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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두발을 내딛은 이래, 인류는 세상만사에 물음표를 붙여 왔다. 이 돌을 갈면 어떻게 될까? 열매를 심어볼까? 이 빨갛고 따뜻한 건 뭐지? 여기에 고기를 넣어볼까? 등등.. 

 

그 질문 덕분에 우리는 어제보다 등따숩고 배부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나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이, 그 호기심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원동력이 됐다는 말이다. 나는 여기에 거짓말을 조금 보태 이렇게 외쳐보련다.

 

 “인간 역사란 곧 호기심의 역사다!”

 

질문이란 호기심에서 발현된 신성하고도 순수한 행위다. 그러므로, 모든 질문은 본질적으로 옳다.

 

그러나 변x재의 질문과 손석희의 질문이 그러하듯, 질문에도 급이 있다. 남들도 다 하는 뻔한 질문은 하수나 하는 것이다. 모양 빠지니 우리는 그런 거 안 한다.

 

자타공인 민족정론지인 본지는 다른 언론들이 언론입네 기자네 뻐기고 가오 잡느라 거들떠보지 않았던 질문들을 전담마크 해볼까 한다.

 

사소하다 못해 하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것, 상스럽고 경박해 차마 취재 대상으로 삼지 못했던 것, 굳이 그것까지 알 필요 있을까 하며 고개를 한 번 갸우뚱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의 타겟이다.

 

이름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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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아이의 탄생

 

때는 바야흐로 1999년. 초딩이었던 내 용돈은 일주일에 1000원이었다. 아무리 물가가 쌌던 시절이라고 한들, 떡볶이와 피카츄 돈까스, 자갈치를 원하는 만큼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그러나 한낱 배고픔 따위. 엄마가 해주는 밥이 있으니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정작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었으니...

 

당시 우리 초등학교엔 미니카가 유행이었다. 아니, 유행 정도가 아니라 광풍이었다. 우리는 미니카를 위해 태어난 아이들인 것마냥 미니카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학교에 갔고, 미니카 미니카.. 중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복도에선 챔스 결승에 버금가는 경기가 매일매일 열렸다. 문방구 앞 미니카 트랙 앞에 서면 두 세시간은 우스웠다.

 

공부엔 관심도 없던 아이들이 <우리는 챔피언>을 인강 삼아 공기저항이니, 무게중심이니, 마찰력이니 하는 것들을 배우고, 심지어는 연구를 하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에이쥐 오브 미니카. 미니카의 시대였다.

 

문제는, 내게 미니카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니카 한 대 가격은 무려 5000원. 5주일 치 용돈을 모아야 살까 말까 고민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당시의 내겐 돈을 모을만한 끈기도 근성도 없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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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뽑기다. 한판에 100원인 뽑기의 1등 상품이 미니카였던 것이다. 초딩이었던 나는 한탕 해먹기 위해 돈이 생길 때마다 문방구를 찾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뽑기를 뜯었을지언정, 심정만은 마지막 패를 까는 고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결론은 항상 꽝이었긴 했지만.

 

그렇게 미니카 노름꾼으로 살아가길 몇 달, <우리는 챔피언>이 끝나고 미니카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다른 유행이 그렇듯 미니카 유행도 지나가 버렸지만, 내게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았다. 

 

 ‘그 뽑기에 정말 1등이 있었을까?’

 

나를 포함, 수많은 초딩들이 종이 뽑기를 뜯었지만 미니카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의문이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고백이지만, 뽑기로 동심과 순수를 잃고 삐딱한 어린이가 된 나는 한발 더 나아가, 문방구 대머리 아저씨가 1등을 미리 뜯어버린 것 같다는 불순한 생각을 남몰래 하기까지 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인생의 쓴맛 짠맛을 맛보게 한 뽑기, 순수 그 자체였던 내 영혼을 타락시킨 뽑기의 진실을 밝혀야 할 업보가 내게는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까지 알고 싶다> 첫 타겟은 '문방구 뽑기' 되시겠다.

 

 

문방구 뽑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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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너구리를 잡으려면 농심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뭐든 본진을 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뽑기의 본진은 어디일까? 뽑기 만드는 곳이다. 뽑기를 만드는 곳은 어디에 있나? 모른다. 알려지지 않았다. 누구도 뽑기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았기에, 이 영역 만큼은 아직도 검푸른 심해와 같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단 하나. 뽑기를 하려면 문방구에 가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문방구 탐방을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문방구 찾는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문방구의 유일무이한 고객인 초딩들이 가장 많은 곳, 초등학교 정문으로 가면 된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A 초등학교. 학교가 대로변에 있는 탓에 문방구는 찾을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B 초등학교. 학교 바로 앞에 작은 문방구가 있었지만 종이 뽑기는 없었다. 

 

세 번째는 골목 앞 C 초등학교. 교문 앞에 한눈에 봐도 20년은 더 됐을 것 같은 문방구가 있었다. 게다가 입구엔 연식이 상당해 보이는 뽑기 기계가 있었다! 

 

여기라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종이 뽑기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문방구에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포켓몬카드(아마도?)를 구경하던 초3쯤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나를 힐끔힐끔 째려보며 경계했다. 자신들의 나와바리에 침입한 내가 몹시도 불쾌하다는 듯이. 물론 나도 꿀릴 건 없었지만, 어쩐지 오면 안 되는 곳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문방구는 4평 남짓한 작은 규모였는데, 할머니 혼자 카운터에 앉아 계셨다. 방금 초딩과의 나와바리 다툼도 있었고, 어쩐지 바로 뽑기를 사러 왔다고 하면 없어 보일 것 같아, 조카 학용품 보러 온 삼촌으로 위장, 4평밖에 안 되는 문방구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이걸 발견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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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2018년판 종이뽑기. 한눈에 봐도 내가 초딩 때 뽑던 것과는 달랐다. 마빡 이미지(?)가 커졌고, 영역 구분도 명확해지는 등 전반적으로 새련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한판에 무려 500원(!)이 되었다. 가격에 비례해 상품도 좋아졌는데, 꽝에 해당하는 것이 '미니아이돌톱스타사진4장'으로, 내가 받았던 바나나빵에 비하면 훨 좋아져 있었다.

