕 스프도 살아 있네요. 단품 요리랑 같이 시킬 세트 메뉴 중 “로얄 세트”에 포함되기 때문에 공깃밥이랑 드링크바를 같이 시킬 거면 “로얄 세트”를 시키면 되겠네요.

 

메뉴판에 나와 있는 요리 이름이 다 생소해서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점이 오히려 주문 고민을 덜어주더라고요. 필자는 “흑×흑”이 뭔지 모른 채 일단 메뉴판에서 가장 맛이 있게 보이는 햄버그 스테이크에다 라이스 세트(공깃밥(大로 변경), 드링크바)를 시켰고, 동행 친구는 새우와 가리비의 뜨거뜨거 그릴~따뜻한 야채와 함께~에다 로얄 세트 라이스 포함(어니언 그라탕 스프, 공깃밥, 드링크바)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맛이 궁금했던 점보 머쉬룸도 같이 시켜 봤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나서는 일단 음료수를 챙겨야지요. 필자는 오렌지 쥬스, 친구는 야채 쥬스를 가져왔는데 드링크바에 비치된 음료수용 컵이 싸구려여서 약간 맥빠지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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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마치면 드링크바에서 음료수를 챙기는 차례. 드링크바에 비치된 컵이 별로 안 좋은 거라 맥이 빠졌습니다.

 

먼저 나온 건 어니언 그라탕 스프랑 점보머쉬룸 샐러드입니다. 메뉴판에 보면은 두 음식 다 당당한 “요리”로 보였는데 생각해보니 스프랑 샐러드가 먼저 나온 셈. 맞는 순서인 거지요. 어니언 그라탕 스프는 원래 동행 친구가 시킨 건데 필자도 한 입 먹어봤습니다. 처음 먹는 스프인데도 내가 먹고 싶었던 어니언 스프는 이런 맛이었다고 느끼게 하는, 말하자면 내가 못 찾던 어니언 스프의 이상형을 알아맞춰주는 맛이라 할까요. 콘소메 베이스의 스프는 화학 조미료 같은 풍미가 살짝 느껴질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양파를 삶고 우려낸 국물만으로 낸 감칠맛이 뒷받침하는 스프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점보머쉬룸 샐러드는 종전 몰랐던 좋은 맛을 가르쳐주는 메뉴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미각(味覺)은 크게 나눠서 5가지라고 이야기하지요.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그리고 감칠맛인데 머쉬룸은 감칠맛을 내는 주요 성분인 글루타민산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지요. 머쉬룸 샐러드는 맛이 없을 리가 아예 없는 거에요.

 

필자는 머쉬룸을 주인공으로 모신 요리는 처음이었거든요. 막상 먹어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큰 머쉬룸을 구워서 먹는 심플한 음식인데 버섯류 특유의 씹는 식감과 농축된 감칠맛이 맛의 세계가 좁은 필자에게는 충격을 주었습니다. 머쉬룸의 맛이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어요. 부드럽고 착한 감칠맛도 그렇지만 머쉬룸을 구워서 끌어낸 고소한 향기도 느껴지고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점보머쉬룸 샐러드는 고정팬이 꽤 많은 메뉴더라고요. 먹어봐서 아는데 진짜 그럴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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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머쉬룸 샐러드와 어니언 그라탕 스프. 점보머쉬룸의 배경이 되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어니언 그라탕 스프이지만 이것도 아주 맛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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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머쉬룸을 구운 심플한 요리. 감칠맛을 감출 수 없는 머쉬룸입니다.

 

샐러드와 스프가 너무나 맛이 있어서 잠시 떠들썩할 때 식사가 나왔습니다. 필자는 햄버그 스테이크, 동행 친구는 새우와 가리비 그릴을 시켰었지요. 햄버그 스테이크는 이름에 “흑×흑”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흑소 7.5, 흑돼지 2.5”의 비율로 반죽했다는 뜻이라네요. 근거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7.5 : 2.5 라는 비율이 햄버그 스테이크를 가장 맛이 있게 만들어 준답니다.

