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극한상황에서 기존의 가치관은 붕괴됐다. 생존에 내몰려 몸을 팔아야 하는 여성들이 폭증했다.
대도시에 한정됐던 ‘성매매 시스템’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되었다. 6.25 전쟁 기간 동안 부산, 마산, 대구, 포항 등에 집창촌이 새로 생기거나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이다. 피난행렬에 밀려 낙동강 전선 이남으로 밀려났던 피난민들이 임시 정착지에서 ‘성매매 시스템’을 알게된 거다.
여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정부’였다.
우리는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를 말하며, 그들을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이들로 규탄한다. 맞는 말이다. 일본군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욕할 만큼 결백할까?
명백히 말하지만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논리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희석시키려는 게 아니다. 우리 역시 여성의 성을 팔았다는 걸 말하려는 거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말이다. (심지어 전쟁이 끝나자 그들에게 주홍글씨를 붙이고 돌팔매질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동원된 위안부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군을 상대로 조직된 위안부고, 나머지 하나는 미군을 포함한 UN군을 상대로 한 위안부.
첫째, 국군을 상대로 한 위안부
“당시 우리 육군은 사기 진작을 위해 60여 명을 1개 중대로 하는 위안부대를 서너 개 운용했다.”
- 채명신 장군의 회고록 『사선을 넘고 넘어』 중 발췌
“사단 휼병부대로부터 장병을 위문하려 여자 위안대가 부대 숙영지 부근에 도착하였다는 통보가 있었다. 중대 인사계 보고에 의하면 이들은 24인용 야전 천막에 합판과 우의로 칸막이를 한 야전 침실에 수용되었다고 하며 다른 중대 병사들은 열을 서면서까지 많이 이용하였다고 하였다.”
- 차규헌 장군의 회고록 『전투』 중 발췌
6.25 당시 우리 군이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두 장군의 증언 말고도 수많은 전쟁 참여 인원들이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 여성들이 어디서 왔는가 의문이 생긴다. 이들이 정부나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구성돼 보내진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가 국군을 위해 위안부를 조직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자발적으로 매춘을 한 여성들의 기록이 위안부에 대한 기록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그런 주장이 나오기도 했었고).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은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했고, 운영했다.
1956년 정부자료에 의하면 한국군이 서울과 강릉 등 4군데에 위안소를 설치/운영했다. 위안소 운영기록은 상당히 구체적인데, 확인된 위안부의 숫자만 79명이었고, 1952년 한 해 위안소를 방문한 국군의 수만 20만 4,560명이었다. 성병검진과 치료에는 군의관이 개입했었는데, 이는 위안소에 군이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미군과 UN군을 상대로 한 위안부
미군정 체제 하에서 남한에 주둔한 미군은 채 8만이 되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발발 후 폭증했다. 1951년 한국전에 투입된 외국군(UN군)의 숫자는 20만 명을 넘어섰고, 1953년엔 32만 5천명으로 늘어난다.
한국 정부는 외국군을 위해, 특정 장소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등록제를 실시했다. 1950년 여름에 부산 위안소를 설치했고, 뒤이어 마산에 연합군 위안소 5개를 설치했다. 위안소는 전선이 고착화되며 폭증하기 시작한다. 1951년엔 부산에만 74개소의 위안소가 설치됐으며, 1952년엔 UN군 위안소 78개가 설치됐다. 외국군을 상대로 한 비공식 업소는 6~700개에 달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적극적으로 위안소 마련에 나섰다. (후술하겠지만 UN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는 한국 정부의 주요 외화 획득 수단이었다) 당연히 법적, 제도적 지원이 뒤따랐다.
1951년 10월 10일에 통과된 『청소 및 접객영업 위생사무 취급요청 추가지시에 관한 건』(보건부 방역국 예규 제1726호)엔 ‘위안소’와 ‘위안부’란 말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예규에 따르면, 위안소는 UN군 주둔 지구에 외국군이 이용할 수 있는 지역에 한해 설치되었고, 한국인은 출입이 금지되며 오로지 연합군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라고 명시돼 있다. ‘성병검진’의 절차와 결과 역시 외국 헌병대에 보고(연락)해야 할 사항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조직형태와 운영방식이 일본군 ‘위안부’와 거의 비슷했다.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여러 행정 조치가 있었지만, 일단 정부 자체가 뒤로 물러서 있는 모습. 국가의 필요는 있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모습.
...그 뒤의 행보도 비슷했다. 일본에 팡팡걸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양공주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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