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6355351769_766503f534_z-600x450.jpg

 

경제학이나 일상생활에서 '자본'이란 말은 굉장히 넓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회계에서 자본은 그냥 '자산에서 부채를 뺀 나머지'일 뿐이다.

 

자산-부채=자본

 

이게 자본을 가장 깔끔하게 설명하는 방법이다. 회사가 모아놓은 자산 중, 갚을 돈 갚은 후 남는 게 주주의 돈, 그러니까 '자본'이란 얘기다.

 

자본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들어간 돈”, 다른 하나는 “번 돈”이다. 이번 글에서는 “들어간 돈”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1. '들어간 돈'의 의미

 

투자자보호.png

 

먼저 들어간 돈이란,

 

"기업이 주식을 발행하면서 주주들에게 대가로 받은 돈"

 

이다. 주식회사는 설립될 때 여러 명의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 '주식'을 발행한다. 동업을 해보았다면 알겠지만, 여러 명이 돈을 모아 사업을 하다 보면 의사결정과 수익분배 과정에서 항상 싸움이 난다. 이 싸움을 목소리 크기가 아닌 돈의 논리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주식이다. 주주들은 가진 주식의 수 만큼 의결권을 행사하고, 기업이 거두는 수익도 나눠 갖는다. 즉 주식이란,

 

기업이 갖고 있는 자본을 조각내어 나눠 놓은 것

 

이다.

 

기업은 주식을 발행하는 대가로 주주들에게 돈을 받는다. 특히 기업이 최초에 주식을 발행하면서 받은 돈은, 기업이 설립되고 영업에 필요한 자산을 구입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밑천이 없으면 기업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멍 때리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치자. 그게 수천만 원짜리 성인용품점을 여는 것이든, 수천억이 들어가는 한국판 스페이스 X처럼 인공위성을 날리는 것이든, 사업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자산'이 필요하다.

 

'자산 = 부채 + 자본'이니까, 최초 자산을 구입하는 데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빌리든지(부채), 투자를 받아야 한다(자본). 하지만 당장 은행에 가서, "여보시오, 은행원. 나에게 엘론 머스크 싸다구를 날릴 만한 좋은 사업 계획이 있소. 일단 한 천억쯤 갖다 써봅시다”라고 하면, 99.9%의 확률로 청원경찰에게 끌려 나온다(0.1%의 경우가 바로 부당대출사기 사건이다). 현실에선 몇천만 원짜리 성인용품점 하나를 창업하려고 해도 담보물이 필요하고, 자세한 사업계획과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여줘야만 한다.

 

즉, 대부분의 기업은 돈을 빌리기에 앞서 최소한의 자기 자본 혹은 밑천이 필요하다. 주식이 현대 금융 시스템의 정수로 꼽히는 이유다.

 

 

2. 최초의 주식 발행

 

3299_5445_1358.jpg

 

몇 가지 더 짚고 가자.

 

첫째, 모든 기업이 사업 초기에 발행하는 주식은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으면서도 가장 위험이 크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애플이 스티브 잡스네 집 창고에서 시작된 것은 유명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 외에도 로널드 웨인이란 공동창업자가 있었단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로널드 웨인은 당시 게임 회사에 다니던 동네 형이었는데, 두 천재 사이를 조율하기 위해 창업에 참여, 800불을 내고 10%의 지분을 받았다(이때 애플은 아직 주식회사가 아닌 파트너십 형태였다). 웨인은 12일 만에 자기 지분을 800불에 팔아버렸는데, 이는 가정(지금까지 애플 지분 10%를 계속 가지고 있다가 고점에서 팔았으면 100조 원을 벌었을 것이다)을 좋아하는 호사가와 언론을 통해 자주 회자되는 떡밥이기도 하다. 물론 부질없다.

 

45%의 지분을 가졌던 워즈니악의 자산이 천억 원(애플이 상장되기에 앞서 자기가 가진 지분을 같이 고생했던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역시 대인배...), 스티브 잡스의 살아생전 자산이 10조(이것마저도 대부분은 애플 주식이 아니라, 애플 주식을 팔았던 돈으로 만들었던 픽사가 대박을 터뜨리는 과정에서 번 돈이다)였던 걸 생각해보면, 지분 10%를 가지고 있었던 웨인이 수십 조를 벌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수백억을 벌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러한 가정은, 창립 주식을 인수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큰 금액을 벌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이쪽에 특화된 투자자를 보통 엔젤 투자자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웨인이 자기 지분을 팔아넘기고 싶을 만큼 초기 투자가 얼마나 위험했는지도 잘 드러낸다. 당장 이 세 사람이 모은 돈은 약 2800불. 이 돈 가지고 버티다가 수익을 못 내면 망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며칠 해 보고 의견이 잘 안 맞자 웨인은 안 되겠다 싶어서 발을 뺀 거다. 참고로 애플은 이 당시 법인이 아닌 파트너십 형태라 도산을 하더라도 빚이 남으면 창업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였다. 잃을 게 없는 20대였던 잡스와 워즈니악과는 달리(워즈니악은 잘 다니던 HP도 때려쳤다), 이미 사회인이던 웨인은 망할 경우 빚더미를 떠안을 수도 있었다. 웨인이 자신의 초기 지분을 팔아버린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하필 그게 애플이라서 문제지...

