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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팜므파탈 앤 불린,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집안을 알아야 한다. 불린 집안은 상인 가문이었다. 장사로 성공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이 집안은 총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백년 전쟁 때의 전쟁 특수, 그리고 장미전쟁 당시의 전쟁 특수, 헨리 8세의 아버지 헨리 7세 때의 중상 정책. 기회가 많았고 수완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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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린 가문은 부를 증식하며 결혼을 통해 신분을 쌓았다. 당연히 결혼의 대가는 막대한 혼수였다. 앤 불린의 아버지인 토머스 불린은 명문 하워드 가문에 장가를 가는 데 성공했다. 하워드 씨는 그 유명한 노포크 공작 가문이었다. 토머스 불린도 대귀족에 편입된 것은 아니다. 그는 외교관이었다. 당시 외교관은 출세한 상인 가문 출신의 신입 귀족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복잡한 실무를 보고 숫자를 다루는 데다, 외국 군주에게 아양까지 떨어야 하는 외교관을 당대 대귀족들은 낮잡아봤다.

 

"귀족은 원래 그냥 하루 종일 놀아야 하는 거 아냐?"

 

"어허 놀다니, 옷 차려입고 바깥에 행차하는 것만 해도 아침이 다 지나가는데. 연애 편지만 써도 두 시간이 훌쩍 가고 저녁 식사는 세 시간이 기본 아닌가? 우리가 빈둥거릴 새가 어딨어?"

 

"조상 잘 만난 게 다 하나님의 뜻인데, 우리가 아무리 일이란 걸 하고 싶어도 주님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음? 아멘!"

 

"할렐루야!"

 

천한 농노의 농사일이나 외교관의 실무나 일은 똑같이 일이었다. 게으름은 귀족적 매너였다. 왜 이들이 근현대에 이르러 부르주아 계층에 잡아먹혔는지 알 수 있다. 토마스 불린은 정통 귀족들 사이에서는 딱 ‘기사’ 정도로 통했다.

 

토마스는 언변이 화려하고 매력적이며, 사람을 잘 사귀었다. 한마디로 사람 장사에 타고난 재간둥이였다. 외모도 훌륭해서 여자와 썸을 타는 데 귀재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머리가 좋았다. 남다른 매력 때문에 공작가의 영애인 아내 엘리자베스도 남편의 '기사' 계급에 불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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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메리 불린은 부모의 밝은 면만 닮았다. 사람 잘 사귀고 잘 노는 낙천적인 성격에 무엇보다 예뻤다. 백옥 같은 피부에 금발, 푸른 눈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백인 게르만 미녀였다. 둘째 앤 불린은 가무잡잡한 피부, 흑발에 까만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영국인에게는 흔치 않은 이국적인 외모였지만 언니 메리에게 덤빌 생김새는 아니었다. 눈은 언니보다 작았지만 침착하면서도 장난기가 서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눈매였다.

 

(훗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그녀의 가느다란 눈매와 마른 몸매를 물려받게 된다. 그녀의 초상화가 창백하게 그려진 것은 어디까지나 짙은 화장 때문이다.)

 

토머스와 엘리자베스 부부는 자매에게 여러 가지 악기와 노래, 춤, 외국어, 에티켓, 각종 교양을 가르쳤다. 영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만들려고 했다. 물론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막내 남동생 조지 불린은 엄친아였다. 잘생기고 잘 놀고 언변이 좋아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농락했으며 어릴 때에는 나이 지긋한 귀부인들을 녹이고 다녔다. 매우 명석했지만 두뇌의 냉정함이 워낙에 명랑한 성격을 누르지 못했다. 이 친구는 누나들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가능성이 그리 높은 루머는 아니다.

 

앤 불린의 나이는 정확하지가 않다. 1501년에서 1507년 사이라고 한다. 사실 삼남매의 순서에 대한 확실한 공식적 기록은 없다. 단 메리가 첫째인 건 99% 확실. 나머지 둘의 순서는 불명이지만 그래도 조지가 막내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왜 앤의 나이만 중구난방이냐면, 신동이어서 그렇다. 1514년에 쓴 편지가 남아있는데 글씨와 문장력이 최소 13살은 된다는 게 가장 연대가 이른 1501년 설의 근거다. 문제는 앤이 열 살이 되기 전에 무려 7개 국어를 했다는 것.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그녀의 재능은 고스란히 딸 엘리자베스 1세에게 유전되었다.

 

앤 불린은 어릴 때부터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 지냈다. 네덜란드에서 생활할 때, 어린 나이에 신성 로마 제국 공주 마가렛(당시 네덜란드의 형식적인 통치권자)의 후견을 받았다. 아니 기사 집안의 딸이 무슨 재주로? 아버지 토마스 불린이 마가렛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다.

