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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다지 놀라운 얘기도 아니겠지만, 나는 문재인 정권을 지지한다내가 정권을 지지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다이건 철저히 '라는 개인의 정치 성향이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생존자 연재(링크) 끝으로, 이후의 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겠다 했다. 일단 글을 쓰는 힘에 부쳤고, 그로 인해 일상생활에 리듬이 깨지는 싫었다. 다시는 같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했다. 그런 내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돌아온 건, 연말 회사의 송년 모임에서 들은 '어떤 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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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나는, 서울의 외곽 도시에 위치한 고급 일식집에 갔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중년 남성이어서 였을까, 음식도 나오기 전에 먼저 폭탄주가 서너 차례 돌았다. 요리가 나온 후로도 술잔은 계속 돌았고, 자리의 총무였던 나는 눈치껏 테이블 위에 놓인 것들 부족한 것을 골라 추가 주문했다. 그렇게 10시쯤 됐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나하게 취했을 무렵 자리를 정리하고자, 나는 공식적으로 행사 마무리 멘트를 했다.

 

한데 모임의 수장이 갑자기 내게 '그러지 말고 병만 마시고 가자' 했고, 하는 수없이 다시 자리에 앉은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벨을 누르며 홀을 향해 외쳤다.

 

이모, 여기 소주 추가요"

 

그러자, 이번엔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던 이모 대신 가게 사장님께서 직접 다다미 문을 열고 들어와 말하길

 

손님들 저희 가게 영업 10시까지예, 최저 임금제 때문에 어쩔 없어요, 불만이 있으시거든 문재인한테 따지세요~

 

했다.

 

사장님의 말에 좌중은 폭소했고, 그제야 잔만 마시자던 사람들도 어쩔 없다는 얼굴로 하나 자리에서 일어서 외투를 찾았다. 한데 어쩐 일인지 나는 그때부터 ' '에 모든 마음을 빼앗겼다.

 

문재인한테 따지라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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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2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생 하나도 감당하기 벅차서, 사회적 현상이나 국가 정책 같은 데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총선이니 대선이니 알게 뭔가, 건너 불이었다. 당시 동네 살던 친구가 나만 보면 노무현을 찍으라고 들볶는 통에 어쩔 없이 노무현을 찍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집에 엄마에게도 말했다.

 

엄마 친구 누구 알지? 엄청 똑똑하잖아, 걔가 그러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노무현을 찍어야 한대"

 

엄마는 왜냐고 물었고 나는 말했다.

 

그래야 세상에 더는 억울한 사람들이 생긴대

 

그러자 엄마는 당신도 노무현이 똑똑한 진작에 알고 있었다면서 아무래도 똑똑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뭐가 달라도 달라지겠지 했다그렇게 우리는 선거공보 한번 제대로 안 보고, 마치 저녁 메뉴를 고르듯 간단하게 대통령을 고른 , 인근 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장으로 가서 사이좋게 노무현을 찍고 나왔다.

 

후로 나는 일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당시 내게는 나라의 미래보다 나라는 사람의 오늘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뉴스도 신문도 보지 않고 살았다. 그렇다 해도 눈이 멀고 귀가 먹은 것은 아니어서, 천지 사방에 나붙은 이게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까지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러니까 조금 정확히 말해 2009 5월, 나는 무교동의 낙지 집에서 포장 주문한 낙지볶음을 기다리다 뉴스로 갑작스러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 이게 뭐지? ? 내가 뽑았는데? ? 사람 내가 뽑았는데 ? ? ? 어떡하지?'

 

모두 알고 있겠지만, 당시 참여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냉혹했으며 노무현 개인에 대한 비판은 가혹했다. 후로 정권은 보수세력에게 안정적인 모습으로 이양됐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시기를 싸잡아잃어버린 10이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같이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은, 한참을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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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쯤에서 개인적인 얘기를 하나 하려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웃해 자란 사촌 언니의 영향으로, 또래 아이들에 비해 사상 교육을 많이 받고 자랐다. 80년대 서울의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인사동에서 열린 광주 민주화 운동 진실 알리기 사진 전 같은 데도 갔고, 신림동 봉천동 일대 달동네의 야학당과, 대학로 학림다방에도 갔다(나중에 알았다. 당시 수배 중이었던 언니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혼자서 집에 찾아갈 있을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던 도움이 절실했다는 것을).

