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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vs 비용

 

자산을 한 줄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자산은 '돈이 될법한 무언가'이다. 반대로 돈이 안될 것 같다면? 이건 비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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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무에서는 판단하기가 애매할 때가 있다. 사무실을 둘러보자. 김 과장이 쓰고 있는 컴퓨터는 자산인가 비용인가? 자산일 거다. 그 컴퓨터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주고(맨날 인터넷 바둑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여차하면 컴퓨터를 팔았을 때 돈이 되니까. 그럼 탕비실에 있는 회삿돈으로 산 커피는? 직접적으로 돈을 버는 거랑 별로 상관이 없는 데다가, 액수가 워낙 소액이라(재무상태표에는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숫자만 올라간다) 대부분 그냥 비용으로 처리한다.

 

액수가 엄청 큰데도 자산인지 비용인지 헷갈리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이돌이나 연습생에게 쓰는 돈. 이건 자산인가, 비용인가?

 

데뷔를 한 아이돌에게 쓰는 돈(계약금)은 자산으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미 데뷔를 하고 계약금까지 지불했다는 것은, 해당 아이돌이 그만큼 돈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연습생에 대한 회계 처리는 회사마다 다른 것 같다. 한 기사(링크)에 따르면, YG는 연습생에게 투자한 돈을 자산(무형 자산)으로 처리하고, JYP는 같은 돈을 비용 처리한다고 한다. 이건 두 회사가 연습생에게 투자한 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점에 따라서 같은 돈이라도 회계 처리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넘어가자.

 

 

 

자산은 어떻게 생겨 먹었나

 

재무상태표에서 자산은 현금화하기 쉬운 순으로 작성이 된다. 현금 -> 단기 금융자산 -> 재고 -> 유형자산 -> 무형자산 등등으로. 이렇게만 적으면 어려우니까, 예를 들어보자. 아래는 범죄조직 “죽지 않는 돌고래”의 자산현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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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약물을 제조 및 유통시키는 범죄조직다운 자산현황이다.

 

만약 정의가 구현되어 이 조직이 검거된다면? 이 조직은 해외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자산을 팔려고 할 것이다. 이때 통장에 있는 현금은 인출을 하면 되지만 기존 유통망을 통해 재고를 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범죄에 사용된 아지트와 제조 시설 등의 구매자를 찾기는 아주 많이 힘들 것이다(떨이 세일을 상당히 많이 해줘야 할 것이다).

 

즉 재무상태표에서 자산이 돈이 된다는 것의 한 가지 의미는, '다시 팔았을 때 돈이 된다'는 것이다. 자산은 현금화가 용이한 순으로 작성된다.

 

 

기업이 돈을 버는 방식

 

위에서 작성된 자산현황표에서 한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모든 자산이 구입 비용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재고가 5백만 원이라는 것은, 이 알약 5만 정을 만드는데 개당 100원 씩 들었다는 의미(5,000,000 / 50,000 = 100)다.

 

기업이 쓴 돈이 100원이 들었다는 거지, 실제로 그 약이 100원의 값어치가 있다는 말은 아니다. 만약 이 알약이 어둠의 루트를 통해 개당 1만 원에 팔린다면? 이 알약 5만 정은 죽지 않는 돌고래에게 5억의 매출(10,000* 50,000 = 500,000,000)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를 통해 죽지 않는 돌고래가 거둘 수 있는 범죄 이익은 매출(5억) - 매출원가(5백) = 4억 9천5백만 원이다. 이 거래를 장부에 기록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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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조직의 “현금” 5백만 원이 “재고” 5백만 원이 되었다가, 팔림과 동시의 “매출” 5억과 “현금” 5억이 된 것이다.

 

현금(자산) -> 재고(자산) -> 현금(자산) + 매출(자본)이 된 것인데, 거의 모든 제조업 기업들이 위와 같은 흐름으로 돈을 번다. 즉,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자산(현금)을 다른 형태의 자산(재고)로 바꿨다가, 이 자산에 본인들의 마진을 넣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팔아 매출과 제품 생산에 들인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현금을 벌어들인다.

