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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데렐라는 과연 똑똑한가?

 

다시 월요일이 오고야 말았다월요일, 그 전부터 좋아하진 않았지만 팀의 막내 사원들이 의무적으로 대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었기에 점점 싫어지고 있었다음흉하다고 소문난 실장이 월요일 만큼은 사막의 미어캣으로 변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청소하는 우리를 감시 하곤 했다이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자. 여러분들 월요일입니다. 대청소 시작 하세요."

 

나의 동기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함께 들어간 동기와 함께 세면대 벽의 철제 속에 비치되어 있는 페이퍼 타올을 뭉텅이로 꺼내서 물에 적시기 시작했다.

 

"매번 월요일 마다 막내사원들만 이렇게 대청소를 시키냐? 다른 회사도 그런가?"

 

"글쎄다. 아니 그런데 실장은 평소에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청소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네. 등산복 입고 출근해서는 매번 낚시 동영상만 보면서... 등산복 입었으면 등산 영상을 보던지"

 

밖으로 나가니 동기가 화장실에서 적신 종이 페이퍼 타올을 들고 복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는 덩어리가 되어 사무실로 들어가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처럼 돌아 다니며 구석구석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매번 하던 식으로 창틀, 캐비넷, 빈자리, 기타 사무용 가구들을 적신 타올로 한 번 닦고 다시 마른 타올로 닦아 냈다.

 

나는 속으로 온갖 욕을 해대며 신데렐라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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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매일 이런 것을 어떻게 견뎌냈단 말인가? 매주 월요일마다 감시 하에 청소하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매일매일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신데렐라도 성인의 반열에 넣어야 하는 아닌가?'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을 미어캣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미어캣은 기다렸다는 듯이 등을 똑바로 세우고 손목을 까딱거리며 나를 호출 했다.

 

그는 그날 따라 모험심에 빠진 10살의 소년이 그러하듯이 모두가 보는 가운데 그의 용기를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10 소년과 같은 용기를 자랑하기 위해 내가 다가 까지 아래 턱을 유난히 내밀어 아래 입술이 삐죽 튀어 나오게 했다. 때문에 면은 복숭아 씨앗의 표면 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내가 앞에 도착하자 그는 10 소년의 근엄함을 마음껏 뽐냈다.

 

"손바닥 펴봐"

 

"?"

 

"손바닥 펴서 앞으로 내밀어"

 

나는 소년이 하려는 것인지 짐작도 못하고 손 바닥을 펴서 앞으로 내밀었다 손목을 낚아 채서는 아직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빈 자리의 책상으로 손을 가져가  손 바닥을 먼지가 가득 쌓인 책상 면에다가 문지르기 시작했다.

 

" . 먼지 투성이지? 이렇게 할거야? 어떻게 해야 하겠어? 이런 먼지 투성이 공간에서 일해야겠어? ? 대답 ?"

 

순간 나의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대답 없이 먼지에 회색이 되어버린 손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대답 ? 이런 없도록 빨리 청소 하도록 "

 

"..."

 

광경을 바라본 동기들은 놀란 고양이 눈이 되어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손바닥을 바라 보면서 미간이 찌그러지고 입이 굳게 다물어 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회의를 마치고 대리가 나에게 말했다.

 

"어제 청소 시켰는데 막내 사원들 인상 구겼다고 실장이 뭐라 그러더라. 교육 시키라던데? 그거 너지? 푸하하 그러게 그랬어. 으이그..."

 

그날 나는 신데렐라가 제법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요정이 나타나 마법으로 만들어 호박 마차와 드레스, 무좀 생길 같은 유리 구두 따위를 신고 시시한 무도회 같은 곳에 가면 되는 것이었다. 신데렐라는 요정이 마법을 부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거 시시한 무도회나 호박 마차 따위는 집어 치우고 몽골 기마 군대나 소환 해주쇼. 12까지 망할 놈의 왕국을 정리 하게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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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e

 

건너편에 앉아 있는 대리가 직장 생활 제법 보람 없다고 장담 있는 순간과 씨름 중이었다. KPI(고과 평가 기준을 위한 개인 핵심 성과 지표) 쓰기 위해 백일장 수준의 꾸미기를 하고 있었다.

