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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섹 한 번으로 인생의 다양함을...

 

1)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BL공부를

*BL: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는 이야기, 를 담은 만화(애니), 소설, 게임, 드라마CD 등을 아울러 이르는 말(링크)
*BLCD: 'BL 드라마CD'의 준말. 여기서 '드라마CD'는 CD형태로 만들어진 오디오 드라마. 즉, BLCD는 '(잘생긴) 남자와 (잘생긴) 남자가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사실은 옆으로만 크지만), 성형수술 등 각종 수술을 섭렵한 나는 '고통은 의외로 당일보다 다음날에 더 강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수술 다음날까진 안 아플 생각을 안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역시 경험을 통해 '3일 째엔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틀 동안 고통의 바다에 몸을 맡기고, 빨리 3일이 되길 바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면 시간이라도 빨리 흘러야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잠을 자겠지만, 병원에서 아프다고 잠만 자지 말라고 했거니와 눈과 머리가 아픈 탓에 잠이 잘 안 왔다(잠들어도 울면서 깼다). 이 아픔을 부여잡고 할 수 있는 거라곤 난데없이 일본어 공부를 가장한 BL(Boys Love) 공부 뿐이었는데...

 

잘생긴 남자 둘이 붙어있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리마인드 웨딩까지 시키고도 남는 나는 늘 그렇듯 BL로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한국 BLCD <보일러룸>의 예고

음성만으로도 잘생긴 남자 둘의 뜨거운 라브스토리를 느낄 수 있고

 

일본 BLCD <I HATE>의 예고

줄거리: 고등학생 이후로 10년 만에 재회한 히로(가구점 점원)와 키리야(호스트). 고등학생 때 둘은 키스프렌드로 지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히로는 키스프렌드가 원인이 되어 아직 동정인데...

 

라고 해도 쓸 수 있는 감각은 청각, 즉 귀 밖에 없었다. 주로 '보기'만 하던 BL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BLCD를 줄창 끼고 있었다.

 

물론 인생에서 BL을 접한 역사만 모아도 대서사시를 만들 수 있는 나는 만화 뿐 아니라 BLCD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고, 갑자기 찾아온 고통이란 습격을 잊게 할 BLCD도 넘쳐났다. 덕분에 8시간 연속 남자끼리 색스하는 소리(연출)를 듣는 진기록을 세웠는데, 처음에나 이어폰으로 들었지 나중엔 스피커를 연결해 크게 들었으니, 집 밖을 지나가던(1층임) 어떤 이가 대낮부터 울리는 열정적인 소리에 화들짝 놀랐을 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건 BLCD가 전부 일본 것이라 대사 또한 전부 일본어였다는 것이다(일본어 공부하려고 샀다는 핑계를 댐). 적어도 '나의 알토 리코더 맛이 궁금하니' '목소리가 멈추지 않는군' '엉덩이로 가는 놈은 믿는 게 아니랬어'와 같은 대사는 알아듣지 못했을 거다. 만약 한국어 대사였다면 어느 누구에게 신고 당해 집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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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P에 CD를 넣으면 오디오 드라마(BL)가 나온다.

 

아무튼 수술 다음날까지 세상 모든 BL을 독파하겠다는 마음으로 BLCD로 시간을 죽였다. 일본어 듣기 실력도 키우고 시간도 때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자신을 위로하, 는 건 전혀 효과가 없었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눈에 레이저를 댔나 오만가지 후회를 했다. 아무리 BL 좋아하는 애도 8시간 정도 남자 신음소리(연기)를 듣고 있으면 현실을 자각하기 마련이다.

 

아픔에 눈물을 흘리다 못해 거의 짜내다가, 붓고 벌개진 눈으로 '내가 다시 라섹수술을 하면 인간이 아니'라고(어차피 두 번은 못함) 참하고 순수한 얼굴과 다르게 거친 말을 하기도 했다. 욕에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고 해서 한 거지 내가 평상시에도 입에 걸레 물고 사는 애라서 그런 건 아니다. 응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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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정신으로 3일 차 아침을 맞았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생각하면 이제부턴 '안 아플 시간'이었다.

 

라는 건 그 땐 어려서 그저 회복이 빨랐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아니, 더 아팠다. 열이 더 나는지 손으로 머리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한국인이 작심삼일의 동물이라고 진짜 3일을 버틸 수 있는지 실험이라도 해보려는 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아파선 안됐다. 이 세상 또라이, 그거 제가 다 하는 것 같았다.

