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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와 캐서린 여왕의 금슬은 단순히 좋았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캐서린은 두 왕국의 2중의 왕녀라는 사실보다 영국의 여왕이라는 사실에 더한 자부심을 느꼈다. 시골 토호 왕조 튜더 가문의 수장인 헨리의 눈에는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캐서린에게 혈통은 그저 주어진 것이었다. 반대로 영국의 여왕이라는 직분은 십 대 중후반과 20대 초반을 불행하게 보내면서도 꿋꿋이 버텨낸 대가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거기엔 비극적이면서도 아련한 로맨스도 있다. 헨리는 자신을 구원해주고 가난뱅이 과부를 일국의 여왕으로 격상시켜준, 말 그대로 백마 탄 기사였다.

 

'유럽 최고의 혈통' 캐서린은 연하의 남편 앞에서 언제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그를 하늘처럼 대했다. 물론 헨리는 헨리대로 여왕께서는 제발 그러지 마시라며 일으켜 세운 후 최대의 예의를 갖추는 게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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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 초기에 놀기 좋아하는 다혈질의 젊은 왕을 필요할 때마다 어르고 달래는 것은 연상의 아내 캐서린의 몫이었다. 헨리는 캐서린의 말만큼은 들었다. 그녀는 헨리에게 관능적인 전리품이자 누나이자 엄마였다.

 

도취한 두 사람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낯간지러운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헨리는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고 캐서린의 방에 들어가곤 했다. 나중에 짜잔! 하고 실체를 드러내서 왕비를 놀라게 하는 동시에 기쁘게 해 주는 놀이였는데... 캐서린은 처음부터, 아니 발소리만 듣고도 알았다. 매번 기분 좋게 속아주었을 뿐. 헨리는 그녀가 애써 놀아줬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몰랐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헨리가 기사의 무장을 하고 난입해서는,

 

"저는 여왕님께 반해서 미쳐버린 광전사입니다! 쇤네의 사랑 고백을 받아주시면 기쁘게 처형당하겠습니다!"

 

"아앗, 외간 남자를 방에 들이다니! 저는 사랑하는 전하를 위해서 자결하고 말 테여요!"

 

"왕비! 그러면 안 되오! 보시오! 나란 말이오!"

 

"(와락 안기며) 저어언하아..."

 

"어찌하여 나를 두고 함부로 죽겠다 하시오!"

 

"기사의 풍채와 목소리가 너무도 당당하여 제 마음이 약간 흔들린 것이 부끄러워 죽고자 하였어요."

 

"생각해보니 그건 용서할 수 없겠구려. 이따가 침대에서 아주 크게 혼날 줄 아시오!"

 

"무, 무서워요!"

 

이 모든 꼴을 목도하던 시종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래, 먹고사는 건 고단한 법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캐서린은 여왕으로서는 우스운 인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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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상적인 여왕이었다. 시아버지에게 붙들려 십 년간 강제로 근검절약을 훈련하지 않았던가? 백성들에게 검소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이미 만렙을 달성했다. 절약하니 당연히 돈이 남는다. 이 돈을 빈민가에 가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길거리의 지저분한 거지에게도 직접 안부를 묻고 몸을 숙여서 눈을 맞춰줄 정도로 백성들에게 잘했다. 캐서린을 보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시대상과도 맞았다. 영국이 근대로 넘어가면서 ‘직업적 기술’로 돈을 버는 계급이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돈벌이에서 낙오한 사람들도 생겨난다. 부자도 거지도 도시에 있고, 런던에 있다. 캐서린은 영국의 빈민 구제에 많은 돈과 시간을 썼다. 그만큼 영국 여왕이라는 직분에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꼈다.

 

캐서린의 인기는 드높았다. 헨리는 캐서린에게 감사해야 마땅했다. 왕의 노는 모습은 즐거운 가십이고 구경거리지만 놀기만 하는 건 사치고, 백성들도 지친다. 캐서린이 현명하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밸런스를 잡아주었기에 헨리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왕이 이런 여왕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

 

두 사람의 금슬은 좋고도 좋았건만, 과연 완벽했을까? 헨리는 캐서린과의 결혼 생활 동안 여기저기서 염문을 뿌렸다. 헨리 피츠로이라는 사생아를 낳기도 했다. 귀족들은 딸과 조카를 바쳐 한자리해 보려고 똥파리처럼 몰려들었다. 헨리는 욕정을 채울지언정 마음은 어디까지나 캐서린에게 있었고, 캐서린의 아성을 넘을 수 있는 여성은 없었다. 캐서린의 마음도 좋지는 않았겠지만 기본적으로 헨리의 마음만큼은 믿었기에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하긴, 여왕은 나니까.

 

헨리는 형의 아내를 차지했다는 생각에 두 가지 감정을 느꼈는데 하나는 배덕의 쾌감, 하나는 순수한 죄책감이었다. 물론 금슬이 좋을 때야 배덕감의 스릴이 컸다. 아직 캐서린이 아들을 낳아 줄 희망이 있었을 때까지는 말이다.

 

날라리 왕 헨리가 띵가띵가 놀고만 있으니, 국가는 누가 통치한단 말인가? 영국을 대신 통치한 인물은 토마스 울지 추기경이었다. 토마스 울지는 누가 뭐래도 유능한 인물이었다. 일국의 재상을 맡기려면 추기경쯤은 되어야 하니, 헨리가 직접 교황에게 부탁해서 추기경을 만들어 준 사람이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니 사방에 적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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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의 별명은 정육점집 아들이었다. 좀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은 부유한 식육상의 아들이었다. 유통업으로 부자가 된 신흥 자본가 집안이었는데, 푸줏간이라고 하니 화는 났을 것이다. 그렇다고 반박하기도 애매했다.

 

울지는 엄청난 야심가였고 능력만큼 허영심도 강했다. 헨리가 전권을 맡기다 보니 기꺼이 기고만장해졌다. 외국의 왕에게 보내는 외교 문서에 자신의 서명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왕의 서명을 부탁하거나 대필한 것도 아니고, <본인과 본인의 주군>이라고 서명해서 보냈다. 이 때문에 말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해먹었다. 하인이 400명이나 있었고 16명의 개인 직속 사제를 두었다. 개인용 합창단까지 거느렸다. 자기 돈으로 대학교까지 세웠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수도원을 수탈했다.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트릴 무소불위의 인간이었다.

 

'로드 챈슬러(Lord Chancellor)'라는 자리에 오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영국의 사법권을 독점하는 엄청난 직책이었다. 거기에다가 로마에서는 그를 교황청의 영국 사절로 임명했다. 이쯤 되면 영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예상했겠지만, 정식 부인만 아니었을 뿐 처와 자식은 물론 정부까지 다 있었다. 중세의 고위 사제는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았다. 하물며 울지 같은 인물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영국을 차지한 울지... 그는 이제 교황이 되려고 했다. 막대한 현금으로 교황청 사람들을 매수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가 다음 교황으로 선임되지 않으면 영국을 가톨릭 동맹에서 이탈시키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그 역시, 훗날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은 캐서린 여왕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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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522년. 한 젊은 여인이 여왕 캐서린의 시녀로 궁정에 들어오게 된다. 이 여인의 이름은 앤 불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