 

 

 

3. 들어간 돈의 표기

 

둘째, 재무상태표에 올라가는 “들어간 돈”은 발행 금액을 기준으로 작성이 된다. 최초 설립 시점에 애플의 재무상태표는 이랬을 것이다.

 

스크린샷 2019-01-22 오전 2.06.37.png

 

아직 빚이 없는 상태였으니 부채는 0불이었을 거고, 따라서 자산 = 자본인 상태이다. 이때 자본에 기록되는 “들어간 돈”은, 창업자 셋이 모은 돈 2800불이다. 만약 애플이 이 뒤로 전혀 주식을 발행하지 않았다면 이 들어간 돈 2800불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즉, 장부상에 기록되는 “들어간 돈”은 주식의 현재 가격이나 이를 발행 주식 수만큼 곱한 시가 총액과는 개념이 다르다.

 

실제 재무상태표에 “들어간 돈”이란 건 없다. 실제로는 자본금과 자본 잉여금으로 나뉘어 재무상태표에 기록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주식에는 액면가라는 게 있는데, 액면가 x 발행 주식 = 자본금이 되고, 자본금을 초과해서 받은 투자금은 자본 잉여금으로 기록이 된다. 위의 예시에서 만약 액면가 1불짜리 주식 100주가 2800불을 받고 기록이 되었다면, 자본금 100불(1불 x 100), 자본 잉여금 2700불(2800불 - 100불)로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4. 유상 증자

 

셋째, 주식회사는 정관상 허용된 범위 내에서 주식을 새로 발행할 수 있다. 이를 증자라고 하는데, 이 중에서 기업이 투자자에게 돈을 받고 새로 주식을 발행하는 것을 유상 증자라고 한다. 처음부터 막대한 자본을 가지고 시작한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의 창업 기업들은 자기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몇 차례 유상 증자를 한다.

 

계속해서 애플을 예로 들면, 웨인이 나가고 나서 제3의 멤버로 합류한 게 마이크 마쿨라이다. 이미 인텔 등에서 스톡옵션으로 수백만 불을 벌어서 돈이 좀 있던 마쿨라는, 애플에다가 25만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애플의 지분 3분의 1을 받았다(정확히 17만 불은 대출이었고, 8만 불이 주식이었다). 이 시점에서 애플의 가상 재무상태표를 작성한다면,

 

스크린샷 2019-01-22 오전 2.10.47.png

 

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유상 증자로 인해 기존의 애플 지분을 반띵하고 있었던 잡스나 워즈니악의 지분 비율이 희석된 것이다(50% -> 33%). 하지만 그 대가로 애플은 25만 불의 자산을 새로 확보했다. 이 돈이 있었기 때문에 애플은 초기 컴퓨터 모델인 애플1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즉, 당시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애플이 번듯한 기업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했던 돈이다.

 

이후 애플은 유상 증자를 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IPO(기업 공개)이다. IPO란 주식이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면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인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애플은 1980년 상장이 되는데 이날 종가를 기준으로 약 1.7조 원짜리 기업이 되었다. 즉, 비상장 기업이 상장 기업이 되는 순간 회사 자본의 “단위” 자체가 바뀐다. 이 돈을 통해 회사는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회를 얻고, 회사의 기존 주주들은 주식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자신들의 지분을 처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애플이 상장하던 날 백만장자가 된 애플 직원만 300명이었다 한다(참고로 거의 40년 전의 “백만 불”이다. 애플 주식은 이후 약 5600% 상승했다).

