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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은 누구에게 돈을 빌리고 있을까? 흔히 은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다. 처음 대출을 해주는 건 은행이지만 대부분 외부 투자자에게 재판매되기 때문이다.

 

'Leveraged Loan(이하 '기업대출')'은 BBB- 등급 이하의 신용도를 갖는 다수의 중견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대출의 한 형태를 일컫으며. 현재까지 발행된 기업대출의 약 92%를 기관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 시장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2008년 이전 부동산 담보 대출 시장과 여러모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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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기업대출의 리스크가 은행에서 외부 투자자로 옮겨가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대출은 은행에서 최초 발행된 이후 빠르게 2차시장(ex. 중고나라)에서 다시 팔려나간다. 대출의 리스크가 은행에서 외부 투자자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이 리스크를 전가시키다 보니 대출심사요건을 한층 완화할 여지가 생긴다. 부도가 나더라도 은행은 더이상 해당 대출을 보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8년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 빠르게 팔려나가자, 은행들은 대출심사요건을 완화했고, 채무자의 자산과 수입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고 위험한 대출을 남발했다(가장 위험한 대출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불렀다). 2008년\ 담보가 되는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지자 연쇄 부도가 났고,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둘째, 대출 계약서의 내용상 질적하락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기업대출 시장에서의 '대출 계약서(Credit Agreement)'는 대출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은행 하나가 기업대출을 전부 해주기엔 대출액이 너무 크기 때문에 보통 주은행 한 곳과 여러 개의 은행 및 헤지펀드, 채무자가 낀다(여기에 이 합의를 법률화해주는 로펌까지). 

 

이들이 합의해 만든 '대출 계약서'에는, 채무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Covenant)가 명시되어 있다. 부도가 발생하지 않게 이자를 제때 낸다던가, 채무자 맘대로 담보물을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등 기본적인 조항이 포함된다.

 

이 때 의무를 '부분적'으로 다할 경우(이자를 분납한다던가) 파산을 면해주는 조항을 'Covenant-Lite'라고 한다. 돈 마련할 시간을 벌어주기 때문에 채무자에게 유리하지만, 채권자에게는 불리하다. 파산 시 피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이자만 조금씩 내면서 담보물만 까먹는 좀비 기업이 된다던가).

 

최근 의무(Covenant)가 한없이 헐거워지고 있다. 기업의 수입을 나타내는 'EBITDA(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을 나타냄)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걸 계산하는 공식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널널해진 걸 예로 들 수 있다.

 

예외적이던 Covenant-Lite도 업계표준이 돼버렸다. 그만큼 채무자가 원하는 걸 모두 얻어가고 있단 소리다. 좋게 말하면 채무자에게는 불필요한 파산을 면할 수 있는 카드가 늘어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실제 부도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가 입을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을 의미한다(계약서가 헐거워지면 파산 시 건질 수 있는 자산이 줄어든다).

 

신용투자기관에 따르면, 역대 기업대출이 파산 시 원금의 약 70%를 회복했다면, 대출조건완화로 앞으로는 원금의 약 60%만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과거 신용위기를 기반으로 한 통계일 뿐 실제로 얼마나 피해를 입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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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기업대출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인 CLO의 시장 또한 엄청나게 커졌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질 나쁜 부동산 담보 대출(Subprime Mortgage)들이 CDO와 같은 파생상품에 섞여 피해를 키웠던 모습과 여러모로 닮았다. 

 

사실 대부분의 기관 투자자들은 기업대출에 큰 규모의 직접 투자를 할 수가 없다. 채권 시장의 큰손이라 할 수 있는 연기금이나 보험 회사들은 투자 법률상 일정 신용 등급 이하의 자산에 투자를 할 수가 없는데, 대부분의 기업 대출은 BB에서 B 정도의 안되는 낮은 신용 등급을 받기 때문이다(이 이상의 신용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이라면 보통 그냥 채권을 발행한다).

 

이러한 투자 장벽을 해소해주는 상품이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 대출채권담보부증권)'이다. 자산 유동화란 방식으로 기업대출들을 큰 뭉텅이로 묶어다가, 'Tranche(트란쉐)'라고 불리는 조각으로 썰어서,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자세한 설명은 자산 유동화를 설명한 지난 기사들을 참고하시라.