 

 

2) 수치플레이 ~씻기 지옥에서~

 

어두컴컴한 방에서 전혀 나아지지 않는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리다 불현듯 떠올랐다. 다음날이자 4일 차에 치과예약이 있다는 사실이.

 

다른 병원 예약이었다면 당연히 미뤘겠지만 교정충으로 산 지 만 3년을 넘어간 애에게 '치과'예약이란 미뤄서는 안 될 무언가였다. 치과방문이 늦어진다는 건 교정기간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인생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 없댔다. 고통은 버티면 되고, 눈부심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막을 수 있다. 근성을 빙자한 고집과 오기로 치과방문을 강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인생 쉽게만 살아갈 수 없는 법이라 먼저 해결해야 할 커다란 산이 있었다. 사람이길 포기한, 머리에서 나는 엄청나고 강렬한 향기가 문제였다. 간단한 시술을 해도 당일에는 그 부위에 물 닿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최소 며칠은 쉬어야 하는 수술은 더 당연했다. 상처를 회복하는 기간 내내 물이 닿아선 안 되기 때문에 씻을 수 없었다. 따라서 머리를 며칠 동안 감지 못했다.

 

...냄새가 보통이 아니었는지 엄마아빠는 얘기할 때 숨을 안 쉬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내기도 했다. '물 안 닿게' 감으면 되지만 세상 일이 말처럼 쉬웠으면 서울대에 갔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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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냄새가...!)

 

4일 된 아침이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뺏을 생각인지 어제에 비해서는 훨씬 덜 아팠다. 눈에 모래를 뿌리는 것 같은 고통이 거의 사라져있었고, 약간의 미열과 그에 따른 두통, 렌즈의 이물감만 남아있었다. 확실히 '건강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극렬한 고통 뒤에 찾아와서인지 딱 이 정도만 되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래서 사람이 간사한 거라고 아빠가 악담 아닌 악담을 했다).

 

그러나 사람의 길을 벗어난 고약한 머리 냄새가 여전히 문제였다. 냄새는 하루 사이에 더 심해져있었다. 이 상태라면 그간 치과선생님과 쌓아왔던 사회적 관계가 다 무너지고 말 텐데...

 

결국 엄마를 깨워 머리를 감겨달라고 했다. 엄마도 딸의 머리 냄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지 군말 않고 '유사 미용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 또한 수술을 한두 번한 게 아니니 엄마 또한 '이 나이에 딸 머리 감겨주기'형을 수 번 겪었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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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욕조 밖에 욕실의자를 놓고 앉음

 

'유사 미용실'은 이런 시스템이었다. 엄마는 욕조 안에 들어가 있고, 나는 욕조 바깥에 앉은 뒤 고개를 뒤로 넘기고, 엄마는 욕조 안에 들어가 내 머리를 감겨주는. 나름 수회의 시행과 착오를 겪은 뒤 나온 차선책이었다.

 

차선답게 완벽하지 않았다. 진짜 미용실에서 머리 감을 때도 물 튈 때가 있는데 '유사'에서 물이 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니, 튀다 못해 입고 있는 옷이 다 젖었다. 이런 수준이니 가장 보호해야 할 얼굴에도 물이 튀었는데, 수건으로 눈을 한 번 가리고 그 위에 또 수건을 얹어도 맨위 수건이 반 이상 젖곤 했다. 이번엔 얼굴 위에 수건을 세 장 정도 올려볼까 했지만, 우선 숨을 못 쉬고(...) 아픈 눈이 수건 세 장의 무게를 견뎌줄 거란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비장의 도구를 꺼낼 수밖에.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팬티 빼고 모든 옷을 다 벗은 뒤(늘 수치심 그런 거 없지만 사람으로서 마지막 보루로 팬티는 입었다), 서랍장 구석에서 몇 년은 쓰지 않았던 수영용 물안경을 꺼냈다. 이 나이에 엄마 앞에서 팬티 바람에 수경 차림으로 있어본 애는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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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여운 모양새는 아니지만 몸매가 유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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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물안경을 믿을 수 없어 그 위에 수건을 덮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안경과 수건의 콜라보로 눈은 제대로 지킬 수 있었다(역시 팬티는 퐁 젖었지만). 하지만 진짜 미용실에 가서 감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수치심에 젖어야했기 때문이다. 가족 뿐 아니라 체육관 탈의실에서도 옷을 훌렁훌렁 벗어 타 회원들을 당황시키는 내가 갑자기 알몸과 같은 상태가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자꾸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생각나서였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에 태어난 요즘 애기들은 네모난 것을 보고 '핸드폰'이라고 부르며 소꿉놀이를 한다던데, 나도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닌지라(진짜임) 머리가 컸을 때 인터넷은 이미 유익한 친구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아빠보다 컴퓨터를 더 잘 다룰 줄 알았으니 인터넷 정보력은 오죽했을까.

