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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위수지역 폐지가 위수지역 확대로 절충되었고, 원 위수지역 상인들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연일 시위중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새삼 말하면 군 위수지역이란 외출외박 허용지역이라 보면 된다. 시위의 내용은 '이러면 먹고살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묘하다. 먹고살기는 원래 힘들다. 먹고살기 힘든 상태가 옳다거나, 당연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기존 위수지역 상인들의 입장은 '내'가, '내 가족'이 지금보다 먹고살기 불편해지는 게 불의라는 내용이다.

 

그럼 그들이 그동안 누려온 '정의'와 '상식'이란 무엇인가.

 

나는 육군 제 5 보병사단 열쇠부대 35연대 1대대(비사대대) 출신이다. 이 부대는 훈련이 너무 많아서 인근 부대와 현지 주민들에게 '슈퍼땅개'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직접 겪은 사건들이다. 과장이 있으면 알아서들 저격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바가지 1

한국군은 징집사병을 죄수처럼 가혹하고 궁벽한 환경에 가두어놓고 사육하기에, 인간이라면 단 몇 시간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고 싶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물에 갇힌 물고기이기 때문에 따로 탐나는 미끼를 쓸 필요가 없다. 외출외박 나간 병들이 식당에 들어가면 환한 얼굴로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를 들을 일은 없다. 물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그런 걸 먼저 바랄 순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알아서 자리에 앉으면 던져주는 식기를 스스로 전달하고 세팅한다. 김치찌개며 삼겹살 따위를 먹는다. 고춧가루가 묻은 물병과 지저분한 밥그릇에 대해서는, 이모님이 늙고 피곤하시니 그러려니 생각한다. 그런데 똑같은 3인분을 시켰는데 옆자리 '현지 민간인'의 3인분보다 양이 적은 이유는 뭘까? 그것도 매번.

 

물론 따질 수는 없다. 군인은 헌병대와 영창이란 곳이 있는 한 결코 민간인과 갈등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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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2

베프가 면회를 와서 외박을 나갔다. 아직 군입대를 하지 않은 친구는 연신 비명을 내질렀다.

 

"이 동네 왜 이렇게 물가가 비싸?"

 

그게... 군인한테만 비싸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친구는 분노했지만 내가 군복을 입고 있는데 별 수가 있나. 그날 밤 둘 다 만취해서 여관방을 잡았다. 여관이 아니라 여인숙 수준이라고 해야 할 방의 하룻밤 방값이 8만원이었다. 그때는 1999년, 20세기였다. 그리고 이등병 월급은 9천원이었다.

 

벗겨진 장판과 벽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쩐내 나는 요와 이불이 있던 그 방에는 놀랍게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침 여름이어서 친구와 나는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에어컨을 최대치로 튼 채 잠을 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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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3

군바리는 외출외박을 나갔을 때 결코 기물파손을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실수로 유리컵이 떨어져 깨졌다고 해보자. 십만원을 내놓으라고 하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우리 부대 다른 중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업주는 경찰을 부르든지 동네 청년회를 부르든지 해서 병사를 붙잡아두겠다고 윽박질렀다. 민간인과 다툴 수는 없고 부대복귀를 못하면 영창이다. 그런데 월급 1만원짜리 인간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까. 그때 그는 업주에게 기가막힌 솔루션을 들었다.

 

"부모한테 전화해."

 

부모가 돈을 부치면 풀어주겠다는 얘기. 그는 그렇게 풀려났다.

 

그런데 만약 집에서 용돈을 부쳐줄 형편이 못되는 병사는? 사실은 이런 병사가 더 많았는데 말이다. 보통 이럴 때 혜성같이 나타나 업주에게 삿대질해주는 행보관을 우리는 좋은 상관으로 기억하게 마련이다.

