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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내가 왜 자본주의는 더이상 다수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부적절한 결과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보는지, 그리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어떤 조치들이 취해지면 좋을지 밝히고자 한다."

 

내가 발췌해 온 위 글의 저자는, 좌파 정치인 혹은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헤지펀드, 브릿지워터사의 창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인 레이 달리오가 쓴 글(링크)이다. 과거에도 몇 번 그를 언급하고, 그에 관한 기사를 썼던 적이 있는데, 레이 달리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헤지펀드 업계에서 지난 수십 년간 톱을 찍었던 남자다.

 

그의 펀드가 운용하는 자산은 170조 원을 넘으며, 작년 같은 하락장에서도 14.6%의 높은 수익률을 냈다. 개인 자산만 20조 원에 달한다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금융업에서도 가히 정점에 오른 인물이라 할 수있다. 그런 그가, 자본주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기고한 거다.

 

스스로를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운 좋게 억만장자가 되었다고 밝힌 그는, 오랫동안 거시경제 투자자로 경제와 시장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연구해 왔다. 여기에 대해 첨언하자면, 레이 달리오가 돈을 번 방식은 큰 돈을 땡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잡는 소로스나, 가치투자 원칙을 철저히 잘 수행하여 개별 종목의 저점을 잘 찾아내는 버핏과는 다르다.

 

레이 달리오와 그가 운영하는 펀드는 지난 수십 년간 경제의 큰 흐름을 가장 잘 읽고, 이를 활용하여 시장 환경과 무관하게 높은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낸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의 큰 흐름을 논하는 것 자체는 정말 아무나 하는 거지만(경제는 특히 자칭 전문가가 너무 많은 분야다), 레이 달리오가 범인들과 달랐던 것은 자신의 예측을 가지고 수십조를 베팅” 해 왔단 것과 그 베팅을 통해 엄청난 실적을 쌓아 왔다는 것이다. 거시경제에 한해서는 최고의 실전 전문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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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레이 달리오가 미국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내린 결론은, 더이상 자본주의가 다수를 위해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오랫동안 투자라는 실전 속에서 경제를 분석해 온 전문가답게, 직관적인 통계와 그래프를 활용해서 이를 설명했다. 아래는 그가 제시한 수치의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 1980년대 이후로 하위 60% 근로자의 소득은 정체한 반면, 상위 10%의 소득은 2배, 1%의 소득은 3배가 되었다.

 

- 1970년에는 만 30세 근로자 중 90%가 자신의 부모보다 높은 소득을 올린 반면, 오늘날에는 50%만이 자신의 부모보다 높은 소득을 올린다.

 

- 오늘날 상위 1%의 소득은 하위 90%의 소득을 합친 수준인데, 이러한 소득 불균형은 1930년대 이후 최대치이다.

 

- 1980년 상위 40%의 자산은 하위 60%보다 약 6배 많았던 반면, 오늘날 상위 40%는 하위 60%보다 10배에 달하는 자산을 가지고있다.

 

- 미국 연준에 따르면 40%의 미국인은 비상 상황에 쓸 수 있는 돈이 400불이 채 되지 않는다.

 

- 오늘날 하위 20% 소득을 받는 근로자가 향후 10년 동안 평균에 준하는 소득을 벌 수 있는 확률은 단 14%에 불과하다(1990년기준으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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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통계들을 통해 레이 달리오가 전하고자 한 것은 대다수, 그러니까 하위 60%의 미국인이 지난 20년간 점점 더 가난해졌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혜택 대부분이 상위 소득자에게 집중된 동안, 하위 소득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소득을 올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다이러한 경제 불균형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할 공교육에 있어서도, 레이 달리오는 심각한 문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 미국의 아동 빈곤률은 현재 17.5% 수준인데, 이는 지난 수십 년간 별로 나아지지 않은 수치이다.

