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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부 주

 

주원규 작가는 쉼터 청소년들과 교류하던 중 연락이 끊긴 가출 청소년들이 강남 클럽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남으로 간다. 아이들을 빼내기 위해 강남 클럽에 잠입했고, 6개월간 주류배달원과 '콜카 기사'로 일하며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강남 클럽 생태계의 이면을 직접 관찰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펴내기도 했다.

 

 

 

사라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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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나에겐 특별한 해였다. 2012년부터 직, 간접적으로 만나 오던 가출 청소년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낼 소중한 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 친구들의 삶과 살아갈 얘기를 담은 인터뷰 에세이를 펴내는 기쁨을 이루기도 했다. 

 

사실 21세기의 10대는 우울하다. 헬조선 얘기가 괜히 입버릇처럼 나오는 게 아니다. 기성세대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질수록 입시경쟁은 더 잔혹해져 간다. 고민과 걱정이 가득한 10대의 질풍노도의 우울함을 대면하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했던 가출 청소년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삶을 긍정했다.

 

"그래도 인생, 좆같지만 한 번은 살아봐야지."

 

그렇게 인연을 맺은 친구들 중, 유독 인상에 남는 세 친구가 있었다. 차희(18세, 가명), 은지(16세, 가명) 그리고 태식(19세, 가명)이다.

 

셋 모두 강서구에 위치한 청소년 쉼터에서 만났다. 태식이는 남자고 체격도 대단한 편이어서 이종 격투기나 야구 같은 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이었다. 10호 보호처분을 받고 소년원(청소년 교정시설)에서 2년 가량 지내다 온 태식은 소년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했었는데, 나중엔 소년원을 나오는 게 싫을 정도로 그 생활에 만족했다고 한다. 책읽기 때문이다. 태식은 그곳에서 소설, 역사, 시집, 에세이,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읽었다.

 

"어떻게 쓰고 어떻게 돈 버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이든 웹툰이든, 이야기 같은 걸 쓰면서 사는 사람, 되고 싶은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물었을 때, 눈이 빛나며 말하던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차희는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좀 크고 성숙한 편이었다. 성숙한 외모 만큼이나 춤도 잘 추고 그 어렵다는 랩도 잘 따라 부르곤 했다. 같이 CNN 같은 미국 방송을 보던 중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외국가수의 영어 랩 가사를 제법 유창하게 따라 부르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랩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춤도 따라 추곤 했는데, 쉼터 선생님들로부터는 선정적이니까 자꾸만 이상한 동작 따라 추지 말라는 제지를 받았지만 그래도 수준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은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한글을 전부 배우지 못해, 중학생 나이대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었다. 대신 은지에겐 뛰어난 그림 실력이 있었다. 종이나 펜을 살 수 없었던 은지는 담배값이나 담배 케이스 안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 화백처럼 은박지 위에 뾰족한 것으로 뭔가를 새겨넣을 때가 많았는데, 그 실력을 보고 있자면 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은지의 꿈은 타투이스트가 되는 것이라 했다. 나는 그 꿈을 지원해주고 싶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서로 의논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2015년 겨울에서 2016년으로 넘어서던 길목에서 그 세 명의 아이들의 연락이 거의 동시에 끊어졌다. 처음엔 태식, 그 다음 차희,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은지마저도.

 

 

강남으로 갔다,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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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식, 차희, 은지만 자발적 실종을 단행한 게 아니었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쉼터나 교정시설, 신도림역이나 영등포 일대 가출팸 원룸들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친구들 중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거의 비슷한 날짜대에 연락이 끊기는 일이 벌어졌다.

 

여친, 남친이 생겨 갑자기 여행을 가거나 PC방에서 며칠 밤을 새우는 일이 있더라도 최소한 하루 이틀이 지난 뒤에 통화가 되거나 생존 메시지를 남기는 게 우리 사이에 지켜지던 룰이었다. 그런데, 스무 명 남짓한 친구들의 룰이 무너지는 현실을 마주하니 당혹감과 불안, 설명하기 힘든 두려움이 나를 파고들었다.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어떤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마음과 동시에, 몇 달 만에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연락을 두절하고 실종되는 배후에 어떤 '모종의 흐름'이 맞닿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공존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소문한 끝에 태식의 PC방 친구를 만났을 때, '모종의 흐름'에 대한 의구심이 사실로 드러났다. PC방에서 만나 게임을 통해서만 교류하던 그 친구와 태식은 나와 연락이 두절된 뒤에도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태식이 2015년 12월 24일 성탄절에 '자신은 이제 강남으로 진출했으니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왔다고 했다.