 

이렇게 만들어진 CLO의 최상위 트란쉐는 최고 신용 등급인 AAA를 받는다. 이렇게 높은 등급을 받은 CLO를 통해, 기업대출에 직접 투자를 할 수 없었던 여러 기관 투자자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전체 기업대출 중 약 60% 이상이 CLO 펀드를 거쳐 기관 투자자에게 흘러들어갔다.

 

물론 CLO와 CDO는 전혀 다르다. 온갖 질 나쁜 자산을 섞고, 그걸 감추기 위해 복잡한 금융 공학적인 설계를 하고, 이걸 또 각종 선물 옵션들로 덮어버린 CDO와 달리 CLO는 아주 단순하고 투명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펀드 자체가 오로지 현금과 기업대출로만 이뤄져 있으며(볼커룰의 영향으로 파생상품은 물론 채권도 섞을 수 없다), 대출 상품에서 걷어들인 이자와 원금을 운영비만 떼고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식의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지난 금융 위기 때 워낙 심하게 데인 탓인데, '파생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조나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른 CDO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CLO를 통해서 기업대출이 단순히 은행권을 넘어 수많은 기관 투자자들에게 흘러간 것 또한 사실이다. CLO 시장에서 가장 큰손은 연기금, 보험회사인데, 아예 전문 CLO 운영 펀드를 차리거나 인수합병해서 CLO를 찍어내고 있다. CLO랑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일반 보험 가입자나 연금 가입자들도 실제로 그 영향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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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CLO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다. 중동의 국부 펀드, 일본의 보험 회사(이자율이 낮은 일본계 자본들은 CLO 바닥에서 VIP 대접을 받는다. 가장 규모가 큰 최상위 트렌치를 통째로 사가기 때문이다)는 물론, 홍콩에 있는 패밀리오피스, 한국계 자본 또한 이 시장에 섞여가고 있다(후술하겠지만 미국 CLO와 기업대출 시장은 지난 몇 년간 가장 핫한 투자 상품이었다). 이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은행 몇 군데 망하는 게 아니라, 알게 모르게 투자했던 투자자 전부에게 피해가 간다.

 

이쯤에서 정리하고 가자.

 

기업대출 상품은 지난 몇 년 간 리스크가 점차 은행권에서 기관 투자자로 옮겨갔으며, 그 과정에서 대출 계약서의 내용이 채무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바뀌었다. 이는 다음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파산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단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CLO 상품의 보편적인 도입은 경제적 피해를 시장 전반으로 퍼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원인은 미국 기업대출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 기업대출 시장은 역대 처음으로 1천 조를 넘어섰다. 이는 비슷한 신용 등급(BBB- 이하) 기준, 기업 채권 시장 규모를 앞지른 수준이다. 큰돈의 흐름이 채권시장에서 대출시장으로 옮겨온 셈인데, 아직도 끊임없이 신규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지난 몇 년간의 거시적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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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경제적 호황을 누린 건 전세계에서 미국이 거의 유일했다. 고용, 소득, 소비와 같은 지표에서 미국 경제는 매우 안정적이었고, 미국 기업들은 큰 수혜를 입었다. 또한 작년 트럼프 행정부가 통과시킨 세금 감면안은 개인의 소득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기업들이 법인세 부담 을 덜어주었다.

 

2000년대 들어 연준이 유지해 온 낮은 금리는 미국 기업들의 이자 부담을 크게 낮춰주고 이는 기업의 파산율을 크게 낮추었다. 지난 몇 년간 기업대출의 평균 파산율은 2%를 넘지 않았다. 지난 금융 위기를 포함해서, 기간을 2000년대 전체로 봐도 대출의 평균 파산율은 약 3.8% 수준이다. 이 파산에서 입은 원금 손실은 평균 30% 수준. 산술적으로 기대 손해율을 계산해보면 3.8% x 305 = 약 1%대에 지나지 않는다.

