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쯤 전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하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잠깐 ‘욱일기’가 등장했다. 담당 PD가 육상자위대 관련 영상을 가져와 편집을 하다가 실수로 욱일기가 들어간 것이다. 댓글 창에 욱일기 관련 이야기가 계속 쏟아졌다. 담당PD와 같이 하는 형님이 사과 댓글을 달다가 내게 구원(?!)을 요청했다.
한국인으로서 욱일기에 대해 민족 감정이 개입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걸 전범기라며 전면적으로 금지시켜야 하고, 일본인들은 전범기를 당당하게 사용하는 파렴치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선 단언하기 힘들다.
“욱일기가 전범기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욱일기가 하켄크로이츠처럼 전범기로 인정됐다면, 이런 식의 논란은 없었을 거다.
(기본적으로 욱일기 사용에 대해서는 담당 PD가 실수한 게 맞고, 이에 대해선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우리끼리’는 생각했는데, 이 콘텐츠를 관람하는 구독자들은 불편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면구스런 마음이지만, 욱일기가 전범기가 아니란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 논의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냉정과 열정 사이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정부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극히 유감스럽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① 제주 국제관함식(10월 10일~14일)에 맞춰 우리나라 외교부와 해군이 일본에 요청을 한다.
“욱일기 게양을 자제해 달라.”
이에 대해 일본은,
“비상식적 요청이다!”
라고 반발한다.
이 대목에 있어선 일본의 말이 맞다. 국제관례에 따르면 함정이 바다에 나갈 때는 선미에 소속국가 국기를 단다. 즉, 이때는 일장기(日章旗)를 달면 된다. 자, 문제는 함정이 타국의 항구에 입항했을 때다. 이때는 선수에 자기들의 군함기를 추가로 게양한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해군기(일본은 ‘자위함기’라 부른다)인 욱일기(旭日旗)를 게양하는 거다.
이게 국제적인 관례다(또한, 국제해양법 상에서도 올바른 처사다). 다 떠나서 해군 군함은 타국의 영해나 항구에 들어가더라도 타국의 지시를 따를 이유가 없다. 해군 군함은 치외법권을 인정받는다. 즉, 우리나라 국내법이 통용되지 않는 ‘타국’ 영토란 의미다.
즉, 이성적으로 보자면 일본의 반응, 그러니까 ‘비상식적 요구’란 반발이 일본에겐 상식적인 반응이다.
② 10월 1일 이낙연 총리가 공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식민 지배의 아픔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 마음에 욱일기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일본도 좀 더 섬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민의가 모이는 국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 당시까지 한국 측 입장은 외교적으로 꽤 고민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 일본 함정에 어떤 국기를 게양할지에 대한 권한은 오로지 일본에게 있다. 그런데, 한국은 ‘꽤’ 현명하게 이걸 해결하려는 모양새를 보였다.
“제주 국제관함식에서 해상 사열식을 할 때 소속 국가의 국기와 주최국인 한국의 태극기 두 깃발만 달아 달라.”
우리나라 해군이 관함식에 참여하는 15개국에 전달한 내용이다. 일본 하나만을 콕 찍어서,
“너 욱일기 달지 마!”
라고 한 게 아니라 우회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 거다. 전달 일자도 8월 31일이었으니, 시간도 충분히 줬다. 문제는 일본 쪽 반응이다. 누가 봐도 자기들을 겨냥한 거란 걸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당연히 반발했고,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너희들 1998년, 2008년 관함식에서는 욱일기 달아도 뭐라 안했는데, 지금은 왜 그러는 거야? 왜, 갑자기 욱일기 가지고 시비야?” (라는 분위기)
한국 쪽에도 ‘명분’이 있는 게, 앞에서 말했듯이 운항 중에는 선미에 국기, 항구에 정박할 때는 선수에 군함기를 단다. 1998, 2008년 관함식에서는 부산항에서 정박한 채로 사열을 했는데, 이번 제주 관함식은 ‘제대로’ 해상사열을 한다. 즉, 운항하며 사열하는 것이므로 군함기를 달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이 성립된다. 게다가 일본 측에도 나름의 ‘명분’을 세워 준 게, 해상 사열식 이외의 행사에서는 ‘군함기’를 달든 말든 상관 않겠다고 전달했다. 즉, ‘해상 사열’ 때에만 양해를 해달라는 거다.
이 정도면, 주최 측의 행사 협조 요청 정도로 ‘좋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게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갈 만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국기와 군함기는 국가와 군대(자위대는 공무원 신분이지만)의 상징이다. 이 상징을 가지고 이야기가 오갔다면, 주권과 관계된 이야기가 된다(국기와 같은 깃발이 가지는 상징성을 생각해 보자).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문제는 ‘욱일기’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인식차이... 아니,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감정과 일본 내 감정의 차이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낙연 총리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자.
“식민 지배의 아픔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 마음에 욱일기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것은 일본도 좀 더 섬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욱일기를 어떻게 바라볼까?
③ 개인적으로 ‘욱일기’ 관련 사건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몇 년 전 발매된 페르소나 5(게임이다 PS 4 용). 게임 캐릭터 중 한 명인 사카모토 류지의 신발에 욱일기 문장이 박혀 있었다. 이 때문에 게임이 국내 발매가 되네 안 되네 한참 말들이 많았다.