 

- 빈곤 지역 학교에선 학생 중 약 34%는 장기 결석하는 데 반해, 고소득 지역 학교에선 단 10%만의 학생이 장기 결석 중이다. 이렇게 학교에 가지 않고 방황하는 학생들은(코넷티컷주 기준으로),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구속될 확률이 약 5배가량 높고, 33% 이상 약물 중독을 겪을 확률이 높다.

 

- 아동 빈곤율이 1% 증가할 때마다, 졸업 확률이 1% 이상 감소하는 음의 상관 관계(87%)가 존재한다. 즉, 아동 빈곤율이 치솟을수록, 정상적으로 교육 과정을 마치는 학생의 수도 줄어드는 것이다.

 

- 2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는 저소득 가정 학생들의 SAT(미국 대입 시험. 1600점 만점) 성적 평균은 2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고소득 가정의 학생들보다 약 260점가량 낮다. 이러한 소득 불균형에 따른 수험 성적 격차는 1940년대에 비해 75%가량 상승하였다.

 

- 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격차를 해소해야 할 미국 교사들은, 다른 대학 졸업 근로자 대비 32%가량 낮은 연봉을 받는다. 미국에서 교사들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러한 교사 vs 대졸 근로자의 격차는 지난 20년간 급격하게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소득 격차에 따른 교육 기회의 감소는, 지방 정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재정 구조에 따른 것이다. 집값이 비싸서 많은 재산세를 거두기 때문에 부유한 동네는 공교육에 많은 재정을 투입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동네의 학교는 지방 정부로 충분한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득에 따른 교육 환경 격차는 사립 vs 공립으로 가면 더욱 심해진다. 비싼 학비를 받는 미국의 사립 학교는 학생당 2천 300만 원 이상을 투입하는 데 반해, 공교육은 학생당 1천 400만 원가량을 지출한다. 이러한 지출의 차이는 고스란히 학업 성적의 격차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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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교육 시스템의 붕괴는 기회의 균등을 감소시키고, 이 시스템에서 낙오된 이들을 고착화된 가난과 높은 범죄로 내몬다. 미국의 범죄율은 구속 기준으로 무려 다른 선진국 대비 5배, 개발 도상국 대비 3배 수준이다. 이렇게 치솟는 범죄율 탓에,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비용 또한 지난 20년간 4배 증가하였는데, 오늘날 교정 시설 관리비로만 연간 50조 원이 투자된다.

 

그 뒤로도 레이 달리오는 조목조목 높은 빈곤율과 기회의 균등 부족으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사회 문제들을 열거했다. 이를 통해 레이 달리오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누렸던 아메리칸 드림이란 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들은 경제, 사회 그리고 정치적인 불안정성을 발생시키고 있단 것이다.

 

그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더이상 다수를 위해 기능하지 않는 이유를 악랄한 자본가 혹은 게으른 가난한 자와 같은 것에서 찾지 않는다. 나는 이게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레이 달리오는 말한다.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만들어진 좋은 원칙이라도 이를 극한까지 실행에 옮길 경우 자기파괴적이 되어 버리고, 개인들을 시스템에 적응하거나 혹은 도태라는 양자택일로 내몬다.' 

 

이러한 변질이 현대 자본주의에도 찾아왔다는 것이다. , 자본주의의 원칙이 악의를 가진 개인에 의해 조종되어서 퇴행한 게 아니라, 반대로 너무나도 잘 작동해서 이윤을 극한으로 추구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변질이 발생했다는것이다.

 

레이 달리오에 따르면

 

- 지난 수십 년간 기업들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술 발전이란 명목으로 일자리를 줄이고, 저비용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아예 공장들을 해외로 옮겨 버렸다.

 

- 이 둘의 결과로 기업의 영업 이익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데 비해, 매출 대비 인건비 지출분은 1929년대 수준으로 극도로 후퇴하였다.

 

- 지난 2008년도 경제 위기에서 미국 연준은 자국 금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찍어냈는데, 이렇게 흘러간 돈은 금융 자산을 가진자들의 배만을 불렸다.

