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곽미향에서 한서진, 다시 예서 엄마로

 

당초 <SKY 캐슬>은 부유한 주택단지에 사는 상류사회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준다고 했고, 초반에 화려한 파티를 보여주면서 그러한가 했지만이 드라마가 다루는 건 상류사회가 아니다.

 

남자들의 직업은 의사 아니면 교수이고, 여자들은 따로 일을 하지 않는다. 이 정도 직업군이면 돈 있는 축에는 들겠으나, 상식적으로도 재벌가나 권력층에 비하면 상류사회라 하기엔 한참 모자라다. 현실에선 대치동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 딱 그 정도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각 지역마다 괜찮은 아파트 단지들은 있기 마련이니, 거기 사는 전문직 가정도 포함될 것이다.

 

2.jpeg

 

이런 나름고소득층이 진짜 상류사회와 다른 점은 상승욕구에 있다. 재벌이나 권력가들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욕구가 있지만, ‘교육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영역은 아니다. 석박사는 해외로 나가더라도 학부만큼은 국내에서 따야 체면이 선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물려줄 방법이 많은 이들에겐 일찌감치 유학 보내는 것도 흠이 되지 않는다. 미국도 좋지만 캐나다든 싱가포르든 갈 곳은 많다. 우리가 교육에 열을 올리는 이유엔 전통적 관점도 있지만, 결국 안정된 경제적 여건이 관건이다. 상류사회는 이 부분에서, 물론 학벌을 갖추려고 들지만, 드라마 인물들처럼 절박하지 않다. 학벌이 정 아쉬우면 혼맥으로 중화시키는 방법도 있다.

 

캐슬 사람들, 그 중에서도 주축이 되는 예서 집안의 상승욕구는 그러니까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경제적으로 상류사회에 상당히 근접하긴 했으나 여전히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학벌을 통해 그 기반을 이루려는 욕망이다. 그 중심은 의사 3대에 도를 넘게 집착하는 할머니/시어머니(정애리). 예서 엄마가 비싼 코디 수업료를 내려고 시어머니에게 부탁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둘 사이엔 경제력의 격차가 크다. 그런 할머니가 아들 강준상을 병원장으로 만들려 하는 이유는, 극중의 병원장이 시도하듯 복지부장관 같은 권력을 꿈꾸기 때문일 듯도 싶다. 즉 경제적 여건은 충분한 상태에서 작게는 병원, 크게는 보건계열의 권력을 바라는, 상류사회 문턱에 와 있는 상태의 욕망이라고 해석된다(이 목표에 가장 가까운 집안은 초반부의 영재 가족이었다. 영재 아버지는 병원장 후보였고, 영재 엄마는 다른 집에는 없던 은행 VIP 티켓을 가졌으며, 영재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두 번째 상승욕구는 예서 엄마의 자기 정체성 확립이다. 곽미향에서 한서진으로 신분을 세탁하긴 했지만, 예서 엄마는 여전히 할머니와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천한사람이다. 그녀의 집안 내력을 단적으로 평가한 말은 천출이다. 남편처럼 서울대 출신이지만 세탁소집 아들이었던 차 교수가 이 말을 뱉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상승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출신 배경에 얼마나 민감해하는지, 집안 좋은 사람들과 비교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곽미향/한서진은 그 고통을 줄곧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천출을 묻고 진정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예서 엄마는 반드시 예서를 서울대 의대에 합격시켜야만 했고, 그것은 곧 한서진이라는 외양을 곽미향의 능력으로 마무리 짓는 작업이기도 했다.

 

20181218_173258_5827.png

 

드라마의 초점은 후자에 맞춰져 있다. 할머니의 욕망은 간접적으로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예서 엄마의 욕망은 주변 인물들과 갈등을 빚는 주된 요소다. 또 할머니가 3대째 의사 가문을 고집하는 이유도 자기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후반에 강준상이 사표를 내겠다고 했을 때, 예서의 자퇴 소식을 들었을 때 무너져내리던 그녀의 모습에선 단순히 병원장 자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처절함이 느껴진다.

 

<SKY 캐슬>의 배경이 상류사회까지는 아니라 해도, 경제적인 여건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입시 문제에서도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아이를 성공시키는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개인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욕망은 집안 사정과 관계없이 보편적인 것이다. 드라마의 관건은 이 욕망을 대표하는 예서 엄마에게 공감할 수 있는가에 있고, 아마도 그랬기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2. 욕망은 두려움을 잉태한다

 

언제든 실컷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욕망할 필요가 없다. 욕망은, 얻을 수 없거나 갖기 힘들기에 일어난다.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예서 엄마의 욕망은, 드라마에선 예서의 서울대 의대 합격으로 좁혀져 있다. 입시 실패는 곧 고통이고, 그 고통에 대한 상상이 두려움의 그림자를 만든다. 이 두려움을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이자 양념 역할을 하는 것이 예서 엄마의 과거였다.

