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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략 25 전쯤 얘기다. 나와 친구들에게 병무청에서 신검 통지서가 날라올 즈음이었다.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평소 군면제를 포함한 신체검사 정보(?) 화두였다.

 

어딘가에서 주워처들었는지 친구새끼가한국남성의 평균 신장이 171.6센치라며 나에게대한민국 평균을 깎아먹는 새끼라고 했다. 새끼의 아가리를 가로로 쫘악 찢어놓으며 키는 평균치인 172센치라고 단언했지만, 내심 입은 마음 상처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분기별로 한 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재작년이든가. 정기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서 키를 재는 기계에 디지털 숫자로 169.8 찍힌 마누라가 면전에 대고사기꾼!”이라고 외치며 쓰러져 오열했을 때도 25 상처가 다시 도져 가출을 시도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평균에 미친다는 것과 평균을 깎아먹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전자는 그냥 모자른 느낌이 들고 뿐이지만 후자는 그에 더해 졸지에 이완용이라도 마냥 도덕성에도 치명적 결격사유가 있는 것처럼 일종의죄의식까지 강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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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는 사람은 알 텐데, 초등생 무렵, MBC에서 방영한 <호랑이선생님>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위키를 찾아보니, 1981 3 16일부터 1986 10 31일까지 방영되었다고 한다.

 

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게는 굉장히 강렬한 기억의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 여자아이에게 좋아하는 남자 동급생이 생겼는데, 남학생 집엘 놀러갔더니 쓰러져가는 달동네 판자촌이었다. 남자아이는 자기 집에 놀러온 여자아이를 대접한답시고 이렇다 할 반찬도 없어 그냥 맨밥에 꼬추장을 쓱쓱 비빈 밥그릇을 내미는데 여학생은 몹시 당혹스럽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에피소드의 결말이 어땠는지까진 기억에 없는데, 아무튼, 초딩이 알면 알겠냐만, 순간 깨달았다. 전까진 텔레비전에서 우리집처럼 가난한 가정이 묘사된 것을 적이 없단 사실을.

 

TV 등장하는 집과 가족들은 언제나 중산층 이상의 생활 수준이거나 범죄자 같은 극히 예외적인 부류였다. 우리집처럼 쥐뿔도 없는 서민은 브라운관을 통해 접해 적이 번도 없었다. 시절 우리집이 가난했다래봤자 해당 에피에 나온 달동네 판잣집처럼 쓰러져가는, 없어도 너무 없는 집까지는 아녔음에도.

 

친구끼리 싸워도 되고 가난해도 된다. 자식이 부모에게 반항해도 된다. 검열에 걸린다. 그래서둘리 사람이 아닌 공룡으로 그려졌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랬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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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금은 종영한, <무릎팍도사> 게스트로 락커 윤도현이 나왔을 때였다. 대뜸 학번이냐?” 묻는 강호동에게 윤도현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 다들 학번을 묻죠? 고졸이라 학번이 없는데요?” (정확한 워딩은 모르겠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장면에서도, 초딩 시절 <호랑이선생님> 에피에서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더랬다. 그러네? 다들 년생이냐도 아니고 학번이냐고 묻지? 우리 아부지 세대는 대학 진학률이 10%대였다. 우리 때는 30%였다. 심지어 이는 전국 고교 졸업자 기준인 것이고 고교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중도에 학업을 그만 사람까지 합치면 진학률은 떨어진다.

 

이는 매년 언론 지면에서 늘어놓는 지표와도 맥을 같이 한다. 올해 신입사원 초봉 4천만 어쩌구... 여기서신입사원이란, 대졸 대기업 신입사원을 뜻한다. 기업의 99%이자 고용의 88% 담당한다는 중소기업(해당 통계가 오류라는 지적도 있다. 일테면사업체기업체 분류에 따라 다른 건데, ‘기업체 분류하면 대기업이 전체 고용의 45% 가량을 담당한다더라. 여튼 통계를 잣대로 대더라도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전체 고용의 과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맞다) 쳐주지도 않는다. 간혹 임금격차와 양극화를 다룰 언급될 , 평소 절대 기준은대졸 대기업 신입사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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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아일보에서 재미난 기사를 실었다. 요즘 20~30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 이들을파이세대 부르기로 작정했나 보다. 동아일보가 만든 말인지, 아니면 어디서 주워듣고 말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만든 말이라면 연말 송년회 건배사로오징어!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자!” 지어놓고 혼자 개뿌듯해 하는 꼰대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게 중요한 아니라, 누가 만든 말이든 동아일보가 관련기사와 논설위원 칼럼까지 동원해 밀고 있는 용어인 분명해 보인다.

