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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좃선 김대충 칼럼 감상법

2000. 3.6.월요일
딴지수뇌부

본지 총수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딴청 피우던 본우원, 엽기 딴지의 논설우원답게 엽기적으로 반항하려 하였으나... 어느 날 날아 온 단 한 줄의 이 멜 최후통첩  <배신은 죽음 뿐... >을 접수하고 목숨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랴 하는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다시 복귀한다. 환영해 주시라. 

 

지난 좃선 농썰 디비기 연재 결과, 좃선삐라는 본지와 비하자면 변소 앞에 방구 정도로 여기는 딴지답게 엄청난 양의 멜을 받아보았다. 물론 두고두고 본우원 똥꼬에 깊숙히 아로새겨질 찬양이 주를 이루었으나 개중에는 요런 멜도 상당수 있었다. 

 
 

" 씹숑, 너 민족정론지 조선과 원수졌냐 " 혹은 " 좃선만 웃기고 자빠진 게 아닌데 다른 거뜰도 좀 조져라 " 

 

등등... 

 

그러나, 이번 호의 주제도 역시나 좃선 디비기다. 사실 맞다. 본지 필살의 똥침을 하사해줘야 할 넘들은 좃선 말고도 많다. 그런데, 왜 좃선만 물고 늘어지고 지랄이냐구?

 

왜냐면, 난 한 놈만 팬다.
되질 때까지.

 

오늘은 3월 24일자 김대충 칼럼 <여소야대와 직접민주주의>를 줘팬다.

 
 

 히로시마의 하늘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 고도 31,000피트. 날개 길이가 43미터에 달하는 "Enola Gay"라는 예명의 B-29 폭격기 한 대가 날고 있었다. 

 

26세의 한 소령은 눈앞에 있는 레버를 밀어제꼈다. 이미 몇 초 전 자동투하 시스템을 작동시켰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수동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 소령은 "Little Boy"라는 이름을 가진 4톤짜리 폭탄이 탄두를 아래로 하고 떨어져 내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재빨리 시력보호용  고글을 착용했다. 

 

43초 후, 떨어져 내리던 폭탄이 1890피트 상공에 이르자 눈부신 섬광이 하늘을 뒤덮었다. 지구는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출렁거리는 듯했다. B29 폭격기는 150도 급선회 한 후 오던 길을 되짚어갔다. 

 

그 하나의 폭탄으로 도시는 쑥대밭이 되고 80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방사능 피폭으로 평생을 뒤틀린 채 살아가게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원자탄을 실은 편대는 2명의 장교 포함 12명을 싣고 마리아나 군도의 베이스를 출발했었다. 26살의 소령은 목적지로 날아가는 동안 별 생각 없이 기내에서 꾸벅꾸벅 졸았고, 그가 투하하게 될 폭탄이 원자탄이라는 걸 안 것은 히로시마 상공에 도착하기 두 시간 전이었다.

 

그들이 귀환하자 기라성 같은 장성들이 나와서 그들을 반겼다. 3일 후 두 번째 핵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졌고, 또 그로부터 5일 후 일본은 무조건 항복한다. 

 

원자탄을 떨어뜨린 그들은 미국의 전쟁영웅이었지만, 후일 도덕적,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우리 입장에서야 악랄한 일제를 물러가게 한 결정적 한방이었지만 당시 핵폭격이 아니었으면 백만명이 더 전사했을 거라는 미국의 주장은 심각한 공격을 받았다. 

 

원자탄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며, 히로시마는 미국을 위한 세계최초의 핵폭탄 실험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대에 앞서 당일 아침 히로시마 상공의 일기를 정찰하고 온 조종사를 비롯해서 많은 멤버들은 후일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게 된다. 전쟁터의 군인도 아닌 그저 일상생활을 살아가던 노인 아이 할 것 없는 8천명의 원혼 때문에... 




 
 


당시 Egola Gay의 비행팀
줄 맨 왼쪽 넘이 페레비 소령.

