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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우주비행 경쟁 1라운드!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하면서 소련은 다시 미국에 원투 어퍼컷을 선사했다.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 최초의 생명체 우주실험(라이카), 최초의 유인우주비행(가가린)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타이틀을 독식하며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미국은 1958년부터 소련보다 1년 빨리 유인우주비행을 준비를 시작했고, 7명의 유인우주비행사 후보를 선발하여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주비행사를 뜻하는 애스트로넛(Astronaut)이라고 불렸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 신화의 아르고(Argo)호의 영웅들을 뜻하는 ‘아르고넛(Argonaut)’에서 유래되었다. 미국의 우주선, 우주계획 명칭은 대부분 그리스 신화의 이름에서 기인하는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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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들, 7명의 후보 중 6명이 머큐리 우주선에 탑승했다.


그러나 소련이 월등한 중량물 우주발사체인 R-7을 이용해 거의 5톤 무게인 보스토크 우주선을 지구저궤도에 올리고 위성속도까지 가속했던데 반해, 미국은 고작 20kg 정도의 초소형 인공위성만 위성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1톤가량의 정찰위성을 위성궤도에 올릴 수 있는 신형 발사체는 거듭된 실패와 낮은 신뢰성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1960년부터 레드스톤 로켓 등을 이용하여 머큐리 우주선을 테스트 해왔지만 소련이 먼저 유인우주비행을 성공시켰다.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은 1인용 캡슐형 유인우주선인 머큐리를 위성궤도에 올리고 다시 지구로 귀환시키는 것인데, 당초 필요했던 중량물 발사체를 아직 완성하지 못해서 일단 검증된 레드스톤 로켓을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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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유인우주선을 발사한 레드스톤, 아틀라스 발사체들.

뒤에 붙은 숫자 '7'은 우주비행사 7명을 뜻한다.


위 사진은 (좌측부터) 총 여섯 차례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한 머큐리 계획의 발사장면이다. 머큐리 우주선은 초기에는 레드스톤 로켓의 상단에 부착되었다. 레드스톤의 운반능력이 낮았기 때문에 최초의 미국 유인우주비행은 제대로 된 위성궤도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서브오비탈(Sub-Oribital)이라 불리는 준궤도권 탄도비행을 한 것에 불과하다. 이후 4차례의 비행은 운반능력이 강화된 미 공군의 아틀라스 발사체를 사용하였으며 정식 위성궤도 비행까지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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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큐리 유인우주선 ]

 

머큐리 우주선은 1인승 캡슐과 비상탈출로켓(LES)으로 이뤄져있다. 우주선의 하단에는 위성궤도에서 역추진 감속하여 지구로 귀환하는 추진부가 장착되어 있으며, 대기권 재진입시 분리된다.

 

소련의 보스토크 우주선엔 비상탈출로켓이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그에 반해 머큐리엔 최초로 비상탈출로켓이 달려있다. 우주비행사의 안전을 고려한 우주선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운데 귀환캡슐은 대기권 재진입시 무려 3,000도에 이르는 마찰열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의 초기단계라 ICBM탄두처럼 재진입각도가 크기 때문에 마찰열이 클 것에 대비한 것이다.

 

- 귀환모듈 중량 : 1,355kg (역추진부 포함)

 

- 비상탈출로켓 중량 : 580kg

 

- 정원 : 1명

 

- 우주체류 가능기간 : 1일

 


머큐리 우주선은 비상탈출로켓을 합쳐봐야 2톤이 채 안 되는 경량우주선이다. 보스토크 우주선의 4.8톤에 비하면 소형이지만 근대적인 비상탈출장치와 진공상태에서 쓰이는 자세제어장치(RCS: Reaction Control System)까지 갖췄다.


1961년 1월 31일, 미국은 머큐리의 12번째 시험비행에서 침팬지 '햄'을 태우고 최초로 생명체 우주비행을 실험한다. '햄'은 레드스톤 로켓에 의해 253km의 고도까지 상승한 뒤 대서양에 무사히 착륙했다. 소련의 최초 생명체 우주비행으로 '라이카'가 영원히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으로부터 한 달이 지난 1961년 5월 5일, 드디어 미국 최초 우주비행사인 앨런 세퍼드가 탑승한 프리덤7호가 발사에 성공한다. 그러나 레드스톤 로켓의 능력으로는 위성궤도까지 우주선을 보낼 수가 없어서 최대고도 187km, 최대속도 2.3km/sec의 서브오비탈(준궤도, 탄도비행) 비행만 한다. 유리 가가린의 보스토크 1호는 이미 위성궤도에 7.8km/sec 속도로 진입했다가 귀환하였기에 앨런 세퍼드의 비행은 엄밀하게 말해 완벽한 우주비행이라고 볼 수 없다.


