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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시대를 지나 전국 시대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전국 칠웅을 안방 드나들듯 하며 막대한 부를 긁어모으던 여불위라는 대부호가 있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할 일이 너무 많아 세계로 나가던 무역상 + 로비스트쯤 되겠어. 돈이 많아지면 권력에 대한 갈증이 자연스레 솟아나는 건가. 필자는 아직 그 정도의 돈을 가져보지 못해 물질에 대한 욕망도 채우지 못했는데 말이야. 여불위는 재벌 그 이상을 꿈꾸며 각 나라에 뻗쳐 있던 자신의 자회사를 통해 축적한 각종 정보로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했어.

 

‘전국 시대도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결국은 진나라에 의해 통일이 될 것이란 말이지. 나머지 사업들은 다 철수를 시키고 진나라에 집중을 시킬 준비는 하고 있다만, 언제까지 장사치로 살아야 하나. 전경련 회장도 이제 지겹다. 진나라가 대륙을 통일하면 재벌 그 이상의 자리를... 흠.'

 

여불위는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얻기 위해 왕 회장, 즉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갔어.

 

“아버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면 이윤이 얼마나 날까요?”

 

“100% 정도 되겠지. 귀농하려고 그러냐?”

 

“그럼,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 선물에 투자를 하면요?”

 

“대략 1000% 되겠구나. 넌 그 정도 수익이 나는 사업체를 이미 각국에 몇 개씩 가지고 있지 않느냐? 빨리 본론을 말하거라.”

 

잠시 주위를 살피던 여불위는 목소리를 낮추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

 

“아버님, 전 킹 메이커가 되고 싶습니다.”

 

“역시 내 아들답구나. 사업을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 아이템의 수익률은 참으로 짭짤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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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가거, 진기한 물건은 사 둘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의 이 사자성어는 바로 이 부자의 대화에서 비롯되었어.

 

“그래. 투자 대상은 찾았느냐?”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는 진나라의 공자 자초에게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이 당시 진나라는 연로한 왕의 후계자로 안국군이 정해져 있었어. 안국군의 배다른 20명의 아들 중 한 명이 바로 자초였어. 그런데 자초는 생모인 하희가 안국군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자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가고 말았어. 전국 시대에는 각 나라가 서로 인질을 교환함으로 폭탄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어. 자초의 아버지인 안국군은 이미 차기 대권 계승자로 정해져 있었으니 여불위가 끼어들 틈이 없었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자초에게 접근하여 그를 킹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 거야. 여불위는 진나라의 잠룡 중 하나인 자초가 인질로 잡혀 있는 조나라의 수도 한단으로 향했어. 전국 칠웅의 곳곳에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던 여불위에게 '진나라로부터 점점 잊혀 가고 있는' 인질 자초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저는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는 여불위라고 하옵니다. 공자 같은 대단한 분이 이런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공자의 고국인 진나라가 공자께서 인질로 잡혀 계시는 여기 조나라를 곧 침공할 계획이라고 하옵니다. 그렇게 되면...”

 

“나보고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군요. 이미 각오하고 있었소이다. 아버지 안국군께서는 20명의 아들이 있으니 나 같은 자식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으실 거요. 답도 없는 걱정으로 마음 심란하게 하지 말고 유흥비나 좀 놓고 물러가시오.”

 

“오랜 인질 생활에 많이 약해지셨군요. 공은 반드시 킹이 되실 겁니다. 자질이 충분하십니다. 약간의 스폰만 받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저만 믿고 따라 주신다면 진나라를 반드시 공의 두 손에 올려 드리겠나이다.”

 

“당신이 나의 스폰이 되어 주어 내가 진나라의 왕이 된다면, 진나라의 절반은 당신 거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오.”

 

다음 날부터 자초는 조나라 수도 한단을 찾는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여 화려한 파티를 매일같이 열기 시작했어. 파티 비용은 당연히 그의 스폰서 여불위가 대고 말이야. 또한 자초에게 과외 선생들을 붙여 매너와 식견을 넓히는 교육을 병행하는 한편, 돈으로 자초에 대한 좋은 여론까지 형성했어.