 

강남? 막연하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 폭행을 못 견디고 집을 나온 뒤 줄곧 신도림과 영등포 일대에만 돌아다니던 태식이가 무슨 연고가 있어 강남으로 간단 말인가. PC방 친구는 태식이 강남 중에서도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클럽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열아홉짜리 미성년 남자애가 강남 클럽에서 일을 한다는 게 어떤 개념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태식을 만나기 위해 삼성동과 역삼동 근방 클럽을 찾아갔다. 밤 10시부터 기다리던 나는 태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휴대폰에서 전화번호까지 모든 걸 교체한 태식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알 수 있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한다는 걸. 

 

나이 많고 차림새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나는 클럽 입장 거부를 당했다. 어쩔 수 없이 클럽 맞은편 편의점에서 태식의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새벽 4시 넘어 클럽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태식이 캔커피만 세 캔째 마시고 있던 편의점 내 의자 옆으로 와 앉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뭘 기다리고 지랄이야. 잠수탔으면 안 찾는 게 상식 아니야?"

 

"상식은 무슨… 태식아. 너 말고도 은지, 차희 모두 연락이 안 돼."

 

"개네들도 아마 일본형 따라 강남으로 들어왔을걸."

 

"말 좀 해볼래? 강남으로 스카웃된 이유가 뭔지."

 

"스카웃은 무슨 스카웃. 거창할 거 없어. 다 그렇고 그런 내용이지. 정말 알고 싶어? 알고 싶으면 소주 한 잔 사든가."

 

태식이 먼저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나는 태식과의 새벽 술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곳에서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지옥도의 프롤로그와 마주했다.  

 

 

강남으로 갔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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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식을 강남 클럽 중에서도 가장 코어에 속한다고 하는 클럽 가드로 취직시켜 준 건 일본형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20대 초반의 녀석이었다. 태식은 저녁 8시부터 오픈 준비하는 클럽 안팎을 오가면서 무전기로 상황 보고 받으며, 폭행시비, 취객 난동, 속칭 물 흐리는 입장객 정리하는 일을 한다. 평일 하루 30만 원, 토-일요일엔 40만 원 정도의 일당을 받는다고 했다. 밤 시간 바짝 일해 그 정도 벌면 다른 곳에 가서 일하긴 어렵겠다고 말했는데, 태식은 고개를 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사정 돌아가는 꼴 몰라 그렇지. 내가 최고 안 풀린 케이스야. 나하고 강서에서 같이 지내던 영호 알지? 그 씹새끼, 호스트 클래스로 클럽에 스며들어 스폰이나 멤버십 조개들한테 몇 백만 원씩 용돈 받고 일한다고. 여자 애들은 또 어떻고? 룸이나 가라오케, 업소 같이 지저분한 곳에서 버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번다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에게 클럽이란 플랫폼을 기점으로 취직자리를 알선하고 관리해주는 인물은 모두 일본형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였다. 일본형, 그 친구는 나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신도림역 근처 만화방, PC방, 노래방, 술집 등을 전전하던 가출팸 아이들을 관리 명목으로 데리고 다니며 여자애들을 유흥업소에 소개하거나 아님, 직접 보도방을 운영하며 성매매를 알선하던 전과 3범의 질 나쁜 인간이었다.

 

그 일본형이란 친구 역시 가출팸 출신이었다고 청소년 친구들이 말한 적이 있었다. 반년 전부터 일본형 역시 연락이 끊기고 신도림이나 영등포 근처에 얼씬도 않더니 결국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던 거였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태식을 데려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태식은 이미 강남, 그것도 클럽이란 세계가 가져다주는 화려함과 넉넉한 인센티브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태식이 말한대로 이곳에 연락이 두절된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 화려한 클럽 배후에 끔찍한 흐름이 벌어지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강남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일주일 째 되던 날 저녁 11시. 다시 클럽을 찾았고, 태식을 만나 담판을 짓듯 말을 꺼냈다.

 

"너, 그만두란 얘기 안 할 테니, 나 여기에 취직 좀 시켜줘라."

 

"아저씨가 뭘 할 수 있는데?"

 

"다른 일들은 내가 구할 테니까, 너 그 일본형에게 아는 동네 형이라 소개하고 운전기사 일 좀 하게 다리 나 줘. 내가 버는 돈에서 반까이 이상 너한테 밀어줄 테니까. 부탁 좀 하자."

 

태식에게 일을 부탁하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예전에 해봤던 전기공사 전공 일과 주류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강남 일대 클럽, 라운지 바 그리고 룸쌀롱 일대를 돌아다녔지만 그 일들 만으로는 사라진 아이들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어 결국 태식에게 일본형 소개를 부탁하게 된 것이다. 

 

가까스로 성사된 운전기사 일. 처음 내가 운전기사 일을 제안했을 때, 내 머릿 속엔 콜뜨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시작하게 된 일은 단순한 콜뜨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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