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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서울로 상경하여 월세살이를 시작했다. 지낼 곳이 없어 첫 달을 이모집에서 보낸 후, 모아뒀던 돈에 첫 월급을 더해 원룸을 구했다.

 

보증금 300에 월세 30. 전기세와 가스비는 따로 내야 했지만 인터넷과 수도세는 월세에 포함된, 저렴하고 나름 괜찮은 강북구 수유동의 3평 원룸이었다. 무엇보다 창문이라는 게 있었고, 창문을 열었을 때 벽이 아니라 하늘이 보인다는 점이, 낮엔 햇빛이 밤엔 달빛이 두 뼘이나 들어온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침대 놓을 공간이 없어 접이식 매트릭스를 써야 했고(그마저도 다 펼 수 없어 끝부분은 언제나 벽에 걸쳐 떠 있어야 했지만), 의자 놓을 공간이 없어 책상 대신 좌식책상을 놓아야 했지만, 내 형편에 그럭저럭 괜찮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다. 겉과 속이 모두 시커먼 불온한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밤새 박근혜 찬양 기사를 쓰다 떠오르는 해를 본 것도(예컨대 이런 기사), 구속된 박근혜가 3.2평 독방에 가게 됐다는 뉴스를 본 것도 그 3평 원룸이었다.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 혼란과 불안이 가득했지만 치열하게 20대를 보낸 소중한 공간이라고 떠올릴 법한 곳이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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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지 3달 만에 원룸 옆 멀쩡한 가정집이 허물어졌다. 건물을 때려 부수고, 땅을 다지고, 철근을 세우는 소리로 아침을 시작해야 했지만, 지나가겠거니 했다. 곧 4층 빌라가 세워졌다. 한 달 후 오른쪽 가정집이 허물어졌다. 같은 과정을 거쳐 작은 빌딩이 세워졌다.

 

마지막으로 원룸 뒤쪽 가정집이 허물어졌다. 앞선 두 번의 공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와 방대한 먼지가 방을 파고들었다. 내 방 창문이 원룸 뒤쪽 방향으로 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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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에 왔더니 이렇게 돼 있었다.

 

빌라가 완공되자, 방엔 실 한 올 만큼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복비를 아끼기 위해 계약 만료일까지 몇 달을 버틴 후, 주인아주머니에게 이사 가겠다고 했다. 무슨 이유로 나가는 거냐고 굳이 물으셔서, 창문이 다 막혀서 해가 안 들어오게 됐다고 굳이 답했더니, 수유동에 원룸 3개를 가지신 아주머니는 이렇게 답해주셨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아? 무슨 그런 일로…”

 

아주머니 아들이 그런 방에 산다고 해도 괜찮다고 하시겠어요? 라는 말을 턱끝까지 올렸다가 삼켰다. 누군가에겐 괜찮은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대학로에 있던 회사가 충정로로 옮겨가기도 했고 그간 회사에서 받은 티끌을 모아 티끌 만들기에 성공했으므로, ‘충정로 근방, 채광, 500/30’ 원룸 구하기에 나섰다. 물론 회사 가까운 곳에서 그런 방을 구할 수는 없었고, 3호선을 따라 올라 불광에 이르렀다. 부동산에서 붙여준 ‘실장'이라는 30대 중반의 남자를 따라 일대 원룸을 훑던 중이었다. 옆 건물은 호프집, 1층은 고기집이어서 대단한 반전이 있지 않은 한 나가리라고 생각했던 원룸을 막 들어갔을 때, 그가 말했다.

 

 “사실 이 가격대 집은 쓰레기인데, 여긴 좀 낫죠.”

 

딴에는 좋은 집이라고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는데, 순간 현타가 확 느껴졌다. 좋은 방 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많이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돈이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그날 바로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갔다. 70%를 빌려준다고 했다. 전세금을 대출받으려면 나머지 30%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잔고를 맞춰보니 전세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반전세는 어찌어찌 가능했다. 대출을 끼고 반전세를 구했다. 월세 30에 이자까지 내게 됐지만 데이트를 한 번 덜 하더라도 이게 낫겠다 싶었다.

 

대략 이런 흔한 사연으로 월세살이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월세살이일 예정이다. 선캄브리아 시대쯤엔 직장인이 월급 모아서 집을 사기도 했대는데, 지금은 2018년이니까.

 

그런 2018년을 월세살이의 눈으로 정리해봤다. 거창하게 정리했다고 했는데, 실은 아주 사적인 월세살이 일기다. 물론 일기는 일기장에 쓰는 게 맞지만, 마음 넉넉한 연말이니까.

