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주요 이슈들의 핵심을 날카롭게 비껴 가 겉핥기식으로 대충 들여다보는 <시사변두리-이슈VS.이빨>, 10월 셋째 주 이슈들을 살펴보자.
좌빨의 장외홈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로 홈런을 쳤다. 이번 국감 시즌에서 가장 큰 장외홈런이 아닌가 싶다. 박 의원 측이 공개한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비리 내용도 참으로 버라이어티하다. 명품백과 성인용품이 나란히 등장한 걸로 봐서 이제 우리나라도 성 문화가 예전보단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마사오닷컴’은 옳았다. 다만 시대를 앞서갔을 뿐.
암튼 온 국민의 공분을 사자 해당 비리 사립유치원 측은 반격에 나섰다. <한겨레>가 입수한 충남 지역 비리 유치원 측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좌파 국회의원 그리고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가 공모해 국감 기간 사립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모는 노이즈마케팅’이라 주장했다 한다. ㅈ..좌파다, 좌파!! 하면 학부모들이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 줄 알았나 보다.
신연희의 그랜드슬램
좀 많이 지난 이슈지만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월 16일,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은 업무상횡령 등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신 전 구청장은 부하직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격려금과 포상금 등 총 9천3백만 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등 공무원을 동원해 비자금을 조직적으로 조성했으며 자신의 제부를 강남구청 위탁 요영병원에 취업 청탁한 직권 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었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유용'이라 함은, 동문회 회비, 지인 경조사, 명절 선물 구입, 정치인 후원, 화장품 구입 등 이라고 한다. 아니, 공산주의자도 아닌 분이, 자유시장경제를 그렇게 받드시는 분께서 어쩌다 니 돈, 내 돈, 나랏 돈 구분을 못 하게 됐을까. 미스터리다.
이언주 어린이의 반공웅변대회
지난 10월 9일, 이언주 어린이가 자신의 SNS에 반공웅변대회 원고를 올려서 화제가 되었다.
이언주 어린이는 ‘‘10.4 방북’의 목표는 보수 타파, 국보법 폐지?’ 라는 제목의 <뉴데일리> 기사 (뉴데일리... 잠깐만, 이 타이밍구에서 나 눈물 좀 닦고...)를 링크 걸고선 “이해찬을 비롯한 민주당 집권세력은 북한의 김정은 3대 세습 공산 독재정권이 동지이고 남한의 보수가 주적인 모양”이라며 “시대착오적 좌파들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놓아 부르짖어 많은 애국 어르신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10월 5일 평양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에서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 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대한민국 주류가 바뀌고 있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빨갱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때는, 그러니까 부모자식, 형제지간에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 죽고 죽인 시대에, ‘빨갱이’라는 단어는 즉 ‘죽음’을 뜻했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걸리적거리는 사람을, 단체를 ‘빨갱이’라 딱지 붙이고 죽였다. 월급 올려달랬다고 죽이고, 노조 만들었다고 죽였다.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죽였다. 이건 그저 비유나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죽였다. 이번 행안위 국감에 나선 민주당 홍익표 의원에 따르면, 간첩 사건을 조작해서 훈장뿐 아니라 자녀가 공무원 특채 혜택을 받은 사례까지 등장했다. 간첩은 로또다. 진짜 잡으려면 어마무시한 운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너가 로또 1등 당첨번호를 조작할 수 있다면, 조작하겠냐, 안 하겠냐. 다시 말하지만, ‘빨갱이’란 누구에겐 ‘죽음’이고, 누구에겐 ‘로또’였던 것이다. 어느 쪽이거나 정상은 아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사이렌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동네 슈퍼로 내달려 라면을 박스떼기로 사고 김정일이 죽으면 편의점에서 부탄가스가 동나던 시절. 우린 그렇게 살았다. 그런 시대엔, 누군가를 ‘빨갱이’라 딱지 붙일 권한이 있는 자가 오야다. ‘빨갱이 딱지’라는 도깨비방망이는 천하무적이었고 그렇게 하세월 소위 주류는 모든 이익을 독식했다. 그리고 2000년 6월 13일에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도깨비방망이에 금이 갔다. 물론 그 전에, 그러니까 1998년 총풍 사건이 터지며 살짝 실금이 가긴 했다. 도깨비방망이를 부러뜨리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며 10.4 공동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도깨비방망이를 두 손에 틀어쥔 자들은 그 엄청난 먼치킨 레어템이 날아가는 걸 두 눈 멀쩡히 뜨고 두고만 볼 리 없었다. 그렇게 남북은 다시 대결국면으로 돌아섰고 개성공단은 폐쇄되었으며 다시 ‘빨갱이 사냥’의 시대가 돌아온 듯했다. 그리고 이차저차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2018년 한해만 무려 세 차례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비무장지대는 지뢰제거 작업 등 글자 그대로 비무장 지대가 되고 있으며 남북 철도를 연결하기 위한 현장 조사까지 실시되고 있다. 더 이상 지하철에 숨고, 방공호에 숨고, 부탄가스와 라면을 박스 채 사재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에 이르렀다. 도깨비방망이에 금이 쩍쩍 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사실 그들에게 ‘빨갱이’라는 도깨비방망이만 있었던 건 아니다. ‘경제는 보수’라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방망이 또한 존재했더랬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가 그것이다. 허나, 1997년 IMF 사태로 약빨이 예전 같지 않아진 게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은,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무난히 빠져나온 것을 업적 중 하나로 내세우는데 그게 어디 지들이 잘해서인가. 전임 정권이 노무현이었던 게 지들의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던 게지.
MBC 전 기자인 김세의가 MBC 재직 시절 인터뷰를 조작한 것이 들통났단다. 자신의 무능을 감추는 길은 태극기 뒤로 숨는 거였다. 신연희 전 강남구청장 재임 시절에 강남대로변은 난데없는 태극기와 애국 구호 포스터로 도배가 됐더랬다. 웬 팔푼이는 남북 평화 체제가 자리 잡으려면 국내 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상식적인 발언에 뉴데일리 기사를 가져다 흔들며 동을 뜬다. 비리 사립유치원장은 ‘좌파 국회의원과 좌파 시민단체’ 운운하며 자신의 비리를 덮어보려 용을 쓴다.
부정부패는 무능의 다른 이름이다.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뒷돈을 찌르고 눈 먼 돈에 목을 맨다. 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못난 놈의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비리는 공동체를 좀먹는다. 실력 있는 놈은 뒤로 밀리고 무능한 놈이 자리에 올라 설치니 나라 꼬라지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그렇게 자원은 낭비되고 헛지랄로 밤을 샌다. 머리 틀어 올리고 드라마 보길 좋아했던 무능한 지도자가 나라를 얼마나 바닥까지 처발랐는지 똑똑히 보지 않았나. 무능함을 태극기로 가렸다. 국정교과서라는 태극기로 가리고, 인천상륙작전이라는 태극기로 가리고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라는 태극기로 가리느라 밤에 잠 한 숨 못자서 집무실로 출근도 안했다. 한동안은 잘 덮였다. (아 씨바 글구보니, 태극기가 무슨 죄냐) 하지만 이제 ‘경제는 보수’와 ‘안보는 보수’라는 도깨비방망이가 여지없이 깨지고 있다. 헛방망이인 것을 들켜 버렸다. 그래서 비리 사립유치원장의 ‘좌파 운운’ 편지가 난 더 없이 반갑다.
대한민국 주류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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