 

 

군바리 사냥

군 위수지역 업주들도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운다. 그 동네를 걸어다니는 고등학생들은 당연히 그 동네 자식들이다. 당연히 고등학생 중에는 남자도 있고, 그 중에는 질 나쁘고 폭력적인 아이들도 있다. 어른을 손찌검할 기회를 놓치면 아까워할 그런 녀석들 말이다. 일명 군바리 사냥은 병사들을 바가지 뜯어 먹고 사는 부모를 둔 남자 자식들에 의해 이뤄진다. 다시 말하지만 군인 특히 사병은 민간인과 결코 갈등이 생겨서는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 때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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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인간'인 간부는 같은 '인간'인 현지 민간인들과의 마찰을 좋게좋게 해결하기 위해 사병들을 사육하는 내무반을 뒤집고 십수 명을 영창보내는 쪽을 택한다. 그래도 그들의 월급통장에는 별 흠집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중고등학교 남자애들은 재밌고 스릴 있는 군바리 사냥에 나선다. 어쩔 수 없이 모욕당하고 맞을 수밖에 없는 사병들을 때리고 돈을 뺏고 무릎 꿇리고 온갖 린치를 가한다.

 

그리고 놈들은 저녁을 먹으러 병에게 바가지를 씌워 생계를 잇는 집에 돌아간다.

 

 

군바리 여자친구 사냥

여자친구가 면회를 오면 함께 외출이나 외박을 나간다. 여자친구가 눈에 띄면...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선 상상에 맡기겠다.

 

그 귀결은 당연히 영창이거나 군 교도소다. 어른한테 쳐맞은 군 위수지역의 건아들은 반성할까, 아니면 다른 어른을 사냥하는 걸로 풀려고 할까? 이것도 상상에 맡기겠다.

 

 

대민지원 1

수해가 나거나 가뭄이 들거나 어쩌거나... 사계절이 지나치게 뚜렷한 이 땅의 군바리는 별의별 사유로 대민지원에 동원된다. 그리고 대민지원의 수혜를 받는 민간인들은 군 위수지역 주민이거나 인근 시골마을에 사는 그들의 일가친척이다.

 

대민지원에 동원되었더니 어느새 우리는 남북전쟁시기 미국 흑인노예처럼 바글바글 서 있게 되었다. 주임원사는 노예상인이었고 현지 주민들은 뒷짐을 지고 우리를 쭉 둘러보았다. 손가락질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그렇게 우리는 팔려나갔다.

 

사병은 수해현장의 가장 더럽고 위험한 곳에 사용된다. 한 번은 실내가 엉망이 된 커다란 농약도매업장에 팔려갔는데 쌀포대 같은 농약자루가 온통 찢어지고 무너져 엉망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정리하는데 마스크도 장갑도 제공받지 않았다. 그렇다. 안 써도 되는 백 원이면 안 써도 되는 것이다.

 

그 농약이란 건 죄다 분말이다. 물에 소량을 타서 분무기로 뿌려 키운 야채를 반드시 씻어먹어야 하는, 아주 독한 물건이다. 그걸 옮기고 마시고 묻히고 쓸고 닦는 위험한 일을 자신과 가족이 해선 안 되므로 당연히 우리를 시켰다.

 

그날 밤 여럿이 코피가 터졌다. 콧잔등과 미간이 붉게 부은 건 물론이고 눈은 당연히 새빨갛게 충혈되었으며 손등과 손바닥 껍질이 벗겨졌다. 뭐, 우리는 쓰고 버리는 공짜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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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민지원 2

"너 이거 다 못하면 제 시간에 부대에 안 보낼 거야."

 

이 협박을 내 귀로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복귀시간을 어기면 탈영처리가 되고 영창에 간다.

 

 

대민지원 3

분대장 시절. 나와 분대원들은 어느 민가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집주인은 무너져내린 축사의 돼지똥 치우기에 우릴 동원했다. 그 집의 중학생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데, 나는 순진하게도 녀석이 우리한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는 한 마디 할 줄 알았다. 녀석은 '움직이는 사물'인 우리 사이를 말없이 피해 실내에 들어갔다.

