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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녹지병원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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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스뵈이다>에 제주특별자치도의 ‘원 지사’께서 미스터리라는 수식을 달고 등장했다. 방송을 따라가다 보면 ‘게이트’의 구조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총수의 발언은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귀결이다. 그보다 한 달 전쯤 나처럼 엠비씨 TV 뉴스를 봤던 사람이라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조했을 것이다.

 

당시 뉴스의 내용은 이랬다. 원 지사께서 녹지국제병원에게 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를 내주기 전, 사업 주체인 중국 녹지그룹이 제주도청에 영리병원 사업의 포기 의사를 밝힌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한마디로 녹지그룹이 ‘나 이거 안 할래’라고 공식적으로 영리병원 사업 포기 의사를 밝혔는데 원 지사께서는 이를 무시하고 허가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사업 주체는 도리질을 하며 싫다는 데도 제주도정은 ‘그래, 해’하며 허가를 내주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두 사건 사이의 간극에 묻혀 있을 이야기가 당연히 궁금해지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습한 미스터리를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허가의 조건이 내국인 진료는 안 되고 외국인만 상대해서 장사를 하라니, 돈을 벌려고 뛰어든 장사꾼에겐 정말 거칠고 후진 조건이라 더욱 의심의 골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원 지사는 그간 자신이 얼마나 고뇌했는지를 토로하며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녹지그룹이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며 제기할 소송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허가를 내주었으나 진료 대상을 외국인으로 한정한다는 엄격한 전제를 달았다며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피해가 없다는 항변 아닌 항변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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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뉴시스>

 

그런데 허가를 내주었음에도 녹지국제병원은 제주도청을 상대로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소송을 걸었다. 소송을 피하려고 허가를 내주었다는 원 지사의 변(이 변은 똥꼬로 쏟아지는 변이 아니고 그 대척에 있는 구강을 통해 위로 솟구쳐 오르는 변이다)이 무색해지고 구강을 통한 변은 똥꼬로 쏟아지는 변이 되었다. 똥 싸지 말라고 허가를 내주었는데 녹지국제병원은 보란듯이 똥을 싸질렀다.

 

원희룡 지사가 병원 허가를 발표하면서 내건 이유는 거액 배상이 걸린 소송 이외에도 제주 행정에 대한 신뢰도 추락, 해외 투자자들 사이의 신인도 추락과 한중 외교 마찰 등이었다. 거액의 배상금과 행정 신뢰도, 투자자들의 신인도 추락이라... 기시감이 든다.

 

원 지사께서 거액의 배상금과 행정 신뢰도, 국제 신인도를 이유로 들며 만든 미스터리한 사건을 만든 것은 영리병원 말고도 몇 해 전 또 있었다.

 

 

하루아침에 종이 쪼가리가 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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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둘째 주, 원 지사는 김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016년 5월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회의에서 같은 당(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유원지 특례 조항을 넣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기적처럼(?) 통과되었다. 기적처럼 통과되었다고 말한 이유는 예래휴양단지 개발사업이 대법원에 의해 이미 행정절차상 위법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도, 법률전문가들도 대개는 대한민국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결한 마당이니 당연히 법 개정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법 개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니 기적이라 할 만하다.

 

이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의 진행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제주도가 특별자치도가 된 이후, 도지사들은 발 벗고 나서 외국 자본을 유치해 제주도의 자연 유산과 환경을 헤집어 훼손하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들을 유치하는데 열을 올렸다.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이 합작하여 만든 법인 ‘버자야 제주 리조트’가 총 2조 5천억 원을 투자하는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조성 사업도 그런 사업들 중 하나였고 당시 제주도정이 자랑하는 가장 대표적인 투자 유치 성과였다.

 

국내 최대 외자 합작 관광사업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사업은 ‘유원지’라는 타이틀을 달고 처음 총 403,000㎡의 사업 부지로 시작했다.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원지’는 주민들의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 목적의 사업이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업자의 영리 목적이 분명한 분양형 주거 목적의 건축물이나 기타 시설들이 공익 목적의 유원지 사업 부지 안에 들어서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처음 사업 계획은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여 ‘유원지’로 허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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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2005년 휴양형 주거 조성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사업 계획이 변경되면서 그 사업 부지가 두 배에 가까운 743,700㎡으로 넓어졌다. 그 안에 들어서는 시설들도 호텔, 숙박 시설, 분양형 콘도미니엄, 메디컬센터(여기도 의료 서비스 시설이 들어있다), 랜드마크 타워로 채워져 누가 봐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사업자의 영리사업으로 변경되었다.