 

이 집안은 무슨 마성의 집안인가! 여담이지만 불린 가문은 뜻을 이루기 위해 매력을 동원해 유혹하고 안 되면 뇌물을 쓰고, 그래도 안 되면 음모를 꾸며서 목표를 이루는 집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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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은 어찌나 사랑을 받았는지 공주는 자신이 소유한 공작 부인의 작위를 앤에게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12살이라는 나이 제한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여성이 작위를 계승하려면 통상적으로 그보다는 나이가 많아야 했다. 대신 마가렛은 앤을 ‘쁘띠 앤’, ‘쁘띠 불린’이라고 불렀다.

 

공주는 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토머스에게 ‘당신이 내게 와 준 것보다 이 아이를 내게 보내준 것이 더 감사할 지경’이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렇다. 앤은 어른들, 그중에서도 특히 권력자의 어여쁨을 받을 줄 아는 아이였다.

 

앤이 네덜란드에 있을 때 언니인 메리는 따로 조국인 영국에서 자랐다. 1514년에 헨리 8세는 여동생 메리 튜더를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에게 시집보냈다. 이때 신부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시녀들이 따라가게 마련이다. 많은 유력가들이 자신의 딸을 프랑스에 보내고 싶어 했다. 프랑스식 궁정 문화와 유행을 경험할 기회를 딸에게 선물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이 사람들이 딸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 뭣 좀 배운 아가씨'가 되면 딸의 몸값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략결혼의 밑천이 두둑해진다는 뜻. 아버지 토머스는 수완을 발휘해 메리와 앤 자매를 메리 튜더의 시녀로 뽑히게 했다. 이렇게 해서 떨어져서 자라던 두 자매는 프랑스에서 재회했다.

 

그러나 루이 12세는 메리와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사망했다. 메리 튜더는 초고속으로 과부가 됐다. 당연히 메리와 함께 출발한 시녀 그룹은 해산되어야 했다. 어떻게 들여보낸 프랑스 궁정인데... 고작 3개월 속성 코스 밟자고 거기 보낸 게 아니다. 그래서 메리와 앤 두 자매는 새로 등극한 프랑수아 1세의 왕비 클로드의 시녀로 프랑스에 남게 되었다.

 

앤보다 먼저 눈에 띈 이는 메리였다. 프랑수아 1세는 헨리 8세 못지않게 기사도에 심취한 인간이었다. 이 사람의 중세 기사도적 로망스가 얼마나 중증이었냐면, 스페인과 전쟁을 벌일 때 전술보다 남자 냄새 나는 감동을 선택해 와장창 깨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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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을 보고 전형적인 금발 게르만 미녀의 외모에 신화적으로 꽂혔다면, 프랑수아 1세 역시 메리의 외모를 보고 푹 빠졌다. 메리는 빛의 속도로 프랑스 왕의 정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공식적인 제1 정부, 일명 '메티레상티트르'가 되어 부와 권위를 얻었는가? 전혀 아니었다. 프랑수아 1세는 메리를 그렇게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메리는 남자가 자신을 떠받들게 하는 재주도 없었고 눈치를 주는 성격도 아니었다.

 

'오늘만 날'

 

이것이 메리의 모토였다. 프랑수아 1세는 메리를 “내 전용 마차”, “잉글랜드산 암말” 따위로 불렀다. 프랑수아 1세의 갈랑트리(유혹을 주고받는 매너)가 별로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프랑수아는 라틴어로 “모든 창녀 중 가장 수치스러운 절륜한 창녀”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름대로는 머리를 굴린 작문이다. “메리는 타고 놀기 좋다”고 하기도 했다. 화끈한 누나 메리.

 

요즘 기준으로야 개방적인 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개성이다. 그러나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녀는 평판 관리를 못 했다. 왕하고만 잤더라면 큰 기회가 왔을지도 모른다. 허나 당시 귀족들이 주고받은 편지에 의하면 그녀는 아무하고나 잤다. 일반 병사하고도 잔다는 뒷담화가 돌았다. 사실 그게 무슨 잘못이랴마는, 부모에게는 잘못이었다.

 

"이 년이 몸값을 올리라고 보냈더니 지 값을 지가 깎고 있어??"

 

메리의 소문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까지 이르자 부모님인 토머스와 엘리자베스는 혀를 끌끌 찼다. 이래서야 가문의 평판마저 떨어질 판. 두 사람은 딸 메리를 자유분방한 프랑스 궁정에서 영국으로 다시 불러내 엄하게 단속했다.

 

앤은? 놔뒀다. 뭐, 나쁜 소문이 없었으니... 메리를 단속한 이유엔 역시 야심가적인 면모도 있다. 사람들이 메리의 추문을 잊을 때쯤 이번에는 영국 궁정에 마치 뉴페이스인 양 데뷔시키려고도 했었던 거다. 그동안 비상한 두뇌와 야심을 지닌 앤 불린은 프랑스 궁정에서 조용히 에티켓을 익혔다.

 

<에티켓>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