 

"니미... 매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거 엑셀 양식은 왜이리 복잡하냐? 복잡한 문서 양식 경진 대회라도 있는 거야 뭐야. 글자 폰트 크기는 8 뭐냐. 이거 써놓으면 윗 사람들 읽지도 않으면서..."

 

"그러게요. 이거 써봐야 의미 없잖습니까? 매번 프로젝트 변경되고 어떤 것은 하다가 Drop 되고, 조직 변경은 무슨 계절 바뀔 마다 하는 같고..."

 

"그러게 말이다. 어차피 고과도 짜고 치면서 왜이리 복잡하게 써내라고 하는 건지"

 

대리의 표정은 이상 구겨 없을 만큼 구겨져 있었다. A4용지를 있는 힘껏 구겼다 다시 펼쳐도 대리의 표정보다 반듯해 보일 지경이었다.

 

시계는 11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다행인 건 우리  대부분의 인원들은 팀장의 승인이 떨어져 슬슬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야, 너네 팀은 좋겠다. 우리 팀장 놈은 발광이다 발광이야."

 

고개를 들어 건너 팀을 보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결제를 받지 못하고 11시가 넘어서까지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도대체 결제를 해주지 않는 겁니까?"

 

" 영어에 미친놈이잖냐. 문서의 내용을 전부 영어로 작성하란다."

 

"? KPI 문서를요?"

 

"대충 써내면 저놈이 일일이 읽고 문법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다시 작성 명령을 내리는 중이다. 지가 영어 좋아하고 잘하는 알겠는데 부하 직원들 상대로 이게 하는 짓이야."

 

" 문서 순전히 내부용 아닙니까? 외부로 나갈 일도 없고 직원들 사이에서도 공유가 금지된 문서인 데다가 상급 직책권자 명만 보는 문서인데... 의미가 있나요? 영어로 작성하는 것이..."

 

"그러니까 미칠 지경이다. 우리가 해외 영업 부서나 해외 사업 부서거나 계약 조건을 명시하는 그런 문서면 이해를 한다만 이거 순전히 팀장이나 실장 정도만 보는 문서인데 이게 무슨 짓이냐? 여기가 가리봉동이지 텍사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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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선배는 다시 문서 쓰기에 열중했다. 시계 지침이 12 3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선배가 숨을 크게 내쉬고 일어섰다.

 

"야, 결제 받고 온다. 제발 집에 가자"

 

그렇게 오랫동안 써놓고 선배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기 까지는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돌아온 선배의 표정은 구겨진 종이가 아니라 구겨진 은박지로 변해 있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은박지가 되어버린 선배는 분노에  낮은 톤으로 말했다.

 

"... 정관사... 정관사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러냐?"

 

"?...  The 무슨 문제라도?"

 

" 정관사를 잘못 썼단다. XX 진짜. 도대체 정관사 따위가 뭐길래 이러냐. 미치고 환장하겠다. 정관사 쓰면 내년 고과가 A 되냐? 진짜 짜증나서 도저히 짜증나서 못하겠다. 내가 지금 영국 백작한테 보고 하는 거야? 아오!!!!! XX 진짜!!!!!"

 

그렇게 선배는 새벽 1 30분이 넘도록까지 직장 생활 하면서 가장 보람이 없다고 확신 있는 문서 작성을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팀장이 아랍어에 미쳐 있지 않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9. 2시간

 

5월의 저녁 6시는 제법 밝았고 훈훈했다. 친한 선배와 나는 나란히 점퍼의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은 풍경을 바라보며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석양을 보면서 생각해보니 11 이전에 퇴근했던 마지막 기억이 벌써 전이다.

 

"선배. 이거 프로젝트 벌써 2 이러고 있네요."

 

"그러게, 미친놈들이 빌드를 하루에 한 번 꼴로 하네. 어제도 새벽 2시 30 그제도 새벽 2... 제발 10시라도 집에는 가고 싶다."