 

햄버그 스테이크 위에 하얀 소스가 뿌려져있는데 이것은 마늘 크림 소스. 짙고 약간 자극이 있는 마늘 맛과 크림의 달고 시원한 맛이 합쳐져서 맛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약간 신맛이 있어 시원하면서도 양파랑 간장으로 감칠맛이 나는 햄버그 스테이크용 소스,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 높은 평가를 주고 싶었던 것은 이 소스를 미리 뿌리지 않고 철판 위에 따로 곁들인 점. 마늘 크림 소스는 미리 뿌려서 햄버그스테이크 본체와 적당히 어울려도 무방한데 기본 소스는 고기를 자르고 찍어 먹고 싶은 겁니다. 미리 뿌려서 소스 맛이 애매해지지 않기 위해서지요.

 

물론 햄버그 스테이크 자체도 소스에 지지 않게 좋은 맛입니다. 햄버그 스테이크는 기본적으로 육즙을 즐기는 요리라 생각하지만 식감도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고기를 어느 정도 잘게 다지느냐에 따라 식감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로얄호스트의 햄버그 스테이크는 고기를 다지는 정도가 절묘합니다. 너무 잘게 다지면 고기로 만든 파테를 먹는 느낌이 들고(파테는 파테대로 맛이 있지만), 지나치게 덜 다지면 조그마한 고기 조각을 한꺼번에 먹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 육즙 맛을 즐긴다는 취지는 죽어버리지요. 정작 먹고 있을 때에는 식감이 좋은 것을 의식조차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절묘한 식감 조절이 있어야 낼 수 있는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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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흑 햄버그스테이크의 유래는 “흑소와 흑돼지”의 혼합이라는 뜻. 7.5 : 2.5 라는 비율 역시 맛의 비밀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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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식감이야말로 로얄호스트의 햄버그스테이크가 맛이 있는 비밀이 아닌가 싶어요.

 

동행 친구가 시킨 새우와 가리비의 그릴은 어떨까요? 평소에는 동행 친구가 시킨 음식은 먹지 않는 필자인데 이번만큼은 한 입이라도 맛을 보고 싶었지요. 일단 생선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신선한 재료를 쓰고 준비단계에서 비린내를 없애는 것. 그래야 재료 본래의 맛을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 로얄호스트의 새우와 가리비 그릴은 아마 고급 레스토랑 정도의 신선도도 아니고 사전준비도 어느 정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굽는 조리법과 버터소스의 진한 맛이 비린내를 완전히 없애줬습니다. 소스 힘이 센 만큼 재료가 빈약했으면 소스가 주역이 되어 버릴 뻔했는데 새우도 가리비도 말 그대로 “빵빵”했지요. 진한 소스에도 물러서지 않는 박력이 있어요. 그렇다고 식감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새우는 특유의 단백한 맛, 가리비는 그 탄력성 있는 굵은 섬유질에다 살짝 바다를 상기시키는 감칠맛을 실컷 누리게 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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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와 가리비의 그릴. 당초 소스가 너무 진해 보였는데 정작 먹어보면 “빵빵한” 새우와 가리비에 딱 맛는 맛.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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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도 새우였는데 카시와에 있는 패미레스에서 이런 가리비를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소 비싸더라도 가끔씩 이런 거를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각 체인점의 같은 이름 메뉴를 먹어 보고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만 로얄호스트처럼 좀 비싸더라도 거기에만 있는 메뉴를 먹어 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은 일 같아요. 다만 필자가 받는 원고료를 감안하면 이번 로얄호스트 방문은 거의 적자 수준인 것도 사실. 다음부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싼 데를 찾아다니도록 해야지… 라고 반성하는 필자 앞에서 모처럼 싱가포르 행사 중이니 뭔가 싱가포르 후식을 시켜야지 하며 (아직까지 그 뜻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망고 사고를 시킨 동행 친구는 진짜 나쁜 새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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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친구가 시킨 망고 사고. 실물을 보니까 맛은 있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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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 앞에는 로얄호스트 오리지널 샐러드 소스 등을 판매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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