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본의 아니게 최대집이라는, 희대의 괴인을 협회장으로 앉힌 조직에 속해 있는 현직 정형외과 의사입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선거에서 저는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최대집 체제 협회에는 회비를 납부한 적이 없음을 감안해 아래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809281972767317_1.jpg

 

 

2.

큰 뉴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터져 나오는 사회에 살면서 대리수술 문제, 수술실 CCTV 설치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관심의 끊을 놓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저 역시 이 사안에 대해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저와 같은 종합병원 봉직의(병원에 고용된 의사)에게는 사실 그다지 와닿는 사안이 아니기도 합니다. 많은 동료 외과의사들이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된다면, 그 수술방에서는 수술하지 않겠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살면서 수술을 직접 받거나, 가족 친지의 수술을 지켜봐야 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생활에 직접 닿아 있는 문제입니다. 수술실에 CCTV를 달아야 한다고 주장의 논리는 크게 아래와 같습니다. 

 

1) 수술 기구상 등 무자격자에 의한 대리수술이 만연해 있고, 이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CCTV를 수술실에 설치하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

 

2)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에 대한 증거가 가해자일 수 있는 의료진의 진술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으므로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CCTV 설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저는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전제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를 법제화하자는 방안은 많은 문제의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3.

 

스크린샷 2019-04-07 오후 8.51.53.png

美 캘리포니아 ‘산부인과 몰카’ 파문… 피해자 1,800여 명(링크)

 

수술실에서는 필연적으로 환자의 환부를 노출하게 될 수 밖에 없고, 많은 경우에 생식기도 포함됩니다. 특히, 많은 환자에게 '도뇨관 삽관술'(foley catheter insertion)을 해야 하는데요, 이름에서 짐작하시겠습니다만, 환자의 생식기를 노출하고 요도에 관을 넣는 시술입니다. 기본적인 수술 준비 과정에 포함되지요. CCTV를 설치한다면 고스란히 영상에 저장될 수 밖에 없는 과정입니다. 

 

비뇨기과나 산부인과의 많은 수술들은 사람들이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는 회음부를 대상으로 합니다. 이런 수술 장면들을 CCTV로 촬영하고, 만에 하나 그 영상이 유출된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수 있겠네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수술실에만 CCTV를 설치하지 않으면 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답해야겠습니다. 대부분의 병원은 번호나 기호로 수술방을 구분해서 관리합니다. 정형외과 1번 방, 외과 2번 방으로 부르지 않아요. 각 과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은 있지만 응급, 야간 수술이 열리는 경우 방의 구분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각 과에서 전용으로 사용할 수 없을만큼 수술실이 적은 경우도 많습니다. 오전에는 비뇨기과 수술을 하던 수술실에서 오후에는 일반외과 수술을 하는 식이지요. 야간에는 당직 간호사들의 업무 동선을 위해 상이한 과의 수술을 붙어 있는 두 방에서 하기도 합니다. 원래 비뇨기과 수술만 하던 두 방을 열어서 한 방에서는 산부인과 수술을 하고, 다른 방에서는 이비인후과 수술을 하는 식이지요. 저도 주로 쓰는 수술방이 있습니다만, 다른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애초에 영상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유출이 되지 않도록 하면 아무 문제 없지 않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문제는 관리가 잘 될지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점과, 유출 방지를 위한 비용 정도가 있겠군요. 수술받을 환자 개개인에게 본인의 신체 일부가 포함된 영상을 촬영한다는 동의서를 받아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환자가 동의하기만 한다면 CCTV 설치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201228938_700.jpg

 

 

4.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대리수술을 제외하고는 사실 CCTV가 할 수 있는 역할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수술실마다 수십개의 고해상도 CCTV를 설치해서 다각도로 수술 장면을 촬영하려 하지 않는 한, 대부분 한두 개 정도의 CCTV를 수술실에 설치하게 되겠지요. 수술실 전반을 촬영해야 할 것이므로, 배율은 작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수술 부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CCTV 영상만을 통해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없는 것 보다는 도움이 되겠지만요.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수술의 전 과정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녹화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문제가 생겼을 경우 뭘 잘못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고, 개선을 도모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수술 장면 전반을 촬영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는 데에는 돈이 들지요. 그런 비용을 지급해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고 말입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요?

 

5.

당연히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대리수술 적발을 위해서는, 수술실의 입구와 내부의 각 수술실로 연결되는 복도에 CCTV를 설치하면 충분합니다. 실제로 작년 9월경 보도되었던 부산 영도 소재 정형외과의 대리수술도 수술실 입구의 CCTV 영상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었지요. 이미 많은 병원에서 보안 목적의 CCTV를 수술실 입구와 복도에 설치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런 CCTV를 법제화하는 정도만으로도, 대리수술은 어느 정도 잡아낼 수 있습니다. 수술실은 감염 관리를 위해 한두 개의 출입구만 있는 구조이므로, 많은 CCTV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도의가 아예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갔다가 실제 수술을 하지 않는 대리수술은?'이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죠. 그런데 수술에 참여해야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수술실에 들어간 상태임에도 집도를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는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해서 잡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수술은 아주 작은 부위에서 시행되고, 누가 집도의인지 영상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거든요. 결국은 수술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이 아니고서는 대리수술로 발생한 문제인지 아닌지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증언자를 보호하고, 위증시에 엄한 처벌을 내리는 식의 제도적 장치를 잘 갖추는 것 외에는 대리수술을 본질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대리수술이 문제가 되는 걸까요? 제가 수술을 계획한 환자분들도 '선생님이 직접 수술하시는 거 맞지요?'라고 묻습니다. 외국에서 대리수술이 거의 없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수술이 비싸요.

 

d03.gif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극단적인 대비를 위해서 미국의 예를 들어보지요. 미국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면, 환자가 병원에 납부해야 하는 비용은 대략 최소 만 불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천만 원이 넘는 돈이지요. 우리나라는 대략 십몇만 원이면 수술비는 해결됩니다. 이야기가 보험 전체로 확대되면 너무 거창해지므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만, 요점은 미국에서 수술은 의사에게 '큰 돈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대리수술이 적발되었을 경우의 처벌도 무시무시하고, 한 의사가 해내야만 하는 수술의 숫자도 적지요. 그러니 의사들이 대리수술을 하고 싶어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개인병원 의사들은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수술을 해야만 적자를 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면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만, 그런 환경이라 수술 건수를 늘리기 위한 유혹에 빠지기가 쉬운 겁니다. 

 

이야기가 늘어지므로 이쯤에서 정리하자면,

 

1) 무자격자 대리수술 문제는 수술실 입구 및 수술실 복도에 CCTV를 설치하여 어느 정도 적발할 수 있다

 

2) 각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위험이 크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무자격자의 수술 참여까지 포함한 수술의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반응이 좋다면) 또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의견과 질문 기다립니다.

 

 

 

 

편집부 주

 

위 글은 독자투고에서 납치되었습니다.

딴지일보는 삼진아웃 제도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바,

톡자투고 및 자유게시판(그 외 딴지스 커뮤니티)에 쓴 필자의 글이

3번 마빡에 올라가면 필진으로 자동 등록됩니다.

 

 

 

 

Profile
공공병원 척추외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