 

더 이상 유원지가 아니었고 변경된 사업 계획 변경은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하에서는 유원지로 인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제주도청은 변경된 사업 계획을 유원지 사업으로 인허가하며 위법을 저질렀다. 사업을 대규모로 확장해서 변경했음에도 위법하게 유원지 인허가를 유지한 사업자는 사업 확장에 필요한 사업 부지를 토지 강제 수용이라는 제도를 통해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도시ㆍ군계획시설의 결정ㆍ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유원지’는 ‘주로 주민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오락과 휴양을 위한 시설’이라고 규정한다(해당 규칙 제56조). 이 조문은 너무 명료해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1심도, 2심도, 마지막 대법원까지 제주도청의 유원지 인허가가 위법하고 그에 따라 수행된 강제 토지 수용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업 변경 이후 추가로 강제 수용된 토지를 원래 토지주들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재주는 곰이, 돈은 다른 놈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원희룡 지사는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과 관련하여 거액의 줄소송과 행정 신뢰도, 국제 신인도 추락을 이유로 19대 마지막 국회 며칠 전에 상경해서 기적적으로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개정했다(개정의 주요 내용은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던 유원지 사업과 관련된 인허가 부분을 제주도특별자치도 지방정부, 도지사의 권한 밑으로 이양하는 것이다).

 

원 지사의 원래 의도대로라면 법이 개정되었으니 버자야 제주 리조트의 소송도 해결되어야 하고, 행정 신뢰도나 국제 신인도의 추락도 막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사태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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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된 ‘제주도특별법’은 소급 적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업이 중단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은 제주도특별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위법한 것이고 대법원이 판결한 대로 ‘무효’인 상태이다. 사업을 합법적으로 재개하려면 개정된 제주도특별법에 따라 다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돈을 벌어야 하는 영리 사업자 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제주도청이 2017년 7월 15일에 내놓은 ‘제주형 유원지 시설 가이드라인 시행 계획’에 따르면 제주특별자치도 내 ‘유원지’는 관광숙박시설이 총 사업 부지 면적의 30% 이상을 차지할 수 없고, 분양형 콘도미니엄은 아예 불허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이 ‘유원지’ 인허가를 새로 받으려면 기존에 추진한 사업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만 한다.

 

개정된 법률들에 따라 새로 유원지로 인허가를 다시 받으려면 일단 강제 수용한 토지는 원 토지 소유주에게 일단 돌려준 뒤 되사야 하고(2016년 이후 제주도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랐으니 새로 부지를 매입하거나 강제수용하려면 천문학적인 사업 자금을 다시 조달해야 한다), 다 지은 건물을 수선하거나 허물어야 하고, 사업 계획을 대폭 뜯어 고쳐야 한다. 사칙연산만을 쓰는 어림 계산도 필요 없이 이건 누가 봐도 그냥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거다.

 

유원지가 안되면 ‘관광진흥법’에 따라 ‘관광단지’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건 유원지로 인허가 받는 것보다 더 복잡해서 끝도 보이지 않고 변경된 사업 계획으로 추가된 필요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정황들은 ‘버자야 제주 리조트’가 제주도청과 JDC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아직도 취하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기에 충분한 설명이 된다. 버자야 제주리조트가 가장 손해를 적게 보는 것은 손해배상받고 하루 빨리 탈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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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주도청은 지금도 수용된 토지의 반환을 요구하는 원 토지 소유주들의 줄소송에 몸살을 앓고 있다. 무슨 생각인지 제주도청과 JDC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을 상대로 이길 수도 없는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고 있다. 소송이 취하되기는커녕 늘어만 간다.

 

행정 신뢰도와 국제 신인도 추락도 전혀 회복되지 못했다. 외국 투자자는 물론이거니와 제주도민에게조차 신뢰가 무너졌다.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하는 제주도정을 신뢰하라고?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원 지사의 법 개정은 오히려 외국인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법체계를 깔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이 잘못된 행정을 바로 잡기는커녕 국회에 달려가 국법 자체를 뜯어고쳤으니 제주도정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근간이 되는 법체계를 흔들어 놓은 셈이다. 내가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은 갑부고 제주도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려는 사업자라면 일단 위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사업 인허가를 받을 것이다. 위법은 나중에 법을 뜯어고쳐 합법이 되게 만들면 되니까.

 

 

모두가 울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이 사건을 되짚다 보면 이 사건과 관계된 이해당사자 중 법 개정으로 웃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강제로 뺏긴 토지 소유주도, 사업 주체인 버자야 제주리조트도, JDC도, 말레이시아 버자야 그룹도, 제주도청도, 우리나라 국회도, 심지어 제주도민이나 우리나라 국민조차 웃을 수 없다. 모두가 대성통곡해야 하는 판인데, 이런 와중에도 옅은 미소를 짓는 이들이 몇몇 눈에 띈다.

 

법 개정 후, 제주도에서 유원지나 혹은 유원지와 연계된 관광단지 사업은 이전에 비해 인허가에 관련된 법적 혹은 행정적 진입장벽이 낮아졌고 '국토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하에서는 불가능했던 수익 사업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예래휴양주거단지 조성사업이 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사업 계획이 보류되거나 사업 추진이 주춤했던 다른 유원지 사업들이 활로를 찾은 셈이고 공공자산인 제주의 자연을 사익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쓸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마련되었으니 웃는 이들이 생겼다. 재주는 곰이, 돈은 다른 놈이 벌게 되는 너무도 익숙하고 식상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국법까지 개정하는 신공을 발휘하여 중앙정치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위상과 영향력을 과시하고 다시 한번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가 된 원 지사. 보통 사람들도 그 결말을 뻔하게 예측할 수 있는 법 개정을, 법을 공부한 율사 출신 원 지사가 왜 앞장서서 추진했는지, 정말 미스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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