 

식사시간. 대민지원에 나가면 좋은 분들도 많다. 어려서 죽은 아들이 생각난다며 씨암탉을 잡는 꼬부랑 할머님도 계셨고 일은 요식행위로만 시키고 온갖 음식을 막걸리와 함께 배터지게 먹인 후 떡까지 싸서 보내는 호기로운 부부도 계셨다. 그런데 그 집은 '일반적인' 군 위수지역의 가정이었다.

 

밥 한공기씩을 주고 커다란 솥에 끓인 정체불명의 매운탕을 가운데 놓는 게 전부였다(젓가락도 안 줬다. 물론 설거지도 공짜인력인 우리를 시켰지만). 별의 별 게 다 있는 그 매운탕에서 두둥실, 꼬부라진 냉동 뱀장어 한 마리가 통으로 떠올랐다.

 

알고보니 수해로 전력이 끊겨 상하게 된 냉장고 안의 모든 재료를 다 때려박아 끓인 음식물 쓰레기 생성방지용 매운탕이었다. 우리가 매운탕을 반쯤 먹을 때쯤 가족의 식탁에서는 고기가 구워지고 있었다. 중학생 아들을 포함한 가족은 고기를 먹었다.

 

그때 나는 잠시 생각했다. 저 개새끼도 고등학생이 되면 군바리 사냥을 할까?

 

 

군바리는 구려

휴가가는 길, 역에 홀로 서있는데 누군가 나를 지나쳐갔다. 역시 군 위수지역이었다. 그들은 나에 대해 재잘거렸다.

 

"어우 군바리, 구려."

 

고개를 돌려보니 코를 막는 제스쳐를 취하며 눈으로는 한껏 비웃고 있었다. 사병이 사물이자 노비, 어장의 양식 물고기인 곳이다. '군바리'도 인격을 가진 동료 시민이라는 사실을, 인지할지언정 체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일까, 아니면 내가 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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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아들이 있다면, 앞으로 혈육에게 벌어지거나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국방의 의무는 곧 일정기간 동안 공공재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민이 다른 국민에게 함부로 쓰여지고 착취돼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현재 군 위수지역 상인들이 부르짖는 '생존권 침해'는 고쳐 말하면 '특혜 해제'에 불과하다. 위수지역을 폐지하든 확대하든 그 누구도 당신들의 생존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세상 전부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그래왔던 것처럼, 당신들도 장사를 하고 싶으면 경쟁이란 걸 하면 된다. 너무 오래 많이 누려왔기에 당연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지만 군 위수지역과 전방 주민들은 수십년 간 남들은 누리지 못하는 특혜를 누려왔다.

 

그 특혜로 먹고살며 자식들을 키워낸 이들이 많다. 그러면 남들이 자식들 군대 보내가며 착취당해준 수십년 간의 꿀물에 감사할 일이다. 외려 남의 자식들을 더 이상 손쉽게 빨아먹지 못하게 됐으니 책임지라는 지금의 분노는 대체 뭔가? 우리 사회가 그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웠다. 너무 방치했다. 그래서 그들은 감사하는 법을 망각했다.

 

세상은 군 위수지역처럼 편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남들처럼 연구하고 경쟁하고 긴장하며 먹고 살아보고자 고군분투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 된다. 아무도 그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군 위수지역 확대는 부족하다. 사실상의 폐지라고는 하지만 완전 폐지가 정의에 부합한다.

 

그 누구도 동료 시민을 착취해서 남들보다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권리를 '생존권'이라고 불러주지 않는다. 남의 집 자식들의 희생은 내 자식을 남보다 편하게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조롱한 대가가 무엇인가? 고작 지금까지의 특혜를 없는 척 묻어주는 게 전부다. 이보다 관대한 조치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서울에서 치킨집 한번 해보면서 진짜 삶이 뭔지 느껴보라고 하면 내가 꼰대인가?

 

국가의 명령으로 운 좋은 당신들의 어장에 끌려온 남의집 귀한 자식들을 조금만 더 인간적으로 대했다면, 최소한의 인간성을 져버리지 않았다면, 전국적인 분노의 목소리도 터져나오지 않았을 테고 국방부도 예전처럼 눈감았을 것이며 특혜는 영구적으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마이 무따 아이가. 인쟈 고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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