이후 머큐리 우주선은 레드스톤으로 한차례 더 발사된다. 그 후 1962년 2월 20일에 존 글렌이 탑승한 프렌드쉽7호가 아틀라스 발사체를 이용하여 미국 최초로 유인 위성궤도 비행에 성공한다. 미 공군이 ICBM용으로 개발하던 아틀라스는 레드스톤에 비해 더 큰 중량물 발사체이며, 위성궤도까지 약 2~3톤의 페이로드를 운반할 수 있었다. 머큐리 계획 초기에는 아틀라스의 성능이 아직 완벽하지 못해서 실험발사에 계속 실패했지만, 이제는 아틀라스를 이용해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보낼 만큼 신뢰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앨런 세퍼드가 탄도비행으로 겨우 우주권의 문턱에 도달하고 난 보름 뒤, 소련이 보스토크 2호를 발사했고 티토프가 위성궤도에서 지구를 17바퀴 돌았다. 존 글렌의 정식 위성궤도 진입은 소련에 비해 10개월 이상 늦었다. 이렇게 소련은 유인우주비행 경쟁 1라운드에서 미국을 K.O 직전까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유인우주비행 경쟁 2라운드!


1961년, 앨런 세퍼드가 레드스톤 로켓을 이용해 서브오비탈 비행에 성공하자,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까지 보내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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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경쟁 1라운드에서 소련에 완패 당하여 자존심을 구길 데로 구긴 미국은 이 발표 이후에 총력을 기울여 소련보다 먼저 달에 인간을 보내기로 한다. 머큐리 계획이 인간을 위성궤도에 보내는 초기 실험이었다면, 그 다음인 제미니 계획을 통해서 유인우주비행의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최종적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지금도 마찬가지) 세계 최강의 부국이었던 미국은 우주계획에 미국총생산(GDP)의 약 3%에 이르는,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다. 그들은 국가의 최고 엘리트 30여만 명을 동원했고 고작 1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이뤘다. 그리고 결국 달을 정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소련에 비해 열세였다. 소련은 보스토크 우주선(1인승) 보다 진보된 보스호트 우주선을 개발하였다. 보스호트는 2~3명이 탑승할 수 있었으며, 우주선 내에서 여압복 없이 우주비행사가 활동할 수 있었다. 또, 착륙 전 우주비행사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던 보스토크와 달리 탑승한 채 착륙할 수 있었다.


미국은 머큐리 우주선에 이어서 제미니 우주선(2인승)을 개발했고, 보스호트와 제미니가 미-소의 우주경쟁 2라운드를 펼친다.


보스호트(Voskhod)는 1964~1965년에 5차례 우주비행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소련의 우주프로그램은 극비였으며 외부에는 제한적으로 알려졌다. 소련의 특성상 성공한 발사만 알려져서 보스토크-보스호트를 통해 발사된 횟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실패하여 우주비행사가 사망하기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보스토크를 이용해 소련은 이미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를 배출했으며, 보스호트를 통해 최초의 유인 우주유영(EVA)까지 시도한다. 보스호트는 보스토크보다 증가된 5.68톤으로 보스토크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발사체는 여전히 강력한 R-7을 더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1965년 3월 18일에 발사된 보스호트 2호에 탑승한 두 명의 우주비행사중에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인류 최초로 약 12분간의 우주유영(EVA : Extra-Vehicular Activity)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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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레오노프는 우주선에 부착된 에어록을 통해서 밖으로 기어(?)나온 후 우주선 주변에서 잠시 우주유영을 했지만, 에어록을 통해서 우주선에 들어가려다가 끼었다. 우주복 내부의 압력으로 우주복이 팽창한데다가, 에어록의 구조 자체가 에어쿠션을 비집고 통과하는 방식이라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던 것이다. 레오노프는 20여분의 사투 끝에 우주복의 밸브를 열고 압력을 거의 진공에 가깝게 만든 다음 홀쭉(?)해진 몸으로 간신히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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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에어록은 저런 구조였으므로 왜 에어록에 끼었는지 이해가 된다.

레오노프는 이 일로 인해서 잠수병과 유사한 증세를 겪는다.


소련이 각종 우주타이틀을 싹쓸이 하는 와중에, 미국의 애드워드 화이트가 1965년 6월 3일에 미국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한다. 화이트는 제미니 4호에 탑승해서 우주로 나간 뒤 우주선 내부의 압력을 내리고 직접 해치를 연 뒤에 우주유영을 시도했다. 약 23분 간의 우주유영 동안, 로프로 연결한 상태로 손에 쥔 산소제트총을 사용해 우주선에서 약 8m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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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뒤쳐진 마지막 일이다. 이후에 있는 최초의 우주선 도킹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타이틀은 주로 미국이 차지했다.


미-소 우주경쟁은 보스호트-제미니의 대결양상에서 차차 대등한 수준으로 격차가 좁혀졌고, 우주경쟁 제2라운드는 근소하게 소련이 앞섰지만, 이후엔 미국이 맹추격한다.



