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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대학원 공부를 할 때였다. 유럽과 사회라는 과목을 수강했는데, 교수가 토론을 해 보자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21세기, 유럽 포함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될 만한 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리고, 10가지 보기를 제시했다. 1.교육, 2.부익부 빈익빈, 3.성(Gender), 4.재난/재해, 5.기후변화, 6.인구, 7.전쟁(군), 8.종교, 9. 도덕, 10. 자원

 

시간이 꽤 지났지만, 저 10가지 보기를 순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토론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한국에서 정답을 맞추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10가지 보기를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기에 제시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는 단어가 뭘까를 유추던 중 최종적으로 ‘인구’를 답으로 선정을 했다. 모든 주제가 결국 인간과 관련된 것이니 답은 인간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발상이다.

 

자신 있게 6번 인구! 라고 답했다. 이유로는 “결국 모든 문제가 인구 문제로 종결되기 때문에.…” 라는 짤막한 답변을 했는데, 고개를 갸우뚱 하며 덥수룩한 수염을 한 번 쓸어 내리던 교수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교수는 다른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각자의 주장을 펼쳤고 나름대로 심도 있게 토론이 진행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온 학생들은 재난/재해를 유난히도 강조했는데, 확실히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긴 받나 보다 싶었다. 교수는 수업 말미가 되어서야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는 향후 100년간 ‘성’(Gender) 문제가 지구촌의 가장 주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인류 역사는 늘 남성 위주였기 때문에 여성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인권은 약자 인권의 지표로 인식되는데, 보통 여성인권이 잘 지켜지는 나라는 장애인, 아동, 동물 보호 또한 잘 되고 있지만, ‘성’(Gender)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여성들의 인권 뿐만 아니라 약자에 대한 배려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이는 인구와 함께, 출산,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되는 문제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식 억양에 익숙한 한국인이었던 터라 ‘브리티시 악센트’에 적응중이었는데도 이 답변만은 귀에 쏙 들어왔었다. 교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가 말하는 이유도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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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유학을 시작할 무렵인 200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 ‘성’(Gender)문제는 그리 큰 사회적 이슈가 아니었다. 요즘에는 페미니즘이나 성평등과 같은 단어들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해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것이 논쟁이 될 만한 주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해 제2의 경제공황이 오는 건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고, 4대강 사업 등으로 국내외적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많았던 터라 성 문제는 범죄가 아닌 이상,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요즘 교수가 했던 말이 자주 생각 난다. 특히, 최근 들어 인터넷 상에서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이 자극적 혐오 표현으로 성대결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우리 나라가 성 문제에 대해 둔감한 면이 있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이 불공평에서 출발한다는 교수의 전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가 ‘성’(Gender)이라는 건 매우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개, 고양이, 그리고 남자

 

아내와 함께 유학을 시작했고, 먼저 석사과정에 입학한 아내를 위해 영국의 지방 도시에서 거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국의 중소도시는 해가 지거나 저녁시간만 돼도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따금씩 라이트를 번쩍이며 돌아다니는 차를 제외하고는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상점도 일찍 닫고 유일한 이동수단인 버스도 한 시간에 한 두대만 운행되는데, 그나마 6시 이후에는 잘 다니지도 않는다. 24시간 찜질방과 편의점을 경험하고 유학을 갔을 때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저녁 문화였다.

 

어느 날, 늦은 시간까지 수업이 있던 아내를 만나기 위해 기숙사를 나섰다. 일반 기숙사는 학교와 도서관이나 강의동과 가까웠는데, 가족기숙사는 도서관과 거리가 있어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보통 아내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있다가 학교에서 운행하는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고 귀가했는데, 그때를 기다렸다가 함께 기숙사로 돌아오기 위해서 학교로 향했다. 한산한 버스 정류장.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일찍 나섰던 터라 급할 것도 없었지만, 정해진 시간이 돼도 오지 않았던 버스를 10분 넘게 기다리니 마음이 초조했다. 이윽고 멀리서 보이는 불빛. 드디어 타야 할 버스와 마주쳤다.

 

그런데,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버스를 따라 뛰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버스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앞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어보았지만 어림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정면을 주시하며 지나쳐 가버리던 기사의 얼굴과 표정도 기억에 있다. 당시 너무 약이 올라 달려가는 버스를 향해 “야~~~ XXX야!”라고 소리쳤던 기억도 있다. 분명히 뛰는게 사이드 미러로 보였을 텐데, 인적도 드문 곳에서 그렇게 무시하고 가버리다니. 

 

그날 돌아오면서 겪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내도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의 경험담은 내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내가 말하길, 혹시 딴짓하다 버스를 못봐 지나쳐도 손만 들면 바로 세워준다는 것이었다. 멀리서 뛰어오는 모습을 보고 버스정류장에 서서 한 없이 기다려주던 경험도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영국 사람들과 만나 식사를 하면 빠지지 않는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영국시골버스사건’이었다. 당시 버스를놓친 사건을 얘기를 할 때면, 우스갯소리로 다들 비슷한 말을 했다.