아틀라스 게임 타이틀 중에서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작품인데, 이 업체가 그 전에 내놓은 게임 타이틀에도 아무 생각 없이(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욱일기에 대한 정치적 함의 같은 건 아예 생각조차 없는 거 같은) 욱일기를 박아 넣었다. 그 전에도 수차례 욱일기를 사용했는데, 페르소나 5 때 ‘빵’ 터진 셈이다.
일본 극우인사들이나 단체들은 욱일기를 자신들의 상징처럼 휘날리지만, 일반인들의 인식은...
“아무 생각이 없다.”
라는 게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기껏해야 자위대의 군기로 쓰인다는 정도? 아니면, 예전 제국주의 일본 시절에 많이 휘날렸다는 히노마루와 비슷한 ‘깃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일본 극우세력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덕분에 한국을 비롯해, 중국, 필리핀 등등 일제의 침략을 경험한 동아시아 국가의 입장에서 욱일기는 일제 침략의 상징이자, 전범기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즉, 민족 감정의 문제가 된다.
일이 이처럼 꼬이게 된 건 ‘욱일기’가 독일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처럼 ‘전범기’로 규정된 적이 없다는 거다(독일은 법적으로 하켄크로이츠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일본의 욱일기는 왜 전범기가 되지 못했던 걸까?
일본 국기는 1870년에 공식적으로 지정됐다. 이때 우리가 아는 ‘일장기’가 만들어졌고, 일본 육군은 이때부터 일장기에 욱광(旭光 : 붉은 점에서 퍼져나가는 선)을 넣은 ‘욱일기’를 자신들의 군기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1889년 일본 해군도 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욱일기가 일본 제국군의 군기로 사용됐다.
하켄크로이츠는 나치당의 상징이었고, 전쟁범죄의 증거였다. 전후 독일은 철저한(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나치 청산을 하기 위해 반나치 법을 통해서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제한했다.
(독일 형법 제86조를 보면,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금지항목은 나와 있지 않지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는 단체, 조직의 상징물들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놨다. 하켄크로이츠는 당연히 1순위로 금지됐다. 덤으로 SS문양이나 돌격대 문양, 히틀러 유겐트 문양 등등 나치의 유산이나 상징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문제는 일본인데, 일본의 ‘욱일기’의 경우 하켄크로이츠 같은 상징성이 없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다. 하켄크로이츠는 나치당의 상징이었지만, 욱일기는 1870년부터 사용한 단순한 ‘군기’란 말을 하는 거다. 나치는 인종 청소와 같은 전쟁범죄를 저질렀기에 그 상징이 되는 하켄크로이츠를 전범기로 지정하는 건 맞지만, 욱일기는 군인들이 들고 다녔을 뿐 어떤 문제도 없다는 주장인 거다.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일본의 전범 재판이 너무 약했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된 이는 불과 7명뿐이고, 이중 실제로 집행된 이는 4명 뿐이다(2명은 형 집행 전에 사망했고, 1명은 소추면제됐다).
제대로 된 처단이 없었기에 전범들은 스리슬쩍 다시 일본 권력층으로 복귀하게 됐고(츠지 마사노부 같은 경우에는 전범 시효가 풀릴 때까지 도망 다니다 시효가 풀리자 곧바로 등장.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때마침 터진 6.25 한국전쟁으로 제대로 된 처벌을 기대하는 건 아예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자위대에서는 또 다시 욱일기를 군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일본 내에서 욱일기의 공식적인 지위는 그냥 ‘군기’일 뿐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욱일기가 전범기인 게 맞지만, 일본 입장에선(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일부 서양인들 입장에선) 욱일기로 논란이 생기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거다.
때 되면 터지는 욱일기 논란의 핵심은,
“우리에게 전범기로 보이기 때문.”
이다. 결국은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식시키고, 이걸 하켄크로이츠처럼 법적으로 ‘전범기’로 규정해야지만 해결될 문제란 소리다. 그런데 이걸 일본이 할까?
독일의 경우에는 전후에 철저한 반성과 사과가 있었고, 제도적으로 나치와 같은 극우주의 집단이 등장하지 않도록 법적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그런 과정이 생략됐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나온 거다.
결국 시작부터 꼬인 거다.
때 되면 불거져 나오는 욱일기 관련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일본이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정하고, 이걸 독일의 그것처럼 제도적으로 막는 수밖에 없다(우리를 비롯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침략을 겪은 이들의 감정을 무마시킬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일본이라면... 요원한 일일 것이다.
추천
» 해상자위대 욱일기 논란 : 욱일기 논란은 왜 지속될 수밖에 없는가 펜더추천
[사회]막걸리 블라인드 테스트는 가능한가 : 막걸리 걸치고 공중부양 무성한그곳추천
[시사변두리]이슈vs이빨 - 심재철에게 회군이란 무엇인가 마사오추천
[잔혹사]개발자 오블라디 오블라다2-7 : 하드코어 인생이여 잘 있거라 (上)-2 BLV추천
[산하칼럼]똘똘한 젊은이가 탐욕의 늙은이로 산하추천
[잔혹사]개발자 오블라디 오블라다2-7 : 하드코어 인생이여 잘 있거라 (上)-1 BLV추천
[시사변두리]이슈vs이빨 - 자한당을 위한 천기누설, 조선일보의 적은 조선일보 마사오추천
9월 평양공동선언 전격 분석 3 : 최고의 교섭자 그리고 바보같은 어느 원내대표 펜더추천
직선거리 195km, 서울에서 평양 가는 6가지 방법 빵꾼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는 검색이 금지된 단어입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