 

- 정책 결정자들은 예산, 지출 관리에 집중한 나머지 투자 대비 수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가령, 저소득 아동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이는 것은, 예산 차원에서 보면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투자 대비 수익의 차원에서 보자면 매우 멍청한 짓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개선시키기 위해선

 

- 경제 불균형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 사회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당 협력하의 자문 위원회를 설치하여 시스템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이런 노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도입해야 한다.

 

-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요약은 이 정도로 마친다. 매우 글을 쉽게 쓰는 편이라 직접 원문을 찾아 읽어 보길 권한다. 참고로 그가 책장사를 해서 인세를 받아먹기엔 돈이 너무 많아서 그동안 썼던 기고문, 저서들을 그의 홈페이지에다 무료로 풀어놓았으니 한 번 가서 읽어 보시라.

 

사실, 레이달리오 이전에도 많은 진보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해왔고, 현재 대다수 미국인들이 처한 경제적현실에대한 우려를 나타낸바있다. 레이달리오의 이러한 주장이 과격하거나 새로운축에 속하는것은 아니라는것이다. 

 

그럼에도 이글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레이달리오는 학문의 틀 속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학자가 아니라, 스스로가 인정했다시피 타고난 자본가이고, 자신의 예측에 따라 수조원을 벌기도, 잃기도 한 거시경제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막대한 성공을 거둔 그가, 그 성공 뒤에는 많은 행운이 있었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자기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기회(아메리칸드림)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자기가 가장 혜택을 입었던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비판했기에, 그의 주장에 더욱 관심가는 것이다. 

 

이걸 삐딱하게 보자면, 경제적 기득권을 쥔 자본가가 자신의 부를 영속시키기 위해 체제를 수정하려 한다고 볼 수도 있을 거고, 정말 냉소적으로, "이 양반이 정치에 관심있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참고로 레이달리오 부부는 사망시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공약을 한 giving pledge 단체의 멤버이다. 또한, 2020년 대선을 단 1년 남긴 시점에서 정치욕심 부린다 한들, 너무 급한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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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레이 달리오는 예전 기고문 / 저서에서도 꽤나 일관되게,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보통 경제적인 불황기에 사회 / 정치적인 갈등이 고조되기 마련인데, 2008년도 이후 미국은 오랜 호황기를 누렸음에도, 미국사회에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음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오바마 정권이 그랬고, 트럼프 정권이 그랬으며, 이에 맞설 민주당 대권주자들의 발언은 점점 강경해질 뿐, 다수를 포용할 수 있는 중도정치인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크게 보자면, 기존 기득권인 선진국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과 이들에게 수출을 하여 격차를 해소하려는 개도국 (중국, 러시아)간의 갈등, 유럽내 이민자에 대한 논란 등등,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갈등, 이로인한 포퓰리즘 정치와 극우정치는 유럽부터 남미까지 전세계를 휩쓸고있다.

 

이에 대해 레이달리오는 현재의 미국정치 / 국제정치 상황을 대공황 전후에 여러차례 빗댄 바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존을 위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강조해 왔었는데, 이번 글은, 그러니까 자본주의에서 가장 혜택을 입어온 자본가인 스스로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려는 시도로 봐줄 수 있다.

 

이글이 실제로 발표된 이후, 미국사회에서 꽤 많은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후 여러차례 인터뷰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자기와 같은 억만장자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난 그의 태도가 오랫동안 일관되었다고 느꼈고, 사회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자본가가 시대정신에 맞는 진정한 스웩(Swag)을 보여줬다고 생각해 리스펙한다. 솔직히 졸라 멋있다. 

 

한국의 삼성, 현대, 롯데 같은 대기업 회장들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기회불평등, 소득양극화 같은 문제들이 한국에선 더욱 빨리, 더욱 크게 발생하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고 정치인들을 압박하지 않으면, 어느새, 모두가 열심히 살았는데 모두가 함께 가난해지는 날이 더 빨리 오는 건 분명하다.    

 

모두 1%가 되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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