Tip 1: 알렉세이 A 레오노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유영을 한 알렉세이 A. 레오노프(Alexei. A. Leonov, 1934~현재)는 파울 벨라예프와 함께 보스호트 2호에 탑승하고 우주로 나간 뒤 단독으로 우주유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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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촬영한 활동사진(동영상)은 TV를 통해 방송되었으며, 12분간 우주선으로부터 약 5m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귀환하는 과정에서 에어록 문제로 위험을 겪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구에 귀환할 때 평원지대가 아닌 접근이 곤란한 우랄산맥 지역에 착륙을 했고, 레오노프와 동료는 구조대가 우주선을 발견할 때까지 이틀 동안 고립된 채 우주선 주변에 머물러야 했다. 우주선의 난방장치마저 고장 나서 추위 속에 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주변에 늑대들이 몰려들어서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으나 당시 소련 우주선에 비치된 호신용 권총인 스페이스건으로 늑대를 물리치기도 했다.


훗날 레오노프는 소련이 원래 달 탐사용으로 개발했던 소유즈 우주선 11호를 지휘하여 다시 우주로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팀원 한 명에게 의료 문제가 발생해 백업 크루(우주비행사들은 팀을 이루고, 만약 임무팀이 문제가 있으면 백업팀이 대체)가 소유즈 11호에 탑승한다. 그리고 소유즈 11호에 탑승한 백업 크루 전원은 사고로 전원 사망한다. 소유즈 11호에 탄 승무원들은 선내의 여압시스템을 믿고 체육복 차림으로 있었는데, 대기권 재진입 과정에서 선체에 균열이 발생해 모두 질식사했다.


레오노프는 1975년에 아폴로 우주선의 마지막 미션이었던 아폴로-소유즈 도킹 이벤트에 참가해 미국 우주비행사들과 우주에서 조우했다. 소장까지 진급했으며, 소련의 우주비행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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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소유즈 도킹미션에서 미국 우주비행사와 조우한 레오노프 (아래쪽)


레오노프는 냉전이 끝난 후 국제우주정거장(ISS) 건립에도 참여했으며,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서방측으로부터도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Tip 2: 제미니(Gemini) 우주선


미국 최초의 유인우주선이었던 머큐리 우주선은 매우 경량에, 소형이며, 1인승이었다. 반면에 제미니 우주선은 좀 더 커진 2인승이다. 제미니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쌍둥이자리’를 뜻하는데,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나란히 탑승하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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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우주선의 무게는 약 3.2~3.8톤 정도였고 미션마다 무게가 조금씩 달랐다. 더 무거워진 제미니 우주선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미 공군이 개발한 타이탄 발사체가 사용되었다. 타이탄은 미 공군이 ICBM용으로 개발하던 아틀라스, 타이탄 중에서 좀 더 진보된 기술이 적용된 발사체이다. 아틀라스나 R-7이 이륙시 1단과 2단(또는 부스터)을 동시에 점화하는 방식이라면, 타이탄은 본격적인 다단로켓으로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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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우주선은 총 12차례 발사되었고, 초기 2회의 무인비행을 제외한 10회는 모두 유인비행을 했다. 제미니 계획을 통해서 배출된 우주비행사들은 훗날 아폴로 계획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1966년 3월 16일, 제미니 8호를 타고 우주로 나간 닐 암스트롱이 역사상 첫 우주도킹에 성공한다. 암스트롱은 훗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제미니 4호는 미국 최초의 우주유영을 성공시켰다. 소련의 보스호트에서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을 빠져나오려면 복잡하고 기괴한 에어록을 통해야 했지만, 제미니는 아예 선내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압력을 낮춘 뒤 해치를 열고 우주비행사가 걸어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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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64~1966년 동안 제미니 계획을 실행했고, 곧이어 아폴로 계획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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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우주선 중 레드스톤과 아폴로에는 비상탈출로켓이 캡슐의 상단에 있어 유사시에 캡슐을 강제로 로켓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제미니는 항공기의 비상사출좌석과 같은 방식으로 유사시 우주비행사들을 밖으로 튕겨내 버린다.


소련의 보스토크-보스호트 우주선도 제미니 우주선처럼 비상사출좌석 방식이다. 머큐리 우주선과 아폴로 우주선, 소련(러시아)의 소유즈 우주선엔 비상탈출로켓이 달려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엔 비상탈출로켓도 없고, 비상사출좌석도 없다. 첫 번째 사고에서 안전장치의 부재로 인해 7명의 승무원들이 손쓸 방법도 없이 모두 사망한다. 미국의 차세대 우주선 오리온은 다시금 비상탈출로켓을 장착한다.



[References]

1. 영문 Wiki - Voskhod spacecraft, Project Mercury, Project Gemini, Alexei Leonov.
2.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KARI스쿨.
3. 네이버 SNW님의 블로그 : http://blog.naver.com/snw001
4.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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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랑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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