 

하지만 수동 투하 레버를 조작했던 그 26세의 젊은 장교, 페레비 소령만은 전혀 후회가 없었다. 

 

그는 후일 대령으로 예편했으며, 단 한번도 자기가 8천명을 죽였다고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핵기술이 얼마나 파괴적인가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다녔다. 

 

핵무기는 절대로 다시 쓰면 안된다고... 

 

그리고 지난 3월 16일, 8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1994년 8월. 대한민국에도 핵폭탄 하나가 떨어졌다. 
빠콩의 주사파 발언. 

 

"Enola Gay"에 실렸던 원자탄 "Little Boy"가 일본열도를 뒤엎어 놓았듯, 빠콩의 밑도 끝도 없는 빨갱이주장은 온 나라를 홀라당 디벼 놓았다. 물론, 그 선두에는 냉전시대 한국의 Enola Gay, 좃선이 있었다.

 

 사설 칼럼 해설 정치면 사회면 온갖 지면을 동원해서 좃선은 빠콩의 주장을 전력을 다해 실어 날라 온국민에게 폭격했다. 

 

 빠콩의 일만오천명 주장에 한술 더떠서 좃선은 주사파 동조자 3만명이라고 해설기사를 실었는가 하면 외부필자들을 동원해서 한국의 Little Boy 코믹버전, 빠콩을 보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빠콩을 용기있는 지식인으로 목놓아 칭송했고 빠콩을 욕하는 건 무조건 국가안보관이 의심스러운 자였다. 

 

증거를 대라는 정상인들의 요구에 좃선은 "주사파 없다는 증거를 니들이 대라"고 했고, 한 사설은 "버스에서 한 승객이 도둑 조심하자고 얘기했는데 왜들 난리냐. 그럼 도둑 없다는 걸 증명해라"라고 해괴한 주장을 폈댔다.

 

그로부터 다시 6년이 지났다. 겨우 6년밖에 안 지났다. 누구 주사파 3만명 잡혔다는 뉴스 들어 본 사람 제발 본지에 연락 좀 해주기 바란다. 3만명이 아니라 3백명이라도 좋으니까. 당장 우리나라가 빨갱이천국이 되어 나라가 끝장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던 좃선은 지난 6년간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그래도, 좃선이라는 폭격기는 오늘도 한국 상공을 날아다닌다. 그것도 즈그들이 민주주의의 전도사라고 하면서.. 

 
 

3월 24일자 김대충 칼럼 <여소야대와 직접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전도사 좃선의 최강 글빨이라 칭해지는 김대충 구라주필의 정치론을 아주 잘 보여주는 칼럼 되겠다. 이제부터 이 칼럼을 본우원 촘촘하게 꼼꼼하게 히꺼떡 디벼주겠다. 독자 제위들께서는 요기를 눌러 칼럼 원문을 먼저 함 보시라. 최장집 사건이나 그 유명한 엉터리 영어 번역 때처럼 지조때로 골라서 공격하는 짓은 본우원 하지 않는다. 첨부터 끝까지 전부 훑어보기 바란다.

 

 파퓰리즘(populism)이라는 단어 

 

우선 파퓰리즘부터.

 

요거 아주 좃선이 잘 써먹는 단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원한 걸작 김대충 구라주필 성문지조때로 영문법서 발간 사건 때부터. 이 단어부터 디벼보자. 왜냐? 아 글쎄 함 따라와바바.

 

파퓰리즘이란 게 오늘날 많은 경우 부정적으로 쓰이는 건 분명하다. 부정적으로 쓰일 경우, 합리적인 정책 없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정상적인 절차 없이 인민재판식으로 밀어붙이는.... 뭐 그런 정도 뜻 되겠다.