 

곽미향을 둘러싼 비밀은 두려움을 묘사하기 위한 좋은 장치였지만, 이후 극의 전개에서 보듯 갈등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주 엄마인 이수임과의 대립각을 가지는 선명한 효과가 있었다. 우주 엄마는 재혼에 성공했고 아들도 잘 키웠으며 자기정체성도 확고하다. 반면 예서 엄마는 결혼 과정에서도 사연이 많았고 남편과 늘 으르렁대며, 딸들은 모두 자기 속을 긁고, 과거든 입시든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모든 면에서 상반된 우주 엄마의 가장 큰 반대 지점은, 그녀에게 두려움의 그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현재는 무엇을 악착같이 욕망하여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81205_161742_2607.png

 

이 드라마에서 욕망의 주체들은 모두 실패를 맛본다는 점을 상기하면 좀더 주제가 와닿을 것이다. 3대째 의사 가문을 꿈꾼 예서 할머니, 아직 최종회가 남긴 했지만 입시 계획에 실패한 예서 엄마와 예서, 병원장을 노렸던 강준상, 예서 가족의 롤 모델이었던 영재 가족, 이대로라면 결국 파국을 맞을 듯한 차 교수가 그렇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딸로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했던 혜나다. 등장시간이 짧은 예서 할머니를 빼면 이 인물들의 묘사에선 모두 자신의 욕망에 대한 두려움 또는 죄책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차 교수는 좀 희화화됐고 아직 갈등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두려움 없는 욕망이 있을까? 쌍둥이 엄마인 노승혜가 해답이 될 것이다. 우주 엄마가 이사오기 전까지 노승혜는 매우 수동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수임의 생각에 자극을 받고, 노승혜는 쌍둥이 엄마로서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아가 세리의 가짜 하버드생 사건이 터지고 나서, 그녀는 아이들을 보살피겠다는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굳혀나가며 남편과 대립해왔고 급기야 이혼을 선언했다. 노승혜 역시 예서 엄마처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욕망한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의 욕망은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전제하는 데 비해, 노승혜는 아이들을 사랑해주겠다는 이상의 다른 조건이 없다.

 

자기정체성을 갈망하는 욕구가 잘못일 리 없다. 단지 물적인 이기심과 동화되고, 남을 해쳐서까지 얻어내려는 오염된 마음이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노승혜의 엄마되기 과정은, 이미 그 과정을 거쳐서 극중에선 심심하게 보이는 우주 엄마보다 주제의식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9회에 등장한 김주영과 케이의 상봉(?) 장면은 이 주제의 드라마틱한 묘사라고 볼 수 있겠다. 역시 안 그러던 사람이 바뀌어야 볼거리가 있다.

 

 

3. 공감이 낳은 아이러니 누가 악인인가?

 

우주 엄마와 쌍둥이 엄마가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해도, 현실적인 호응은 여전히 예서 엄마에게 쏠려 있다. 이렇게 나름 약점 있고 잔머리도 쓰는 사람이 나 또는 주위의 모습이라고 공감한다면, 우주 엄마는 좋게 말해 이상적이고 나쁘게 말해 고고한 체하는 위선자로 보인다. 더 심하게 표현하면, 우주 엄마는 별다른 노력 없이 운 좋게 의사 남편과 재혼해 잘 먹고 사는, 게다가 아들내미까지 말 잘 들어 속편한 여자일 뿐이다. 우주도 한때 반항을 했다지만 그 정도가 가정사 축에 드는가. 자기정체성의 욕망이란 먹물낀 소리 집어치우고, 예서 엄마처럼 안간힘을 쓰다가 때론 악행도 눈 질끔 감고 저지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나라도 돈 있으면 학원비 아낌없이 쓰겠다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공감은 마음의 울림이고, 객관적 사건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다.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SKY 캐슬>은 예서 엄마의 심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예서 엄마 편을 들고, 나아가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이로 인해 어떤 심적 모순을 겪게 되는지 짚어보는 건, 필요할뿐더러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20181115_210818_8561.jpg

 

가장 먼저 생각해볼 문제는 혜나다. 혜나는 욕 먹어 마땅한 아이일까, 아니면 불쌍한 희생자일까?

 

사건과 상황 중심으로 보면, 혜나는 잘못이 없다. 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된 후 자신을 드러내거나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입주과외를 하고 예서 엄마와 갈등을 빚는 대목에서 치졸하게 굴긴 했지만, 혜나는 아직 미성년자고 예서도 그에 못지않은 싸가지를 보여준 적이 많아, 마냥 매도하긴 그렇다. 김주영에 대한 협박은, 예서가 부정하게 성적을 받았다는 물증을 모두 확보한 후 벌인 일이다. 예서를 떨어뜨려 달라는 말도 불공정함에 대한 복수라고 이해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부실한 학교 수업과 독점적 영재학급에 대해 이견을 표시하고, 사교육 없이 성적을 얻어낸 혜나는 교육의 공정성이란 테마에 있어 확실히 선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서 엄마, 그리고 예서의 입장에서 혜나는 정말 골칫거리였다. 예서 엄마에게 있어 혜나는 존재 자체만으로 가족 전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이었다. 사적 공간을 들락이면서, 자신의 협박에도 하나도 기죽지 않고 대들면서 속을 뒤집어 놓는 아이였다. 예서가 좋아하는 우주, 또 동생인 예빈이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어 예서를 더욱 고립시켰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겐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며 예쁜 아이로 인정받으니, 이런 가식덩어리가 또 있을까. 예서 엄마는 그걸 다 참아내며 1년 넘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약속대로 학비까지 지원했다. 그런데 혜나는 결국 약속을 저버리고 출생의 비밀을 예서에게 까발리고 말았다. 아이와 가정을 위해서라면 정말 죽여서 깨끗이 없애버리겠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혜나는 객관적인 사건과 심정적인 이해에서 전혀 다르게 읽히는 캐릭터다. 혜나에 대한 해석은 토론이 불가능할 정도로 첨예하게 엇갈린다(이 글을 쓰기 위해 중국 반응도 좀 조사를 했는데, 거기에서도 가장 열띤 화제는 혜나에 대한 옹호와 비난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혜나를 비난하는 편은 예서 엄마의 행동을 현실적이라고 보고, 반대로 혜나를 옹호하는 편은 예서 엄마를 악인으로 보는 경향이 대부분이란 것이었다.

