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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잠깐 옆으로 돌려서, 우리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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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나왔던 고등학교는 Washington DC 근교 버지니아에 위치한 Thomas Jefferson High School for Science and Technology(이하 TJ)다. 공립학교이지만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입학할 수 있는 학교이고,  US News and World Reprot의 고등학교 랭킹에서 꾸준히 전국 top 10에 꼽히는 학교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과학고쯤에 해당한다. 별로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몇 년 전 하버드와 스탠포드 동시 합격했다고 사기극을 벌였던 김양 사건, 바로 그 학교이다.

 

아이가 1, 2학년을 지나면서 대학 진학 현황 자료를 보게 되었다. 대략 한 해에 Harvard, MIT에 5~6명, 다른 Ivy schools에 50여 명, 기타 소위 명문(Stanford, Caltech, U of Chicago, Duke, Carnegie Mellon 등)에 4~50명 정도로 한 해에 대략 150명 정도가 '아못사'에 들어가는 추세였다. 그리고 100명 가까운 숫자의 학생들이 University of Virginia에, 5~60명 정도가 Virginia Tech, 수십 명이 나머지 주립 대학에 분산되고,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짜배기 학교들(Olin College of Engineering, Colorado School of Mines 등)에도 수십 명이 진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의 전교생이 훌륭한 대학으로 진학한다고 보면 된다. 혹시 좀 '후지다'고 생각되는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도 두둑한 장학금 혜택을 받고 들어가는 거라 무시할 수 없다.

 

이 정보를 듣고 처음엔 이렇게 생각을 했었다.

 

 50등까지 Havard나 MIT, 150등까지 웬만한 아못사는 가는구나. 

 

2학년 때까지 우리 아이는 전과목  A를 기록하고 있었고, AP도 3개 수강했는데, 상위 50등까지는 몰라도 상위 150등 이내는 들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 고등학교엔 '석차'라는 것이 없다. 학생마다 수강 과목이 다르고 순서도 다르니 평점을 매겨 '전교 몇 등이다'는 식으로 집계하지 않는다. 물론 교사들은 자기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이 상위 몇 퍼센트인지 알고 있고, 그 내용을 추천서에 기입하지만 모든 과목 성적을 평균 내 전체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은 미국에 없다고 보면 된다. 여튼 우리 아이는 성적표에 등수가 나와있진 않았지만 대략 상위 150등 이내, 즉 '아못사'에 진학할 수 있는 수준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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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참으로 한국적인 발상이었다. 미국의 대학 입시 과정은 결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1등부터 순서대로 줄을 세워서 정해진 서열대로 진학하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대학의 서열부터가 애매모호하다. 일부 단체에서 대학 랭킹을 발표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학생 간에도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순위를 매겨서 점수대로 합격, 불합격시키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들 성적도 좋고, 똑똑해 보이고(에세이도 잘 쓰고), 시험 점수도 높다. SAT 점수가 다들 높은데 얘가 쟤보다 10점 높다고 해서 '우등'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까? 애초에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공정함'이 무엇인지 재정의를 하고, 완벽한 시스템은 불가능하다는 솔직한 인정하에 각 대학에서는 '대학 철학에 맞는' 기준을 갖고서 최대한 학생들을 선발하게 된다.

 

한번 까발려 보자. 다음이 우리 애의 스펙이다.

 

SAT 1540 (1600점 만점) - 상위 1% 안쪽의 성적임

 

SAT subject tests - math, chemistry (모두 만점)

 

GPA 4.3

 

AP 11 과목 이수 (모두 5 점. 최고점 획득. 참고로 TJ 고등학교의 AP 과목들은 수준이 장난이 아님. 대부분의 교사들이 박사 학위 소지자에, 대학 강의 경력이 있는 분들임. 나중에 들어보니 ETS 주관의 AP test는 TJ에서 하는 것에 비하면 장난이라고…)

 

Post-AP 3과목 이수 (일부 과목은 AP 과목이 pre-requisite인 경우가 있다. 즉 AP 과목을 수강해야 들을 수 있는 과목들이 있다. 얘는 Organic Chemistry, Multivariable Calculus, Electrodynamics, 이렇게 3과목을 했다)

 

전국 대회 수상 성적: Japan Bowl (일본어, 일본 문화 퀴즈 대회 : 전국 2위(2학년), 3위(3학년). 2학년 때는 부상으로 재단 초청 일본 견학까지 다녀왔음)

 

지역 대회 수상: Chemistry 무슨 대회(제목 까먹음) 워싱턴 DC 지역 1위

 

Club 활동: 연극반(Drama club) 활동을 꽤 열심히 했음. 음향 총책임자. Cappies(Critics Awards Program for high school students)에 음향 담당 2년 연속 nominate 되었음(아쉽게 수상은 실패).

