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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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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나는 지방 중소도시의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는 참 아이들이 많았다. 한 반에 50~60명씩 밀어 넣어도 교실이 모자라 복도에서 구구단과 받아쓰기 시험을 보곤 했다. 중간에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학교는 여전히 아이들로 넘쳐났다. 점심시간 운동장은 콩나물들이 몸부림치는 시루 같았다. 6학년이 되기 전까지 형들 등쌀에 운동장에서 공 한번 마음껏 차지 못했다. 

 

어른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 고층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친구들이 전학을 왔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등교를 해도 학생 수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동네 친구들과 새로 지은 초등학교로 강제 전입을 갔다. 이제야 짬밥이 되어 마음 놓고 공을 찰 수 있었는데, 새 학교로 등교를 해야 한다니 억울했다. 출산율 감소와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같은 추억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지은 새 학교에서 맞이한 97년은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하다. 새 운동장은 막 입학한 내 동생이 형들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을 만큼 넓었고, 공을 차다 싫증 나면 강당에 들어가 농구를 하고 배드민턴을 쳤다. 방학이면 학교 보이스카우트 친구들과 일본, 중국으로 역사탐방을 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의 붕 뜨는 흥분처럼, 어린 초등학생들도 세상의 들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해 가을까지는 그랬다.

 

 

그 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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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봄,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학교는 뒤숭숭했다. 이번에는 친구들이 전학을 갔다. 아니, 사라졌다. 송별회를 할 겨를도 없이 이사를 갔다. 부모님의 고향으로 가는 애들도 있었고 이름도 생경한 외국으로 가는 녀석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아버지 사업이 망했거나 보증을 잘못 서 부도라는 것이 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하굣길에 유치원 때부터 같이 지낸 한 친구가 내일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간다는 말을  툭 내뱉었다. 마치 가족끼리 주말에 스키장에 갈 거라는 것처럼. 그때 우리 둘은 말레이시아가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이렇게 도망가듯 떠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지만, 꽤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것은 알았던 것 같다. 애꿎은 신발주머니만 툭툭 차며 걸었던 그 하굣길이 친구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와 그의 가족이 정말 말레이시아 친척집으로 가서 정착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해 겨울, 거실에서 빈둥대다가 소파 밑에 붙어있는 딱지를 발견했다. 압류딱지는 TV에서 보던 것처럼 빨간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체는 딱딱하고 서늘했다. 못 본 체하고 다시 원래 붙어있던 위치에 붙여 놨다. 떼면 안 된다고 쓰여 있기도 했지만, 내가 그것을 봤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다행이도 나는 전학을 가거나 이사를 가지 않고 신축 초등학교의 1회 졸업생이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어렸던 내가 쇼파 바닥에 붙은 딱지를 발견했다는 것을 모른다. 

 

 

대한민국 난파일기 <국가부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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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이후, 개인 혹은 가정에 아픈 역사가 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을 권한다. 그것만 직시할 수 있다면, 묵직한 감정을 환기할 수 있다. 왜 지금의 부모세대가 자식들이 안정적인 전공과 직업을 갖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는지, 혹은 삶의 위기로부터 그들이 버텨온 여정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하여 말이다. 혹시 영화 트레일러 때문에, <범죄의 재구성>이나 <The wolf of Wall Street> 같은 흥겨운 템포와 통렬한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한국은행 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국가부도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수차례 경고성 보고서를 올리지만 누구도 그것을 읽지 않는다. 위기 이후에도 그녀는 언제나 정부 정책 결정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IMF 구제요청은 최선이 아니라는 것. 각자 이기적인 이유로 IMF 해법을 밀어붙이는 영화 속 위정자들과 맞서는 그녀는 정의 그 자체다. 그리고 언제나 정의는 힘이 없다. 한시현은 정의의 부재,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지렛대다. 

 

외환위기의 원인과 IMF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오직 한 시각에서 다뤄진다. 더 잘살게 될 것이라는 90년대의 흥분은 모래밭에 쌓아 올린 위태로운 누각이었으며, 붕괴 직전 몆몆의 위정자들의 판단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는 것. 거기에 IMF는 마냥 숭고한 구조대원이 아니었다는 것. 반론의 여지는 있지만 쟁점화된 바 없는 입장이기에 의미 있는 제기다.

 

 

난파선의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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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학(유아인 분)은 이 메마른 이야기에 유일한 극적인 인물이다. 종합금융회사 직원인 그는 한시현과 거의 동시에 국가 경제의 위기를 감지한다. 그는 위기를 기회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자신의 비전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역으로 부를 축적한다. 달러를 사들여 차익을 남기고, 그 돈으로 헐값에 쏟아지는 부동산을 긁어모은다.

 

나라 잃은 무사의 허무한 칼춤처럼, 망해가는 나라에서 거꾸로 쌓이는 부를 바라보며 윤정학은 세상을 조롱하고 스스로를 냉소한다. 그는 가장 똑똑한 것 같지만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말미에 그런 자들의 인생을 동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2018년 강남 오디세이는 그 일그러진 영웅들의 서사시라는 듯이.

 

균열을 감지한 두 금융전문가의 대응은 극과 극으로 달린다. 가족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난파선의 구멍을 온몸으로 틀어막으려던 한시현과 혼란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가 배 맨 위에서 스스로 영웅이 된 윤정학. 개인의 삶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각자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비극은, 우리 주변에 한시현은 사라졌고 오직 윤정학만이 남아 영웅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난파선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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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렇게 거대한 침몰위기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새로운 안전 매뉴얼을 만들기커녕 그 위기상황을 제대로 복기해본 적이 없다. IMF를 구세주로, 유년기를 ‘IMF 시대’로 알고 자란 나 같은 IMF 세대에게 영화는 상식의 붕괴를 자극한다. 흥청망청 해외여행과 과소비를 일삼아 알거지가 되었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을 모아야 그 시대가 빨리 종결될 것이라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정말 그랬다. 삶의 난파는 아버지들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근면성실하게 살면 따뜻한 저녁이 있을 것이라는 밥상머리 가르침이 거짓말이 되었다. 열심히만 사는 것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했다. 가장의 실패는 죄악이었다. 가족, 인척, 이웃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은 부모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더 잘살게 될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삶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경찰, 교사, 군인이 될 수 있는 학과 점수가 치솟았다. 평생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으로 몰려들었다. 집을 사는 희망을 가져 본 것은 비트코인 신기루 때가 유일했다. 서울 가까이에 바늘 하나라도 꼽을 땅을 갖는 것. 그곳이 이 난파선의 가장 안전한 칸이었다.

 

난파선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다 밖을 내다보는 것은 사치였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잘리지 않는 삶을 위해, 그나마 안전한 칸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르치고, 배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동료들에게

 

1997년 국가 부도의 그 날 그리고 지금. 영화는 두 지점만 보여준다. 그 사이에 생략되어 있는 저마다 지난한 생존기를 복원해 채우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다시 돌아가 살펴볼 지점을 영화는 가리키고 있다.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균열들의 원인을 1997년 그 난파선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를 잃은 세대가 있었다. 어떤 세대는 전쟁을 치렀다. 불의한 권력에 자유를 빼앗긴 세대도 있었다. 모든 세대에는 저마다의 과업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국가를, 평화를, 민주주의를 물려받았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몫이 있을 것이다.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단단한 일상, 생존만큼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교육할 수 있는 저녁. 그래서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작은 영웅이 될 수 있는 삶. 그것들을 마련해 낼 수 있다면, 우리 세대도 역사 속에 꽤 괜찮은 사람들로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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