 

애플의 유상 증자 과정을 보면 아무리 성공적인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구멍가게 -> 중소기업, 중소기업 -> 상장기업이 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단 것과, 그 과정에서 창업주들의 지분이 점점 희석되어가는 것이 잘 드러난다. 최악의 경우는 죽어가는 기업이 당장 돈이 급해서 유상 증자를 하는 것인데, 이 경우 새로 주식을 인수하는 사람은 보통 기존 주주보다 훨씬 좋은 가격, 조건으로 주식을 인수하게 된다(어지간히 급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기업은 신주를 발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식은 자본 구조상 가장 비싼 형태의 자본 조달 방식인데다가, 기존 주주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수하고 주식을 발행할 상황이라면, 주식을 제값도 파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mainimg_sp.jpg

 

즉,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1)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가치가 희석될 뿐만 아니라, 2) 자기 주식이 헐값에 대량으로 유통이 되며, 3) 그 대가로 받은 돈을 기업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곳에 쓰이게 되므로 한마디로 호구가 잡힐 수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유상 증자는 보통 좋지 못한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성공의 열매를 유상 증자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싫다면(특히 초기 단계일수록 높은 지분을 떼어줘야만 한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창업주가 그냥 돈이 졸라 많으면 된다. 실제로 창업으로 큰 부를 거머쥔 많은 창업주들은 이 돈을 밑천 삼아(다른 사람에게 싼값에 지분을 넘기지 않고) 재창업에 도전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애플 주식을 바탕으로 픽사를 세워 대박을 터뜨렸고, 엘론 머스크 또한 페이팔 주식을 바탕으로 스페이스 X, 테슬라 등을 창업했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처음 창업할 때에 비하면 훨씬 많은 자기 자본을 가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유상 증자를 통해 추가적인 자본을 조달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었고, 따라서 첫 번째 창업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물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창업자들은 재창업에 도전했다가 돈만 날려 먹었겠지만).

 

또 하나는 주식을 발행해서 지분을 나누는 대신 다른 사람한테 돈을 많이 빌리는 방법이다. 극단적으로 주식 발행을 제한하면서 부채를 많이 발행하는 기업 중에는 대표적으로 사모 펀드가 만드는 기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성인용품 업체가 너무 많아 가격 경쟁이 심해지고 성인용품 업계 자체가 오랫동안 불황에 시달렸다고 치자. 이때 사모 펀드가 돈을 벌 방법은 본인들의 막대한 자금력을 활용해서 성인용품 업계 1, 2, 3위 업체를 통째로 사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인수 합병을 통해 만들어진 기업을 가칭 “뉴 마사오 닷컴”이라고 하자. 뉴 마사오 닷컴은 성공 가능성이 꽤나 높은데, 증권사 리포트 식으로 그걸 적어보면:

 

1) 인수 합병 과정 자체를 통해 업계의 과잉 공급, 과다 경쟁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됨(예전처럼 딜도를 사면 콘돔을 끼워주는 식의 출혈 경쟁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됨)

 

2) 뉴 마사오 닷컴은 업계 1, 2, 3위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기업임. 매우 창조적인 제품 개발(P 사의 러브젤에 T 사의 오나홀이 결합된다면? 응?), 기존 영업망을 활용한 매출 증가가 기대됨

 

3) 중복 투자된 부분이 해소되면서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음. 각 기업의 사무실, 공장만 합쳐도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음

 

4) 성인용품 산업 자체가 불황기를 벗어나 다시 성장기가 도래하면 뉴 마사오 닷컴은 이 시기에 가장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됨

 

기본적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창업이 아니라, 기존 업체들을 인수 합병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정말 중요한 점은, 기존 업체들은 인수하는 데 들어가는 대부분의 비용을 빌리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 마사오 닷컴이 업계 1, 2, 3위를 인수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0억이라면, 사모 펀드가 먼저 100억을 내고(자본), 900억은 기업 대출 시장에서 빌리는 식이다(부채). 이렇게 부채를 잔뜩 끼고 탄생한 뉴 마사오 닷컴은 태생적으로 취약한 재무 구조와(빚이 너무 많아 위험하다), 높은 이자 부담을 앉고 시작한다. 그만큼 망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최근 문을 닫은 Sears나 Toys R US 같은 경우에도 직접적인 파산 이유는 주식 인수 과정에서 인수자가 발행한 막대한 부채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모 펀드들이 이렇게 빚을 많이 끼고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레버리지 효과로 성공했을 때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데다가(당장 뉴 마사오 닷컴의 주가가 10%만 올라도, 백억(천억 x 10%)을 챙길 수가 있다), 주식 발행을 최소화해 그 수익을 다른 주주들과 나누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인수당하는 기업의 노동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비용 절감과 중복 투자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구조 조정이 발생하는 데다가, 평범했던 회사가 부채 덩어리 회사가 되기 때문에(혹은 사모 펀드 도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오늘은 자본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들어간 돈”, 즉 주식 발행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애플의 사례나 재무적인 의미까지 건드려 글이 좀 길어졌는데, 다음 글에서는 자본의 다른 구성 요소인 “번 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