 

하지만 그건 부정적으로 쓰일 때 이야기고, "절차민주주의"에 반대되는 뜻으로 쓰일 때 파퓰리즘은, 그놈의 "절차"를 틀어쥔 독재정권에서 벗어나는 시기에 등장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그런 정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천안문 사태 같은 거 말이다. 또 파퓰리즘은 "엘리트주의"에 반대되는 뜻으로도 쓰인다. 군산 복합체, 지네들끼리 짜고 치는 정치인들과 거대 자본의 고스톱판, 배타적인 기득권 특권층 집단 뭐 이런 거에 반대하는 운동 같은 걸 가리키기도 한다. 100년전 19세기말 대자본에 맞서 싸웠던 미국과 유럽의 소농들의 사회운동이 파퓰리즘의 효시였다. 미국서는 정당이 결성되기도 했고. 

 

최근 뉴욕타임즈는 대만 선거에 나왔다가 2등으로 떨어진 쑹추이에 대해서도 파퓰리스트라고 칭했다. 쑹은 무소속으로 나오긴 했지만 국민당 핵심멤버였었다. 2월 24일자 좃선의 <태평로>에서도 공화당 맥케인이 파퓰리스트이고, 지네들끼리 놀아나는 워싱턴의 정치에 국민들이 짜증을 낼 때 나타나는 파퓰리스트들이 미국 정치의 건강성을 나타낸다고 말한 바 있다.

 

김대충 구라주필은 이런 파퓰리즘이란 단어에 빨간 칠을 하려는 혐의가 포착된다. 다른 데서는 일관되게 시민이라고 하다가 유독 이 대목에서만 인민이니 민중이니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빨갱이라는 뉘앙스와 접근해버리는 - 단어를 사용한다. 

 

아, 쓰바.. 골 아픈 얘기 안 할라구 했는데.. 쓰다보니 내가 골 아프네...

 

암튼 파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이념적 색채 같은 것과는 관계없고, 주로 정치적 지지를 어떻게 이끌어내는 방식 같은 것과 관련되어 쓰는 말 되겠다. 근데 이 얘기를 왜 하냐구? 김대충 구라주필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한 거에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냐구? 

 

아, 일단 따라와 보라니까.

 

 누가 파퓰리스트였나?

 

파퓰리스트, 이거 우리의 호프 김대충구라주필님께서 나쁜 거라 하셨으니 일단 그거 나쁜 거라고 치자.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니까. 이미 국회와 같이 확립된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야지 쓸데없이 대중선동이나 하는 건 나쁜 거라고 일단 인정해주자. 6월 항쟁 같을 땐 유효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고 치자고.

 

그런데, 그럼 도대체 과연 누가 그런 파퓰리스트 정치가인가? 최근 우리 역사에서 파퓰리즘이 단연 부각되었던 때는 누가 뭐래도 압도적으로 김빵삼때다. 권위주의와 파퓰리즘이 결합하면 빵사미 때처럼 조또 요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의회나 정당이나 시민단체로부터 상향식으로 의견들이 수렴되어 공론화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의 구상이니 결단이니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 결딴 많이 내린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나라가 결딴 난 거 아냐..
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지..
음핫핫핫.

 

청남대 구상이니 거제도 구상이니 하며 영사미 만큼 많은 구상과 결단을 내린 정치가가 또 나올까? 

 

당연히 지도자 지 혼자의 구상과 결단이 많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정치의 예측가능성, 안정성 같은 건 없다.

 

핏줄은 동맹보다 우월하다느니 하면서 남북긴장 해소시키겠다고 철썩같이 얘기해놓고, 느닷없이 한통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니 간첩이 몇 만명이니 하는 빠콩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서 공안 광풍이 불게도 했다. 또 친재벌 일변도를 걸으면서도 칼국수 먹는 서민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창출에도 노력했었고. 

 

이런 파퓰리즘의 향연 때 동원되는 게 뭔가.
바로 언론이다. 
서울 불바다 발언의 그 호들갑을 생각해보라. 