 

 

 

1월의 단골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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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 상승률이 전년도의 2배 수준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은 부동산 기사는 되도록 읽지 않으려 한다. 매년 꼬박꼬박 오르는 부동산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 오르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포기했고, 편해졌다. 부동산에 관심을 끊은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집값이야 떨어졌으면 한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떨어지다 보면, 어쩌면 나한테도.. 라고 군침을 삼킬 때도 있다. 물론 그런 일은 화성 테라포밍에 성공하거나 앤트맨과 짝짜꿍한 타노스가 양자영역으로 들어가 시간의 소용돌이를 통해 멀티버스를 깨고 현실 세계로 뛰쳐나와 인구 절반을 날려주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안다.

 

부모님이 “옜다, 전세금 하거라~” 목돈을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월급으로는 집을 살 수 없는, 내집 마련 포기 상태인 나 같은 월세살이에게 이런 기사는 무의미한 정보일 뿐이다. 약간의 감상이 있다면 높고 견고한 성에 올해도 최홍만 만한 성벽 하나가 더해졌구나, 하는 정도?

 

 

2월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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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8할이 귀족이고, 또 8할이 대학에 진학하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민족이다.

 

과연 우수하면서도 왠지 등신 같아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 조상님들은 양반이 아니어도,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러나 그런 세상을 만드는 대신 족보를 사고 대학을 왕창 세웠다. 국민 8할이 양반이 되고, 국민 8할이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는 말이다. 원하던 대로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까? 물론 아니다. 되려 ‘양반인 데다 대학을 나왔는데도 그 어떤 대접도 못 받는’ 세상을 만들고야 말았다. 이 ‘등신 같아 보이는’ 일을 소설가 박민규는 ‘백년 동안의 지랄’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등신 같이 보이는’ 일 찾기란 사막에서 모래알 찾기와 같은 일이긴 하겠지만 내집 마련 포기자로서 당당하게 부동산에 한마디 보태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이 안락하게 살 수 있기를 꿈꿔 집을 샀다. 집값이 오르자 더 큰 집을 샀다. 여유자금으로 집을 샀고, 대출금으로도 집을 샀다. 갭투자니 어쩌니 하는 방식까지 고안해내 집을 샀다. 몇 차례 부동산 버블이 있었고, 투기를 얼마나 자주 했느냐에 따라 계층이 결정되었다. 이른바, 부동산 불패 신화다.

 

그 결과는? 그들 자식 누구도 자신의 월급으로는 집을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야 말았다. 과연 우수하면서도 왠지 등신 같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3월의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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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만 돼도 좋겠는데 (모아둔 돈이 없어서) 그거까지 바라진 못하고요. 한 달에 40만원 정도씩만 저금하고 싶은데, 월 240만원 정도만 벌었으면 좋겠어요.”

 

그뤠-잇과 스튜-핏이 유행하던 3월, 한겨레에서는 청년영수증이라는 기획을 했다. 한 달 치 생활비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부모님 집에 살다 독립하게 된, 이른바 이행기에 놓인 청년들이 얼마나 힘든가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나는 이만큼 버는데 이렇게 써서 돈이 안 모여요ㅠㅠ" 라고 자산컨설팅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학자금 대출, 학원비, 월세 등 사회가 떠안겨준 돈이 크기 때문에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이 포인트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을 배회하는 하나의 유령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유령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는지, 기사엔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밥 해 먹어라! 집 사기 전까지 두끼만 먹고, 옷도 사지 마라!]

[2만원 미용실 ㅋㅋㅋ블루클럽가면 8천원이다.] 

[절실함이 없다 월 60만원인데 8만6천원짜리 공연에서 공감이 안간다.]

 

네이버 댓글이야 항상 그랬고 블루클럽 드립이 참신해서 재밌기도 했지만, 기사 중 유독 눈에 밝히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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떢볶이 사 먹었다는 영수증 뒤에 '해외 출장 뒤 매운 게 너무 먹고 싶어서' 혹은 니트가디건을 샀다며 뒤에 '(없었음)' 같은 단서가 붙었다. 떢볶이 하나 사 먹는 것도 대단한 이유 없이는 사치라고 여겨질 거라는 걸 영수증 공개한 이들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월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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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아파트 성격의 아파트가 건립되면 나중에 도시 슬럼화를 가져올 수 있고. 영등포 얼굴에 똥칠하는 거죠."