 

전체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의 스펙은 갖추고 있었고, 다른 활동이나 수상 경력으로 볼 때 공부'만'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Well rounded 인재의 기본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의 스펙으로 나온 결과가 어땠을까? 우리 애는 10개 대학에 지원했다.

 

불합격 또는 waitlisted: Harvard, MIT, Yale, UPenn, Caltech, Stanford, Georgia Tech

 

합격: University of Virginia, Virginia Tech, College of William and Mary

 

여기까지 보고 아이가 전체적으로 공부는 잘했지만 아못사 학교에 합격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고 하신다면 그렇다고 인정하겠다. 하지만 주변 아못사에 합격한 케이스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일단 전체적인 전략을 잘 못 짰다는 면은 있다. 내가 미국의 대학 입시를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이번에 학부모로 경험하면서 배워 가면서 시행착오도 있었고. 다른 부모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뭐 저렇게까지 요란하게 해서 아못사를 들어가야 하나. 그냥 우리 애가 실력이 되면 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아닌 것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건 안이한 생각이었다. 아못사가 괜히 아못사냐. 아무나 못 들어가니까 아못사다. 실력만 좋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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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구체적인 부분을 보자. 아못사에 들어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어떤 면이 부족했을까? 크게 보면 차이가 없다. 다만 지엽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나고 결정적으로 '완벽한 지원서'를 내는 것에 실패했다고 보면 된다. 다른 아이들은 SAT를 두세 번 봐서 거의 만점을 만들었는데, 우리 아이는 한 번 시험 본 점수만 냈다. GPA도 상위권에는 속하나 '최고급'은 아니다. 모두 A 지만, AP 3과목에서 A를 놓쳤다(B 하나, B+하나, A- 하나). 이게 GPA를 좀 깎아 먹었다. 약간은 미련한 선택이었다. 굳이 그렇게 AP를 11개씩이나 할 필요가 없었다. 노력을 몇 배로 요하고 점수는 더럽게 안 나오는 길을 택했다는 얘기다. 다른 아이들은 AP를 5~6개만 하고도 아못사에 잘만 들어간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작전을 잘 짜고 GPA와 SAT를 가능한 최고로 완벽하게 만들어서 원서를 냈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애는 좀 무대포로 밀어붙였던 감이 있다. 무턱대고 어려운 과목만 잔뜩 들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바탕으로 뭔가 스토리를 만들어 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말이다.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우리 애는 일본어를 했고 대회 수상 경력에서도 보이듯 일본어 구사력이 꽤 있는 편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모두에서 자유자재 수준이다. 괜히 전국 대회 수상 경력이 있는 게 아니다(나와 애 엄마는 일본어 한마디 못함). 우리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일본어에 소질이 있으니. 이것이 대학입시에서 플러스가 될 줄 알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그 부분에 대해서 싸악 무시당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없으니 그저 참고만 하기 바람) 아시안계 학생이 다른 아시안계 언어를 한다는 것이 대학 입학 사정관들에게 어필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백인 학생이 일본어, 한국어 또는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한다면 놀랐을 텐데, 아시안계 학생이 독일어나 라틴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서 무슨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면 다 엄지척 할 텐데, 한국계 학생이 일본어를 했다는 사실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우리 아이 친구가(한국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다 이민 온 학생) ivy league 학교 하나에 합격했는데 이 친구는 한국어를 외국어로 택했었다. 웃기는 얘기지만 인정이 되었다. 한국어로 특별히 가산점을 받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외국어 과목 필수 요건을 그렇게 채운 것으로 되었다는 얘기다. 물론 이 학생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이 아이한테는 다른 재주가 있었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면에서 똑똑하게 했기에 그 학교에 합격했을 것이다. 다만 내 얘기는 이 아이가 한국어를 한 것과 우리 애가 일본어를 했다는 것이 거의 동급으로 취급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쉽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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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Merit Scholarship이라는 것이 있다. 공부도 잘하고 모범도 되는 고등학생들을 전국에서 뽑아서 semi-finalist, finalist 같은 식으로 진행하면서 장학금도 주고 상장도 준다. 우리 애는 대체 뭐가 잘났는지, 도대체 뭘 삶아 먹었는지, 그 딴 건 안 한다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열을 바쳐서 뮤지컬 공연 준비하고 행사도 치러내고, 전 과목 AP 과목 듣느라 과제물은 또 엄청 많아서 하루에 5시간 이상은 자지도 못 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National Merit Scholarship를 하라고? 따로 에세이도 써내야 하고 귀찮은 게 참 많다고 별 관심 없다고 했다. TJ에서 semi-finalist가 240명이나 나왔다. 성적을 평소에 상위권에서 유지했던 것으로 볼 때 참가만 했다면 최소 semi-finalist는 되었을 텐데, 거기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뭔 배짱인지. 이런 것이 아못사에 못 들어간 결정적인 패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입에 별 도움 안 되는 뮤지컬 공연에나 신경을 집중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큰애의 이야기이고 아직 둘째 아이가 있다(지금 TJ 신입생으로 시작). 둘째에게는 훨씬 진학 지도를 잘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아못사 학교들에 대해서 환상이 깨져버렸다는 점이다. 뭐랄까. 광란의 밤을 보내고 아침에 현타가 온 느낌이랄까.