 

즉, 기업대출이라는 자산이 부도율은 낮으면서도 대출시 설정해 둔 담보(Senior Secured) 덕에 실제 원금 손실률은 낮은, 안정적인 자산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 된 것이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큰 자본이 채권 시장으로 몰리곤 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로 금리 인상이 변수로 작동했다. 대부분의 채권은 고정 금리로 발행이 된다. 한 번 발행되면 약정된 금리만큼의 이자만 계속 지불하는 것이다. 다만 최근 몇 년 동안 금리 인상이 계속되었고,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갈수록 채권의 값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금리가 0%일 때 채권을 구입한 투자자는 채권 만기일까지 쥐꼬리만한 이자만 받아 가겠지만, 지금처럼 기준 금리가 2%를 넘는 시기에 발행된 채권을 구입한다면? 이자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이 계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고정 금리 상품 투자자들은 호구 잡힐 것을 우려, 변동금리 상품을 찾는다. 여기서 대표적인 변동금리 상품이 바로 기업대출이다. 기업대출은 보통 기준이 되는 LIBOR 3M + Spread 만큼의 이자를 지불하는데, 이 LIBOR 3M는 금리 인상과 연동해서 매일 변한다(정확히는 앞으로 금리 시장이 어떻게 변할까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한 Forward Curve를 기준으로 바뀌는데 여기선 그냥 넘어가자. 그냥 여기선 금리 인상이 될수록 LIBOR도 같이 뛴다는 점만 기억하자).

 

즉, 미국 경기 호황 + 낮은 파산율 + 금리 인상 시기라는 국면에서, 미국 기업대출 시장은 투자자들의 취향을 모두 저격할 수 있는 시기적절한 상품인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는 비슷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업대출 시장이 과열 양상을 띄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은행들은 대출을 팔아치우고, 기준도 낮추고, CLO 시장 또한 급격하게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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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기업대출에 대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지금 당장은 경기가 좋다고 하지만 다음 위기가 언제 닥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 가뜩이나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상황, 신규대출을 신청할 만큼 호기로운 기업은 많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사라지는 기업은 많아도 새로 생겨나는 '중견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부족한 공급을 메우고 있는 것이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작은 기업 여러 개를 인수합병해서 묶고, 업계 최고 전문가 집단을 경영진으로 앉혀 경쟁력을 끌어올린 뒤, 다시 상장이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거둔다.

 

이들이 여러 개의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선 당연히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데, 이 돈은 사모펀드가 조달한다기 보다 기업대출 시장에서 끌어온다. 현재는 돈을 빌려가는 채무자가 갑인 상황이다 보니 이들이 빌릴 수 있는 이자율도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복잡한 일을 많이 벌리는 사모펀드에게 중요한 대출 계약서 또한 채무자에게 유리하게 바뀌었다. 이러한 시장 환경은 지난 몇 년간 사모펀드가 눈부신 성장을 거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사모펀드가 만들어낸 기업은 일반적인 기업과는 사뭇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보통 기업이 공장을 짓거나 투자를 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것과 달리, 이 기업은 타기업을 인수합병하기 위해 대출을 당기고, 따라서 액수 자체가 크다. 그 큰돈을 들여 구입한 자산 또한 기업이고, 인수하는 과정에서 미래 가치를 반영한 프리미엄이 끼기 때문에 담보로써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렇게 레버레지된(빚이 많은) 기업의 경우 성공 시에는 대박이 나지만 실패 시에는 정말 쪽박이다. 그렇다 보니 사모펀드가 만든 기업들의 신용 등급은 최악이라 할 수 있는 CCC 미만이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12% 이상의 높은 이자를 지불한다.

 

이러한 위험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대출 시장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현재 기업대출과 CLO 시장 이상으로 높은 위험 대비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시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한 고급 리조트에서 열린 CLO 컨퍼런스는 큰돈을 굴리는 자산 운용사들과 그들에게 돈을 대주는 기관 투자자, 그리고 이렇게 큰돈이 몰리는 시장에서 어떻게든 숟가락 하나라도 얹어 보려는 잡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 잡상인 중에는 나도 섞여 있었는데, 다음 글에서는 이 컨퍼런스의 풍경과 이곳에서 오간 몇 가지 흥미로운 대화들을 옮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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