 

월세살이인 내가 방이 아니라 집에서 살 유일한 방법은 임대 아파트에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미래를 내다본 현명한 어르신의 말마따나, 임대 아파트에 나 같은 사람들이 입주하게 된다면, 매일 아침 한강에 머리 감으러 가는 빈민들의 행렬에 의해 교통이 마비되고, 비둘기랑 빵부스러기 다툼하느라 고주파를 발사해 통신이 마비되며, 영등포의 밤을 밝혀주던 타임스퀘어 조명을 형광등으로 쓰겠다며 다 뜯어가, 자랑스러운 나의 고장 영등포를 한순간에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에 임대 아파트는 많이 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5월의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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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아파트는 한 유닛의 크기가 100 스퀘어풋, 약 3평 정도지만 둥근 원형 구조때문에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인다."

 

현실이 그러한지라 이런 기사에도 눈이 간다. 

 

월세살이 빡쎈 거로는 세계 제일이라는 홍콩에선 수도관으로 3평짜리 아파트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수도관은 원래 땅속에 묻기 위해 만든 거라 튼튼하고 방수도 잘 된다나.

 

공각기동대에서나 볼법한 다소 아스트랄한 시도이긴 하지만, 월세가 아까워 캠핑카를 사서 살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나로서는 매우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6월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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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 호조에 힘입어 비금융자산 가격 상승률은 금융위기 이후 가장 컸다."

 

6월엔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를 따라 경기도 모처의 오피스텔 모델하우스에 갔다. 30대 중반의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는데, 1억 5천가량의 오피스텔은 정말로, 정말로 좋아 보였다. 

 

부모님께 약간의 목돈을 지원받은 친구는 호기롭게 집을 둘러봤지만, 가격을 듣고 팸플릿도 안 챙기고 모델하우스를 나오게 됐다.

 

인상적이었던 게 하나 있었다면, 안내를 맡은 직원이 우리에게 해줄 말이 너무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궁금했던 건 이 오피스텔에 살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불편하냐는 것이었는데, 그가 준비한 멘트는 온통 "업무지구가 가까이 있어 안정적 투자가 가능하다", "배후수요(?)가 튼튼하다"는 것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20~30대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7월의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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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가 아니고, 노회찬 대표님께 짤막한 편지를 하나 써왔습니다. 써온 대로 읽겠습니다.

 

다음 생에서 또 만나요. 우리에게 다음 생이란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이 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만나는 세상이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로운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온전하게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되면 좋겠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을 가장 열렬히 대변했던 노회찬 의원이 돈 때문에 생을 마감했다.

 

故 노회찬 의원의 대표 발의했고, 세입자의 계약 기간 연장, 전월세 인상률 상한의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8월의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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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지역에서는 청약열풍을 넘어 '광풍(狂風)'이 불고 있다. 공급이 적다보니 시세가 치솟고, 이로인해 분양가의 차이가 많이 나는 이른바 '로또 아파트'에는 혹시나 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돈 있는 양반들이 로또 아파트를 찾아 청약 광풍을 만드는 사이, 나는 로또를 샀다. 매주 꾸준히 샀었는데 돈이 아까워 연금복권으로 갈아탔다가, 부동산 부동산 터지는 뉴스를 보고 병이 도져, 다시 로또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4등에 당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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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금 5만 원을 쥐고 기뻐하기도 잠시,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눈이 가는, 욕심이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닝겐인지라 '숫자 2개만 더 맞았으면...'하는 생각이 절로 났다. 

 

찾아보니 1등 당첨자는 7명으로 29억 9천만 원씩 받았다고 한다. 세금 33% 떼면 20억.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다. 내가 0.00000012%의 확률을 뚫고 로또 1등이 되면 그런 아파트에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 한명 한명이 로또 당첨자처럼 멀게 느껴진다.

 

 

9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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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부동산에는 '백약이 무효'라는 학습효과가 퍼진 주택시장에 수요규제가 얼마나 장기간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잭과 콩나무도 아닌데, 집값은 또 올랐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규제 말고 '유동성'을 틔워 줘야 한다고 했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그걸 못해서 실패한 거라고.

 

유동성이란 무엇인가. 남아도는 돈이 투자(혹은 투기)할 곳을 찾는다는 말이다. 돈이 자꾸만 남아돌아서 부동산으로 흘러들어온다는 것이다.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자.

 

물론 유동성,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에는 죄가 없다. 돈을 많이 버는 건 기쁜 일이니까.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사람을 절벽으로 내모는 일이라면 염치라도 좀 있었으면 싶다. 더 배불리 먹고 싶다고 유동성을 살려달라는 말은 좀 넣어두셨으면 싶다. 사람 사는 집으로 부루마블 하지 말고, 그 잘난 유동성은 딴 거 가지고 놀았으면 싶다. 희토류를 캐던지, 볼리비아 광산을 캐던지, 돈스코이를 끌어 올리던지 뭐든.