 

혜나에 대한 모순된 해석은 자연스럽게 예서 엄마로 옮겨간다. 심정 묘사를 근거로 하면, 예서 엄마는 악인이 아니다. 잘못을 하긴 했으나 근본적인 악의는 없고, 그 대가로 오랜 죄책감에 시달릴 만큼 도덕성에 민감함을 보여주었다. 결국 진심으로, 또 자발적으로 잘못을 뉘우쳤다는 점에서 뻔뻔한 악인들과 달리 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예서 엄마야말로 더 호되게 벌을 받아야 한다. 숱한 악행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주의 누명을 알고서도 몇 달 동안 방치한 죄를 무릎 꿇는 정도로 용서받을 순 없다. 아이를 위해서 그랬다는 식의 변명은 다른 사기꾼들도 자주 써먹는 흔한 거짓말이다. 면회실에서 입술 깨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가슴 아프다고? 오히려 우주를 보자마자 통곡하며 자수해야 마땅하다. 그 죄책감을 참아내다니 세상에 그런 철면피도 없다.

 

예서 엄마에 대한 이중적 해석은 분명히 각본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혜나의 경우엔 중간에 죽었기 때문에, 꼭 그렇진 않았을 수 있다. 예서 엄마와 갈등 관계인 욕망은, 원래 혜나보다 김주영의 역할이다. 김주영 캐릭터는 두말할 것 없는 악역이지만 사람들은 꽤 매력을 느낀다. 이는 예서 엄마의 상승욕구가 가지는 부정적 면모와 대립되어, 김주영은 평등해지려는 욕구를 보이기 때문이다.

 

19회에 비로소 김주영이 털어놓았고 익히 짐작할 수 있었듯, 김주영은 자신의 불운한 가정사를 다른 부자들에게 앙갚음하려 했다. 명백한 악의이지만 또한 평등의식이기도 하다. 미국의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들의 심정이랄까, 나만 망할 순 없다는 거다. 만약 김주영이 엄마로서 케이에게 가진 애정을 드라마에서 진작 보여주었다면, 역시나 심적 공감을 불러일으켜 악역의 이미지가 흐려져 버렸을 것이다.

 

김주영의 욕망은 자신과 남들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이 평등의식을 보여준 다른 인물이 혜나다. 혜나는 예서와 같은 아빠를 두었음을 확인시키고자 했고, 예서와 예서 엄마에 대한 적의는 그간의 어려웠던 처지를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에서 나왔다고도 보인다. 극 중 김주영과 혜나는 거의 얽힐 일이 없었고, 막상 얽히고 나선 바로 죽여버렸기 때문에 둘의 공통점이 부각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둘이 협상해서 막장 드라마로 몰고 가는 전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혜나의 평등의식은 출생의 비밀에서 비롯된 근거가 있고 그 대상은 예서네에 국한되어 수긍이 간다. 이에 비하면 김주영은 자신의 과거와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악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줄거리.jpg

 

 

4. 마무리: 그래도 결론은 입시?

 

<SKY 캐슬>처럼 인기를 끄는 드라마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어떤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 그 요소는 드라마에 국한되지 않는 현실적 보편성을 갖는다. 예서 엄마가 보여주는 교육열, 상승욕구, 자기정체성의 확인 등은 그 요소에 해당한다. 김주영과 혜나가 모두 악하게 인식된다면, 그 이유는 내가 공감하는 예서 엄마의 욕망을 그 둘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서 엄마의 심정에 더 공감하는 현상에선 흥미롭고도 주의를 기울일 부분이 있다. 드라마가 가족 간의 사랑과 행복에 비해 입시 따위는 그 수단에 불과하다는 주제를 강조함에도, 사람들은 오히려 입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입시 코디네이터가 악역으로 나오는 드라마인데도 사교육을 비판하는 반응보다 저런 선생 진짜 있기는 하냐하는 궁금증이 더 크다는 것도 그렇다. 그래서 이 재미있는 드라마가 상기시키는 현실은, 입시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첨예한 화두인지를 새삼 확인했다고 할까,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최소한 이 드라마로 인해 불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