 

대충 밥을 먹고는 사무실로 올라 왔다. 양치질을 하고 와서 마우스를 아무렇게나 흔들어 화면 보호기가 활성화 되어 있는 모니터를 잠에서 깨웠다언제나 그렇듯이 야근 시작하고 2시간은 나름 활기가 있었다.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기도 하고 다른 동료들과 시시한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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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시가 넘어가면서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다야근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김밥천국의 순두부 찌개 그릇 가격인 식대 만큼의 인내는 시침이 9시를 지나면서 이미 증발하여 사라졌고 자리에 불만이 채워지기 시작했다모두들 빌드가 이상 없으니 퇴근 해도 좋다는 사인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연속된 야근으로 인해 체력이 이미 고갈 상태였기에 10시가 넘어가면서부터 피로는 아무런 방해 없이 찾아왔다12시가 되어 가고 있을 피로는 착실하게 자신의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선배. 오늘도 꼬락서니 보아 하니 2시겠는데요."

 

"에혀... 이게 무신 짓이냐. 무슨 일확천금을 벌겠다고 내가 이러고 있는지. 매일 새벽 2시에 퇴근이 뭐냐. 인마 늦기 전에 빨리 그만두고 다른 알아봐. 여기서 조금만 질척거렸다가는 나처럼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노예처럼 사는 거야."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고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기고야 말았다동료들은 간혹 들리는 커다란 한숨 소리를 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정직하고 예외 없이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의자에서 엉덩이는 미끄러지듯 앞쪽으로 빠졌고 허리는 의자 등받이가 지탱 있을 까지 뒤로 쳐진 상태가 되었다사람들의 눈은 충혈 되는가 하면 쌍꺼풀이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연스러웠던 주변부는 졸음과의 사투로 인해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미간은 찌푸려진 채로 고정이 되었다.

 

그렇게 2시의 퇴근 기대를 간단히 뛰어 넘은 시간은 새벽 4 30분도 가볍게 넘겼다이제는 한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간혹 의자 삐걱대 소리만 뿐이었다눈은 완전히 충혈 되었고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마저 힘겨워 했다. 그리고 입이 최대로 벌어지는 하품이 끈임 없이 나와 눈가 쪽은 눈물이 빈번히 맺혔다.

 

머리를 움직일 마다 머리 속이 지끈거렸고 어깨는 심각하게 무거워져 땅으로 꺼질 것만 같았다. 바지의 벨트는 쇠사슬 만큼 불편하고 무거웠으며 무릎과 종아리는 시큰거리고 쑤시기 시작했다설탕과 프림이 들어간 믹스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깊숙한 부분은 끈적거리며 침이 말라 있었다. 그리고 숨을 마다 깊숙한 곳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올라왔다.

 

손으로 머리의 관자놀이나 턱을 괴지 않고서는 머리를 지탱하기 힘들었고 끊임 없이 밀려오는 졸음에 내가 최선을 다해 있는 것이라고는 눈꺼풀을 천천히 움직이며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반이라도 뜨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은 이상 정상 속도로 흐르지 않고 멈춰버린 것처럼 천천히 흘렀다.

 

그렇게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7 30분이 되었고 완료 사인이 나서 퇴근해도 좋다는 공지가 났다우리 모두는 PC 끄고 자리 정리 따위는 무시하고 일어났다. 대화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상 무어라 힘이 없었다. 출근 이후 23시간 만의 퇴근이었다 같이 회사 정문을 나가고 있는데 팀장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저기... 다들 고생했다. 그리고 미안한데 오늘도 중요한 빌드가 있다고 하니까. 지금 집에 가서 빨리들 쉬고 아침 11시까진 출근해. 어쩔 없으니 조금만 참자."

 

누구도 항의 하지 않았다. 대답 역시 누구도 하지 않았다. 다들 땅만 보고 걷고 있을 뿐이었다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다시 확인하니 7 40분이었다. 숙소에 가서 대충 씻고 잔다고 해도 취침 시간은 2시간이 전부였다날은 충분히 밝아져 있었고 밝은 아침 햇살은 우리의 눈에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눈이 부셔 찡그리며 걸어 가고 있는 선배에게 조용히 말했다.

 

"에라이. 2시간이라니... 선배. 대학생 친구들과 진탕 마시고 아침 버스를 기다린다고 PC방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는데요..."

 

"시끄러워 인마...  이렇게 살다가 연애라도 한번 하겠냐? 그러다 나랑 손잡고 실버타운 간다... 멍청한 . 에혀... 로또나 사야지. 내가 무슨 일확 천금을 벌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5 아침 7 40분의 햇빛은 충분히 밝았고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무거운 햇빛 사이로 출근을 위해 말끔히 차려 입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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