 

 

고정자산의 회계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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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생산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재고라는 게 현금만 들이면 뚝딱하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를 생산할 공장 부지와 설비 등이 필요하다(죽지 않는 돌고래 같이 특별한 약물을 제조하는 회사라면, 무형의 자산인 특허나 기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제품의 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산을 '고정자산'이라고 한다.

 

고정자산 중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기계설비 등은 감가상각이란 걸 통해 그 가치의 변화를 기록하고 그 변화만큼을 비용처리한다. 예를 들어, 죽지 않는 돌고래가 8억을 들여 지은 약물 제조 시설의 사용 연한이 8년이라면(그리고, 8년 후 건질 수 있는 가치가 0원이라면), 해마다 값어치가 1억 씩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줄어든 1억은, 해당 연도의 감가상각 비용으로 인식되어 자본을 1억만큼 감소시킬 것이다.

 

이 경우 연간 이익은 매출 5억 - 원가 500만 원 - 감가상각 비용 1억 = 3억 9천500만 원이 되는 것이다.

 

 

자산이란 결국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흐름 위주로 정리해보자.

 

제조 기업의 '자산'이란 건 초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생산수단(고정자산)을 확보한 다음, 여기에 현금을 투입시켜 제품을 만들고, 이 제품에 본인들의 이익(마진)을 붙여 팔아 더 큰 현금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수단이 되는 것이 고정자산, 연소(지출)되는 것은 현금, 배출(생산)되는 것은 재고다. 이 생산품이 팔렸을 때 비로소 매출 - 비용만큼의 이익이 발생한다.

 

자산이란 이익을 발생시키는 복잡한 기계 장치인 셈이다. 이 기계 장치가 효율적으로 작동할수록 기업이 만들어내는 이익은 극대화된다. 효율적인 기업이란 다른 게 아니라, 비싸게 팔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제품을 더 싸게 많이 만드는 기업이다.

 

반대로 회사가 회삿돈을 가지고 생산과 별로 상관도 없는 곳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면, 이 기계 장치의 효율은 떨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만드는 회사가 10조 원을 들여 강남 한복판에 땅을 산다거나, 치킨 튀기는 회사가 회삿돈으로 자녀 유학을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익 창출과 무관한 곳으로 회삿돈(자산)이 줄줄 새고 있으니, 그만큼 비효율적인 것이다. 혹시 다니는 회사의 오너가 직원들 월급은 깎으면서 회삿돈으로 외제차를 뽑는다면, 자산이 과연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PBR로 보는 국내 기업의 가치

 

자산을 배웠으니까, 이를 응용한 수치 하나를 보자. PBR(Price to Book Value Ratio)이라는 게 있다. 시가총액(Price)를 회계장부상 자산(Book)으로 나눈 것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회사가 발행한 주식이 회계장부상, 자산 대비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 나스닥의 경우 이 비율이 2.5배 정도 된다.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의 보유자산이 100억이라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250억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는 것이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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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기준, 코스피 기업의 PBR은 0.89이다. 코스피 기업이 장부상 보유한 자산이 100억이라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고작 89억 정도로 평가를 받는다는 소리다. (링크)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기업이란 돈을 벌겠다고 자산을 끌어다가 모은 존재인데, 들인 돈보다도 시장에서 낮게 평가를 받는단 소리다.

 

혹자는 이를 들어, 한국 기업 주가가 미국에 비해서 싸도 너무 싸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나는 시장이 제시하는 가격은 대체로 옳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그만큼 한국 기업의 주가를 자산 대비 낮게 평가하면, 그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란 게 사실 별 게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자산을 미국 기업에 비해 잘 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너를 위해서 굴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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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 소유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 경영권 승계 작업에 기업의 자산이 낭비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얼마나 많은 기업의 오너가 갑질과 슈킹으로 문제를 일으켰나? 즉, 오너가 돈 버는 게 생산 수단인 회사가 돈을 벌고, 그로 인해 주주의 몫(이익)이 커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 주식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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