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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 시집을 왔더니 5개월 만에 과부가 된 왕녀. 낙동강, 아니 템즈강 오리알이 된 캐서린에게 죽은 남편이 남긴 것은 사상 최악의 시아버지였다. 스페인 왕실은 귀한 딸자식을 되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우리 딸 돌려보내야지? 배편은 우리가 준비해서 보낼까?"

 

신부를 돌려보낼 때는 지참금도 그대로 토해내는 게 원칙이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수전노 헨리 7세가 포기하겠는가?

 

"아니 남편이 죽었다고 고향에 쌩하고 가버리는 건 너무 쌀쌀맞지 않아? 사람이 정이라는 게 있어야지... 에스빠뇰이 초코파이 한 개도 줄 줄 모르는 뭐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거야?"

 

"야! 안 돌려보내면 어떡할 건데?"

 

"그건 천천히 생각할 일이고... 지참금을 다 안 줬는데 이거부터 해결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과부가 됐는데 뭔 지참금이여! 그거 다 완납하면, 애 데리고 올 때 그대로 정산해서 줄 거야?"

 

헨리 7세는 애초에 너무 큰 지참금을 요구했고 스페인은 혼수를 일시불로 결제하지 못했다. 자동차 할부처럼 잔액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헨리 7세는 캐서린을 볼모로 남은 금액을 국물 한 방울까지 뜯어내려고 했다. 너네 딸이 우리에게 있는 한 너희는 돈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캐서린은 돈을 뽑아내기 위한 인질 신세를 7년 동안이나 견뎌야 했다. 헨리 7세가 누군가. 마른 오징어도 짜내면 물이 나온다는 신념의 소유자다. 다시 말해 국물을 뽑아내려면 짜내야 한다. 그는 부모의 마음을 괴롭게 하기 위해 캐서린을 괴롭히기로 했다. 헨리 7세는 비겁하게도 캐서린에게 선언했다.

 

“이건 너의 빚이다. 너는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는 캐서린에게 가던 생활비를 끊어버렸다. 물론 절약도 하게 되니 일석이조였음은 물론이다. 캐서린은 부모님께 눈물의 편지를 써가며 불쌍한 딸이 얼마나 빈궁하게 사는지 구구절절 하소연했다. 당연히 스페인 왕실의 분노 게이지는 올라갔지만 화만 삭일 수밖에. 헨리 7세는 전 유럽의 비난을 받았지만 애초에 명예 따위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생활 지원금이 도착해봐야 외환관리니 세금이니 하는 핑계로 헨리 7세의 지갑만 불어났다.

 

캐서린은 스페인에서 가져온 패물을 팔아 근근이 먹고살았지만 그것도 금방 바닥났다. 고국에서부터 따라온 시녀들은 수입을 위해 밖에 나가 빨래, 청소 등 허드렛일을 했다. 시녀들이 바깥양반(?)이 됐으니 집안일은 남은 캐서린의 몫이었다. 고귀한 왕녀 캐서린은 바느질 등 가사노동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스페인 왕실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야 이 미친 스크루지야. 너 같은 것도 왕이냐! 우리 딸 어떡할 거야!"

 

"글쎄 둘째인 헨리와 재혼을 시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건 니들 하는 거 봐서...“

 

그렇다. 헨리 7세는 혼수를 토해내기 아까워 큰며느리를 작은며느리로 리모델링하겠다는 발상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이쯤 되면 스페인 왕실은 경악을 넘어 해탈할 지경이다. 헨리 7세의 인간성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왕 뜯긴 지참금, 그렇게 해서 동맹이나 유지되면 그것도 다행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캐서린에게는 불행하게도, 고국의 왕실은 그녀를 죽은 자식인 셈 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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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왕세자의 마음은 두근두근 달뜨고 말았다. 헨리는 원래부터도 연상의 형수에게 반해있었다. 그의 인격이 형성되는 성장기는 캐서린이 가장 아름다울 때였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운의 여인일 때였다. 아름다운 형수님...