 

“헤이 브라이언, 너 아직 모르나 본데 영국에는 서열이 존재해. 첫 번째는 여자, 두 번째는 어린 아이, 세번째는 노인, 그리고 개, 고양이, 그 다음이 남자야. 넌 맨 마지막이야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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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말하는 페미니즘(Feminism)이란

 

사회학이 발달되기 전까지, 서구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때문에 사회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혹은 사회를 얼마나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보다는, 존재와 지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노동의 착취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장한 사회학은 사회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왜 인간은 사회의 통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사회학 이론이 발달되기 시작한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어 온 사회 속의 불평등이 원인이었는데, 사회학은 사회와 인간 행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지배/피지배층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사회 구조를 파악하고 이러한 사회 속 계층 간의 갈등과 권력의 구조를 탐구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그렇게 역사를 파헤치다 보니, 그동안 여성들의 목소리가 유독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전쟁 역사만 하더라도 승리자의 관점에서 역사가 기술되어 오지 않았던가. 육체적으로 약자였던 여성은 인류역사에서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그 결과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된 역사가 남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영국도 처음부터 여성들의 목소리를 존중해 주는 사회는 아니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언급했던 바와 같이, 영국도 남성중심 사회였다. 그래서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성적 대상, 혹은 가정부나 어머니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분석과 같이 ‘성’은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역할의 ‘성’(Gender)의 전환을 필요로 했고 영국은 이러한 사회적 부응에 발을 맞춘 것이다. 영국에서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를 찾는데 있어 아주 기본적인 단계인, ‘눈’을 제공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다. 영국에서 학위 과정을 마무리 하며 논문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 필자가 어떠한 관점을 가졌는가 인데, 다양한 관점 중 페미니즘도 그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는 것과 같다.

 

‘페미니즘’이 뭔가 대단한 담론인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단지,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시각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국에서 일명 ‘페미’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혐오가 생기게 된 것도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남성중심사회 속에서의 남녀불평등에 대한 보상을 ‘페미니즘’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역차별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을 호소하며 ‘페미니즘’을 또 다른 차별주의 정도로 여기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말 그대로 ‘~이즘’(~ism)이다. 즉, 사물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차원의 접근법이자 인식론 중 하나일 뿐이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시장경제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있다. 이때,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정책을 실현하며 시장에 끼어드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제도주의의 경우는 자율에 맡겨진 시장 경제를 인간의 자율에 맡기면, 자본 앞에 도덕이 상실된 인간이 결국 부자를 부자되게, 가난한 자를 계속 가난하게 둘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와 양극화 등이 완화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도를 통해 시장을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현상에 대한 분석, 해석, 해법도 다르게 제시한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여러 관점이 그러하듯, ‘실재’(Reality)를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태도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이란 남성의 시각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시각도 함께 존중되는 것, 남성의 눈으로 보여지는 부분 이외에도 여성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단순히 성평등(Gender Equality)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여성이 차별의 대상이었음을 인정하고 알게 모르게 사회문화 조직 곳곳에 심어져 있는 차별적 요소들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것, 또 이들의 인권을 성장시키고 여성의 시각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영국에서 언급되어지는 ‘페미니즘’은 단순히 단어의 대립을 통해 보여지는, 예컨대, ‘정치인/ 여성정치인.’, ‘대표/여성대표’ 등의 표현으로 ‘여성’을 강조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를 인간의 ‘기본 모델’(정치인)로, 여자는 ‘이탈’(여성 정치인)로 간주했던, 그래서 여성을 문화적 소수로 양식화 했던 과거 모델을 극복하고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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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고양이, 그리고 남자는 실재하나

 

“개, 고양이 다음이 남자”라는 말은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통용된다. 실제로 영국 남자들은 이 얘기를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인다. 또 이를 "불공평하다"느니 "개, 고양이보다 못하다니", 하면서 불평을 늘어 놓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렇게 말한다 해도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물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여전히 남성들이 사회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성별에 따른 오랜 차별의 문화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영국의 공영방송 BBC(The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는 소속 방송인들의 연봉을 공개하면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남성과 여성의 연봉 차이가 여전히 확연히 차이가 있다고. (관련기사 - 링크)

 

이와 관련 영국 총리가 유감을 표시하고 수 많은 BBC방송인들 중 여성들이 집단으로 항의했다. BBC 간판 여성 라디오 진행자는 사표까지 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아직 없다. 정치는 어떠한가. 여성이 총리지만, 의회의 성비는 남성이 훨씬 높다.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남자가 개, 고양이 다음이라고 외쳐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의 권리를 더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합리적이며 남성들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고

 

영국도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노동력 착취의 1순위가 여자와 어린아이였고, 20시간 동안 기계처럼 일을 해야 하는, 인권이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다름에 대한 인정과 약자에 대한 배려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이후 이들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왕족이 존재하고 그에 따른 계층과 계급이 뚜렷하게 구분되어진 사회적 모순이 있다. 선구적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계층이 뚜렷한 사회구조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고, 생각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성’(Gender)에 대한 의식과 ‘여성’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태도’는 충분히 수용할 가치가 있다. 

 

과거 유럽의 경우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여, 종교적 바탕의 존재론적 인식론이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사용된 주된 방법이었다. 인간의 시각과 틀을 정해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국가를 통치하는 기반이었던 종교가 권력과 함께 부패함에 따라 종교는 개혁의 요청을 받았고, 이후 시작된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각종 ‘이데올로기’(Ideology)의 등장은 인간의 인식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었고, 새로운 ‘눈’을 갖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영국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혐오 표현을 앞세운 성 대결이 지나칠 정도로 발전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인정하자는 인식론 차원의 페미니즘은 거대한 담론 혹은 추상적인, 고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상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또한 여성의 시각도 인정해야 한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균형 잡힌 사회로 발돋움 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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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 BRYAN은 주영한국대사관 내 성폭력 사건을 폭로한 이후 2년째 재판 중이다.

많은 참여와 응원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