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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을 비정상적으로 많이 만났습니다. <긴급출동 SOS 24>를 무려 6년 동안 맡으면서 그런 분들을 만나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이 문제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더군요.

 

언젠가 한 시골에 고립돼 살면서 기행을 일삼고 있다는 아주머니를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첫 방문 때 우리 일행은 다들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온갖 칼이며 몽둥이며 도끼며 등등하는 무기(?)들을 방에 쌓아두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공격하려 한다는 망상의 소산이었습니다. 낡은 형광등 불빛에 시퍼렇게 물드는 열 개도 넘는 칼날의 느낌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어찌어찌 촬영을 진행하여 아주머니의 상태를 입증하고, 다른 가족을 설득해 동의를 받고 병원으로 옮기려고 다들 출동했는데 이 아주머니가 집에 안 계십니다. 밭에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다가서서 아주머니 건강 검진 한 번 받아보자고, 어제 관절염 얘기하지 않았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데 갑자기 이 아주머니가 스윽 몸을 일으킵니다. “어디를 가요?” 아주머니는 제 말을 잘 못 들은 눈치였지만 저는 그 질문에 그만 온몸이 싸늘해지고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의 오른손에 낫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죠. 

 

시골 출신은 아니지만 이래저래 낫 무서운 건 압니다. 아주머니와 저와의 거리는 1미터. 팔을 뻗을 필요도 없이 아주머니가 손만 내밀면 낫으로 제 목을 끌어당길 수 있었지요. 아 그 순간의 공포라니. 황급히 물러서면 되레 자극할 것 같고, 그렇다고 달아날 수도 없고, 병원 가자는 말을 오해하면 (아니 그 진의를 파악하면) 어쩌나 싶고 한 1분 파들파들 떨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고, 아주머니는 긴급 이송단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가족과 함께 어머니를 입원시킨 뒤 의사 선생님을 만났지요. 그래서 몇 시간 전의 ‘낫 액션’(?)과 제가 느낀 공포를 침 튀기며 이야기해 드렸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잘했네. 하지만 이런 분들이 사실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요. 그분이 무기를 방에 잔뜩 쌓아놨다고 했는데 그건 누굴 공격하기보다는 자신을 방어하려는 심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커요. 아픈 사람이에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그래도 무슨 일을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은 안 그런가요? 얘기 들어보니 PD님을 위협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밭매고 있는데 PD님 혼자 겁먹은 거였거든요. 물론 위험한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그 위험한 비율이 보통 사람에 비해 유달리 높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화제를 돌려 다른 얘기를 하다가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저런 아픔을 얻었을까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가정폭력이 심했다던데 그것 때문에 그런 걸까요? 아이를 잃었다는데 그때 정신을 놓아버린 걸까요? 궁금한 질문을 던져 보는데 의사 선생님이 엉뚱한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PD님은 선천적으로 위나 간이나 장이나 안 좋은 데 있지 않으세요?” 

 

“네? 아..... 네 저는 장이 좀 안 좋은 거 같긴 합니다만.” 

 

“저랑 만나는 환자분들이 대단한 사연이 있어서, 무슨 큰 충격을 받아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방아쇠 효과, 즉 병을 촉발시키는 이유야 있겠지만 이분들은 PD님 장이 안 좋으신 것처럼, 다른 쪽이 선천적으로 약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무슨 특별한 일을 겪은 사람들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에요. 그런 게 또 편견이죠. 몸 튼튼한 사람들도 감기 걸리듯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건데 여기 오는 걸 극구 거부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고요.”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씀하시긴 하는데 네가 지닌 오해를 단단히 고쳐 주마는 기세로 파고드시는 통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한 번 발을 헛디디면 중심 잡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말도 그렇습니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게 되고 필요 없는 말도 고개를 디밀게 마련이죠. 그날 제가 그랬습니다.

 

그럼 저분은 여기 얼마나 있게 될까요? 여쭈고 몇 달은 계셔야 할 거 같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거기서 무심결에 이런 말이 나와 버린 겁니다.

 

“이런 입원을 몇 번째 시켜 보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어쨌건 몇 달 ‘갇혀’ 있어야 하니.”

 

그 직후 저는 아주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PD님. 여기 감옥 아니고 나 간수 아닙니다. 여기는 치료를 하는 곳이지 사람 가두는 곳이 아니에요. 솔루션을 하신다고 의사에게 환자 데리고 오신 분이 마음이 불편하면 어떡합니까.”

 

“아.... 그.... 그런 뜻이 아니.....”

 

“네 그런 뜻이 아니시겠죠. 하지만 그걸 아셔야 돼요. 그 불편한 마음 때문에 환자들은 더 심각해지고 ‘자해나 타인에 대한 위협’이 더 커지게 돼요. 갇히는 게 아니라 기회를 얻는 겁니다. 자기 병을 알고 대하는 요령을 알고 치료를 받으면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기회를 뒤늦게야, 어떻게 손쓸 수 없을 때가 돼야 제 앞에 앉는 사람들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아세요”

 

“죄..... 죄송합니다. 정말 그런 뜻은......” 

 

“PD님더러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 편견이 싫은 거예요. 이런 방송하시면서도 그렇게 말하게 만드는 그 편견이 정말 싫은 거라구요. ” (나더러 뭐라는 거 맞잖아 ㅠㅠ) 

 

<긴급출동 SOS 24>를 하면서 “사람 머리는 정말 신기하구나.”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귀 쫑긋 세우고 듣다가 폭소가 터져 나오는 기발한 망상 (“나는 외계인의 피를 받은 것 같아요.”)부터 “3개월 된 딸 뱃속에 나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어요. 한 번 열어봤으면 좋겠어.”하는 소름 쫙 끼치는 얘기에 이르기까지 어찌 보면 엇비슷하나 하나하나 색다르고 특색 있는 증상을 보였고, 그 망상들이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일들도 복잡다난했습니다. 

 

결국 그들과 최일선에서 마주치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도 ‘마음이 아픈’ 그들의 환자들처럼 편견과 싸우고 있었고요. 

 

안타까웠던 것은 분명히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그 끝이 비전문가의 눈에도 불 보듯 뻔한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었습니다. 스스로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가 제 발로 병원 문을 두드릴 리는 만무하기에 가족이 그를 거부하고 방치하거나 유기해 버릴 경우 사실상 의사들이나 지역 정신보건센터가 개입할 방법이 없었지요.

 

‘자해나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는 경우’ 지역 자치단체의 장이 강제 치료를 명령할 수 있으나 거의 행사되지 않았습니다. 그 부작용을 우려한 탓이겠으나 부작용이 두려워 치료의 시작이 봉쇄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환자 본인과 주변의 공동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프면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를 감금으로 보고, 환자를 죄수로 보면, 여기 오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면 어떡합니까.”하며 혀를 차던 그날의 의사 선생님의 상기된 표정은 지워지지 않는 제 부끄러움과 얽혀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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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견과 오랫동안 싸웠던, 자신의 환자들을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편견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던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만 자신의 환자에게 불의의 변을 당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그분이 소셜 미디어에 남겼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대체 왜 이분이, 왜 이 환자가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인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 그분들이 본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지만 본인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글을 읽으며 가슴이 아파오는 한켠으로 저는 그날 저를 '매우 치던‘ 의사 선생님의 진지하고도 결연한 얼굴이 시나브로 밝아 왔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질병과 싸우면서 뿌리 깊은 편견과도 싸워야 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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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