 

“조나라 사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성 자초!”

 

“뛰어난 매너와 후한 인심으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다.”

 

여불위는 다음 코스로 진나라의 차기 대권 주자인 안국군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화양부인을 만나기 위해 진나라 곳곳에 돈을 흩날렸어. 그리고 화양부인의 아킬레스건인 안국군과의 사이에 친자식이 없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했어.

 

“인사 올리옵니다. 저는 그저 작은 사업체를 몇 군데 운영하고 있는 여불위라고 하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는 자초라는 아드님에 대한 일이옵니다.”

 

“내 배로 낳은 자식도 아닌데 굳이 그 아이 이야기를 하려는 연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만나기 위해 쓴 돈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제가 무식한 장사치인지라 아픈 곳을 몇 군데 좀 찔러도 용서하옵소서. 지금 부인이 안국군의 총애를 받는 이유는 미모 때문이옵니다. 허나 모든 꽃은 세월이 지나면 지기 마련이옵니다. 노후 대책이 있으신지요? 안국군의 자식 중 후계자가 될 만한 자를 양자로 받아들이셔서 든든한 연금 보험을 들어 놓으실 것을 강력히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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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불위는 연금 보험이 필요한 화양부인과 왕 아니면 죽음뿐인 극단적 상황에 놓인 자초를 포섭하여 진나라 접수 프로젝트 1단계를 완성했어.

 

화양부인의 확답까지 듣고 조나라로 다시 돌아온 여불위는 자신의 집에 자초를 초대했어. 그런데 자초가 여불위 집에 있던 미녀 조희를 발견하고 눈이 완전히 뒤집힌 거야.

 

“이보게, 여불위! 저 여인 이름이 조희라고 했던가? 참으로 아름답네 그려. 저 여인과 한집에서 지낼 수 있다면, 우리 프로젝트를 위해서 내가 더욱더 정진할 수 있을 터인데 말이야. 참으로 아쉽구만.”

 

여불위는 대를 위해 소를 포기할 줄 아는 진정한 장사꾼이었어.

 

“공자께서 그리 원하신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다만 저도 몹시 아끼는 아이인지라 첩이 아닌 본처로 앉히신다면 제가 기꺼이.”

 

미녀 조희가 자초의 집으로 떠나기 전, 여불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들렀어.

 

“이 일을 어쩐단 말입니까? 나리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입니다.”

 

“그래? 오히려 일이 참으로 재미있게 됐구나. 가만있어 보거라. 도랑치고 가재까지 잡을 수 있겠다. 노! 노!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말거라! 대의를 위해서 일단은 너를 보낸다만,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다.”

 

자초의 정실부인이 된 조희는 얼마 후 아들 정을 출산하였어. 이 아이가 바로 훗날 진시황제로 불리게 되었으니!

 

6년 후.

 

“나리! 드디어 내일 안국군이 진나라의 새 왕으로 취임식을 한다고 합니다. 또한 화양부인이 그동안 안국군을 잘 구워삶아 자초가 태자로 임명되었다는 첩보입니다.”

 

“됐다. 이제 안국군이 죽을 날만 기다리면 우리의 장기 프로젝트가 완성되겠구나. 자초의 건강은 우리 전담 메디컬 팀이 잘 챙기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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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효문왕이라는 시호를 받은 안국군은 즉위 1년 만에 사망하고 드디어 여불위의 장기 프로젝트 투자 대상인 자초가 진나라의 장양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어.

 

“나 장양왕은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남자이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많은 사람 중 1등 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여불위다. 그를 국무총리에 임명함은 물론이요, 낙양의 10만 호를 하사하는 바이다.”