 

'이제는 내가 왕세자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을 내가 차지할 수 있다. 내가 구원할 수 있다.'

 

차지와 구원은, 결국 같은 말이다.

 

중세 기사도 문학에 심취해 있었던 헨리는 스스로를 낭만적인 기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헨리의 마음속에서 캐서린은 탑에 갇힌 공주, 아버지 헨리 7세는 공주를 감금한 사악한 용이었다. 그는 캐서린을 멋지게 구원해주는 중세 기사를 꿈꿨다.

 

여기에 더해, 헨리 7세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매력 포인트가 없잖은가. 백성들 입장에서는 외국에 내놓으면 좀 창피한 구두쇠 왕이었다. 항상 궁정에 틀어박혀 가계부를 쓰는 왕. 이런 왕은 국익에 도움은 되도 매력적인 가십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패리스 힐튼이 괜히 셀럽이 아니다.

 

튜더 왕가를 보면 한결같이 자식이 아버지와 정반대의 인물이 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헨리 왕세자가 중세 기사도에 심취한 것도 어쩌면 아버지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형이 용맹한 기사여서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비운의 형수를 구원하고 그녀에게 행복과 영광을 주겠노라는 욕망 역시, 절대권력자인 아버지에게 품은 반항심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을 것이리라. 자신을 향한 시숙의 마음을 캐서린이라고 모를까.

 

캐서린의 마음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헨리에게 점점 기울었다. 헨리가 자신과 결혼만 해준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템즈강 오리알 신세로 이 여인의 심신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녀도 헨리처럼 자신을 탑에 감금된 미녀로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신앙심 깊은 그녀는 매일같이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신 뿐 아니라, 죽은 남편의 동생을 위해서도...

 

1503년, 헨리 7세에게 비극이 일어났다. 왕비 엘리자베스가 딸을 낳다가 둘 다 사망하고 만 것이다. 이럴 때 좀 오래 애도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으련만, 헨리 7세는 후아나라는 여성에게 덜컥 청혼했다. 후아나는 누구인가? 며느리 캐서린의 친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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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여왕 후아나는 미녀였고 남편 필립도 미남으로 유명했다. 둘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화근이었다. 후아나는 필립이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그러잖아도 조울증이 있었지만 스페인을 통치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남편을 잃자 통제불능의 광인이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미친 여왕을 유폐했다. 바로 이 후아나와 결혼하자고 한 것이다.

 

사리판단 못하는 여왕을 와이프로 붙잡아두고 지참금부터 스페인 영토까지 쪽쪽 빨아먹으려는 속셈인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헨리 7세 입장에서야 되면 장땡, 안 되면 그만이었다. 그는 명예 따위 모르는 인간이다. 금전적 손해가 아닌 건 손해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의 언니와 재혼을 하려고 하다니... 유럽에 근친혼이 많다지만 이 정도를 용인하는 문화는 없었다.

 

"와 저게 사람이냐."

 

"튜더 집안 근본 없다, 근본 없다 하더니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네그려."

 

"튜더 아웃!"

 

청혼 사건은 유럽에서 대망신거리가 되었다. 왕세자 헨리는 아버지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캐서린의 능욕감도 대단했을 것이다. 유럽 최고의 혈통을 자랑하는 자매가 능멸을 당하고, 동생인 자신은 삯바느질을 하는 처지였으니...

 

왕세자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겠노라 결심하지 않았을까? 결심까지도 필요 없었는지 모른다. 애초에 두 부자의 기질은 정말 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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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태를 부리던 헨리 7세는 사실 죽어가고 있었다. 군주들이 많이 걸려 '제왕의 병'으로 불린 통풍 때문이었다. 그는 1509년 통풍에 의한 급성 발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왕세자 헨리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로 등극했다. 그의 나이 18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