 

 

10월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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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남은 생은 아픈 사람들과 연대해서 걸으려고 한다. 혼자 가는 길이 물론 편하고 좋겠지만, 여럿이 함께 걷는 일이 좀 고단하더라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러저러한 일로 통장 잔고가 바닥을 찍었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이 다음 달 출금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고 2015년에 가입했었던 청년주택협동조합을 탈퇴했다.

 

월급 모아서 집을 살 수는 없고, 임대주택은 매번 순번에서 밀려, 공유주택이라도.. 싶은 마음에 가입했던 곳이었다. 매달 냈던 후원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주거 문제 최전선에서 열심히 싸웠고 앞으로도 잘 싸울 거라고 믿지만, 돈 한 푼이 아쉬워 탈퇴 전화를 했다. 다음날 출자금이 입금됐다.

 

영화 <미쓰백>을 보고 딴지에서 산만언니님 글을 읽었다. '연대'라는 단어가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협동조합 탈퇴한 게 후회됐지만, 다시 가입하진 않았다.

 

 

11월의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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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아닌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적게는 40만, 많게는 228만가구로 추정된다."

 

혹자는 부동산 문제를 세대 대결로 접근하기도 하는데, 그닥 공감이 되진 않는다. 언뜻 부동산을 선점한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를 착취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오래 살아 더 많이 일했기 때문에 손톱만 한 재산이나마 모을 수 있었고, 그걸 지키기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세대가 아니라 계층이다. 1%, 정말 넓게 봐야 10% 정도의 사람들이 쥐고 전체를 흔드는 게임인 것이다. '부모의 부와 권력은 자녀에게 세습된다'는 명제가 절대 진리로 통용되는 한, 그 게임은 끝나지 않을 테고. 

 

 

12월의 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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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고 싶은데 투자할 수 없다. 어떻게 개방시키지? 미국 정부는 그 수단을 갖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당한 국가에 달러를 빌려주는 대신 경제구조 변혁의 권한을 얻는 IMF다."

 

<국가부도의 날>을 봤다. IMF 위기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나라 경제를 총괄한다는 나으리들은 얼마나 등신처럼 굴었는가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IMF 사태 20년 후를 다룬 마지막 5분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위 사진을 보자. "이게 니 얘기야" 알려주려는 듯 유일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갑수(허준호). 그는 직원들에게 신망받던 중소기업 사장이었으나 IMF로 '환골탈태' 후, "핫산! 일 똑바로 못해!"를 외치는 악덕 사장이자 "누구도 믿지 말고 너 자신만 믿어!"라 아들에게 말하는 각자도생의 아이콘이 되었다.

 

딱 갑수(허준호)의 아들뻘 되는 내게도 그런 아버지가 있다. 입버릇처럼 "안정적인 게 최고다", "공무원 돼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다면, 5명 남짓의 직원과 함께 신발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외국인 노동자를 들이는 대신 공장을 동남아로 옮겼고, 처절하게나마 살아남은 갑수와 달리 여러 번 망했다.

 

부모님 집에 빨간 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그 날. 집이 아니라 방에서 살아야 하는 삶이 결정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뜯으려 해도 징그러운 접착력으로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압류 딱지처럼, 내년에도 월세살이를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 참고 기사

 

- 한국경제, 잇단 규제에도 작년 주택가격 1.48% 올라…전년도의 2배

 

- 경향신문, [박민규 칼럼]‘백년 동안의 지랄’

 

- 한겨레, 숨만 쉬어도 청춘은 ‘적자’…허투루 안쓰는데 뭘 더 아끼죠?

 

- MBC, 청년임대주택 곳곳 갈등 "집값 떨어진다…빈민 아파트"

 

- KBS, 3평 짜리 ‘수도관 아파트’…홍콩주택난 해소할까?

 

- 연합뉴스, 가구당 순 자산 3억8867만원… 75%가 부동산에 집중

 

- 한겨레, [추도사 전문] “잘 가요, 회찬이 형” 유시민·박중훈의 마지막 인사

 

- 한국경제, 8·2부동산대책 1년인데...폭염·휴가에도 들끓는 청약시장

 

- 연합뉴스, [고삐풀린 집값] ① "서울 집값 미쳤다"…대학생도 갭투자

 

- 딴지일보, 저는 삼풍백화점 생존자입니다 9 - 함께 걷는 가치

 

- 한겨레, 밀어버린 달동네, 밀려나 20년째 ‘비닐집’ 사는 할머니

 

- 시사IN, 1997년 말, 미국은 왜 한국을 집어삼키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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