 

초딩 때 와레즈를 알았고(존재만 알았음. 나쁜 짓은 안 함),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인터넷에서 성인 사이트 찾는 법을 알았다. AV는 당연했고, 나아가 일명 게동(게이 비디오의 줄임말)이라고 불리는 GV(Gay Video), 그러니까 게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성인물도 접했더랬다. 성에 눈 뜬 이후 남자 둘이 뽀뽀하는 거라면 만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닥치는 대로 보았던 애가 실제 사람이 나오는 거라고 안 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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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글남' 혹은 '선글라스남'이라 부르는 등장인물...

 

그 땐 AV는 물론 GV도 일본이 강세였는데(요즘은 영미권이 강세다), 얼굴을 가리려고 그랬는지 꼭 그렇게 등장인물 중 하나가 선글라스(혹은 고글)를 끼고 등장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참 정이 안 갔다. 선글라스(혹은 고글)로 얼굴을 가리겠다면서 몸에 걸친 게 달랑 팬티 하나라니 이상했다. 또 근육질 몸에 꽉 끼는 검정색 삼각팬티, 깎지 않은 수염과 다리털, 그에 반해 막 자른 것 같은 동자승 헤어스타일. 모순 덩어리의 선글라스 아저씨는 보는 사람에게 반감을 줄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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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바람에 물안경 상태로 머리를 감고 있으니 자꾸 그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하필 팬티도 물안경도 검정색이라 꼭 나 자신이 GV에 나오던 이상한 아저씨가 된 것 같았다. 꼭 그런 놈들이 주인공한테 찝쩍거리는 것은 물론 직업도 없는 한량에 도박 빚에 허덕이던데...  잘생긴 놈들 놔두고 하필 그런 아저씨 같이 느껴질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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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시 끼는 안구보호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라섹수술을 하고 나면 잘 때만 끼라고 '안구보호대'를 준다. 잠결에 눈 건들지 말라고 쓰는 것으로, 물안경 같이 생겼고 수술한 사람들 대부분이 '물안경'이라고 부른다. 이걸 수술 2주까지 끼는데, 슬픈 건 (수영용)물안경을 쓰고 머리를 감았던 이후, 안구보호대를 쓰고 잠에 들 때면 어김없이 그 장면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살다살다 GV배우 체험도 해보고 세상 참 좋아졌다 싶었다.

 

 

 

모든 건 존버와 시간이 해결해조

 

1) 보호용 렌즈 제거와 관리를 가장한 존버

 

보호용 렌즈를 제거하고부터는 진짜 고통이 없다. 이제는 시력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시력관리'를 하면 된다. 이 과정을 소홀히 하면 나중에 눈이 빨리 나빠진다던가 하는 등 본의 아니게 피를 본다고 하니 병원 말을 잘 듣는 게 좋겠다. 난 이럴 때만 세상 착한 애다.

 

수술 후 시력관리는 딱 두 가지를 잘하면 된다.

 

①자외선 차단

②치료용 안약 제때 넣기

 

라는 건 역시 해본 놈들의 얘기다. 안약이야 작으니 갖고 다니면서 눈에 넣으면 되는데, 생각보다 자외선 차단이 쉽지 않다.