 

동아일보에 따르면파이세대, 소비시장의 트렌드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세대로 △남과 다른 개성(Personality) 중시하고 △나의 행복과 자기계발에 투자(Invest in Myself)하며 △소유보다 경험(Experience) 위해 실속 있는 소비를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단다. 심지어 현재 국내 인구의 40% 차지하며 절반 이상이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기성세대를 넘어서는 소비 주체로 떠오를 전망이라고도 한다.

 

일단, 기사 제목부터 재밌다. “명품 가방 사고 유럽 여행… ‘파이세대 소비에 몰입하는 이유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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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해당 기사에는, 1년에 명품 브랜드 가방 하나씩 사고 유럽여행 다녀오는 버킷리스트로 삼고 사는 공무원 김 씨(34), 저축은 ‘1’ 안하고 월급의 30% 옷이나 신발 사는 데에 쓰고 나머지 70% 식사, 레저 비용으로 쓴다는 대기업 1년차 김 씨(28), 전세 빌라에 인테리어비만 7천만 원을 썼다는 회사원 최 씨(33), 대출로 외제차를 사고 스위스 휴가에서 250 쓰고 왔다는 은행원 김 씨(29), 부모에게 500 원을 빌려 열흘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회사원 김 씨(29) 등장한다.

 

해당 기사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어찌된 노릇인지 기사를 기자의 주변 인물들은 왜 때문에 (최 씨 하나 빼고) 죄다 성씨가김 씨뿐이냐는 것이다. 김 씨 종친회 잠입르포인가?!

 

번째 드는 의문은, 어째 등장인물들 직업이 공무원, 은행원, 대기업 사원 하나같이 번드르르한 로망 직종들이다. 얘들이파이세대라고? 오케이. 그렇다고 우기니까 그런가보다 인정. 근데파이세대 국내 인구의 40%람서? 2017 기준 20대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3%, 30대가 14.5%인데 40%? , 20~30 합계 인구 수의 40% 얘긴가? 20대와 30대를 합하면 142십만 명이 조금 넘고 40% 대략 570 명쯤 되는데 대한민국에서 저렇게 사는 애들이 6백만 명에 육박한다고? 사우디냐? 공무원이래봤자 9 10년차 월급 실수령액이 300 초반인데 1년에 번씩 명품백 사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파이세대 소비 패턴 유지를 위한 대출 알선 기사인가?!

 

기사의 화룡점정은 뭐니 뭐니 해도 부모에게 500 빌려 해외여행 댕겨 회사원 김 씨(29) 사례다. 쌍노무시키야! 나이 서른씩이나 처먹어서 직장도 다니는 주제에 부모님한테 50 원씩 용돈을 드리진 못할망정! ?!

 

.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소린 아니구나. 미안하다.

 

 

5.

며칠 베란다 배수구가 막혔길래 낑낑대다가 결국 설비를 불렀더니 출장비 7 원을 달래. 카드 되냐고 했더니 원래는 되는데 지금 무슨 사정 된대. 그래서 내일 드릴테니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지. 하지만 통장 잔액은 1,920. 마누라한테 현금 있냐고 물었다간 갈비뼈가 상할지도 모르니 죽지않는돌고래에게 원고료 가불 해달라고 전화했지. 안된대. 야멸찬 새끼(딴지 편집장 죽어라!!).

