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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탄력적 근로시간제)가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3개월에서 더 늘어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2019219일 대통령 직속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합의안을 냈으며, 국회에서는 이를 받아 6개월 내지 1년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1년으로 늘리는 안은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의 제한이 무의미해지는 악법이나 자유한국당과 건설업계 등에서 총대를 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협상우위를 점하기 위한 블러핑으로 보이고 단위기간 확대는 6개월이 유력하다).

 

물론 노동계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으나, 늘 그래왔듯 재계의 경제를 볼모로 한 협박은 제대로 먹혀 들은 듯하다. “경제는 우리 손에 있다. 그러니 우리가 소모할 노동자를 내놔라.”라고 겁박하는 납치범 앞에서 강력한 노동개혁을 천명했던 정부는 제대로 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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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향후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살펴보려면 우선 탄력근로제를 알아야 한다.

 

탄력근로제란 아주 쉽게 정의하자면 일감이 많아 바쁠 때는 일을 많이 하고, 일이 없어 한가할 때는 일을 적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많다고 기계도 아닌 사람에게 계속 노동을 시키는 비인간적인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근로기준법 51조에서는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수 있는 단위기간을 정해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 원문은 아래와 같다.

 

50(근로시간①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③ 1항 및 제2항에 따른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 <신설 2012. 2. 1.>

 

51(탄력적 근로시간제① 사용자는 취업규칙(취업규칙에 준하는 것을 포함한다)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2주 이내의 일정한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근로시간이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을특정한 날에 제50조 제2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다만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정하면 3개월 이내의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근로시간이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특정한 주에 제50조 제1항의 근로시간을특정한 날에 제50조 제2항의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게 할 수 있다다만특정한 주의 근로시간은 52시간을특정한 날의 근로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1. 대상 근로자의 범위

2. 단위기간(3개월 이내의 일정한 기간으로 정하여야 한다)

3.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근로시간

4.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③ 1항과 제2항은 15세 이상 18세 미만의 근로자와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④ 사용자는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근로자를 근로시킬 경우에는 기존의 임금 수준이 낮아지지 아니하도록 임금보전방안(賃金補塡方案)을 강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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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연장근로의 제한에 대한 53조와 노사 간 합의를 정의한 94조 등까지 꼬리를 물고 있지만, 법의 문장이 가지는 막막함과 중구난방의 연결 구조를 감안해 세 줄로 요약해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취업규칙에 따라 2주 이내의 기간 안에서는 일주일에는 최대 52시간을 나머지 한주에는 48시간을 근로하게 할 수 있으며, 특정한 날에는 하루 8시간이든 14시간이든 일을 시킬 수 있다.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 하면 3개월 이내의 기간에서는 기존 법에서 정한 주 40시간, 8시간의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고, 특정한 주에는 52시간, 특정한 일에는 12시간까지 근로를 시킬 수 있다.

 

약자(18세 미만, 임신 중인 근로자)는 적용하지 않으며, 탄력근로제 때문에 시간외수당을 못 받게 되니 월급이 줄어드는 걸 보전할 방법을 강구하라.

 

현행법에서 2주 또는 3개월로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정해 둔 것은 기업이 노동자를 연료로 태워서 공장을 돌리라는 국가의 권고가 아니다. 기업의 생산성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노동자와 합의를 거쳐 탄력적으로 노동시간을 운영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건강, 산업안전을 고려해 2주 또는 3개월로 기간을 못 박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법으로도 탄력근로제를 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또한 아직 제대로 시행된 바 없어 허술한 법의 빈틈을 노린다면,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기대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근기법 제51항은 1일 근로 시간의 제한이 없는 상태라 신속히 개정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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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는 역행이다

 

남북평화 체계 구축을 위한 수많은 과정과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적폐의 청산 과정에서 연일 뉴스에 오르는 사건, 사고 보도에 가려서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부지불식간에 수면 아래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이는 단순한 산업현장에서의 노사 간 갈등으로 국한되는 문제가 아님을 환기해야 하고 그 광범위한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첫 번째로 고심해야 할 점은 정부 주도의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내건 소득주도 성장 경제정책의 자기 부정이라는 대목이다노동자와 서민의 소득 증대를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에 방점을 둔 이유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이미 검증된 자본과 기업의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가 허상이었음을 학습한 결과이다소수의 부자들이 창출한 이득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다수의 노동자와 서민의 소득이 증대되고 소비를 통해 경기 전반에 나타나는 선순환, 분수효과를 주목한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소비 여력이라는 것은 손에 쥔 돈뿐만 아니라 그 돈을 쓸 수 있는 시간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탄력근로제는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노동 후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 휴식의 시간에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휴식의 시간이 겨우 수면이나 해결할 정도면 무슨 소비를 할 수 있겠나? 과거 유세장에서 화자로 나섰던 정치인의 호불호를 떠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여태 살아남아 회자되는 이유를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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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경제 성장의 한계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인 혁신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손쉬운 대안을 집어 드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나하는 점이다더 이상 노동자의 노동력을 쥐어 짜내서 만들어내는 생산성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이 시대를 조망하지 못하고 혁신을 주저할 때 채찍질을 하지는 못할망정 “GDP는 우리가 다 쥐고 있어요.” 하며 칭얼대는 자본의 요구에 너무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준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논란이 있을지언정 미래 에너지의 틀을 쥐기 위해 수소에너지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선택한 결정이나 오랜 기간 공론의 장을 통한 대화와 타협으로 마련한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성과를 만들어낸 정부의 행보인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이번 탄력근로제 확대는 과감한 결단력도 끈기 있는 숙의의 과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탄력근로제는 고용의 질이 저하되고, 많은 양의 일을 신규고용 없이 기존 노동자의 노동시간 확대로 메꾼다는 점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고용절벽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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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로서의 정부가 내린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최근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국가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쉽지 않은 문제다. 특히 젊은 세대의 사회에 대한 불만은 대부분 일터에서 노동자로 받고 있는 대우가 그들이 교육 받은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과는 너무 큰 괴리를 이루고 있다는 데 있다.

 

휴일에 일하고도 눈치를 보며 대체휴가제도를 사용하지 못하고, 무제한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야근과 휴일근무를 해도 포괄임금제라는 기괴한 사규에 얽매여 단 한 푼의 법정수당도 받지 못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이러한 상황에서 탄력근로제까지 더해진다면 자본과 노동의 갈등, 세대의 갈등, 박탈감에 의한 사회와 정치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화될까 걱정스럽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자

 

정부가 속도조절을 이유로 노동정책의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또 그 일환으로 탄력근로제를 불가피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긴박한 상황이더라도 노동자들에게 두 가지는 약속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악화와 삶의 질 하락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제한을 법제화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 과로사가 빈번한 특례업종에 대한 개선, 이번 탄력근로제와 같은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유럽연합과 같이 모든 노동자에게 24시간당 최저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과 같은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근로감독관의 충분한 증원을 통한 노동현장에 만연해 있는 불법행위와 이러한 사업장에서 법과 정의를 불신하고 하루하루 태워지고 있는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삶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민주와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 사회가 과연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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