 

제작사를 찾아보려 앞판 뒤판을 요리조리 뒤벼봐도 아무런 정보도 나와있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고 해도 딱히 틑린 말은 아니었기에, 용기내 물었다. 

 

 "저어.. 이 뽑기요. 혹시 직접 만드시는 건가요?"

 

 “아뇨. 가져오는 거에요.”

 

 "어디서요?

 

 “창신동에서요.”

 

걱정과 달리 할머니께서는 '너 같은 잉여들 많이 봤다'는 표정으로 쿨하게 답해주셨다. 창신동에서 가져왔다고. 창신동이라면 장난감 천국이라는, 완구거리의 그 창신동 아닌가!

 

이거 의외로 취재가 쉽게 끝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창신동으로 떠났다.

 

 

창신동 의문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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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창신동은 한산했다. 역시 이 시간에 이러고 있을 잉여력 충만한 언론은 본지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창신동엔 대략 30여개의 문구 도소매점이 있었는데, 명성대로 거의 모든 종류의 장난감을 팔고 있었다. 다만 창신동 거리를 두 바퀴나 돌았음에도 뽑기는 찾을 수 없어, 이 미지의 산업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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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를 창신동 곰돌이

 

이럴 땐 역시 정공법. 입구부터 한 곳 한 곳 뽑기를 파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30여 개의 문구점 전수조사 결과, 종이 뽑기를 파는 문구점은 단 한 곳이었다(파는 곳은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팔겠다고 말한 문구점은 하나).

 

다시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용기를 끌어 올려 사장님께 물어봤다.

 

 "사장님, 이 뽑기는 직접 만드시는 건가요?"

 

 "아뇨. 받는 거에요."

 

 "아 그래요? 어디서 보내는 건가요?"

 

 "몰라요."

 

 "네??"

 

 "그냥 가끔 와서 주고 가는 거라, 우리도 몰라요."

 

아니, 판매하는 사장님이 그걸 모르신다니.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이건 필시 모르는 게 아니라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하긴, 그럴 수 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거래처를 알려달라니. 옛날 같았음 소금을 한 되 맞아도 할 말 없는 상황아닌가. 혹시 매출을 올려주면 생각이 달라지실까 싶어 뽑기를 하나 사봤다. 역시 모른다고 했다. 밥 먹고 5시간 뒤에 다시 찾아갔다. 모른다고 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 다다음 날까지 3일을 내리 찾아가 물어도 답은 같았다. 

 

"가끔씩 와서 뽑기만 놓고 가는 분이 있어요. 누군지는 몰라요."

 

그.. 그런가. 이쯤 되면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더 사장님을 찾아갔다간 "그만 좀 개로피십시오"라 하실 것 같아, 혹시 찾아오시거든 꼭 연락해 달라고 말하고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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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밝힐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창신동 완구거리를 쓸쓸히 빠져나오며, 나는 깊은 실의에 빠졌다.

 

대체 뽑기만 덜렁 놓고 간다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그는 누구인가.

 

문구의 천국, 창신동에서도 뽑기의 비밀을 밝힐 수 없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뜻밖의 나까마 그리고.. 

 

창신동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본 뒤에도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뽑기.. 뽑기.. 생각에, 일주일에 4번만 지각하던, 딴지 편집부 역사상 가장 건실했던 내가 5번 지각하는 나락에 빠질 정도였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문방구를 돌았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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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친구, 나의 친구, 천만 서울 시민의 친구 따릉이와 함께했다. 도장깨듯 10군데가 넘는 문방구를 탐방했으나, 수확은 없었다. 뽑기가 없는 문방구도 더러 있었고, 있어도 "왜 그런 걸 묻느냐", "잘 모른다"며 알려주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나도 울고 따릉이도 울던 그때, 은평구 모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발견했다. 다행히 뽑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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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이 뽑기 직접 만드시는 건가요?"

 

 "왜요? 가져와요"

 

 "아.. 그냥 궁금해서요. 어디서 가져오는 건가요?"

 

경계심 많은 문방구 주인과 이야기하던 그때, 옆에서 공책을 정리하던 아저씨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가 가져오는 사람인디?"

 

 "!!!!"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한 줄기 빛이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아저씨를 붙잡고 이것 저것 물었다. 그는 작은 봉고를 몰며 문방구에 물건을 납품한다고 했다. 업계 용어로는 나까마. 중간 유통업자인 셈이다. 그는 뽑기는 누가 만드는 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도 도매에서 가져만 오니까 잘 몰라. 떠도는 소문에는 한 명이 만든다고 하던데? 특허도 있다 하더만."

 

특허를 가진 의문의 한 사람. 문방구 유통업을 하는 그가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 도매업자를 알려달라 하니 거래처라 곤란하다며, 대신 명함을 전해주겠다고 했다. 명함을 건넨 후 자리를 떴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탐험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뽑기 특허를 가진 한 사람. 베일에 쌓인 뽑기 제작자. 그는 누구인가. '김씨 아저씨 찾기' 정도로 가볍게 시작한 취재였는데, 지금은 흡사 프리메이슨을 쫒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렇게,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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