 

그래서 동생한테 전화했지. 전화는 99.9% 자기한테 좋은 소식인 진즉 알고 있는 새끼니까 전화를 아예 받어. 미친 척하고 어머니에게 전화해서엄마, 혹시 현금 7....”이라고 했다가 들어처먹은 욕을 굳이 여기에 쓰진 않을게. 울엄마의 대외적 이미지 보호를 위해서...

 

그래, 낼모레 나이 오십인 새끼가 주머니에 현금 7 원이 없는 매우 희귀하고 몹시 괴이쩍고 지랄맞게 유별나고 존나리 특수한 케이스라 치자. 그럼 직장 댕기는 자식새끼 해외여행 간다는데 500 빌려준다는 부모는 그렇게나 흔한 케이스였냐? 몰랐네. 몰랐어.

 

꼬라지 보니 나오지 않나? 기사에선 김 씨들이 연애도 안하고 결혼도 생각 없고 저축도 안하고 보험도 안들고 내일은 없다는 듯이 사는 이유가 뭐겠냐? 파이세대? 지랄하고 처자빠졌다 진짜. 내가 요즘 입에 욕을 담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애를 쓰고 사는데 이것들이 끊은 담배 피우게 만드네? 보면 싸이즈 나오니? 저런 애들이 걱정은 하고 결혼은 걱정하니? 어차피 혼기 차면 부모가 뚜쟁이든 결혼정보업체든 매칭해서 엮어주며 신혼집 하라고 자식새끼 명의로 양도할 건데. 쟤들 월급이 월급이니? 어차피 부모 죽으면 상속받을 빌딩이 있는데 쏠로일 직장 댕기며 받는 월급이야 용돈 이상의 가치가 있겠냐?

 

부모보다 가난한 첫세대라고? 당연하지! 개발 붐에 일확천금하고 IMF 나라가 망했을 쏟아진 똥값 매물들 쓸어모아 고래등 같은 건물 올려놓고는 내가 얼마나 피땀 흘려 노오오오력을 해서 얻은 불로소득인 아냐며 하여간에 세상 물정을 조또 모르면서 세금이나 올리자는 빨갱이들은 처죽여야 !라는 밖에 씨부릴 모르는 부모세대를 도무지 무슨 수로 이길까? 비트코인?

 

대체 어쩌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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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물론, TV 드라마는 픽션이다. 그리고 픽션은 일종의 판타지다. 징그럽게 비루한 삶을 어차피 현실에서 지겹도록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쉬는 시간에까지 비루함을 되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마치, 내가 이제껏 살면서 번도 실제로 적이 없는 좀비를 보며 좋아라 한다든가,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북한 특수공작원을 보며 좋아라 하듯이, 번도 실제로 만나 적이 없는 재벌이 사는 모습을 엿보는 맛이 있으리라.

 

아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 모습 없어도 너무 없는 아니에요? 그럼 신문 기사도 판타지인가요? 대입 커트라인 기준은 항상 서울 명문대이고 신입사원 연봉 기준은 항상 대졸 대기업 신입사원이어야 하죠? 대체 주위 남루한 녀석들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린 거죠? 보증금 1천만 원이 없어서 고시원 살다가 간신히 500 만들어서 봉천동 낡은 원룸에 기어들어간 후배는 세탁기를 혼자 있어서 그렇게나 좋다네요. 며칠 빗길에 운전하다가 보게 , 택시와 충돌해서 널부러져 있던 배달 오토바이 20 청년은 어디로 실려 갔죠? 어떻게 됐나요? 내가 대한민국 평균을 깎아먹고 있나요? 여러분에게 미안해야 마땅한가요? ,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말이죠.

 

 

 

7.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죽은 스물네살 용균이는, 규정에 따라 2 1조로, 그러니까 명만 같이 일했어도 죽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의 외주화라며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진 사흘이 지나도록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선 용균이의 이름을 구경조차 없었다.

 

내게는 파이세대 어쩌구, 연봉 평균 어쩌구, 대한민국 청년 세태 어쩌구의 기사보다 위 사건이 대한민국 평균으로 보인다. 내가 평균을 좀 먹는 녀석이라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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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면 찌른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