 

진나라 황실에 무슨 액운이 낀 걸까? 아니면 혹시 여불위의 보이지 않는 손이 뻗친 것일까? 자초는 타국에서 인질로 살다가 겨우 왕이 되었으나 다음 월드컵도 보지 못하고 즉위 3년 만에 사망하게 되었어. 이제 그의 뒤를 이어 13세에 불과한 정이 진나라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어. 여불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

 

‘개이득!! 나의 아들이 진나라의 왕이 되었구나. 허나 이 사실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여불위는 틴에이저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 놓고 최고의 권력을 마구 휘둘렀어. 생활 자체가 왕과 다를 바 없었고 심지어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고 말았어. 그것은 바로 그의 전 여자친구였지만 지금은 진왕의 어머니인 조희와 다시 만나기 시작했던 거야.

 

사마천의 <사기>에 진왕의 엄마인 태후에 대한 기록이 아래와 같이 있어.

 

<시황제가 장년이 된 후에도 태후의 음은 그칠 줄 몰랐다.>

 

하지만 진왕이 누구야? 비록 지금은 뽀시래기 왕에 불과하지만 훗날 진시황제로 불리게 되는 인물이잖아. 여불위를 조용히 불렀어.

 

“요즘 후궁에 희귀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들어 보셨습니까?”

 

“네? 뭐... 궁이야 원래 소문이 많은 곳입니다만 후궁은 여인들이 사는 곳이라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표정이 평소와 많이 다르십니다. 무신 일이신지?”

 

“선수끼리 왜 이러십니까? 앞으로는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나는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서, 설마... 출생의 비밀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하긴 백성들 사이에 소문이 그리 도니 어디선가 들었을지도. 과연 왕의 자리는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 아들이지만 눈빛이 무섭다. 무서워. 이제 장난감은 버려야겠다.’

 

“오... 오해가 있으셨던 한데. 앞으로는 오해도 사지 않도록 더욱더 몸가짐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나이다.”

 

여불위는 며칠 후 태후를 찾아갔어.

 

“오늘이 내가 여기를 찾는 마지막 날일 겝니다. 왕께서 눈치를 채신 듯하오. 보통 분이 아니시오. 그러니 전 이만.”

 

“호호호. 누구의 아들인데요. 어련할까요? 아쉽지만 저도 이제 공인이다 보니 할 수 없지요. 헌데 소문에 듣자 하니 데리고 있는 사내 중에 노애라는 자가 참으로 흥미롭다고 하던데요. 제게 선물로 주시지요.”

 

‘걸려들었구나. 이미 일대에 변강쇠라고 소문이 났으니 모를 턱이 없겠지. 그래. 이걸로 넌 아웃이다.’

 

태후도 처음에는 모든 일에 조심을 했겠지. 노애라는 자는 환관으로 위장하여 태후의 처소를 자유로이 드나들었어. 시간이 차츰 지나 간이 점점 커진 이들은 남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급기야 태후가 임신을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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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시간은 또 잘도 흘러 진왕 정이 20대의 청년이 된 어느 날.

 

“더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부모가 아니고 웬수다. 못난 인간들 같으니라고... 그 가짜 환관 놈은 옷을 다 벗긴 후 효시하도록 하고, 어머마마는... 끄응.”

 

“그 자는 분부대로 따르겠사오나, 천하 통일을 위해서는 불효자 이미지는 최악입니다.”

 

“흠… 그놈의 천하 통일! 알았다. 대신 여불위는 제거해라. 그 인간의 국정 농단은 내가 그동안 지켜볼 만큼 지켜봤다. 부모만 안 죽이면 되는 것 아니냐?”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질문의 의도가 뭐냐? 너도 여불위가 내 생부라는 헛소문을 믿는 것이냐? 나는 진나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자다.”

 

<사기>에 따르면 여불위는 진왕의 친서를 받고 자결을 했다고 해.

 

“군은 진에 무슨 공이 있어, 진이 군을 하남에 봉하고 10만 호를 녹으로 받아먹게 하는가? 군은 진에 무슨 친이 있다고 중부라 칭하는가?”

 

다시 말하면 "님이 뭔데 나라로부터 막대한 후원을 받는 거요? 나랑 피 한 방울이라도 섞인 거요?"라는 거지. 아들이 이렇게 나오니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아버지로서 좀 더 깨끗한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