 

한번 겪어 보니 왜 그리도 아못사 학교들에 환상을 가졌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 당시 아이와 대화하면서 왜 그런 학교에 가고 싶은지 물어보니, 막연한 기대가 섞인 말만 하지 시원스러운 대답은 없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꼭 그런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에 대한 질문에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없었다. 남들 다 좋다고 하니까 시도해 보자는 심리였다. 적당한 기대감과 최고 중 최고 인재가 모인다는 학교에 지원하는 점에서 일단 기분이 좋았다(최소한 하버드 대학에 지원했다 떨어져도 그리 쪽팔리는 건 아니잖아).

 

학교 투어를 다니면서 특히 MIT에서 아이는 "cool!"이라는 소리를 많이 하면서 호감을 보이기는 했지만, 아이에게는 어떤 절박함이랄까 그런 것이 없었다. 아마 그것이 진정한 패인이 아닌가 싶다. 그 학교에 진짜로 절박하게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바탕으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패인? 부러워야 지는 거지, 부럽지 않은데 패인은 무슨 패인? 지금은 전혀 아쉽지도 부럽지도 않다. Ivy league 학교에 대한 실상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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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큰애는 어느 대학에 갔냐고? University of Virginia를 택했다. 지금 신나게 다니고 있다. 아이도 만족하고 있고 애 엄마와 나도 학교가 참 마음에 든다. 우선 지원했었던 학교 중 가장 가깝다(2시간 정도). 집과 학교의 거리 문제는 학교 지원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막상 학교를 다녀보니 무시해선 안 될 부분인 것 같다. 주말에 아이가 내키면 집에 쉽게 올 수 있다는 거, 심리적인 안정 측면에서 좋은 부분이다. 또한 여기도 레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친했던 친구들 우르르 다 같이 갔고 잘 아는 선배들도 많아서 심심하지도 않고, 수강하는 과목들도 크게 어렵지도 너무 쉽지도 않은 적당한 레벨인 것 같고.

 

대학 입학 후 환경의 변화, 수업 강도의 상승, 잘난 학생들끼리의 갈등 등으로 혼란에 빠지기 쉽다는데, 크게 걱정할 일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TJ 생활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위에서 “미련하게 많이 들었다"라고 표현했던 AP 과목들 덕택에 3년 졸업이 무난히 가능하다.

 

아못사 학교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참고로 그런 학교들에서는 AP를 많이 했다고 해서 조기 졸업을 시켜주지 않는다. Harvard 학교 설명회에서 Admission Director가 한 소리가 생각난다.

 

"AP로 이미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은 심화 과정에 바로 등록하거나, 아니면 그걸 기회 삼아 복수 전공 같은 것을 하도록 권장합니다. 우리는 'Harvard Experience'를 중시합니다. 4년 동안 학생들이 최고의 경험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때는 우와 멋있다...라고 느꼈는데, 지금 보기에는 완전 개소리다. 듣기만 좋게 사탕발림한 소리다. 지금은 오히려 "만약 그런 학교에 합격되었으면 어쩌려고 했어? 천만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 편에서 계속..

 

 

 

소리는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