 

어느 계절이든 야외에선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게 좋다고 하지만, 한국에선 여름 아닌 계절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면 굉장한 관종이 될 수 있다. 특히 나 같이 초등학생 이후로 키 크기를 거부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애가 선글라스에 모자(하필 벙거지 같이 챙 넓은 거)를 쓰고 다니면 어디에서든 동정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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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내 모습

(세상 힙함과 세상 귀여움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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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유행에 민감한 할머니

 

선글라스에 벙거지라니 말만 들어도 힙할 것 같지만 현실은 유행에 민감한 할머니(혹은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특히 화장기 없는 하얀색3과 누런색7의 피부색과 역시 화장기 없는 푸르딩딩한 입술색이 리얼리티를 더 살려주는 듯 했다. 타이레놀 사러 들어간 약국에서 받았던 걱정과 동정어린 시선. 살면서 그렇게 가엾은 취급을 당한 건 다리에 깁스해서 목발 짚다 빵집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게 곧 관종이란 소리는 아니다. 의외로 관종하고 거리가 먼 나는 또 돈을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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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고 다니는 건 아닐까 착각할 정도의 시선을 느꼈다

 

곧바로 안경집에 가서 '자외선 차단 안경'을 맞추었다. 도수 없는 투명 렌즈에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어 선글라스 대신 쓰고 다닐 수 있는 안경이었다. 따라서 보통 안경 같이 생겼음에도 자외선 차단을 할 수 있었다.

 

안경을 버리려고 수술을 했는데 다시 안경을 쓰고 다녀야 했지만, 병원에선 최소 한달은 자외선 차단에 신경써야 한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다가 받을 시선에 비하면 한달 한정 안경쟁이가 되는 게 나았다. 적어도 이 안경은 도수는 없으니까 눈이 좁쌀되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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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외선 차단에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도 된다

 

굉장히 머리를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외외로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수법을 쓰는 모양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무색무도수 안경을 쓰고 있는 이와 꽤 마주쳤다. 역시 지구 아래 새로운 건 없는 법이다.

 

아무튼 안경 덕분에 의도치 않은 관종을 대비해서인지 이후로 동정어린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다. 살면서 동정 안 받는다고 기뻐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2) 시력회복이 더딜 땐 의료소송을

 

보호용 렌즈를 제거한다고 독수리의 눈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술을 한다고 혹은 보호용 렌즈를 뺀다고 바로 시력이 좋아지는 건 아니고, 보통 1주일~1개월 정도 걸린다. 시력회복 시간은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안타깝게도 나는 시간이 꽤 걸리는 쪽이었는지 2주 동안 시력이 0.5 이상 오르지 않았다. 그것도 한쪽 눈만 그랬고, 반대쪽은 0.2이나 될 수준이었다. 태어나고 한 번도 양눈의 시력차가 많이 나본 적이 없는데, 수술 후 처음으로 사물을 볼 때 한쪽 눈만을 써야 하는 불편함을 접했다.

 

그런 상황이 좀 더 지속되어서 의료소송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법은 물론 법조계 사람도 모름), 갑자기 시력이 확 올랐고 양눈의 시력도 비슷해졌다. 그게 수술하고 3주 쯤 지났을 때였다. 지인짜 오래 걸리는 사람은 회복되는 데까지 6개월도 걸린다던 의사의 말에 불신을 갖고 가자미 눈을 떴던 게 좀 미안해졌다.

 

(출처: 나고야 아이클리닉)

1개월까지 시력이 오르는 게 의외로 정상이다

 

약간 약 파는 것 같긴 한데 시력이 잘 안 오른다고 의사 멱살부터 잡기보다는 최소 1개월까지는 기다려보는 게 좋겠다 뭐 이런 거다. 대신 그동안 병원에서 하라는 건 잘 따라해구... (들인 돈을 생각하면 의외로 착실하게 관리할 수 있다)

 

 

 

라섹 하나 한 걸로 글을 몇 개나 쓴 건지 모르겠지만 수술한 지 어언 세 달이 되어 가는 시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때 수술을 감행했던 나를 칭찬하고 싶다. 고통으로 따지면 쌍꺼풀을 세 번 정도 조진 것 같은(두 번 밖에 안 함) 수준이었지만, 일주일 고생한 걸로 앞으로 몇 년을 편하게 살 수 있다면 나름 이득 아닌가 싶고... (그것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랬다. 분명 성형수술도 아팠을 텐데 상대적으로 오래되서 기억을 못하는 걸 거다)

 

결론은 라섹수술에 만족하고 있다. 낸 돈이 있는데 만족하지 못했다면 깽판이란 게 뭔지 이 몸으로 보여주려고 했지만... '챙타쿠가 괜찮다던데'라는 말에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에, '수술 해보니 어떻드나'라는 질문에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라는 거짓말은커녕 현생은 물론 전생의 죄까지 뉘우치게 되는 아픔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긴 하지만... 만족은 만족이고 고통은 고통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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