 

김빵삼이 야당시절부터 언론을 얼마나 극진하게 대했는가는 잘 알려진 얘기다. 그리고 좃선은 그 최선봉에 항상 있었다. 밤의 대통령 아니었나. 오히려 김빵삼을 좌지우지할 정도 아니었나. 자기들이 국가 아젠다를 설정하노라고 자랑스럽게 설치고 다니지 않았던가 말이다. 빠콩 소동 이후에 좃선은 오히려 빵사미를 끌고 다녔다. 

 

합리적인 비전 없이 감으로 정치했던 정치인 김빵삼은 결국 자기가 뿌려놓은 그 씨로 망한 셈이다. 김빵삼 시대를 창출했고, 파퓰리즘의 시대를 이끌었던 좃선이 그 똑같은 입으로 파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이건 조또 딴지를 능가하는 엽기 그 자체다. 민주주의의 적은 바로 우리 좃선이다 라고 씨불이는 격이다. 이넘들은 머리도 없다. 아니면 지네 독자들이 머리가 없다고 생각하든지. 

 

요기까지는 일반론이다. 그럼 구라주필님의 솜씨를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보자.

 

 참여민주주의

 

우리는 모두 고등학교때 직접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이상이라고 배웠다. 그걸 못하니까 국회의원 뽑아 대의민주주의를 하는 것이고 그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일부국가는 국회의원이 우끼고 자빠진 짓을 할 경우 지역구민들이 소환제도를 통해서 그넘의 의원자격을 박탈시키기도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현대민주주의의 관건은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두 가지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는 것인가 라고 배웠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하자. 김대충 선생께서는 구라주필답게 

 

참여민주주의 = 직접민주주의 

 

요렇게 사알짝 바꿔놓으신다. 일단, 칼럼 원문을 보자.

 
 



 
김 대통령은 지난 1월19일 시민단체의 낙천운동과 관련, 『왜 시민운동을 얽어매나, (중략) 이제 우리도 대의민주주의에서 참여민주주의로 가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김 대통령의 머릿 속에는 기본적으로 「대의」가 여의치 않을 때는 「직접」으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좃선의 글을 읽을 때는 조심 안하면 클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거 상식이지만, 오늘날 이야기되는 참여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 = 대의민주주의 + 직접민주주의

 

를 뜻한다. 

 

즉, 국민들을 대표하도록 국회의원 뽑아서 <대의정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기에, 시민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압력을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더한 것이 <참여민주주의> 되겠다. 

 

그런데 구라주필께서는 

 

참여민주주의 = 직접민주주의

 

라고 단정하신다. <참여>는 무조건 <직접>을 뜻한다 이거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꼼수를 부리냐면, 직접민주주의의 일환으로 시민운동 하는 건 국회 같은 <대의정치>를 싸그리 무시하고 직접 시민들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인민재판식 정치>로 가는 거라며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라주필께서는 참여민주주의는 이상이지만 현실에서 그거 하겠다는 건 불가능이라고 하면서,  시민운동의 의의를 싹 없애버린다.

 

게다가 아래의 문장을 보시라. 

 
 



 
무엇보다도 우리 헌법에는 그런 제도나 정부운영 방식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없고 비상대권의 발동요건도 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리 초법적 상황을 염두에 둔다 해도 직접·참여제도는 헌정 자체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참여민주주의란 우리 헌법에 근거가 없으므로 <헌정을 위협> 한다고 한다. 시민단체가 헌정을 위협한다는 얘기는 본우원 머리털 나고 진짜로 처음 듣는 희한한 거다. 경실련이, 참여연대가 쿠데타라도 한다는 말인가? 이거 완존히 빠콩의 수준에 근접한다. "참여"라는 단어가 그렇게 헌정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단어인 줄 본우원 예전엔 미처 몰랐다. 