 

아무튼 그렇게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광주의 비극을 접했다, 하지만 평범한 어린이였던 내게 80 광주는 6.25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 느꼈던 어두운 현장의 분위기만큼은 여전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후로 세월은 흘렀고, 나는 자랐으며, 언니는 계속해서 반정부 시위를 하다 92, (백기완 선거캠프) 대선을 끝으로 모든 활동을 접고 은퇴해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고 동네의 보습학원에서 아이들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그리고 나는 그런 언니의 행보를 곁에서 지켜보며, 어린 나이지만 언니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저러고 걸, 하러 그러고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성향 때문인지, 후로 나는 더욱 더 가열차게 사회 현상에 관심을 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인간 노무현이 죽고 나서야,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잡은 후에야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국민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깨닫게 됐다.  후로 박근혜 정권 때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마저 보장하지 못하는, 그러니까 국가의 기본적 기능마저 상실하는 걸  눈으로 후,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여기에 이런 글도 쓰게 것이다.

 

 

4. 

여기서 잠깐, 이야기 시점을 현재로 돌린다. 다시 언니 얘기를 마무리하겠다. 세월이 흐른 , 우리는 각자의 삶에 몰두해 사느라, 어쩌다 집안에 행사가 있어야 드물게 얼굴을 보는데, 최근 장례식장에서 언니의 얼굴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편안한 얼굴이었다. 항상 깡마른 체구에 긴장한 눈매 같은 온데간데 없이,이제는 살도 붙어 서글서글한 인상마저 풍겼다.  언니의 몸에서 나던 특유의 매운 화약 냄새가 완전히 사라졌다.

 

언니는 여전히 동네에서 작게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웃 꼬마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고(가난한 아이들은 공짜로 봐준다) 지난해 딸아이를 대학에 입학시켰. 형부도 노상 그대로고 집도 신혼 때부터 살던 그대로라고 했다.  후로도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언니의 얼굴은 최근에 내가 얼굴 중에 가장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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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았다. 언니가 저렇게 환한 얼굴을 있는 걸릴 없어서라고. 그녀는 언제나 그녀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최대한 하고 살아서 그렇다고. 그러고 보면 언니는 어떤 진짜 행복한 삶인지 진작에 알고 있었다명문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해 출세한 남자에게 시집가 고급 세단을 타고 다니는 것보다,  순간 본인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부딪혀 살고 돌아서 나온  매일매일 성실하게 살며 그때 그때 주어진 삶을, 그리고 생을 존엄하게 여기는 ,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있는 우리도 시대가 요구하는 각자의 역할을 하고 살자고. 다행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상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아도 세상 아니냐고. 그러니 세상일에 침묵하지 말고 행동하자고 말이다.

 

이상 보수세력의 구태의연한 언론 플레이, "서민이 뽑은 대통령이 서민을 겨냥한 정책을 세운다라는 얘기에 휩쓸리지 말자고 말이다. 요즘도 언론에서는 참여 정부 때처럼, 같은 방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마이너스 성장, 물가 폭등, 청년실업 증가, 전셋값 폭등, 자영업자 줄도산같은 자극적인 말들을 앞세워서 말이다. (우리 냉정해지자, 엄밀히 말해, 지금은 세계가 경기 불황이다. 유수의 경제 석학들이 전부 입을 모아, 자본주의가 한계에 했다고 정도다) 어떻게 국가주도형 프로젝트 성패를 2년 안에 판단  있는가. 

 

정부 정책의 책임을 오롯이 대통령 개인에게 몰고 가는 일은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참여 정부 하나로 족하다. 나는 문재인의 말이 아닌, 그가 삶 전반에서 보여준 행동으로 그가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가 옳다고 생각한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이 먼저,  세상이어야 더는 우리가 누군가의 수첩에 돼지로 이름을 올리는 일이 없다.

 

나는 이제, 누가 문재인한테 따지세요” 라고 말하면 이렇게 되묻는. 그래서요?”. 적어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소리를 내며 산다. 김대중 대통령도 말했지 않은가.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고.   

 

실수는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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