 

오해는 마시라. 김데중 대통령이나, 혹은 그 말을 했다는 민주당 아무개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을 과거 관변단체처럼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거니와, 그넘이야말로 목구멍까지 관통하는 정의의 똥침을 맞을 것이다. 그 얘기를 했다는 민주당 아자씨도 참여 = 직접 요러코롬 생각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요때다 하면서 시민운동의 발목을 잡으려는 구라주필님의 놀라운 순발력이다.

 

시민운동과 파퓰리즘은 아무 관련이 없다. 

 

예컨대 파퓰리즘이 절차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때, 그 <절차> 안에는 정당, 국회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도 들어가는 게 현대민주주의의 당연한 개념이다. 즉 시민단체의 운동이 활발하다는 건 그만큼 절차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는 것이지, 그리고 공룡화한 대의민주주의의 결점을 보완할 참여적 제도장치라는 것이지, "그래서 그건 파퓰리즘이고 비민주"이라고 하는 건 완전히 180도 거꾸로 해석한 조또 말도 안되는 씨부림인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할수록 집권자 개인, 혹은 기성 정치권이 지네 맘대로 주물럭거리지 못하는 거 당연한 게 아닌가. 이건 정말 구라주필다운 놀라운 스리슬쩍 솜씨다. 시민운동이 국회 전복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돌아버리겠다.

 

 시민단체

 

좋다. 

 

글은 고렇게 교묘하게 썼지만 김대충 구라주필께서 NGO의 이상을 모르고 계실리가 없지 않은가. 

 
 

" 이상이야 그럴듯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지금 시민단체의 꼬라지가...." 

 

하고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다.

 

그럼 불과 반 년전에 나왔던 다음 글은 도대체 누가 쓴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엄따. 이거 

 
 



 
이번 총선에서도 유권자들이 하나의 종속변수로 치부되고 만다면 우리는 영원히 깔보임을 당할 것이다. 물갈이는 유권자가 한다, 3김 청산도 유권자가 한다는 기치를 세우고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여기에 있다.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런 운동에 앞장서는 것 이 진정한 NGO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정치인들에게 깔보이지 말자. 

 

(99.8.27. 김대충 칼럼 <내년 총선때 보자> )

 

그 말씀을 받들어 <많은 시민단체들>이 <이런 운동>에 앞장섰다. 낙천 낙선운동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게 현실화되자 좃선은 "광장의 초법적 대중주의 현상"(1.21. 사설 <대통령답지 않은 인식> )이라며 맹렬히 공격했다. 같은 날 류근일 칼럼은 갑자기 우리 유권자의 높은 수준을 찬양하며 요상한 논지를 전개했다. 

 
 



 
평소에는 정치에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도 일단 결정적인 순간을 맞아서는 「먹물」 말쟁이들 뺨치게 정확하고 솔직한 촌평을 던지는 우리의 생활인 유권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시끄럽게 나대지도 않고 열불을 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느끼고 있으며 평가하고 있다. 그러니 이 속 깊은 생활인 유권자들이 반드시 누구의 훈수나 설명, 해설, 바람몰이에 이리저리 휘둘릴 이유가 없다. 자신의 부동심 그대로만 찍으면 된다.

 

그러니까, 낙천 낙선 운동하는 시민단체 신경쓰지 말고, 깊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평소 감으로 느낌으로 찍자는 말이다. 현 정권에 대해 "느끼는" 대로.

 
 

예쁘다 보기싫다 / 존경스럽다 경멸스럽다 / 품위있다 천박하다 / 정대하다 얍삽하다 / 군자다 소인배다 / 믿음성 있다 믿음성 없다 / 안도감 준다 불안감 준다 / 나하고 「물」이 같다「물」이 다르다 / 정직하다 부정직 하다 

 

요렇게 느끼는 대로, <생활인>으로서 <체험>한대로, 직관대로 감으로 찍자는 것이다. 투철한 이성과 현명한 판단, 후보자의 경력과 면면을 잘 살펴보고 합리적인 선택, 지역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투표, 능력있는 사람 뽑자 뭐 그런 글은 수없이 봤어도, 이따구 해괴한 칼럼은 일찌기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정치개혁이니 나발이니 하는 시민단체 말은 듣지 말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대로 고대로 하시라는 얘기다. 

 

다시 김대충 구라주필로 돌아가자. 

 

구라주필께서는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대단한 불신을 가지고 계시다. 그건 비단 음모론을 지지하는 좃선이 보는 한국적 현실 (좃선 1.23. 사설에 의하면 시민운동은 "DJ 친정"이라니까...)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칼럼의 중반부를 보시라.

 
 



 
그러나 오늘날 우리와 같은 거대한 공동체에서 시민의 이해를 단수로 추출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은 자칫 포퓰리즘(populism)으로 흐를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 집권자가 모든 정치적 문제들을 「민중의 의지」에 호소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포퓰리즘에서는 인민의 의지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문제의 복잡성으로 인해 인민의 의지가 곧 집권자의 자의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구라주필께서는 

 

참여민주주의 = 포퓰리즘 = 집권자의 자의

 

라는 공식을 말씀하고 계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정말이지 조또 희한한 논리다. 시민단체가 나설수록 집권자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우리 상식하고는 정반대다. 도대체 구라주필께서 반 년전에 말씀하신 <진정한 NGO 정신>이란 건 무엇을 말하는가.

 

낙천 낙선운동이 지지를 받았던 건, 그놈이 그놈이고 가만 놔두면 평생가야 그꼴이 그꼴이니 도저히 더 이상 못참겠다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구라주필께서는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절차를 따르라고 하신다. 정치권이 알아서 떠먹여주는 대로 투표나 하라는 얘기다. 

 

 페레비와 김대충

 

뭐 그것까지도 좋다. 틀렸지만 맞는 말이라고 쳐 주자. 구라주필의 말씀이 지극히 지당하다고 쳐주자 이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좃선 너거뜰은 결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백번 양보해 현정부가 시민단체들을 이용해서 장난질 치고 있다는 음모론이 맞다고 하자. , 그래도, 건국이후 최고의 지도자 전두환을 부르짖고 가까이는 김빵삼 시절 정치권을 주물럭거렸던 좃선 니네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파퓰리즘의 선봉장이었던 넘이 어찌 그거 나쁜 거라고 자기 입으로 얘기할 수 있나. 

 

핵폭탄을 투하했던 장본인 페레비 대령은 후회가 없었다. 명령에 따르는 군인신분이었으니 후회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한번도 가책을 받는다고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핵무기의 공포와 파괴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다녔다. 속으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그는 겉으로는 모순된 삶을 살았다. 질문을 받자 그는 뉴스위크에 이렇게 얘기했다. 

 
 

" 비록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로 인해서 그보다 더 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나는 믿는다. "

 

그가 옳았는가? 그건 모순이 아니었는가? 그건 맘대로 판단하시라.

 

좃선도 과거에 대해, 심지어 명백한 친일에 대해서까지도,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빨갱이 조작 폭격의 1등 공신이었으며 구테타 독재자 찬양의 선봉장이자, 포퓰리즘의 열렬한 전파자였던, 좃선이란 폭격기의 장교 김대충 구라주필도 아직 건재하다. 하지만 이제는 파퓰리즘에 반대하고, 절차민주주의를 설파하고 다니신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에서는 참여정치는 곧 대의정치에 반하는 것이고 따라서 독재가 되어 버린다. 조또 괴이하다. 그렇게 해서 스리슬쩍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도, 갑자기 민주주의의 전도사가 되어버린다. 

 

Enola Gay는 해체되어 박물관에 있는데, 좃선 이거뜰은 아직도 마빡 치켜들고 민주주의의 수호신 행세를 하고 있다. 

 

미쳐도 한참은 미친 케이스 되겠다. 

 

졸라...

 

 

 

 

 

 

- 논설주간을 노리는 논설우원 최내팔 
( asever@h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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